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학생들을 타이르듯 훈계하던 이붕 총리에게 삿대질을 했던 학생 지도자가 바로 우얼카이시죠.
헌데 그 사람은 위구르인이었네요.
인명이 어쩐지 중국인 답지 않더라니...
이때의 천안문 봉기가 중국 현대사에서는 아주 엄청난 분기점이었지요.
이때 강권이 아닌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역량과 아량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애시당초 가능성이 많은 일은 아니었죠.
세계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권력을 쥔 친구들이 스스로 그 권력을 양보하는 경우는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