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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는 동서남북 4옥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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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hishright
추천 : 1
조회수 : 107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6/20 10:51:16
옥저는 동서남북 4옥저가 있었다.

옥저(沃沮)는 울창한 삼림이 있는 지역이란 뜻입니다. 또한 옥저(沃沮)는 원래 한자는 옥조(玉曹)이고 옥(玉), 무리 조(曹) 자로 적었는데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무리" 등으로 해석됩니다. 뒤에 다른 한자인 옥조(沃沮)로 적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옥저(玉曹→沃阻→沃沮) 

▶고대에는 네 곳의 옥저가 있었다. 

☞동옥저: 지금의 함경도 지방 
☞남옥저: 요동반도
☞북옥저: 남옥저 동북 800리로 서간도 지역 즉 장춘 주위
☞서옥저: 지금의 만리장성 이남지역(요령성 백록산에서 연산 부근까지)

* 이로써 보아 진번과 임둔은 한나라 말년에 부여·읍루·옥저에 들어갔고, 부여는 다섯 부여가 되고, 옥저는 네 개의 옥저가 되여 혹은 변하여 물길(勿吉)이 되고, 말갈(靺鞨)로 발해(渤海)로 여진(女眞)으로 차차 변하게 되었다. -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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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저 : 만리장성 남쪽

삼국유사 기이 말갈발해조에 "송나라 소동파의 지장도에 흑수는 만리장성 북쪽에 있고 옥저는 만리장성 남쪽에 있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서옥저>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12세 단군 아한 재위 29년 을묘(단기 528,BCE 1806)년에 조칙을 내려 청아 욕살 비신과 서옥저 욕살 고사침과 맥성 욕살 돌개를 열한으로 봉하셨다. - 단군세기 -

▶남옥저 : 지금의 해성현

대진국 남경 남해부는 본 남옥저의 옛날 나라요, 지금의 해성현이 이것이다. 서경 압록부는 본래 고리의 옛 나라요, 지금의 임황이다. 지금의 서요하는 곧 옛날의 서압록이다. 임황은 옛날의 서안평이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주 : 서안평의 위치 참고) 

▶북옥저 : 남옥저에서 800리 떨어진곳

[후한서 동이열전]  北沃沮(북옥저)
"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이다. '남옥저'에서 800여리를 간다. 그 풍습이 모두 남옥저와 같다. 경계는 남으로 '읍루'이고, '읍루' 사람이 배타는 것과 노략질을 즐기니, '북옥저'가 이를 두려워하여 매양 여름에는 바위구멍에 숨어있다가 겨울에 이르러 뱃길이 통하지 않으면 이네 아래 읍락에 거하였다"

"(1세 고주몽성제)평락 11년(BCE 27) 갑오년 10월, 북옥저를 쳐서 멸하고 이듬해 을미년에 졸본에서 눌견으로 도읍을 옮기셨다." -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의려왕은 선비족에게 패하자 도망하여 바다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자제들이 북옥저로 달아나 몸을 보전하다가 이듬해에 아들 의라가 즉위하였다. -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눌견은 지금의 장춘 북쪽에 있으니 북옥저는 장춘 주위의 땅이 분명합니다. 북옥저는 해성의 북쪽,졸본의 아래 중간지점에 있었을 것입니다.

▶동옥저 : 지금의 함경도

[후한서 동이열전] 東沃沮(동옥저)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에 있다. [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손한다. 그 성은 '평양'성 서쪽에 있다. '평양'은 즉 '왕검성'이다.] 동쪽으로 바다에 임한다. 북쪽으로 '읍루', '부여'에 있고 남으로 '예맥'이 접하고 그땅은 동서가 좁고 남북은 길다.....

▶기존 학계의 잘못 

 종래 학계에서는 한중 고대 사서에 나오는 수많은 옥저의 위치를 모두 함경도로 비정했으나 이는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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