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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브금,장편] 아파트-4부-
게시물ID : panic_291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1
조회수 : 148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04 13:40:02
아파트에 들어온 지 6일 되는 날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다시 찌푸린 얼굴을 하며 서서히 구름을 내리고 있었다. 아파트에는 오늘도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민주는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고는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 거실에서 개어 놓고 있었다. 그때 옆집 홍씨가 찾아왔다. "뭐해? 빨래개?" "네...비가 오네요." "그려그려.....사실....새댁은 몰를껴... 나같이 나이 먹으면 비오는 날이 제일 싫어. 무릎이고 허리고 욱씬욱씬 쑤셔대는데 원.." "그러시군요.." "그나저나...오늘 반상회인거 알제? 애기 아빠는 언제와?" "글쎄요 한 7시나 되야 올 것 같네요." "그래? 흠..그럼 새댁이라도 나랑 같이 가자고." "아니, 애기 아빠 오면 저녁도 준비해야 되고..." "에이...그런건 걱정붙들어 매구.... 우리 반상회할때 식사도 준비하니깐 괜찮을 껴." "그래도...처음인데 그냥 받아먹기만 하면..." "아녀아녀 뭘 그런걸 가지고 걱정을 한다냐..다 한 식군디. 괜찮어. 내가 책임질 테니깐 같이 가자고." "그래도..." "따라오라니께...괜찮아..." 민주는 막무가내로 끌고 나가는 홍씨의 손에 이끌려 의진이를 데리고 반상회로 갔다. 반상회는 1층에서 있었다. 마침 유정이네 집이고 해서 의진이는 유정이 방에서 같이 놀고 있었다. 민주는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몸둘 바를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러면서 그저 조용히 있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략 한 아홉세대 정도의 사람들이 온 것 같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주저리주저리 밀렸던 말들을 하며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민주는 유일한 말상대인 홍씨가 다른쪽 사람들과 또다시 극성맞은 수다를 떠는 것을 보며 차분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민주는 며칠전 놀이터 벤치에서 만났던 그 냉담한 여자를 발견했다. 그 여자는 여기서도 똑같이 차가운 얼굴로 앉아있었다. 민주는 그녀를 발견하고 나서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더 알게 된다면 다른 면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이자 한 사람이 좌중을 조용히 시키고 말을 했다. 401호에 사는 철호였다. "자 오늘은 새로오신 분도 계시고 그리고 모처럼 우리 동이 파티를 하는 날이니깐 ...집에 갈 생각들 하지 마세요..허허허."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서로 좋아하며 또다시 시끄럽게 떠들었다. 철호는 다시 주변을 정리하고 말을 이었다. "새로 오신 분, 어디 계세요? 두 가구나 오셨다는데..." 민주는 조금 망설이며 주저하고 있었다. 그때 홍씨가 대신 말했다. "오호호호...우리 새댁이 워낙 얌전해서 낯을 가리나 보구랴. 7층에 이사온 집은 오늘 뭔일이 있는지 못왔구만.....글구 우리 여기....이쁜 새댁은 5층에 이사왔고 애기아빠랑 저쪽 방에서 놀고있는 애랑..다 해서 세식구이고..." "아..본인은 놔두고 아주머니가 다 얘기하면 어떻게 합니까? 자..괜찮으니깐 너무 부끄러워 마시고 인사하세요." 민주는 그제서야 주섬주섬 일어나 인사를 하고 가족소개를 했다. 서로 수근대던 사람들은 잘 왔다며 민주에게 악수를 건넸고 이 아파트가 뭐가 좋고 주변에 뭐가 있고 하는 얘기를 쏟아내었다. 민주는 처음 느꼈던 낯설음을 어느정도 극복하자 그들의 얘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 부인네들의 수다로 이루어졌지만 민주는 오랜만에 사람사는 냄새를 맡았다. 과일이 나오면서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고 제각각 세상사는 얘기에 정신이 없었다. 민주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와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자신을 세진이 엄마라고 했다. 그녀 또한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으며 내 집 마련에 힘을 쏟았던 지난날을 갖고 있었다. 민주는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험난했던 과거를 같이 회상했다. 그러던 중 민주가 물었다. "저 쪽에 앉아 있는 여자 있죠? 까만 니트티 입고 있는..." "어? 아...403호.." "네..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죠?" "아니 갑자기 그런건 왜?" "저번에 저에게 이상한 소릴 하더라구요. 글쎄요. 제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 이사가라는 둥.." 그러자 세진이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민주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 여자...조금 이상한 여자야. 여기 온지 꽤 됐는데도 친구하나 없고. 다른 사람들도 가까이 하기 꺼려하거든. 뭐 남편이 맨날 때리고 그러나봐. 암튼 저 여잔 가까이 하지 않는게 좋아. 겉모습도 얼마나 차가워 보여. 마치 세상 다 산거 처럼..." "네.." 과일을 집어 먹으면서도 민주는 그 여자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 그리고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듯한 미스테리함. 그녀에게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감상들을 쉽게 지워낼 수 없었다. 그때 홍씨가 낑낑거리며 커다란 냄비를 들고 들어왔다. "자, 각자 식구들한테 연락하시구... 이번에는 영민이 엄마가 만들었당께... 식기 전에 먹자구."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왁자지껄 모여들었다. 하지만 민주는 여전히 곧은 자세로 앉아 있는 403호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을 차리고 반찬을 나르고 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도도하게 앉아 있는 그 여자. 그녀는 마치 세상 사람들과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어떤 거리를 두고 있는 듯했다. 절대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가지런히 모은 손을 무릎위에 얹어놓은 그녀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대로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놀이터에서 했던 말들이 민주는 자꾸 떠올랐다. 뭔가 이상하다.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 민주는 조금씩 두려워 졌다.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재욱의 가족은 아파트의 한 일원이 된 듯 같은 동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재욱은 가끔 석재, 철호 등 같은 동 남자들과 술을 마시기도 했다. 새로운 음식을 할때 마다 호들갑을 떨며 자랑하는 홍씨와 저녁도 몇번 같이 먹었던 세진이네 가족, 그리고 의진이는 유정이와 노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가끔 재욱이 야근을 하는 일이 있어도 그전처럼 수시로 집에 전화를 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어졌다. 민주 또한 짬이나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동 사람들이라해도 친해질 수 없는 몇 몇이 있었다. 민주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했던 그녀는 여전히 모두의 관심밖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듯 했고 새로 이사온 집 또한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같았고 이러한 생활도 일정한 패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저녁.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재욱은 의진이와 거실에서 컴퓨터 오락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의진이는 오랜만에 보는 아빠가 반가운 듯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그런 의진이가 재욱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때 방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던 민주가 재욱을 불렀다. "오빠, 여기 우리 인감도장 어디갔지? 내일 동사무소 가야 되는데.." 컴퓨터 게임에 정신이 없던 재욱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거기 화장대 잘 뒤져봐. 거기 있을꺼야." "없으니깐 그렇지. 빨리 와봐." "아이, 내일 갈 껀데 뭐 저녁부터 그래. 내일 찾아." 민주는 조금 신경질이 난 상태로 거실로 나왔다. "좀 찾아봐. 정말. 애도 아니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잠깐만, 기다려봐." "오빠!" 재욱은 조이스틱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민주에게 말했다. "맞다. 그거 내 차에 있을 거야. 내가 그저께 쓰고선 아마 차에 놔뒀을껄." "그럼 빨리 갖다 줘. " "잠깐만, 내가 이따가 찾아 올께." 민주는 휙 방으로 들어가 자동차키를 들고 나왔다. "정말...다 큰 사람이...어휴.....정확하게 어디 있어?" "차안에 잘 찾아보면 있을꺼야. 아마 앞좌석 앞에다 넣어 놨을껄?" 게임에 정신이 팔린 재욱은 의진이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쳤다. 그런 모습에 민주는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민주는 자동차키를 손가락으로 돌리고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비상구 문을 열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비상구를 연 민주는 끼이익 하는 소리가 주차장 전체에 울리는 것을 들었다. 이미 어두워진 바깥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차장이 그렇게 기분좋지는 않았지만 민주는 애써 모른척하며 재욱의 차를 찾았다. 주차장 구석에 있던 재욱의 차를 발견한 민주는 키를 꽂아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몸을 집어 넣어 인감도장을 찾기 위해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다닥..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치익치익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민주는 잠시 하던 것을 멈추었다가 몸을 꺼내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비상구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민주는 고개를 잠시 젖혀 기둥에 가려진 비상구를 보려했다. 순간 검은 무언가가 휘리릭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민주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갖고 그 쪽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민주의 발소리가 주차장 전체를 울리며 귓가에 요동쳤다. 점점 그 쪽과 가까이 할수록 민주는 알 수없는 긴장감을 느꼈다. 입을 꽉 다물었지만 작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한발짝 한발짝 긴장속에 걷던 민주가 비상구쪽에 거의 도달했을때, 무언가 그 앞쪽에 주차되어 있던 차 뒤쪽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민주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누구세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민주는 다시 한번 물었다. "누구세요?" 역시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주는 순간 불안감에 휩싸여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내가 잘못들은 것인가?' 민주는 멈춰선 자리에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차라리 앞으로 가지 못할 바에는 그냥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민주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가기에는 무언가 미심쩍은 것이 있었다. 민주는 살짝 몸을 굽혔다. 그리고 땅에 무릎을 꿇고 차 아래쪽을 보기위해 몸을 굽혔다. 차 한대를 가운데 두고 민주가 고개를 숙여 건너편을 보는 순간, 누군가 건너편에서 민주를 응시하고 있었다. 민주는 순간 몸이 뻣뻣해 옴을 느끼면서도 눈에 힘을 주고 건너편을 주시했다. '뭐지? 뭐지?' 순간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한 대의 차가 들어왔다. 타이어가 미끌어지는 굉음을 내며 들어오는 차로 민주는 깜짝 놀랐지만 건너편에 고정시킨 시선을 떼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 나갔다. 주차장에 들어온 차가 민주가 있는 맞은편을 돌아 들어올때 헤드라이트가 한바퀴 뺑그르르 돌며 민주의 뒷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라이트가 민주의 몸을 훑고 넘어가는 순간 민주는 건너편에서 민주를 노려보고 있는 상대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얼굴 가죽이 벗겨진 채로 눈알이 하나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민주는 으악하고 소리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아아아아악!" 민주는 정신없이 차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뛰었다. "사람살려!" 들어오던 차량에 있던 남자는 차를 잠시 멈추고 민주를 쳐다보았다. 민주는 그 차를 향해 비명을 지르며 뛰쳐갔다. "무슨 일이에요?" 차에 있던 남자가 내리면서 민주를 보고 물었다. 석재였다. 민주는 아악아악 소리만 지르며 그 사람에게 뛰어갔다. 석재는 재차 무슨일인지를 물었다. 민주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헉헉 숨만 몰아쉬며 석재에게 기대어 있었다. "저..저저....저...저기.....사람.......귀신.......있어요...있어요.." 민주는 벌벌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며 흔들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석재는 민주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민주는 세워진 차 앞에 쭈그려 앉아 몸을 감싸고 벌벌 떨고 있었다. 석재가 민주가 가리킨 곳에 멈춰서자 한참을 보고 있다가 민주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민주는 두렵고 떨렸지만 석재에게 달려가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민주는 허탈하게 그 장소에 서 있었다. 석재가 말했다.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제가 바래다 드릴께요. 어디 사세요?" "네..네? 아...네....저 5층에...." "아...그 새로 이사 오셨다는 분이군요. 바깥분이랑 몇번 술을 같이 한적이 있죠...따라오세요. 제가 차 들여놓고 모셔다 드릴께요." 집에 들어온 민주는 아직도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그리고 놀란 가슴을 어찌할 수 없어 계속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재욱은 그녀에게 물 한잔을 떠다주며 말했다. "괜찮아? 진정하고. 내가 들으니깐 뭐 헛것을 본 모양인데...많이 놀랬어?" 민주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멍하니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아하..이 사람. 진정해. 나참...요즘 세상에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좀 진정해." 민주는 물을 한번에 들이켜고는 조금은 진정된 가슴을 부여잡고 재욱에게 말했다. "아...너무 무서워...사람인 것 같은데...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야...아..." "알았어..알았어...그만 진정하고 들어가 침대에 좀 누워있어."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bamm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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