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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것은 좋은것이여..~~~~~~~~~~~
게시물ID : humordata_10781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객루
추천 : 2
조회수 : 41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07 23:00:21
타악기만으로 외국처자들 광분의 테크노댄스를 추게만드는.우리네 풍물... 현란한 리듬과, 쉴새없이 몰아치는 변화무상한 박자들..... 10분만들으면..환각작용 일으키는 잎파리 씹으며 아프리카 마사이족 점프를 쌈싸먹는 우리네가락.. 짱!! ^^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미국의 그 유명한 카네기 홀에 가서 처음 공연을 할 때 관장이 이렇게 말하더란다. "사물놀이패 단, 네 사람이 조그만 악기 네 개로 한 시간 반 동안 이 넓은 홀의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나요? 다른 나라에서는 몇 십 명의 오케스트라가 와서 연주를 합니다” 김덕수 패가 사물놀이를 한 10분 정도 펼치니 청중들의 어깨가 들썩들썩, 고개가 끄덕끄덕, 엉덩이가 씰룩씰룩 난리가 났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청중들은 한국에서 온 북, 꽹과리, 장구, 징 소리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좌측부터 이광수(북), 故 김용배(꽹과리), 김덕수(장구), 최종실(징) p.s 이상하게 오늘 하루종일 사물놀이에 필이 확박혀서..온종일 사물놀이에대한걸 들었다... 35에 요절한 우리나라 사물놀이의 최고 쇠잽이 상쇠 김용배를 아시는가.... 현재 사물놀이의 신화를 이끌었던 상쇠 김용배를 20년 전 시간으로부터 호명하는 작업이다. ‘ 남사당의 후예’를 자처하는 청년 4명이 첫 사물놀이 공연을 가진 것은 1978년 2월28일 소극장 ‘ 공간사랑’에서다. 이 무대에서 상쇠를 맡았던 김용배는 꽹과리를 두드렸고 김덕수는 장구를, 최태현과 이종대는 각각 북과 징을 맡았다. 전통 풍물이란 게 상모돌리기식의 야외놀이나 판굿형태로만 인식됐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타악 공연이었다. 이날의 연주가 끝난 후 이들의 공연은 민속학자 심우성씨로부터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사실 사물놀이란 명칭은 한 풍물패의 고유명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히서는 “김덕수의 장구가 우리의 배창자를 뒤집어엎을 정도의 위력으로 설득력을 발휘했다면 김용배의 꽹과리는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골수를 파고드는 웅변으로 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줬다”고 회상했다. http://blog.daum.net/lespaul6/229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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