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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방안의 여인
게시물ID : panic_294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8비트
추천 : 2
조회수 : 19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10 22:36:07
살아가다 보면 천장이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있어요. 알아요? 천장말예요. 어렸을 적에는 항상 하늘만 보이다가 갑자기 나타는 것이요. 이해가 잘 안 가시는 것 같네요. 어렸을 적에는 어디에서나 하늘을 볼 수 있었어요. 눈을 감고 있거나 방안에 들어가 있어도요.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회색천장만 보이게 되죠. 

어렸을 때의 우리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상대방을, 넓게는 세계를 인식하지 못해요. 무언가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깨닫는 순간, 그때서야 바깥을 인식하기 시작해요. 그전까지는 남과 나의 구분의 희미하죠. 자신의 바깥.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인식하려면, 우선 자신을 인식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바깥이라는 것을 알 수 없으니까요. 

바깥을 인식하는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들어봤죠? 피터팬컴플랙스라는 말 들어봤죠? 그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복합적인 감정이 아니에요. 그저 몰랐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일종의 회피. 이를테면 리셋증후군. 무언가를 만들다가 자신이 만든 것이 마음에 안 들면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하고 싶어 하는 충동. 그런 거예요.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싶은 욕구. 결국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죠. 

어째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요? 대개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요. 대부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서 살아가죠. 

그 이유요? 간단해요. 세상 사람들을 나누면 간단하게 이렇게 나누어지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능력이 안 되어서 하지 못하는 사람. 

분명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굉장한 행운이지요. 살아가는 데에 돈이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고요. 그렇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돈이 되는 사람이 되는 사람이에요. 

돈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 이 되면 모이게 되는 거죠. 일종의 희소성을 갖추면 쉽사리 모이는 것이에요. 그렇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돈이 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어요. 이건 주위를 둘러보면 잘 알 수 있어요. 혹시 주위에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 있나요? 아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도 보통 그 정도의 확률일 거예요. 아주 드물지요. 그렇기에 사람들은 시기심과 경외감을 담아서 이렇게 부르지요. 천재. 혹은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 

세상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 반해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들을 철부지내지는 자신의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요. 열망이 없음에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하지 않나요? 

동의하지 않으시는 군요. 저는 지금도 가끔씩 찾아오는 열망이 끔찍하다고 느껴져요. 없었으면 오히려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거예요. 

살리에르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모차르트의 곁에 있었던 비운의 음악가. 실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었음에도 모차르트라는 천재에 의해서 빛을 바랬던 음악가에요. 당시 궁정악장이었던 살리에르는 자신이 바라마지 않는 것을 너무도 쉽게 이루어내는 모차르트 곁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짐작이 안 간다고 생각하고 계시나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해요. 부정하지 마세요. 자신의 마음에서 고개를 드는 시기심을. 자신이 원하던 것을 너무도 손쉽게 이루어 내었을 때 느끼는 박탈감을 한번쯤은 느껴봤죠? 

능력이 되었던 기술이 되었던 그 무엇이던 간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해요. 그것에 대한 지독한 열망. 나만의 그 무엇이 있다고 위로해도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는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조금도 고마움을 가지지 못하는 상대방에 대해서 느끼는 질루와 적의. 

저는 열망 따위 없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주어지지 않을 거라면, 보이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런 아름다움은 피할 시간도 주지 않고 사람들을 휘어 잡아버리죠.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면 다른 기준들이 무색하게 보여요. 사로잡힌 그것에서 도망치려 애를 써보지만, 보통 부질없죠.

자신을 위로하고 몇 번 발버둥치고 노력은 하겠지만 그 노력에도 한계라는 게 있어요. 이렇게 비유를 들어볼까요?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하면 45kg이 될 수는 있겠지만 내 시력을 2.0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내가 노력하면 마라톤을 완주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100미터를 10초에 달리지는 못해요. 그런 거예요. 불가항력.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신의 한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죠.

한번 인식된 그것은 우리를 그대로 주저앉게 만들어요.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게 만들어요. 안 되는 거다.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내가 노력을 하면 비슷하게 다다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아인슈타인이 될 수 없고, 고흐가 될 수 없어요. 천장을 만나게 되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아주 재미있는 것이 있어요. 대부분의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천장을 발견하는 즉시 포기를 해 버려요. 여자들의 경우 대부분의 첫 포기는 수학에 대한 포기에요. 그 외에도 포기하는 것들이 있어요. 외모적인 면이라든가, 자신의 지적능력에서부터, 작게는 대화를 하는 법까지. 하나하나씩 천장들이 보여서 천장의 너머까지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들이 늘어나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라고 생각해요? 

연애에요. 어머, 눈을 보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렇지만 이것 역시 같아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100미터를 10초에 달리지는 못해요. 마찬가지에요.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능력도 없고 잘생긴 것도 예쁜 것도 아니지만 이런 나라도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사랑해줄 누군가가 나타난다.’라고 생각해요.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내가 이렇게 아픈 연애를 하는 것은 미래에 만날 나에게 꼭 맞는 짝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죠. 

큭큭.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웃었군요. 그렇지만 우습지 않나요? 흔히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죠.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도 하고요. 그렇지만 그렇다면 세상에는 성자가 아닌 사람이 없을 거예요.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멋진 거짓말이에요.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할게요. 

저는 영화에서 같은 멋진 연애 혹은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해요. 그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에요. 저의 연애에 대한 능력은 서로를 상처내고 밀어내고 후회하는 사랑을 하는 능력밖에 되지 않아요. 

처음으로 만난 사람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고 처음으로 사랑을 해서 결국에는 결혼에 이르는 것이 너무도 드문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상대방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그런 결혼을 했을 거예요. 그건 그들이 가진 능력이에요. 

혹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나요. 저도 읽어보지는 않았어요. 제목만으로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죠. ‘그렇구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역시 능력 중에 하나구나.’라고요. 그래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역시 능력이에요. 

몇 번의 연애를 하고 서너 번 사람들에게 데이다보니 서로를 차고 채이고 윽박지르고 미워하고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관계는 너무나도 순순한 거더군요. 처음의 몇 번은 그러한 관계에 진절머리가 나서 다시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바라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마음은 이미 오그라들어서 상대방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힘들어지더군요. 그저 이기적이고 약한 마음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구실로 외로움을 메우기 위한 만남이 반복 되었어요. 

그런 만남들이 계속될 때, 처음에는 제가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죠. 참담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연애가 반복되면서도 단지 아직 때가 아니어서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나에게 꼭 맞는 짝이 나타날 것이라고요. 그러면서도 마음에서 피어나는 불안함이 피어올랐어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누구라도 결국은 나와 완전한 소통을 이룰 사람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 때는 너무도 무서웠어요. 혼자라는 것. 웃고 떠들고 그저 어색한 공간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대화는 가능하지만, 서로의 생각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그런 사람은 나에게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도 싫었죠. 

어떤 연인들이 있었어요. 제 주위에 있는 연인이었어요. 그들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어요.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가는 교감. 스치는 손길에서 느끼는 따스함. 누가 보아도 서로를 신뢰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관계였어요. 그 연인들을 보면요. 저도 모르게 적의가 피어올랐어요. 당신은 나보다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아무리 가지고 싶어도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그리고 쉽게 가지고 있는 거지? 

부러웠어요. 너무도 부러워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들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면 보여주지도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원하게 해놓고 주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잔인하잖아요? 나에게 이런 열망을 주지 않았으면 행복했을 거예요. 분명히 그래요. 이런 생각을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럼 저에게도 알지 못하게 했었어야지요. 그 달콤함을, 그 아름다움을 나에게 보여주고는 어째서 주어지지는 않는 건가요. 

그 연인들의 모습을 저는 갈망했어요. 너무도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을요. 나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의 모습을요. 

열망과는 다르게 저의 연애는 언제나 이기적이었고 아름답지 못했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제가 가진 능력이 나은 결과에요. 이제는 그것을 알 수 있어요. 운이 없다는 생각을 지금은 하지 않아요. 저의 연애가 실패한 것은 전적으로 저의 몫. 그런 사람밖에 골라내지 못하는 저의 능력이에요. 나를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사랑해줄 사람이 있었더라도 저는 몰랐을 거예요. 아니 그 사람과 사귀었더라도 저절로 지쳐서 떠나게 했겠죠.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 

그런 제가 무척이나 저주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 남자. 1년 전에 만났던 그 남자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그 사람은 어땠을까요?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 뛰어났을까요? 그런 사람인데 제가 망쳐버린 것일까요? 그렇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는 저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큰 사람이었거든요. 체구가 커다란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요. 뭐라고 할까.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건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인 것 같아요. 확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생명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깊게 깔려있는 사람이랄까요. 그에게는 악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런 그의 모습을, 아직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도 모르게 끌리고 있었죠. 머릿속에서 부정하고 밀어내려 했지만 눈은 저도 모르게 그를 찾고 있었어요. 있어야 할 곳에 없으면 저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서 안절부절 못했죠.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저의 안에서 빛나기 시작했어요. 계기 같은 것은 없어요. 그냥 어느 날, 어느 시점에, 태양이 한 가지 색으로 오직 그만 비춘 것처럼 빛이 나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었어요. 예, 사랑했어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적어도 그 마음만은 알아주길 바랐어요. 나를 사랑해 주길 바라진 못했어요. 분명 버려질 테니까요. 혹시라도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오래가지는 못할 테니까요. 남들이 보는 우리는 연인관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와 만나는 저는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눈은 나를 보고 웃고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그건 자신에게 매달리는 냄새나는 계집아이를 내버리지 못해서라는 것을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아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생각과 달리 마음은 따라가지 못하더군요. 그저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금세 무너져 이내 나를 사랑해주기를 원했죠. 

무척이나 힘이 들었어요. 애초에 그에게 있어서 나는 일종의 동정의 대상이었으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준다는 아주 간단한 조건인데도 어째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일까요? 

나를 사랑해주기를 원했지만 나로서는 나를 바라보게 할 능력이 없기에 서서히 포기를 했죠. 그대로도 좋았어요. 어찌되었건 그는 제 옆에 있었고 제 손에는 그의 손가락이 끼워져 있었으니까요. 언젠가는 끝이 날 관계였지만요. 

끝은 생각보다는 늦게, 바라던 것보다는 빠르게 다가왔어요. 그가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 마음을 빼앗기는 형태로요.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저는 그대로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 내가 그를 가지려 했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면 가능했을까요? 예,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저 어느 날 함께 있는 두 사람에게서 깊어져 있는 두 사람만의 세계를 보았을 뿐이죠.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생겨나서 서로에게 주고받는 교감을 목격했을 뿐이었어요. 

싸우기를 스스로 거부해놓았던 주제에 제가 본 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빌었어요. 부러웠어요. 그녀가 부러웠어요. 내가 원하던 사랑을 간단하게 손에 넣는 그녀가 너무도 부러웠어요. 

열등감과 자괴감. 시기와 질투. 그런 저는 상관하지 않은 채 둘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어요. 아마도 제가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렇기에 그렇게 잔인할 수 있었겠죠. 

알고 있었어요. 어차피 끝날 관계였다는 걸. 그렇지만 이런 형태만은 아니길 바랐어요. 어느 누군가가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간단하게 해치우지 않기를 바랐어요. 

저는 그저 그에게 동정 받고 싶었어요. 사랑이 아니고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어차피 원하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되기를 바랐어요. 유치하게도 영원하기를 바랐어요. 

그렇지만 나는 또다시 사랑을 얻는데 실패했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저의 잘못이에요. 제 능력의 결과고요. 그가 미웠어요. 그렇게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요. 그녀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은 안 해요. 어디까지는 그를 바라보게 하지 못했던 나의 몫.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던 그의 몫이겠지요.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를 집으로 오라고 했죠. 집에 들어오는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어요. 무의미한 말들이 공간을 메웠고 저는 그 말들을 하나하나 새겨 넣었어요. 이 말들이 끝이 나면 분명히 우리 역시 끝이 날 테니까요. 그가 하던 말을 멈추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고요. ‘그래 알았어.’ 저 역시 담담하게 말했죠. 예상하고 있었던 결과여서 동요되지는 않았어요. 그런 저를 보면서 그의 얼굴이 무너졌어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이렇게 돼서 미안해’라고 했어요. 그는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정말, 그 말만은 아니기를 바랐는데, 적어도 ‘그동안 고마웠어.’이기를 바랐는데.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돌아섰어요. 문 앞에 선 그를 저는 뒤에서 말없이 끌어 앉았죠. 그는 저를 위해서인지 잠시 가만히 있었어요. 저는 오른 손에 말아 쥐고 있던 끈을 양손으로 잡아서 그의 목을 감아 조였어요. 그는 자신의 목에 조여진 노끈을 풀어내려 안간힘을 쓰다가, 이내 몸을 늘어뜨렸어요. 보통 사람은 숨을 쉬지 않아도 5분정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조금 걱정이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움직임이 멈추더군요. 나중에 찾아봤더니 목에 있는 경동맥을 조이면 짧은 시간에 쉽게 죽일 수 있다고 그러더군요. 오히려 시체를 처분하는 게 일이더라구요. 양지바른 곳에 묻혔으니 그도 불만은 없을 거예요.

이제 아시겠죠. 당신이 그곳에 묶여있는 이유를.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했어요. 이제 와서 다른 사람에게 간다니, 무책임하잖아요?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나를, 결국 설득한건 당신이에요. 이건 그 대가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곧 뒤따라 갈 거니까.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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