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앞으로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죽을지도 모른다.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 의료계에서 외과 기피 현상은 심각하다. 지난 2010년 전국 병원의 전공의 모집 현황에 따르면, 소위 '빅5 병원'에서조차 외과, 흉부외과 등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신입 전공의를 한 명도 뽑지 못한 병원도 수두룩하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라고,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외과의는 점점 기피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외과 설명회 등을 열어 보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건 그 때일 뿐, 정작 외과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카림 브로히(Karim Brohi) 교수는 로열 런던 병원의 외상 전문의다. 중증 외상 환자가 외상 센터로 이송돼 오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친다. 8시간 교대 근무에 일주일에 3~4차례의 수술,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 외상 환자를 다루지만 그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듯했다. - 왜 안정적인 GP를 택하지 않았나. "이 일이 흥미롭기도 할 뿐만 아니라 도전정신이 생기게 한다. 거창하게 사회에 대한 책임을 얘기하고 싶진 않다.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곤 하는데 (우리 같은 외과의는) 빠른 처치와 좋은 기술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이 한 가정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 상태가 심각한 중증 외상 환자를 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듯하다. 한국에서는 외과 기피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트레이닝만 제대로 받았다면 스트레스는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고 해야 할 일을 모를 때 스트레스가 더 심하지 않겠는가. 마취사가 없고 수혈액이 부족해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더 스트레스다. 우리 외상 센터는 체계적으로 매뉴얼화돼 있고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은 의사와 스태프로 구성돼 있다. 때문에 스트레스는 덜한 편이다." - 외과의가 된 데 경제적인 이유는 없었나. "경제적인 문제는 아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은행에서 일하지 의사를 왜 선택했겠나.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외과의라는 내 직업에 만족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환자를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 의사들이 가지는 보람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 영국에서 외과 전문의가 되려면 경쟁을 거쳐야 하나. 한국은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물론이다. 의대생들은 각자 좋아하는 분야를 스스로 선택한다. 외과 전문의의 길은 항상 경쟁이 심하다. 영국에서 외과의사 후보는 항상 넘쳐난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 남소연·박순옥 기자, 송주민 시민기자
벌써 몇년째 의대를 졸업하고 면허를 취득한 의사들이 외과계열 전문의에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비뇨기과와 산부인과 기피현상도 여전했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30일 마감된 2012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 대부분의 병원에서 외과계열은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2년 전 기피현상을 없애겠다며 수가를 외과 30%, 흉부외과 100%를 올려줬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전공의들이 선호하는 '빅5'병원들도 외과계열 전공의 모집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아산병원은 흉부외과 5명 모집에 5명 지원, 외과 11명 모집에 11명이 지원해 정원을 채웠지만,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가톨릭중앙의료원은 모두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특히 가톨릭중앙의료원은 흉부외과와 외과 각각 6명, 21명 모집에 1명, 6명만이 지원해 가장 적은 지원율을 보였다.
수도권과 지역병원들은 사정이 더 좋지 않았다. 강동경희대병원, 한양대병원, 경북대병원, 부산대병원, 고대안암병원 등은 흉부외과 지원자가 한명도 없었다.
'송명근' 효과로 매년 정원을 채워왔던 건국대병원 흉부외과와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아주대병원 외과 역시 미달 사태에 직면했다.
이 밖에도 과거부터 대표적인 기피과로 지목됐던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등도 저조한 경쟁률을 보였다. 세브란스병원은 산부인과 정원 11명 모집에 3명, 가톨릭중앙의료원은 19명 모집에 1명만이 지원했다.
2년 전 처음으로 미달사태를 맞고, 작년에는 경쟁률이 0.4대1을 기록한 비뇨기과는 올해 이보다 더 낮은 지원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30%에 불과한 지원율을 보여 흉부외과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들도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하고는 미달됐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미래가 불투명하고, 의대생 중 여학생 비율이 늘고 있는 게 원인으로 제기된다.
반면, 최고의 인기과는 '정신건강의학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확실한 수치는 대한병원협회 합산통계를 확인해봐야 하지만 1.5대1의 경쟁률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 정신병원들이 앞다퉈 전문의 모시기에 나서면서 정신과 전문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데 따른 결과다.
삼성서울병원과 가톨릭중앙의료원은 5명 모집에 10명, 10명 모집에 22명이 지원하는 등 2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고령화 추세로 인기가 높아지는 재활의학과와 건강검진 수요 증가로 일자리가 늘고 있는 영상의학과도 전공의들이 많이 몰렸다. 대표적인 비급여진료과인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도 일부병원의 경우 3대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인 곳도 나타나는 등 인기가 여전했다. 과목별 양극화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