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가 노동자를 부리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계약해야 하고,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노동자는 자유롭게 직장을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임노동자는 농노와 마찬가지로 빈곤하다.
물론 빈곤의 양상이 다르다.
지금 노동자는 농노보다 훨씬 많은 생활 수단을 소비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 부에서 그가 차지하는 구매력의 비율은 농노보다 적다.
백보양보해도 비슷할지언정 크지 않다.
어느 사회에서든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이 구조적으로 빈곤할 수밖에 없다면 그 사회의 경제에 반드시 착취 구조가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농노에서 노동자로의 변화를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이전 경제체제에 비해 생산력을 무한정 팽창시켰다.
그러나 팽창된 부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다.
물론 거대해진 상품생산이 노동자의 소비를 증가시킨다.
농노보다 상대적으로 빈곤하지만, 절대적 소비에서 노동자는 풍족하다.
결국 봉건제에서나 자본주의에서나 피종속민들은 착취당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자본주의에서만 생산력이 무한정 팽창한 이유는 무엇인가?
봉건제에서 부역농민은 일주일에 3일은 자신이 사용할 생활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하고, 나머지 3일은 영주의 농지에서 부역노동을 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농지에서 자신의 농기구로 자신이 소비할 생활수단을 생산하고, 영주의 농지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부역노동을 한다.
그는 자신이 사용할 생산물과 착취당할 생산물을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자는 농노와 달리 자신의 농지도, 농기구도 없다.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무산자다.
부역노동은 신분적 귀속에 따른 강제이나 노동자가 자본가 밑에서 일하는 이유는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이고, 표면적으론 자발적이다.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경제적 종속에는 강제가 없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다.
예전 농노가 자신의 농지에서 3일간 빵 5개를 생산하고, 영주의 농지에서 3일간 빵 5개를 생산한다고 가정하자.
노동자 역시 자본가의 사업장에서 6일을 일하고 빵 10개를 생산하며, 이중 빵 5개를 임금으로 받는다고 한다면, 이때 노동자와 농노는 아무런 차이도 없을까?
이 경우 노동자는 농노와 달리 자신의 총생산량인 빵 10개에서 그 중 일부분인 5개만을 임금으로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그저 자신이 일한 만큼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편 농노는 자신을 위한 생산과 타인을 위한 생산을 구분할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을 위한 3일간의 생산에 영주를 위한 3일간의 생산보다 더 공을 들일 수 있으나 노동자의 경우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이 판매를 통해 화폐로 전환된 이후 임금의 형태로 그 중 일부분만을 보상 받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생산에 더 공을 들일 수가 없다.
노동자의 경우 자신을 위한 생산과 자본가를 위한 생산이 뒤섞여 있다.
우리는 앞서 어느 사회에서든 누군가가 열심히 일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사회에는 반드시 착취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상대적 빈곤 혹은 절대적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자본주의는 착취체제이고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총생산물에서 오직 일부분만을 임금으로 보상받지만 타인을 위한 노동과 자신을 위한 노동이 뒤섞여 있는 까닭에 타인을 위한 노동, 즉 자신에 대한 착취를 위해서도 농노와 달리 자발적으로 열심히 노동하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생산력이 급격하게 팽창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타인을 위한 노동, 즉 착취에 대한 피종속민들의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농노나 노예에게 착취 노동에 대한 자발성을 이끌어낼 수 없으나 노동자는 착취 노동을 자발적, 능동적으로 수행하고 이 때문에 생산력을 자본가의 욕심만큼 끌어올려 준다.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된 초기의 국가는 모두 하나같이 국가 총생산이 급격하게 증대되고, 노동자인 국민은 반드시 빈곤해진다.
즉 국가와 국가의 핵심계층인 자본가는 부유해지고 노동자는 빈곤해진다.
그러나 총생산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봉건제에서의 농노보다 적더라도 총생산이 급격히 증대한 까닭에 절대적 소비에서 노동자는 이전보다 풍족해지기 때문에 착취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듯한 환상이 생긴다.
이제 자본가에게 유리한 이 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자본가가 염두해 두어야 할 사항을 알아보자.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산 수단을 지속적으로 소유할 수 없게 해야 하고, 임금 체제를 통해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