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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윤] 야구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지역 차별'
게시물ID : humorbest_2882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丹香
추천 : 32
조회수 : 3622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0/07/21 18:40:32
원본글 작성시간 : 2010/07/21 12:11:11

http://news.nate.com/view/20100720n04597?mid=s1000

 “스포츠는 세상을 바꾸고 영감을 불어넣으며 사람들을 통합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 ‘인빅터스’에서 넬슨 만델라를 연기한 모건 프리먼이 한 말이다. 이 영화는 1995년 제3회 럭비 월드컵을 배경으로 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은 장기간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로 말미암아 세계 각국의 경제제재조치를 비롯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결국, 정치범으로 27년간 복역한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1994년 완전히 철폐됐다.

남아공 럭비 대표팀인 ‘스프링복스’가 국제대회에 복귀한 것은 1992년이었다. 그리고 자국에서 개최된 제3회 럭비 월드컵에서 기적과 같은 승리를 거두면서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 우승은 만델라 대통령이 “인종융합의 승리다.”라고 외친 것처럼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의 상징’이 됐다. 흑인인 만델라 대통령이 백인 주장에게 우승컵을 건네는 장면은 빨강, 초록, 노랑, 파랑, 검정, 흰색 등 총천연색 남아공 국기처럼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를 나타냈다.

이렇게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현실에는 ‘THE END’가 없다. 현실은 믿기 어려운 반전을 이야기했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 스프링복스의 감독은 인종차별적인 발언한 것이 발각되어서 사임했으며, 백인 선수들이 흑인 선수와 같은 라커룸을 사용하기를 거부한 것이 알려지면서, 스프링복스는 ‘인종융합’이 아닌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스프링복스는 강한 전력을 갖추고도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4년 2월 취임한 제이크 화이트 감독은 “다음 월드컵에서는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서 우승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진정한 ‘인종융합’을 이루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주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백인의 전유물인 럭비에서 인종융합은 가당치도 않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 번 있은 일은 다시 일어난다.’라는 말처럼 또 기적이 찾아왔다.

2007년 제5회 럭비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프링복스는 영국을 15:6으로 꺾고 12년 만에 왕좌에 복귀한 것이다. 존 스미트 주장은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남아공 4,500만 명의 국민이 하나가 되어서 응원해줬다.”라고 소감을 표명했다. 1995년 우승 당시 흑인 선수는 단 1명이었고, 2007년에는 2명이었다. 여전히 남아공에서 럭비는 ‘백인 스포츠’다. 이제 겨우 ‘인종융합의 무지개’를 향해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이야기 하나.

1986년 10월 22일 대구구장에서 삼성과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렸다. 광주에서 1승 1패를 기록한 양팀은 간판투수인 김시진(삼성)과 이상윤(해태)을 내세우면서 혈전을 예고했다. 1회 말 삼성이 김성래의 2점 홈런 등으로 3점을 선취했지만, 반격에 나선 해태는 2회 초 김준환의 솔로 홈런에 이어 차영화가 2점 홈런을 치면서 3:3 동점을 만들었다. 차영화는 해태에서 8시즌을 뛰면서 통산 2홈런에 불과할 정도로 홈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홈런도 3년 4개월 만에 본 손맛이었다.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동점을 이어가던 7회 초 해태는 1사 만루에서 서정환의 병살타성 2루 땅볼을 김성래가 2루에 악송구하면서 2득점. 이어서 김성한의 적시타로 점수 차이를 3점으로 벌렸다. 7회 말 삼성은 함학수, 이만수의 적시타로 2점을 따라갔지만, 계속된 2사 1, 3루에서 김성래가 범타로 물러난 것이 뼈아팠다. 해태가 1점의 리드를 끝까지 지키면서 6:5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홈팀 삼성의 역전패에 화가 난 관중 2천여 명은 해태 선수를 향해 100여 개의 소주병과 오물을 던지면서 프로야구 최악의 관중 난동은 시작됐다. 그것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은 난동 관중은 운동장 구내주차장에 정차하고 있던 해태 구단 버스를 향해 술병과 돌을 던졌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운전사가 피신하자 불을 질렀고, 버스는 전소했다. 1시간 넘게 계속된 난동 속에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관중 난동의 표면적인 이유는 시리즈 1차전에서 삼성 진동한이 해태 관중이 던진 빈병에 머리를 다친 바람에 역전패한 것에 대한 화풀이였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누구를 향한 보복일까? 해태 선수들이 진동한에게 빈병을 던진 것이 아니다. 어느 구단의 팬이라고 해도 욕을 먹을 행위를 한 어느 관중의 몰상식한 작태였을 뿐이다.

그것에 대한 무차별적인 보복 행위의 피해는 고스란히 해태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분노를 증폭시킬 뿐이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라는 파울 괴벨스의 말을 구태여 떠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간다. 이 난동에 대해 당시 언론은 “지역연고제를 기반으로 한 프로야구가 지역감정의 골을 더 깊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한국에서 지역감정은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반(反)호남 정서’를 가리킨다. 반호남 정서란, 호남에 살고 있거나 출신들에 대한 나쁜 생각이나 편견이다. 사실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개인적인 편견이나 생각에 머물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다. 행동으로 옮겨진 감정은 차별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호남차별은 1960년대 불평등한 경제개발로부터 시작됐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만들어진 현실’에서 “반호남주의는 호남 출신에 대해 거리감과 배제적 행위를 동반하면서 엘리트 충원과 경제 발전의 성과를 차별적으로 배분하고 소외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호남에 대한 경제적 불평등이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로 확대된 것이다. 게다가, 80년대 이후 정치적 지형까지 더해지면서 지역차별은 격화됐다.

20여 년 전부터 지역 차별이 거론됐지만,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이것은 특정지역에 대한 차별이 아닌 지역감정과 같은 개인적인 편견으로 취급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애향심의 발로인 지역주의가 왜 나쁘냐?’라는 주장조차 나온다. 또한, 위의 관중 난동과 마찬가지로 ‘호남이 대동단결하기 때문에 우리도 뭉친다.’라는 말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호남의 지역주의가 형성되기 이전에 호남차별의 지역주의가 먼저 만들어졌다.”라는 박 대표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야기 두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간곡하게 말씀하셔서 본적을 바꿨다.”

영남지역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모 야구인이 한 말이다. 야구와 본적이 어떤 연관성을 가진 것일까?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지만,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아버지가 전라도 A 시 출신이다. 나도 거기에서 태어나서 영남의 B 시에 어릴 때 이사를 왔다. 초중고를 B시에서 다녔고, 대학을 서울로 갔다가 다시 프로 선수로 B 시에서 13년을 보냈다. 결국, 프로구단은 내 생활이었으며, B 시는 내 야구인생 자체였다. 제2의 고향이니 하는 말이 아니라 나한테 B 시는 내 인생 자체다. 선수 시절 많은 팬이 환호해주었으며,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 주신다.”

“선수 시절 성적이 좋을 때는 상관이 없는데, 못할 때는 극히 일부 관중이 전라도 새끼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야유를 했다. 그것도 다 나를 좋아하니까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관중석에서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들으신 모양이다. 그런 말을 들은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 것 같나? 아버지가 그런 관중과 말싸움을 한 적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너는 이미 알 사람은 다 알지만, 계속 B 시에서 살 네 새끼까지 전라도 깽깽이라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느냐? 그 소리는 네 대에서 끝내자!’라고 하셔서 (본적을) 바꿨다.”



사실 모 야구인만이 아니라 호남에서 태어났지만, 본적을 서울 등으로 바꾼 이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본적을 바꾼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이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는 그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말씨가 좀 이상한데 고향이 시골인가 보죠?” “예… 호남입니다.” 이규백은 가슴이 덜컥하는 것을 느끼며 전라도를 피해 호남이라고 했다. “전라도로군요?” 여자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피우며 말했다. “잘 알았어요. 우리 사장님하고 상의해서 다시 연락하겠어요.” 이규백은 해 저문 추위 속을 걸으며 자신에게 심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일이 어긋날 바에 전라도라고 당당하게 말했어야 했다. ‘호남’이라고 말을 바꾸면서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것일까? (조정래의 ‘한강’ 중에서)

“나는 거짓말 안 항당께로. 나가 전라도 사람이지만.”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을 제작하던 어느 방송국 모 PD에게 홍어로 유명한 식당 주인이 한 말이다. 무슨 말일까? 모 PD 역시 갑작스러운 주인 할머니의 말에 당황해서 “할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되물었다.

“나… 전라도 사람이지만 거짓말은 안 하는디…. 나는 칠레 껀 칠레 꺼라고 허는디….”

할머니의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듣고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타지에 나와서 ‘전라도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편견에 시달린 결과라는 사실을.

올 시즌 심판의 흔들리는 스트라이크 존과 함께 삼겹살, 김치와 함께 있을 ‘홍어’가 야구게시판의 단골메뉴가 되고 있다. 특정 구단과 그 팬을 향해 홍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말 홍어라는 표현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 일본인 선수는 한국에 온 소감으로 “마늘 냄새가 나는 것 같다.”라고 한 것 때문에, 지금도 ‘까’이고 있다. 한국 음식에 마늘이 들어간 것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식자재로 한국의 첫인상을 말한 것이다. 별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차별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 지금도 그를 비난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홍어도 그렇다. 홍어를 처음 접한 이들은 그 꾸리한 냄새만 맡아도 코를 싸쥐고 도망칠 것이다. ‘이런 걸 어떻게 사람이 먹느냐!’라면서.

꾸리한 냄새가 나는 못 먹을 것을 즐기는 이들은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 게다가, 홍어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에, 다름을 통해 틀림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KIA로 돌아온 김상사’처럼 피가 거꾸로 솟을 ‘조센진’이라는 말도 ‘조선인’을 의미할 뿐이다. 단어 자체는 차별이 없지만, 그 말에는 차별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홍어 역시 마찬가지다.

야구에서만큼은 인종 차별을 비롯한 지역 차별을 조장하는 말이 더는 난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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