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의 거대화 로마는 bc148년에 끝난 일련의 전쟁을 통해 마케도니아를 정복하여 속주로 삼았다. 그 중심에는 로마군의 밀집대형이 있었다. 그리스의 도시들은 로마에 공물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고 소아시아마저 장악하면서 에게해가 로마의 손에 떨어졌다. bc149년 3차 포에니전쟁을 끝내고는 카르타고를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버렸고, 이 땅을 '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속주로 삼았다. 정복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된 그들은 더 먼 곳, 더더욱 먼 곳으로 군대를 보냈다. 비로소 지중해를 내해로 삼는 로마제국이 완성된 것이다. 2. 그리스화되는 로마문명 로마문화는 이탈리아 너머로 영토를 확장하기 전에 이미 그리스화되어 있었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기 전부터 그리스의 남부동맹들이 마케도니아를 견제하는 움직임에 로마도 참여했다. 이는 곧 로마문명의 정체성이 스스로를 헬레니즘 문명의 일원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로마인들을 카르타고인들과 다를 바 없는 야만인이라고 여겼다. 자기네 문명권에 포함은 시켜주되, 한 수 아래로 얕잡아 본 것이다. 로마가 그리스진출을 한 bc2세기 이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더욱 강해진다. 최초의 로마문학은 그리스 희곡을 번역한 것이고, 최초의 라틴희극 역시 그리스희극을 모방한 것이다.
베누스(Venus.비너스) 신상. 로마인들은 그리스 예술 중에서도 조각상을 몹시 사랑했다. 로마인들이 미의 여신으로 숭배하는 베누스는 일찍부터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되었다.
레바논에 있는 바커스 신전. ad150년에 로마인들이 세운 것이다. 이 유적도 꽤나 유명해서 레바논 지폐에도 실려 있다.
유명한 로마의 목욕습관은 그리스화된 동양으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초기 로마는 목욕같은 사치를 부릴 형편이 못되었다. 동지중해 진출 이후 '씻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고 기원 후가 되어서야 로마시에 수로 시설이 갖추어지면서 목욕문화가 대중화되었다. 짤방은 ad200년에 건축된 카라칼라 목욕탕을 묘사한 것이다. 이 목욕탕은 16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3. 로마가 이룩한 평화 로마가 지중해 정복을 끝내고, 지중해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로마는 코스모폴리타니즘(세계주의)를 표방하며 모든 사람을 동등한 로마인이라고 선전했다. 물론 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고, 세금을 걷고 치안을 유지하고 민사분쟁을 법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이데올로기였다. 외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적을 물리쳤을 때, 위기는 로마제국 내부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