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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물건은 좋은데 장사꾼이?
게시물ID : sisa_264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銀培와準培
추천 : 15/2
조회수 : 2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1/11 13:16:51
개헌, 물건은 좋은데 장사꾼이?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김준형 온라인총괄부장 | 01/10 11:08 | 조회 5425    


동네 아파트 지하 1층에 대형 할인마트가 생겼다.
오래전부터 1층에 있던 구멍가게에 비해 값도 싸고 물건 종류도 많다. 한동안 사람들의 발걸음은 구멍가게로 향하곤 했다. 구멍가게 주인이 같은 아파트 사는 주민인데 반해, 지하 마트 주인은 생면부지 사람인데다 영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주민들은 뻔히 아는 처지에 마트로 내려가다가 구멍가게 주인 얼굴 마주치는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샀다.

오래 가지는 못했다. 한 두명씩 이탈자가 생기더니 결국은 다들 할인마트를 찾게 돼 구멍가게는 문을 닫고 말았다. 문제는 물건이지 파는 장사꾼이 아닌 탓이다.

물론 경제주체가 늘 현명한 것은 아니어서 합리적 기대가설에 입각한 경제학 이론이 곳곳에서 펑크가 발견된다. 행동경제학같은 분야가 생겨나고, 1978년과 2002년 허버트 사이먼과 다니엘 카너먼이 이런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도 이때문이다.
사람들이 가끔은 비합리적이고, 비계산적이라고 해도, 판단 기준과 분석대상을 넓히면 결국은 '효용'이 경제적 행위의 준거가 된다. 장기적으로 봤을때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온다거나,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가 주는 효용이 눈앞의 이익보다 더 큰쪽으로 움직인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4년 연임제를 들고 나왔다. 느닷없다는 것은 발표 예고가 없었다는 점에서 느닷없는 것이고, 실은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논의되면서 수면위로 불거질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에서도 지난번 대선이 끝나자 마자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들어 개헌의 필요성을 논했었다. 그 시기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일치하는 이번이 20년만에 한번 오는 기회라는 전문가들의 제언과 기고도 잦았다.
일찌기 한나라당의 맹형규 의원이 정책위의장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권 빅뱅구상:대통령발 개헌카드’라는 글을 통해 족집게처럼 예상한 적도 있으니 충분히 '느닷있는' 일이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했다'는 것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옳은 말을 참 싸가지 없이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분야에선 노대통령이 분명 한수 위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이 많고, 사석에서는 다들 그렇게들 이야기하기도 하는데('군대 가서 썩는다'는게 그렇고, '재벌그룹 회장이 구속되면 언론사가 특수를 누린다'는 말 같은게 그렇다),
대통령으로서는 좀 안그래줬으면 하는 적나라한 어법에 적절치 않은 타이밍과 장소에서 던지는 말펀치가 늘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해온터였다.
그런 이유로 콘텐츠와 상관없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즉자적인 반발'이 이 시대의 '컨셉'이 되고 있다는게 문제다.

4년연임제냐 5년단임제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수 있다. 5년 단임제 자체는 '1노2김'의 나눠먹기 결과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민주화의 역사가 녹아있는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시대정신이 이제 바뀌어야 할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수 있다.
4년 연임제가 갖는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연임제가 갖는 장점은 이 지면을 빌어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만큼 많다.
중요한 것은 4년 연임이라는 '제품'이 좋으냐 자체에 대한 판단의 기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장사꾼'의 얼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선두에 이른바 '주류' 언론이 서 있다.
'긴급 여론조사'를 전하는 신문의 제목들은 한결같이 "다음 정권에서.."를 내세우고 있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4년 연임제에 대한 선호가 과반을 차지하는 대목은 애써 가리고 있다. 아예 4년연임에 대한 선호는 묻지도 않은 희한한 여론조사도 눈에 띈다(동아일보는 '4년 연임제가 되면 대통령의 책임정치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는가'라고 질문, 52.8%라는 반대의사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개헌논의가 '다 된 밥'에 코빠뜨리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읽힌다.

개헌논의는 '이미 끈 떨어진' 정권과, '다 된 밥상을 앞에 둔' 세력의 주판알 튕기기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대통령에게 '민생이 어려운만큼 경제에 전념하라'고도 한다. 유사이래 민생이 어렵지 않았던 때가 있었으며, 대한민국이 격변기 아니었던 때가 있었던가.
경제가 최우선 과제여야 하는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라도 경제를 핑계로 정치를 내팽개칠 일은 아니다
.
야당입장에서는 오히려 지지율 상승에 취해 개헌과 같은 중대하고 민감한 이슈를 선점하지 못한 걸 반성하고, 개헌정국을 주도해나가는게 수권세력으로서의 자신감을 보이는 일이다.

장사꾼 얼굴이 마음에 안들어도, 살때 좋은 물건 사는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쓸모가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일찍 사서 요긴하게 쓰는게 효용을 높이는 것이다. 필요하긴 한데 다른 장사꾼한테 물건을 사서 쓸수 있을때까지 5년, 심지어 20년 동안을 침만 흘리고 있는건 바보짓이다.

물론, 대통령의 제안은 정략적이다. 정략적이지 않은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헌을 내세워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정국을 주도하려는 '개헌장사'의 판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권이 제의했다고 해서 아예 논의조차 거부하는 것은 더욱 정략적이다. 장사꾼 얼굴만 쳐다보기 전에 물건부터 좀 뜯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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