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간, 그러니까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모셨던 상사분이 오늘 아침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아시는 그 분 말입니다.
네, 당연히 먼 발치에서밖에 본 적이 없고 직접 업무 지시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들과 관련해 일들을 꽤 했었고, 이분께 올리는 보고서도 하나 썼었지요. 정권 말에 올린 보고서기 때문에 꼼꼼히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재도 하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고안해 만든 시스템을 통해서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기 전부터 이 분에 대해 알고 있었고, 제 나름대로의 생각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일 외의 것들로 이 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도 하고, 못마땅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정치인으로서의 그가 한 일들에 대해서라면 저는 못마땅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행정 수반, 다시 말해 제 가장 윗 상사로서 그가 한 일들에 평가하라면 저는 감히 말하건데 가장 훌륭한 상사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상이 행정 현실과 충돌할 때 자신의 의견, 소신을 고집하기보다 언제나 타협점을 찾으려고 애썼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존중했으며,
가장 근본적으로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함부로 그 틀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무한한 권력을 시스템속에 스스로 묶어버린 그 선택은,
단순히 좌, 우의 구분을 넘어서 어느 쪽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좌파쪽에서 그런 선택을 하기 더 힘들겠죠...) 제가 그를 가장 존경스러운 상사로 기억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정치적인 관점의 차이를 떠나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했다는 고백들이 오늘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만, 제가 참으로 안타까운 건 인간적인 것 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가 가진 진면목을 이해하고 알아봐주는 사람은 여전히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오늘 유서에도 그런 감정이 드러났었죠) 무능했다는 평가들, 나라 말아먹었다는 말들은 여전히 그대로 사람들에게 주입되어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단지 동정론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 그걸 덮을 뿐... 저처럼 그와 같이 일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겠죠.
편히 쉬십시오. 그래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줄 날이 올 거라 믿으며...명복을 빌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