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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브금,장편] 아파트-1부-
게시물ID : panic_291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0
조회수 : 32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04 13:33:24
청승맞은 비가 창문을 때리며 내리고 있었다. 재욱은 담배를 물고 창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강변도로를 꽉 메운 차들이 벌써부터 집에 돌아갈 걱정을 하게 했다. 하지만 재욱은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맛있게 담배를 피웠다. 입가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창가에 스르르 떨어지며 마치 한강에서 피어 오르는 물안개같이 비와 어우러져 한껏 분위기를 냈다. 재욱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는 저 건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슬쩍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집이 생기는구나.'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부터 준비되지 않은 결혼과 이른 출산으로 재욱은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그 달콤함을 만끽할 겨를이 없었다. 많지 않은 월급에 기대어 사는 3식구의 단촐함도 그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다달이 찾아오는 월세와 빠듯한 생활비로 그는 결혼 전보다 더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으로서의 과다한 업무를 자청했고 야근을 하는 일도 잦았다. 부부는 싸우는 일이 점점 늘어갔고 서로의 생활에 대한 불만이 쌓여만 갔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아내가 육아에 치중하면서 가정은 점차적으로 안정을 찾아갔다. 재욱은 내심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매번 계속되는 아내의 잔소리는 그의 속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했고 그럴수록 일에 더욱 매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기를 몇 년. 이제는 의정부에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하게 되었다. 비록 임대아파트이긴 해도 처음 자기 집을 갖는 사람의 심정은 남달랐다. 주변에서도 이른 나이에 집을 갖게 된 재욱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회사 사람들도 집들이를 운운하며 축하해 주었다. 그 중 몇몇은 재욱이 워커홀릭에 가까운 일 중독을 보이면서까지 자기집 마련에 집착한 것에 대해 시기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집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가 살, 작지만 아담한 집. 재욱은 담배를 비벼 끄며 핸드폰을 꺼냈다. "아, 자기야? 짐은 다 옮긴 거야?" "몰라, 언제오는거야? 이사짐 센터에서 다 들여놓기는 했지만 치울게 한두개 여야지. 청소도 해야 하고. 지금 어디야? 회사야?" "어, 인제 다 끝났어. 나갈라고. 의진이는 뭐해?" "새 집에 처음 와서 지도 기분이 좋나봐. 집 정리 하느라고 요 앞에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라고 했어." "그래, 나 지금 퇴근하니깐 한, 넉넉잡고 한시간 반이면 가겠다. 조금만 기다려." "알았어. 빨리와." "웅, 그리고 큰 짐은 옮기지 말고 그냥 청소만 하고 있어. 알았지?" 역시나 간선도로는 심하게 막혀있었다. 재욱은 라디오 볼륨을 켜고 창문을 열었다. 라디오에선 감미로운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욱은 볼륨을 좀 더 크게 올리고 담배를 물었다. 그다지 세찬 비는 아니었지만 달리는 차에 부딪힌 빗방물이 차안으로 조금씩 들이치고 있었고 담배를 들고 있는 재욱의 왼팔을 조금씩 적셔갔다. 오후 5시가 약간 넘은 시간임에도 도시는 어두운 구름밑에 찌푸려 있었다. 재욱의 앞에는 수많은 차들이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지리한 아지랑이를 피우고 올리고 한강 주위로 솟아있는 아파트는 흡사 병풍과 같이 둘러쳐져 재욱의 퇴근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비록 큰 아파트는 아니지만, 넓은 평수는 아니지만...그래도 마음놓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지금 이순간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자 커다란 기쁨이었다. '이제 집세로 나갈 돈이 굳었으니, 적금이나 시작해 볼까?' 하나의 산을 넘어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하는 재욱은 미래를 계획하는 것에 몰두해있었다. 그동안 고생했던 순간들이 눈앞에 스쳐갔다. 이젠 주인집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월세를 독촉하는 전화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생활비 아낀다면서 먹을것 입을것 줄여가라고 아내에게 잔소리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는 이런 저런 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가장으로서 으쓱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재욱은 또 한번 미소를 지었다. 차는 어느새 지루한 체증을 벗어나 외곽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빗줄기도 아까보다 그 세기가 약해져 차창에 작은 물방울을 새길 정도였다. 차는 간만에 뻥 뚫린 도로가 오랜만이어서인지 좀더 속도를 높이고 달렸다. 의정부로 나가는 길의 양쪽으로도 시내와 다름없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빌딩이 도시의 심장부를 채우고 있고 아파트는 도시의 끊임없는 자가성장을 말해준다. 과밀화지역이라고 일컫는 시내나 아파트로 이루어진 마천루가 들어찬 시외나 복잡하고 건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재욱은 자꾸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아파트 행렬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재욱이 그 아파트를 처음 본 건 인터넷 부동산 경매에서 였다. 서울 안쪽의 아파트는 엄두도 못내고 있을 때, 경기 외곽지역의 아파트는 재욱에게 커다란 매력을 갖고 있었다. 교통편, 주위 상가, 교육시설, 자연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비교적 적당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최적의 조건을 찾고 있던 재욱이 이 아파트를 찾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높은 가격에도 급매물이 쏟아지는 시내에 비해 올라온 매물은 없지만 그나마 적당한 조건을 갖고 있는 수도권 외곽지역의 아파트는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한번 등록되고는 했다. 그런 몇 안되는 매물 중에 재욱의 눈을 잡은 것은 바로 이번에 입주할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전반적으로 급등하고 있는 아파트 시세에 비해, 아니 기준시가에 비해서도 그다지 높지 않은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일사천리로 일이 잘 풀렸기 때문에 재욱은 이 곳에 들어오게 된 것을 열심히 일한 스스로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아파트 입구에 다달은 재욱은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내려갔다. 아파트는 그리 깨끗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오래되어 낡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겉으로 봤을때는 도색을 다시해서인지 새로 지은 아파트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 였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은 깨끗한 외관에 비해 조금은 낡고 지저분했다. 이것이 이 아파트의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만 좀 어떻게 잘 좀 꾸미면 다른 사람들에게 새 아파트라고 해도 모를텐데...' 재욱은 벌써 집들이 할 생각에 젖어 었었다. 최 과장, 김 대리, 임 전무, 팀장, 태성이 그리고 명식이. 번듯하게 지어진 내 아파트로 초대할 사람들을 하나 둘씩 떠올리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온 재욱은 건너편 비어있는 자리에 차를 대기 위해 핸들을 틀었다. 차는 옆줄에 즐비하게 세워져 있는 차량을 부드럽게 빗겨가며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때 재욱은 전방에 물체를 발견하고 급제동을 하였다. "끼익~" 차는 요란한 타이어 소리를 내며 멈췄다. 재욱은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사람을 쳤나? 젠장...사람을 쳤나?' 분명히 차에 둔탁한 것이 부딪히는 것을 느낀 재욱은 벌컥 겁이 났다. '아..어떻게 하지...어떻게 하지...' 재욱은 우선 차에서 내려 살펴보기로 했다. "덜컹~"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재욱은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치고 차에서 내렸다. 입은 바싹 마르고 다리는 떨렸다. 재욱은 점점 차 앞으로 다가갔다. 헤드라이트 조명이 세차게 내리쬐는 차 앞에 선 재욱은 본네트가 살짝 찌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재욱은 차가 서있는 좌우를 둘러보고 근처 주차되어 있는 차량 뒤로도 가보았다. 이러저리 둘러본 재욱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차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선명한 핏자국이 바닥에 끌려 있는 것 아닌가. '어디로 갔지? 어떻게 된 거야?' 재욱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주변에는 재욱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재욱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차 앞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분명히 본네트는 찌그러져 있었고 거기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 핏자국이 있었다. 재욱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처음 자기 집을 갖게 된 날인데... 재욱은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 차 안으로 가 라이트를 껐다. 그 순간 후두둑하며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재욱은 깜짝놀라 차에서 머리를 빼고 두리번 거렸다.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재욱은 갑자기 등줄기가 오싹했다. 사람인가? 아니면 개? 고양이? 하지만 작은 동물이라고 하기에는 본네트에 움푹 들어간 자국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타닥...타닥......" 그 무언가는 조금씩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 홀로 서있는 재욱의 귀에 수차례의 울림으로 들려왔다. 재욱의 심장은 더욱 크게 뛰었다. 재욱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재욱은 잠시 귀를 기울여 소리가 난 곳을 어렴풋하게 찾았다. 그리고 소리가 난 지점을 감각적으로 쫓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재욱의 손아귀엔 흥건히 땀이 차기 시작했고 연신 오한이 드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재욱의 차에서 몇 미터 떨어진 지점. 그 쪽에 주차된 차량 너머로 재욱이 다가가는 순간 "파라닥, 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재욱은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미친듯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인간의 시야가 가져오는 한계를 극복이라도 한다는 듯이 재욱은 멈춰 선 장소에서 계속 몸을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욱은 생각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죽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 무언가는 나에게 오려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차에 치인 사람이 벌이는 행동으로는 볼 수 없었다. 재욱은 다시 차로 다가와 그 앞에 핏자국을 보았다. 라이트를 끄고 난 후에 본 핏자국은 비단 차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국은 군데 군데 흘려있었고 주차장 비상구쪽을 향해 있었다. '저쪽으로 이미 나갔나 보군.' 재욱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는 분명 비상구 반대쪽에서 났다. 핏자국과 그 무언가의 움직임은 일치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재욱은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차 트렁크를 열고 걸레를 꺼내어 바닥의 핏자국을 닦았다. 비상구 앞 쪽까지 이어진 핏자국을 다 닦은 그는 얼른 차를 돌려 건너편 빈 자리에 주차를 시켰다. 그리고 서류 가방을 들고 뒤도 보지 않은채 비상구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사 온지 첫날 부터 아주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차를 몰고 있을때도 재욱의 가시거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급하게 턴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재욱은 머리를 쥐어싸고 생각했다. '내 잘못이 아니야. 그래, 갑자기 도는 차 앞에 뛰어든 그 무언가가 실수한거지. ' 스스로를 위안하며 재욱은 5층에 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바닥을 닦고 있다가 헐레벌떡 들어오는 재욱을 보고 말했다. "아니, 인제 오면 어떻게 해? 아까는 한시간 반이면 온다던 사람이....벌써 두시간이 넘어가네." "미안해..." "어휴, 의진이 보러가랴 여기 짐정리하랴 얼마나 정신없었는지 알아? 더군다나 오늘 비도 오고 날도 어둑어둑한데...나 무서움 많은 거 알면서도 이렇게 늦게.....아니, 오빠? 왜그래? 무슨 일있어? 정신나간 사람처럼 왜 그래?" "아..아니야..그냥 새 집에 처음 오니깐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봐."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왜? 회사에서 안 좋은일 있었어?" "아니라니깐. 아무것도 아니야." 그 날 짐정리는 밤늦게서야 끝났다. 재욱과 민주는 완전히 힘이 빠진 상태로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휴. 이사 두번 했다가는 제 명에 못살겠다." "그러게. 고생했다." "오빠, 우리처럼 살림도 별로 없는 집이 이 정도인데 정말 잘 사는 사람들은 이사할 때 어떨까? 하긴 뭐 그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쓰겠다. 그지?" "그러겠지, 뭐." 재욱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 주차장의 일이 생각났다. 그는 어딘가에 있을 그 무언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재욱은 자신이 계속 고민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겠지.' 피곤에 지친 엄마, 아빠를 본 의진이가 소파로 뛰어들었다. "아앙. 아빠 나 배고파." "어이구, 우리 의진이. 엄마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할까?" 재욱은 의진이를 안고 말했다. "오늘 놀이터에서 재밌었어?" "웅, 미끄럼틀도 더 재밌고 친구들도 많았어." "그래, 친구는 많이 사귀었니?" "어, 내일 또 놀기로 했어." "그래, 그래. 우리 의진이. 지금이 몇시야? 어이고, 벌써 12시가 다 됐네. 오늘은 엄마나 아빠가 정신이 없어서 그랬지만 내일부터는 꼭 10시에 자야돼. 알았지?" "알았어." 재욱은 의진이를 소파옆에 내려놓고 탁자위에 있는 담배갑과 라이터를 집고 베란다로 나갔다. 비는 이미 멈춰있었고 어느때 보다 더욱 선명한 별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재욱은 담배갑에서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이익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담배가 연기를 내뿜었다. 새로운 집에 들어온 기쁨, 그리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긴장, 그리고 ... 그리고....그 알 수 없는 사건. 재욱은 액땜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일은 좀 더 나은 생활이, 우리 가족에게 더없이 행복한 나날이 되리라는 꿈도 꾸었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bamm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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