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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카드로 벌어먹고 살기
게시물ID : freeboard_5915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atsu
추천 : 1
조회수 : 172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5/01 03:43:07
올해 스물다섯 살, 타로카드로 먹고 사는 츠자입니다.
타로리스트가 된 지 약 세 달.
그동안 별의 별 손님이 다 왔죠. 우리 사장님은 사주도 보시는데, 사주 손님도 가관임.
혼자 알긴 아까워서, 몇 가지 썰을 풀어 봅니다. 보기 편하게 소설 읽는다고 생각해주세요.


1. 게이는 당신의 손님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비 내리는 오후, 유리문이 열리며 한껏 멋부린 청년이 들어섰다. 

혼자인가, 했는데 뒤이어 방금 제대한 듯한 남자가 뒤따라 들어온다. 

청년은 들어와서 앉더니 일단 친구를 밖으로 내보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드문 일도 아니기에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여느 때처럼 웃는 얼굴로 물었다.

"어떤 거 보실 건가요?"

보통 이렇게 물으면 타로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애정운이요, 금전운이요, 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좀 달랐다. 뭔가 포스(!)가 있다.

"애정운 보려고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은 없구요, 연애중도 아니고요, 아참 그리고 남자 좋아해요."
"네에. ...?!"

태연하려 애썼지만 내 얼굴에 미미하게 가 있던 균열을 그는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옷차림새나 목소리, 외양이 상당히 멋을 부렸다. 어쩐지 여자인 나보다 더 깔끔하니 멋을 부린 듯한 느낌에, 내 미소는 한풀 꺾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난 마스터니까, 쫄면 안 되는데. 김어준 총수의 쫄지마 ㅆㅂ를 마음속으로 강하게 외친 뒤 셔플에 들어갔다.

하지만 내 손끝은 이미 떨리고 있다. 오, 주여. 내 생애 진성 게이를 보게 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치만 왜인지 기분이 좋았다. 여자들은 게이를 좋아한다. 이건 진짜다. 하지만 오유인은 안생겨요.

...10분 후.

반전이다. 이 앙큼한 녀석은 제주도에서 신점을 보는 녀석이었다. 제 입으로 털어놓는 순간 나는 황망히 입을 벌렸다. 낚였구나. 그가 문 밖으로 나가고 난 뒤 한참 동안,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 실력에 대한 의심보다 게이를 만났다는 것에 대한 설렘-_-이었다는 건 비밀.


2. 안생긴다고 말해줘. 제발.

이건 한창 추울 때 이야기.

늦은 밤,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아직 쌀쌀한 날씨지만 한잔 걸친 유쾌한 남자 세 명이 타로를 보러 왔다. 처음엔 한 스물여덟쯤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스물셋이었다. 셋 다. 미안하지만 니들 다 노안이야. 누나가 얼마나 슬펐는줄 아니?ㅠㅠ

어쨌든 그중 두 명이 타로를 봤고, 그중 한명이 긴장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내일, 3년간 좋아한 여자애한테 고백할 건데 잘 될까요?"

위기였다. 이런 류의 타로에서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여기서 잘못 말했다간 내일 다시 찾아와서 아주 주옥되는 수가 있다. 나는 침착하게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일단 왼손으로 세 장 뽑으세요."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충 기억하기로는 이러하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할 것 같으니 웬만하면 딴 여자 찾지 말고 기다려줘라.'

남자애는 한숨을 쉬며 돌아갔고, 나는 그 일을 잊었다.

그리고 약 2주 후, 그때 왔던 남자애의 친구가 다시 왔다. 그리고 내게 전해주었다.

"그 새끼, 방금 그 여자애한데 사귀자는 말 들었어요. 솔로탈출했다고 요 앞에서 엄청 좋아했는데."

...시발. 왜 중은 제 머리는 못 깎는가. 난 솔로인데 왜 내가 오천 원에 타로를 봐준 놈은 솔로를 탈출하는가. 세상은 왜 이토록 불공평한가. 신은 내게 타로를 주신 대신 남자를 빼앗아갔나. 목까지 차오른 눈물을 삼키고 그 친구가 데려온 남자의 타로를 봐주려 했다.

"어떤 거 보시려고요?^^"
"아, 제가 다음 달에 결혼을 하는데요."
"^^......-_-"

캐새키...


3. 커플운

타로 같은 경우, 커플이 오는 것은 돈이 많이 된다. 다행히도(?) 게이 커플은 한번도 온 적이 없지만 불륜 커플부터 헤어지려고 작정한 커플까지 많은 커플을 보아 왔다.

그날도 늦은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이지만 깊이 파인 운동복을 입은 여자와, 여자의 남자친구, 그리고 여자의 남동생이 타로를 보러 왔다. 내 기억으로 그 사람들, 복채로 2만원(♡) 정도 쓰고 갔다.

남자와 여자는 한 5년 정도 사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었고, 재미로 본 타로에서 나는 무서운 것을 보고 말았다.

타로가 100퍼센트 다 맞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타로를 보면서 계산한 바, 타로만으로 그 사람을 보았을 때 약 85% 정도의 적중률을 나타낸다. 진짜다. 타로를 걸고 맹세한다.

어쨌든 그 커플의 경우, 내가 잠시 할말을 잃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5년이나 사귀었지만. 아니 오히려 5년을 사귀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다. 정말로 사랑한다. 말이야 틱틱대고 투덜대지만 정말로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것이 타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5년이라지만 정이든 사랑이든 여자는 남자를 자체로 사랑하고 아끼고 있었다.

문제는 남자였다. 거기까지 가서, 나는 난감해졌다.

사귀는 여자 말고 다른 여자가 있었다. 심지어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사귀는 여자와는 곧 헤어지려 생각중이었다. 결혼 따위 아웃 오브 안중이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여자에게 진실을 알려야 할 것인가, 일단 이 상황을 모면할 것인가.

나는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일단 상황을 모면하기로 했다. 최대한 돌려 말하면서 대신 남자를 강하게 쏘아보았다. 양심의 가책은 있는지 내 눈을 마주보질 못한다. 

나는 스물다섯 살. 남자는 서른이 넘었다. 내 눈을 피할 이유가 없지만 날 똑바로 바라보던 여자의 반응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이 가고 난 후, 처음으로 멘붕이 왔다. 타로는 비현실적인 점술이 아니다. 오히려 무섭도록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그 커플이 어떻게 됐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제발, 남자가 정신 차리고 여자의 곁에서 함께 웨딩 촬영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여자를 위해서라도. 아니, 나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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