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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불정책
게시물ID : sisa_282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행부
추천 : 13
조회수 : 39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7/03/27 22:54:30
3불정책에대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퍼왔습니다
참 잘 정리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늘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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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계절이다. 이 시기만 되면 어김없이 ‘궁물’을 원하는 조직, 단체들이 출몰하게 되는데, 때에 맞춰 배부른 아자씨, 아줌씨들이 꿀꿀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즉, 서울대 발전위의 장호완 위원장이 3不 정책 폐지로 포문을 열자, 일부 사립대 총장들과 언론, 한나라당 등이 ‘한 편 먹고 짝짜꿍’ 중인 것이다. 이해관계가 맞물린 똥파리들이 한꺼번에 날아들어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이들은 학교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국가 발전을 가로막은 주범으로 3不 정책을 지목하면서, 사교육비를 증가로 볼 때 방전된 배터리이나 다름없으니 버리라고 한다. 여기서 이 주장을 뒤집어보자. 3불이 폐지되면 마치 좋은 세상이 열릴 것 같은 뉘앙스다. 말하자면 사교육비는 점차적으로 낮아지거나 안정을 찾을 것이고, 대학은 경쟁력이 생겨 국제적으로도 손색이 없게 될 건가 보다. 그렇다면야 나도 동의할 뿐 아니라 박수쳐 줄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망상과 같을 뿐... 

예전에 정운찬이 본고사 부활의 불을 지피며 “정부는 원자재 질을 따지지 말고 좋은 제품을 만들라고 하지만, 좋은 원자재가 있어야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며 대통령에게 따지듯 말했다. 이게 바로 그의 싸가지를 엿볼 수 있는 원자재론인데, 요약하자면 학생이 우수해야지만 높은 퀄리티를 갖는 인재 양성이 가능하다는 말이 되겠다. 이는 현재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야지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얼뜨기 놈들의 발상과 맥을 같이 한다. 

다이아몬드의 원석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왠지 투박해 보인다. 그렇기에 세심하고도 정성스런 연마작업을 통하여 한층 더 사랑받는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이를 보석이라 부른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품질의 고가의 원석이라 하더라도 기술자의 컷(연마)에 따라 아름다움은 다르게 나타난다. 투명도가 덜 하여 기대만큼 빛을 발하지 못하거나 색상이 탁하여 아름다움이 떨어질 때도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자칭, 타칭 교육자라 하면, 학생들이 원석과 같이 약간은 틀이 잡히지 않았더라도 좋은 보석이 되게끔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기대에 미치지 못 하는 결과가 나왔다면 교수방법, 내용 등에 따라 학생의 가치가 천차만별로 틀려지기에 혹시 오류는 없었는지 고민하여 거기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총장 나리들은 학생의 질을 따져가며 주절주절 변명만 늘어놓는다. 

원자재 논리로 따져보더라도 본고사금지로 선발권을 자유롭게 가지지 못한 결과, 인재를 육성하지 못했다는 식의 주장은 빈약하다 하겠다. 아시다시피 명문대들은 전국에서 뛰어나다는 학생들을 독식해왔다. 훌륭한 원자재(학생)를 맘껏 소유했으니,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좋은 상품(인재)이 만들어져야 했다. 하지만 경쟁력에서 뒤쳐졌다며 칭얼대는 걸 보니 인재를 육성하지 못 했나 보다. 이건 그들의 주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서 가장 큰 책임은 대학과 교육자의 몫이라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창피란 걸 모르고 모든 게 3不 때문이라며 벌집을 쑤시듯 헤집고 다닌다. 남 탓만 하는 총장님아들아,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현재 몇몇 덜 떨어진 궁물들은 대학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사교육비를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전재희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대학 입시는 자율화돼야 한다”라 주장했고 포항공대 박찬모 총장의 발언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참 이지한 논리고 속 편한 발상이다. 단순해서 좋으시겠다. 

서울대를 비롯하여 명문대에서 논술고사를 치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학원가는 ‘논술 열풍’으로 식을 줄 몰랐다. 본고사의 난이도는 현재의 논술보다 수준이 업 될 거란 전망이 많듯이 아마 본격적으로 본고사가 실시되면, 학생들은 학원가로 몰리게 될 거다. 유명 사설 학원 원장들이 돈 방석에 앉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과외가 성행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도 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학원으로 가는 광경을 빚어내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은 학생들조차 예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교육비 감소’란 말을 하니 괘씸하다. 

비단 문제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입시환경 상, 고등학교에선 수리·언어·외국어 영역 즉, 국·영·수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본고사가 부활되면 이런 경향, 엄청나게 가속화될 것이다. 시간표는 위 세과목으로 도배가 될 것이고, 비중이 낮은 과목이 사장되는 건 시간문제다. 다른 과목의 교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마침내 공교육은 파행으로 치닫게 된다. 하지만 3不 폐지론자들은 이런 부작용은 극도로 최소화시키니 분통이 터지고도 남음이다.

우스운 건 출제 주체인 대학들의 논술채점 기준도 흐리멍덩할 뿐 아니라 서울대는 매년 문제 표절 의혹을 받는 등 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철저하게 검토한 후에 본고사를 요구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무작정 논술고사를 발표한 후, 출제와 채점 과정에 대하여 비판을 받았듯이 본고사에 대해 가볍게 입놀림을 했다면 용서할 수 없는 처사이다. 그 경솔함이 극에 달할 뿐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자질까지 의심스럽다 하겠다. 

고교등급제 역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얻는 결과가 아니라 선배들이 쌓은 성적으로 평가받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이건 사교육비 지출에 여유가 있는 가정이거나 특정지역 학생들을 우대하겠다는 의지다. 이렇게 되면 농어촌과 지방 학생들은 배타되어 자연스레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문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특목고, 서울 강남 지역 학군, 국제중 등 이런 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초등교육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입시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웃는 모습이 한참 예쁠 나이에 툭 건드리면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을 줄줄 말하는 기계와 같은 모습을 요구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인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국민 입장에서 가장 거부감이 드는 문제는 기여입학제일 것이다. 이런 국민적 정서가 사학 총장들에게 통할 리 없다. 무작정 허가해달란다. 이것이 허용되면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우수한 인재를 키울 수 있고, 연구비가 지원되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 그렇단다. 

며칠 전, 교육부 감사결과를 보니 95개 대학에서 증발, 유용된 금액이 708억 원으로서 사립대학이 99.2%로 대상 수상하셨더라. 것도 학생 장학금 횡령, 연구비 빼돌리기, 토익 강의료와 응시료 횡령 등 유용·횡령 분야 거의 석권하셨다. 

이만큼 해먹고도 배가 고프신지 허기가 진다며 기여입학제를 허가해달란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이 제도가 시행된다한들, 장학금으로 사용될 거란 보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연구비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지 않는 대학도 있을 거지만 말이다. 이렇게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것은 사립대학이 여태껏 저질렀던 비리가 한 몫 톡톡히 한다. 그러니 제발 어떤 요구를 하기에 앞서 자체 정화부터 하고 난 뒤에 하시라. 고양이한테 생선가게 통째로 내주면 최소한 쥐라도 잡지만, 사립대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매년 입시는 부정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도교사의 작품을 대리 출품하여 명문대에 입학한 부유층 자녀들, 아들을 부정입학 시킨 서강대 입학 처장, 서울대· 연대· 이화여대 등 음대교수들이 연루된 부정입학, 학부모로부터 5천만 원을 받고 부정입학시킨 이화여대 체육교수 등 부유층의 치마 쓰나미와 이에 동조하는 교수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마침 이번 감사에서 아주대도 교직원 자녀 포함 34명의 자격 미달자를 부당합격 시켰더라. 

돈이면 만사 오케이요, 체면은 뒷간에 빠트려도 상관없다는 주의다. 기여입학제는 요런 싹수 노란 학부모들이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고 대학입장에선 이들은 ‘최고의 고객’이 되는 셈이다. 대학과 학부모 간의 배팅 조건만 맞는다면야 얼마든지 머리는 없지만 돈과 배경 든든한 학생도 입학이 가능해진다. 반면 대부분의 서민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루에 1시간 자면서 공부해봤자 부유층의 ‘재력’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 

부모의 재력, 학교의 우위 순위, 거주 지역 등에 따라 학생이 평가되거나 차별받는 것은 곤란하다. 피해를 보는 것은 더더욱 금지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는 대다수 학생들에겐 불리하고 특권층과 유명대학들, 사학들만의 욕구를 충족시켜 달라는 요구나 다름없기에 이쯤에서 스톱해야 한다. 이익을 보는 이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흔들기만 하는 건 비양심적인 태도이지 않겠는가. 

어떤 정책이든 모든 수요자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듯이 비록 3不이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다고 해도 현재로선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대학들이 해야 할 건 3不 폐지 요구가 아니라 국민이 신뢰를 가질 수 있게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따라서 우선은 앞으로 어떻게 대학을 더욱 투명하게 운영하고 관리할 것인지와 과연 ‘등록금 1000만원에 해당하는 교육’을 했는지에 대해서나 자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 차차[삥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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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력저하? 혹시 그런 것이 있다면 그 책임은 대학이다. 

삼불정책 중에서도 특히 본고사 얘기만 나오면 으레 학력저하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너무나 그럴싸한 얘기여서 현행의 입시제도가 마치 사회 전반적인 학력저하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요즘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이른바 통합논술이라는 것이 바로 얼마 전까지도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 찌라시들이 논술장사에 가세하면서 논의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던지 모 대학교수가 자신도 현재의 논술문제는 풀 수가 없다고 말했을 정돕니다. 이 때 고등학교 현직교사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내신수업이 지식의 나열이고 이를 배우는 것이라면 수능은 배운 지식을 약간 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까지가 고등학교 교육이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논술은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의 영역이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을 고등학교에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다소 논쟁의 소지가 있기는 할지언정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말머리를 돌려 사회적 학력이란 게 - 특히 우리사회에서 - 무엇인지 얘기해봅시다. 가령 문맹률이 높고 사회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현격하게 떨어질 때 그 사회에서 학력이란 “읽고 쓰는 능력” 정도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를 벗어나면 “적절한 지식을 갖고 있는 정도”가 그 사회의 학력기준이 되겠지요. 한 때 우리나라도 고등학교 정도의 졸업만 해도 학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에서는 - 교육의 도덕적 가치를 떠나 실용적 가치라는 측면에서만 따져본다면 말이지요 - 문제를 창조하거나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사회적 학력의 척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의 학력을 마치 사회적 학력의 척도인양 떠들어대는 대학을 보면 정말 한심합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일 뿐입니다.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은 바로 사회에 진출하지 않고 대학으로 진학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고 또한 매우 긍정적인 현실입니다.(어떤 분들은 ‘개나 소나’ 대학에 다닌다는 표현까지 쓰던데 사실 개나 소나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훨씬 더 좋은 사회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진정한 우리사회의 학력은 대학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부분이 사회로 진출하는 구조라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입시에서 대학의 학력을 고등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본고사는 다분히 그럴 소지를 갖고 있죠. 아니 100% 그럴 겁니다. 그동안 대학들의 행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의 역할에 대한 그들의 인식방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굳이 먼 옛날 본고사가 있었던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수시에 영어지문을 금하기 전 자칭 명문대학의 수시시험 문제를 보면 앞으로 본고사가 생겨날 경우 어떠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가게 해 줄 겁니다. 그 당시 비공식적인 본고사라 일컬어졌던 이들 문제는 - 아직 본격적인 본고사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 정상적인 고등학교 수업을 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본고사의 문이 열리는 순간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이 어떤 문제와 싸워야 할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합니다. 

우리 대학들은 정말이지 “좋은 학생들을 골라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잘 기르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너무 적절합니다. 좀 더 적합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이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골라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적절한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을 갖춘 학생을 골라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단계로 끌어올리는 본연의 자세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대학생이 공부가 힘들어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어찌 보면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대학생이 공부가 힘들어 자살하는 경우는 얘기가 성립하지만 고등학생이 공부가 힘들어 자살하는 경우는 뭔가 한참 잘못된 경우지요. 

대학이 본고사를 주장하면서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것은 고맙기는 하지만 불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건 영어로 “Thanks for nothing."이라고 말하죠. 대학은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적어도 자칭 명문대라면 말이죠 어찌어찌해서 입학은 했다 하더라도 정말로 능력이 안돼서 졸업을 못하는 학생들이 얼마간은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하다하다 지쳐서 머리가 돌아버리는 학생들도 얼마간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게 우리 사회의 학력수준을 끌어올리는 단초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학 그런 것 없죠. 입학하고 등록금 잘 내면 여전히 졸업 잘 되죠. 학력저하란 바로 그런 경우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이 말입니다. 

정말 교육을 아는 대학 총장이라면 입학처장 시켜서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3불철폐 외쳐대고, 이런 건 좀 쪽팔려서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외고 교장들도 마찬가지고요.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자기 학교 학생에게 유리한 입시제도 만들어 달라고 서울대 총장 만나러 다니는 것, 거 쪽팔린 겁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졸업정원제를 찬성하지만 이런 대학들에게 입학정원 늘려주는 졸업정원제라면 절대 반대입니다. 적어도 먼저 피나는 노력 없이 그 대학을 졸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할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대학에게 졸업정원제든 본고사든, 등급제든, 기여입학제 등 허용되는 그 순간부터 그 진정성은 온데간데없이 입학시험 다양성 팔아 연예인 뽑는 기술만 예술처럼 감상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천년세월

-출처-서프라이즈 http://www.seopri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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