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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원의 현실 - 대학원생들은 괴롭다...ㅠㅠㅠ
게시물ID : sisa_2029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펌생펌사
추천 : 10
조회수 : 60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5/12 23:07:10

한국 대학원의 현실 - 대학원생들은 괴롭다 문준영 (희망블로거 1기) 대학원 진학은 이제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다. 2011년 통계청 발표 자료에 의하면, 석사학위 소지자는 약 100만 명이고, 박사학위 소지자는 약 20만명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면 대학원이 특정 소수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제기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단순한 불만이라기 보다는 한국 학계의 고질병과 관련돼 있다. 교수들은 “학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취업난 도피와 학벌세탁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며 불평한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을 이용하고 착취한다”고 한탄한다. 박사과정을 밟은 이들은 “내 젊음을 학문에 바쳤지만 돌아오는 건 질 낮은 비정규직 시간강사 자리 뿐이다”라고 읍소한다. 이들의 발언은 모두 유효하다. 단순히 특정 개인의 문제제기나 일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계를 둘러싼 커다란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구조의 문제는 1, 2년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 째 축적된 것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문제부터 권위주의, 군대 문화, 학벌주의, 폭력적인 관행, 교수사회의 이해관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가 애매하고 난해하게 얽혀있다. 이 방대한 문제는 글 논문 한 편, 책 한 권에 담기에도 버겁다. 때문에 이 글은 어떤 종합적인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한다. 대신 ‘한국 대학원의 현실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간략히 보여주는 하나의 밑그림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봉건적 충성서약 - 대학원생들의 현실 대학원생들은 실제로 폭언과 착취 같은 전근대적 관행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교수의 개인 연구나 프로젝트에 동원되어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금전적 보상은커녕 결과물에는 자신이 이름이 들어있지도 않은 경우가 많다. ‘대학원생시절 공대대학원친구들이 하는 비슷한 불평을 자주 듣던 일이 있었다...(중략) 이 일상적인 일이 변질되면 그것은 거대한 착취구조로 변하게 되고 만다. 먼저 고질적으로 있었던 일은 공식적인 연구비의 사용과 실질이 다른 일이었다. 그중 제일 큰 것이 연구비중 임금부분인데 연구비 사용내역서에는 대학원생들에게 임금을 지불한다고 되어 있지만 대학원생들은 그중 극히 일부만 받거나 가끔 인심한번 쓴다면서 교수가 고기나 사주고 마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한국 대학원과 학계의 전근대적 문화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던 <모색>이라는 무크지가 있다. 대학원생들이 모여 2001년부터 약 5년간 발행되었던 이 잡지가 보여준 현실인식과 구체적인 폭로는 한국 대학원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를 잘 드러낸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글, 논문, 심지어 책까지 대부분 제자들이 집필하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다.수천만원짜리 프로젝트를 해도 실제로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수행한 대학원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수고비 명목의 몇 십만원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이와 더불어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언어폭력과 부적절한 태도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대화가 나올 때면, 교수님의 비인간적인 말과 행동을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공부가 힘들어서 박사과정을 포기하겠다는 말은 자주 듣지 못했으나 교수에게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 포기하겠다는 말은 매우 자주 듣고, 또 말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왜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그대로 수용할까? 나름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어떻게 교수들의 이런 행태에 그냥 그려러니 하는 것일까? 이 이유를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는 개념이 <무색>이 제시한 ‘무언의 충성서약’이라는 단어이다. 2001년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이자 <무색>의 멤버였던 염정민씨는 당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원 사회에서 맺어지는 일차적 관계는 무언의 충성서약을 통한 지배복종의 관계이며, 이를 유지하는 것은 장인 도제시스템이라는 지극히 봉건적인 틀이다”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핵심을 꿰뚫은 지적이다. 학생들은 학위를 획득하기 위해 교수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때문에 교수의 권위적인 태도와 폭력적인 언어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힘들다. 이런 폐쇄성 속에서 대학생들은 교수의 불합리한 행동을 묵인할 수밖에 없다. 결국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교수만은 ‘예외’이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대학원생의 삶의 질은 교수의 인격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교수들이 더러워서’라고 도장을 찍어버린다면 아무것도 해결 할 수가 없다. 이것은 특정 개인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의 문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이런 행동들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환경,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는 구조가 핵심인 것이다. 박광주 교수(부산대)는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미국에서 대학교수가 되는 것은 사회적 명성이나 금전적 보상 그 어느 면에서도 매력적이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대학교수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언론이나 방송의 단골 출연자가 되기도 어렵고, 각종 위원회나 이사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정치판이나 관계에서 기회를 잡아 화려하게 진출하는 것도 쉽게 꿈꿀 수 없다. ...(중략) .. 한국의 대학교수는 "뒤통수만 보이는" 인간들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대학바깥의 여기저기에 얼굴을 부지런히 내미는 사람들일 수록 대중성을 획득하고, 이것이 관계로 정계로, 또는 각종 위원회나 이사회로 진출해 남다르게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관건이 되고 있다. 논문은 적당히 요령껏 발표하면 되니 논문을 써내지 못해 망할 일도 없다.’ 실력보다는 인맥과 계파 싸움을 통해 교수가 되는 한국 주류사회의 이면을 제대로 꼬집은 내용이다. 결국, 우리는 교수와 그들을 둘러싼 구조의 결함에 대해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유학 권하는 사회 - 대학원 경쟁력이 약해진다 ‘교수가 나쁜 놈’이라고 하고 마녀사냥을 하면 될 것 같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교수들 역시 피해자 중 한 명이 되기도 한다. 비정규직 시간 강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미 전근대적이고 폐쇄적인 한국의 대학원 문화를 견뎌내며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다. 일종의 정신적 외상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풍토를 그대로 세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교수들은 실적을 강요받는다. 때문에 정말 하고 싶고 가치 있는 연구 대신, 산학협력이나 대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논문을 쓰고, 세미나에 참석하고, 교양 수업도 하고 학부 수업도 해야한다.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문제제기가 들어올 가능성이 적은 대학원생의 수업에 노력을 덜 기울일 수 밖에 없다. “교수가 대학원생을 가르칠 경우, 별로 수업준비도 하지 않고, 대충 가르칠 때가 굉장히 많아요. 학부생과 달리 대학원생들은 인원이 적고, 교수의 권위 아래에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에게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연구비나 장학금 지급할 때, 교수의 힘이 세요. 대학원생들이 아무래도 교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 교수들이 수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죠.” 물론 이러한 것들이 대학생들에게 가하는 불합리한 행위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교수들이 그렇게 행동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이유, 즉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관행이 반복되면서 적지 않은 대학원생들이 외국의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난버린다. 심지어 교수들이 학부생들에게 유학을 적극 권유하기도 한다. 실제로 선진국의 대학원은 대한민국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개인 연구실을 마련해주며, 교수의 개인 프로젝트에 동원되지도 않는다. 한국에서처럼 착취와 폭언에 시달리는 것은 독일이나 미국, 영국,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방적인 한국의 교수-학생 관계와 달리 교수-학생 간 소통도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종종 한국의 유학생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A교수 ‘님’(sir)이라고 붙였다가 당황한 담당교수의 얼굴을 목격한다. 일반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외국의 대학원들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 이러니 당연히 돈만 있으면 유학을 가고 싶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정말 좋은 환경에서,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은 자연스레 무리를 해서라도 해외 대학원 행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한 두 해 문제가 아니다. 1986년 동국대 신문에는 주목할만한 교수들의 좌담회가 실려있다. ‘외국에 가서 박사학위만 취득해 오면 그 학문적 성과야 어찌 됐던 국내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보다 더욱 우대받는 현재의 풍토’에 대해 모든 참석자들이 염려한다. 26년전에 있었던 문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연구자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충실한 학생으로 살아남게 된다” 한국 대학원은 경쟁력이 약해지고 또 그 약해진 경쟁력 때문에 더 많은 고급 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된다. 한국에 진짜 연구대학이 없는 배경에는 이런 불편한 진실들이 존재한다. 애매하고 복잡한 문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빈약한 것도 문제이다. 정부가 대학교육에 투자하는 재원 비율이 최하위 수준(OECD 국가중 칠레에 이어 거꾸로 2위)이다. 게다가 그 지원도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항목에만 집중되다 보니 대학원은 자연스레 찬밥이다. 사립학교법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대학 총장들은 정부의 지원에 목을 매면서 정작 적립금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교수들을 과다한 경쟁과 이상한 실적주의로 밀어넣는 신자유주의 역시 한국 대학원 문제의 또 다른 원인제공자이다. 이처럼 한국 대학원의 현실을 파악하다보면 자연스레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대학원의 문제는 그 자체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학계와 한국 사회와 맞물린 복잡한 문제이다.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다. 복잡하게 묶인 이 매듭을 풀기란 몹시 힘들어 보이고, 그렇다고 그 끈을 끊어버릴 수도 없다. 결국 복합적으로 얽힌 대학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한국 사회의 모든 어두운 곳들을 함께 다룰 수 밖에 없다. 대학원의 어두운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의 문제, 즉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을 함께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다 복잡하고 애매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래된 관행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세련되게 해체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고민은 구체화되어 일반 대중들과 함께 나눠져야 한다. ‘국민이 설계하는 대학 운동’에 다양하고 낯선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68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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