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과적이여 과적! 아주 똑같아, 이번 사고랑.”
1973년 한성호 침몰때 희생자의 상당수는 관매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등에 다니는 어린이들이었다.
1973년, 김 이장은 스물여덟의 청년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경찰 등을 중심으로 구조작업반을 꾸렸으나, 침몰 직후 숨진 채 발견된 19명을 뺀 나머지 실종자 42명 가운데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