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서 10성은 과연 어디였을까?
고구려 5대 모본왕 6대 태조왕 시절 고구려 강역
▶2년(서기 49년)봄,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을 습격하였으나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써 이를 대하였으므로 다시 화친을 회복하였다.
二年春, 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肜,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삼국사기》모본왕條 中
▶(광무제 건무) 25년 봄, 구려(句驪)가 우북평(右北平)·어양·상곡·태원을 노략질하였으나 요동태수 제융(祭肜)이 은혜와 신의로써 이를 초유하니 모두 다시 항복하였다. 二十五年春, 句驪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肜, 以恩信招之, 皆復款塞。《후한서》〈동이열전〉고구려條
▶25년 봄 정월, 요동의 변경 바깥 맥인(貊人)이 우북평·어양·상곡·태원을 노략질하였는데 요동태수 제융이 이를 초유하여 항복시켰다. 二十五春正月, 遼東徼外貊人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 遼東太守祭肜招降之。
《후한서》〈광무제기〉
모본왕은 북경 너머 태원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태조왕은 태원 경계 안쪽에 요서 10성을 쌓고 동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지금의 북경 인근에까지 진출하여 요서 10성을 쌓았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3년(55) 봄 2월,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략을 대비했다.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는 요서 10성의 이름을 ‘안시성, 석성, 건안성, 건흥성, 요동성, 풍성, 한성, 옥전보, 택성, 요택성’ 라고 소개한다. 그 위치에 대해선 안시성은 개평부의 동북쪽 70리라 하고, 건흥성은 난하의 서쪽에 있고, 요동성은 창려의 서남쪽에 있다고 되어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태조太祖 융무隆武 * 3년, 요서에 10성을 쌓아 漢나라의 침입을 10城에 대비하게 하였다.
첫째 안시安市는 개평부開平部 동북쪽 70리에 있고,
둘째 석성石城은 건안建安의 서쪽 50리에 있다.
셋째 건안은 안시의 남쪽 70리에 있으며,
넷째 건흥建興은 난하灤河의 서쪽에 있다.
다섯째 요동遼東은 창려昌黎의 남쪽에 있고,
여섯째 풍성豊盛은 안시의 서쪽 100리에 있다.
일곱째 한성韓城은 풍성의 남쪽 200리에 있으며,
여덟째 옥전보玉田堡는 한성의 서남쪽 60리에 있다.
아홉째 택성澤城은 요택의 서남쪽 50리에 있고,
열 번째 遼澤요택은 黃河의 北岸 왼쪽에 있다.
5년 봄 정월에는 다시 백암성白岩城과 용도성埇道城을 쌓았다.』
▶이상의 열 개의 성들은 모두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포진해 있었으며,후에 쌓은 백암성白岩城과 용도성埇道城을 합하면 모두 12개의 성이 되지만 통상 요서10성이라고 했음
▶ 안시성安市 건안성建安 요동성遼東 백암성白岩城 등은 당시 요수의 동쪽에 있었고, 나머지는 서쪽에 존재했으며,
▶조선왕조 때 편찬된〈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와〈동국통감東國通鑑〉등의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는 史實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