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재님의 brianjung님에 대한 반박 글
좋은 역사 토론이 되니 보기가 좋습니다. 계속 좋은 토론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욕설이나 비난없이요)
아래는 문성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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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지인이 제보한 이른바 ‘낙랑호구부’ 관련된 강단 일각의 사기 행각에 관하여 말씀드렸지요. 그 해프닝이 계기가 되서 문득 온라인에서 다들 그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어제는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오늘의 유어”라는 사이트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순수하게 우리 고대사에 관심 있는 네티즌이 제가 낙랑호구부는 가짜라고 한 주장을 소개했나 본데... 댓글 100%가 ‘낙랑평양설’을 결사옹호하는 강단의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더군요.
그 댓글들 중에서 브라이언정(brianjung)이라는 사람의 글이 가장 길고 ‘재미있길래’ 여러분과 같이 공부하고 같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어 보고 싶어서 캡춰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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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년에 낸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에서 평양 정백리의 귀족고분에서나 나올 만한 수레 축에서부터 검, 필기구, 이른바 ‘낙랑호구부’라는 빨래판, 농기구 따위가 ‘잡탕’처럼 잡다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보고 “지배층의 일원인 군 관리의 고분에서 농기구가 그렇게 섞여 있을 리가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지배층의 무덤에서는 소비재, 사치품, 위세품이 나와야지 생산재는 나올 이유가 없거든요.
똑똑한 우리 ‘브라이언정’씨께서 제 말이 “개소리”라고 흥분을 하고 난리가 아니더군요. 그러면서 “지배층 무덤에 농기구가 들어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면서 몇 가지 고고적 유물의 사례들을 다음처럼 소개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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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야계 무덤 (백제계 유물)
(2) 수장급 무덤인 옥전 M3묘
(3) 금강 유역, 영산강 유역의 백제계 무덤들
(4) 가야+백제 지배층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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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 ‘브라이언정’께서 지배층 무덤에 농기구가 부장된 사례라고 하면서 소개해 놓은 (1)에서 (4)까지의 경우들을 자세히 봐 주십시오. 충분히 자세히 보십시오. 보신 결과가 어떻습니까? 박학다식하신 우리 ‘브라이언정’께서 예로 드신 “지배층 무덤에 농기구가 부장된 경우”들이 웬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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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우리 ‘브라이언정’께서 드신 예들은 가야계, 백제계 무덤들입니다. 옥전고분은 제 고향에서 발견된 거니까 가야계일 거구요. 금강 유역, 영산강 유역이면 아마 초기 가야계였다가 나중에 백제로 편입된 지역이겠죠? 그렇다면 저 고분들은 100% 한족과는 무관한 토착 삼한 지배층의 무덤이라는 소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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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서는 그렇게 당당하신 우리 ‘브라이언정’께서 이 대목에서 대관절 왜 가야와 백제를 끌어 들였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가야와 백제는 둘 다 순수한 우리 한반도 토착세력이 세운 나라들입니다. 한족의 한나라와는 정치적으로 주종관계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문화적으로도 엄연히 다른 집단이죠. 무덤이나 유물은 그 패턴이나 스타일에서 더더욱 서로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여러분! 낙랑이나 중국 고분의 경우를 이야기했으면 중국이나 낙랑의 사례를 들면서 반박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가야, 백제의 무덤의 유물들을 증거랍시고 갖고 와서 적반하장으로 저 보고 “개소리”라뇨.... 하하 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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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래 뵈도 중국에 국비로 유학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학 시절에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도시는 제법 많이 다녀 봤습니다. 제 고향도 시골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도시라서 초등학생 때부터 “가야”, “죽죽”, “대야성”, “해인사”, “이순신”, “권율”(임진왜란 때 도원수 본영이 합천에 있었습니다)... 등등 귀가 닳도록 듣고 자랐죠. 한국사, 세계사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 역시 결코 낮지 않고요.
지금도 중국에서 세기적인 발굴 어쩌고 하면서 기사가 뜨면 바로바로 인터넷 접속해서 발굴 상황 확인하고 지냅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진시황 병마용, 마왕퇴묘, 조조묘 같은 굵직굵직한 한나라 고분들 다 체크해 봤지요. 그랬더니 중국 지배층 고분에서 농기구가 나온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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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적인 대발굴인 한대 마왕퇴묘만 해도 그렇습니다. 필사본 노자, 관인(인감)부터 의복, 토기, 칠기, 도기, 악기, 오락기구, 무기, 곡물 등등 오만가지 유물이 1,000점 넘게 쏟아져 나왔지만 농기구는 단 하나도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소비재나 사치품, 위세품만 잔뜩 쏟아져 나왔지 생산재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겁니다.
조조묘에서 쟁기 나왔다는 소리 들어보셨나요? 진시황 병마용에서 삽 나왔다는 기사 보신 적 있습니까? 제 주장을 반박하려면 그런 중국 고분이나 낙랑 고분들에서 증거를 찾아와서 따져야 정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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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나 백제의 무덤에서 농기구가 부장됐다?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나라 선조들의 토착문화의 결과물이니까 그럴 수가 있지요. 저도 여가 내서 전국의 박물관 다 돌아보는데 여러 군데에서 무덤에서 출토된 농기구들 많이 봤습니다. 그것들이 다 지배층 무덤에서 나왔다고 칩시다. 그 문화를 어떻게 낙랑군이나 한나라 하고 동일시 할 수가 있습니까?
민족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르니 문화 역시 같을 리가 없습니다. 가야와 백제는 한나라나 낙랑군과는 민족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이니까요. 하물며 외래문화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무덤 문화에서는 더더욱 같을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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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책에서 낙랑군 또는 한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 주장을 반박하려면 똑같이 한나라 고분이나 낙랑군 고분들 중에서 증거를 찾아서 반박을 해야 정상입니다. 강단에서 맨날 떠들어 대는 것이 “평양에서 낙랑 고분이 3,000기나 발견됐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고분들에서 반박 증거를 찾아야 정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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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국에서는) 지배층 무덤에 농기구가 부장된 사례가 없다”라고 했으면 문화가 서로 같은 낙랑이나 중국의 고분들에서 지배층 무덤에 부장된 농기구들을 증거로 제시하면 되는 겁니다.
강단에서 맨날 낙랑 고분이 3,000기나 된다고 떠들었잖아요? 그 고분마다 농기구가 하나씩만 나와도 3,000점은 되겠네 ㅎㅎㅎ 그런데 왜 정백동 고분만 빼고 다른 데서는 안 나옵니까? 왜 그 많은 고분들은 다 제쳐 놓고 엉뚱하게 한나라 하고는 쌩판 무관한 삼한 땅에서 출토된 가야, 백제 고분을 들먹이냐고요 앞뒤가 안 맞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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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역사 분야에서는 X도 모르는 개돼지들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인데요. 이거 정말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예전에는 1차 사료니 비장본이니 해서 학자들만 자료나 정보를 다 독점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이 도입되서 다양한 역사학, 고고학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온라인에서 중국 정사 ‘24사’ 원문을 즉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국민들도 웬만하면 중고등학교 다 졸업할 정도로 국가경쟁력도 선진국 수준이고,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도 상당히 많이 하는 게 우리나라 국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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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00년전에 일본인들이 우리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하던 아주 못된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가지고 똑똑한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고 들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우리 ‘브라이언정’님, 그리고 강단 인사 여러분들... 어디서 주워들은 철 지난 일제 강점기 토막지식 가지고 함부로 대놓고 떠들다가 개망신 당히지 마시고 좀더 깊고 풍부한 공부를 한 다음에 태클을 걸어도 걸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