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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게시물ID : soccer_248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헤르시노
추천 : 0
조회수 : 2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4/26 06:47:41
무리뉴는 취중에도 챔스 결승 티켓을 사가지고 집에 다달았다. 집이라 해도 물론 국가에서 해준 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떨어진 행랑방 한 간을 빌려 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무리뉴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 -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하는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聽覺)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 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무리뉴도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 맞을 놈, 감독이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 놈.”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무리뉴는 라커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유니폼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케케히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무리뉴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챔스 결승 티켓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군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놈, 주야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감독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하였다. 라모스가 잡고있던 공을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여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감독은 날두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 놈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놈!”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이놈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정만 보느냐, 응.”하는 말 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무리뉴는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테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결승티켓을 사다놓았는데 왜 넣지를 못하니, 왜 넣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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