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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끝자락에서, 아직 작가 생활을 시작하지 못했다는 건...
게시물ID : art_283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Wanderlust
추천 : 10
조회수 : 104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11/27 06:4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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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힘들다는 거겠죠?

고민게에 익명을 쓰려다가 예게에 써요... 비슷한 경험,기억을 공유하는 분들이 계실것 같아서.


스물 넷에 공과대학에서 미대로 편입을 하고, 졸업을 했어요. 원래 '꿈'은 졸업 후 곧바로 유학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독일.
그러나 정작 졸업을 하고 보니 입학하기 전 부터 생각했던 유학이 당장 현실로 실현되기 어려웠어요. 너무나도 당연한 거였지만
집에서는 지원을 해 줄 형편이 아니었고, 저는 유학비를 제 힘으로 벌어야 했는데 막상 돈을 벌다 보니 포트폴리오나 어학공부는
손을 델 수 없고, 일에만 치이다 보니 자연스레 작업에 대한 생각도 옅어지더라구요. 언젠가 공장 생산직 2교대에서 
5개월 정도 일을 했었는데, 이렇게 해서는 유학이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이 무너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 현지 정보를 얻고자 방학기간 내내 꼬박 베를린과 뒤셀도르프에서 2개월 정도 체류 하면서 
학교를 돌아다녔던 경험을 힘들 때마다 꼬박꼬박 상기하며 버텼는데, 그마저도 점점 흐릿해 졌어요.

먹고사니즘의 고리에 묶여 전공을 살려 여기 저기 다니면서 근무하고, 타지 생활 하다가 우연히 해외취업이 되어 
해외로 나온지 2년. 그런데 공부가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저 스스로가 많이 무너지네요. 

대학 생활은 즐거웠고, 그 즐거움 이상의 커다란 매너리즘, 슬럼프를 겪었지만 주변에서는 네가 겪는건 슬럼프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멘탈이 약해져 졸업전을 사실상 말아 먹고 도망치듯 학교를 나왔습니다. 
졸업전을 망치고 나왔다는 건, 지금도 제 마음 한 구석에 큰 상처와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어요. 

어느새 졸업한 지 3년이 넘었고, 외국에 나와 정신없이 일만 하는 사이 동기들과는 많이 멀어져서 이제는 연락도 소원한 사이가 되었구요.
처음 1년 정도는 다른 동기들과 비슷하게 나아가는 듯 싶었는데, 이제 3년차가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동기들 사이에서도 각자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 보이네요.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집안 친구들은 대부분 유학 생활을 시작했어요, 런던, 베를린 등.
유학 목표가 없던 친구들도 대부분 대학원에 진학을 하거나, 혹은 준비를 하고 있고. 
학업에 뜻이 없는 친구들은 이제 갖 작가 생활을 시작한 듯 보입니다. 전업이든 아니든 전시 소식이 간혹 들리네요.

동기들의 전시 소식이 다른 동기들의 입을 통해 몇 번씩 제 귀에 들리다 보니까 나는 지금까지 뭘 하면서 살았나 자괴감이 너무 크게 다가와요.
개인전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룹전, 단체전으로 전시 도록에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싣는 것을 보면 
그 친구의 작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보다 이제 첫 발을 내딛었구나. 싶은 부러움과 자괴감이 한꺼번에 들어와요.

저는 이제야 느꼈어요.
외국에서 2년 생활해 보니까,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입니다. 작가들은 확실히 작가다워요. 누군가의 작업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이 느껴지는 경우를 몇 번 경험했었는데,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런 경험을 꽤 많이 하게 돼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만났던 작가들과는 성향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유학 준비, 아니 유학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서 거의 5년 이상 허송세월을 보낸 터라
이렇다 할 결과물도, 전시 경력도 없네요. 

이제 막 20대 중반으로 들어온 친구들도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저와 같이 공부했던 옆자리 동기들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면 CV가 화려합니다. 어디 어디 갤러리, 어디어디 미술관, 어디어디에서 무엇무엇으로 참가 등등...
아트페어참가는 cv에 넣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더 많겠지요.


...알아요.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는거.. 마음같아서는 시간을 5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요.
그냥 유학같은거 생각하지 말고,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을 목표로 했었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았고, 현실을 외면한 댓가가 이렇게 몰려오나 싶어요.


마음에 돌을 얹은 것 처럼 답답하고 무거운데 
그래도 노트에 글을 쓰거나, 이렇게 공개된 곳에 오픈을 해버리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어느정도 가벼워져요. 내일 되면 다시 답답해지고 바뀐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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