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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게시물ID : panic_28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면
추천 : 18
조회수 : 20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8/09/02 23:38:48
그는 최면술에 관한한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그의 최면에 걸렸다 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최면술은 정말이지 강력했다.

문제는 그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전 최면술을 믿지 않아요. 그건 다 짜고치는 고스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저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왜냐하면 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최면에 걸린적이 없거든요.

수십번도 넘게 시도해 봤지만 최면술사라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에다가 비열한 사기꾼이었어요. 최면술이 실패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안타깝게도 최면이 잘 걸리지 않는 체질

이라고. 그건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요. 물론 당신도 곧

그렇게 말하겠죠."




그녀는 젊고, 아름답고, 영리하고, 자신만만했다.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문자 그대로 대박이 났으며, 연이어

쇄도하는 CF제의도 그녀를 인기스타로 만드는데 단단히 한 몫 했다.

그녀는 생방송 도중에도 거침없이 독설을 내뱉기로 유명한 여자였고,

그녀로 인해 방송 중 무안을 당한 저명인사들도 많았다.

사회 일각에선 그녀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그녀를 좋아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제가 김세빈씨의 선입견을 없애드리겠습니다."

"흥, 모두 시작은 그렇게 하더군요."




그는 화를 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쉼없이 나불대는 천박한 계집애의 주둥이에 독사를 집어넣고

싶을만큼 화가 치민다고 해서 카메라를 앞에두고 그런짓을 할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는 지포라이터를 꺼내들었다.




"라이터의 불빛에 집중하시고, 편안한 상태에서 제가 10부터 1까지

거꾸로 세고나면 당신은 잠이 듭니다. 열, 아홉..."




사실 까다로운 절차는 그에게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지만 만약

사람들이 그가 단지 눈을 마주치는 정도로 최면을 걸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누구도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로썬 최면을 걸기 전엔 항상

이렇게 불필요한 과정을 거치곤 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최면에 걸렸습니다. 제 말이 들리나요? 들리면 대답하세요."

"네."

"아침식사는 잘 하셨나요?"

"아뇨..."

"왜죠?"

"왜냐하면 남자친구가 점심먹기 전까지 절 괴롭혔으니까요. 그는 

정말 야수같은 남자거든요. 밤새 다섯번도 넘게 하고도..."




그자리에 있던 방청객들과 스텝, PD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다행히 녹화방송이라 많은 부분이 편집

되겠지만 아마도 오늘 저녁 쯤이면 그녀에 관한 루머가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리라 그는 생각했다.

그는 몇가지 간단한 질문을 더 하려했지만 그녀의 매니저가 거칠게

항의를 했기 때문에 바로 그녀의 최면을 풀어줘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녀는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당황스러워 했지만 이미 그녀의 가식을 파악한 사람들은

비릿한 웃음으로 그녀를 보며 수근거렸다.




그는 최면술로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실현시켰다.

거액의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인적도 있으며,

마음에 드는 여자를 현혹해 하룻밤 잠자리 상대로 만들기도 했다.

언젠가 한번은 청순한 미모로 인기 절정을 달리던 모 여배우를

모텔로 유인해 그녀와의 정사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유포시킨적도 있었다.




"택배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앞으로 의문의 택배가 도착했다.




-한번만 더 그 더러운 최면술로 유치한 짓거리를 한다면 전 당신의

두 눈을 뽑고, 혀를 자르고, 가죽을 벗겨버리겠습니다. 이건 경고

입니다. 그러나 이순간 이후로 최면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전 당신

에게 아무짓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두번째 경

고는 없습니다. 제 경고를 장난이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상자안에

제 경고를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분의 눈알과 혓바닥이 들어있습니

다.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정말로 택배로 온 상자안엔 눈알과 혓바닥이 들어있었다.

그는 소름이 끼칠만큼 두근거렸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던 것이다. 

누구일까?

그가 최면술로 범죄를 저지른 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증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건가? 재밌군... 후후."




그는 그동안 눈여겨 봐왔던 이종격투기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동중이던 모든 사람들에게 집단으로 최면을 걸었다.

최면에 걸린 사람들은 이제 목숨을 걸고 그를 지킬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그는 이웃집 가족에게도 같은 최면을 걸었으며,

인근 파출소에 들어가 경찰들에게도 최면을 걸었다.

그는 길에서 만난 여고생에게 최면을 걸어 그날 밤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한통의 편지가 그의 앞으로 도착했다.




-오늘밤 12시에 당신을 죽이러 가겠습니다.-




짤막한 내용.




"웃기는 자식이군..."




놈이 제 아무리 살인을 잘한다고 해도 수십명의 이종격투기 

수련생들과 경찰관을 뚫고 그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를 지키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그의 앞에 선다고 해도

단지 눈을 마주치는 간단한 절차만으로도 녀석은 말 잘듣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는 결코 그 누구도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P.M 11시 50분.




이제 10분 후면 약속한 12시가 된다.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곧 비명소리가 들릴 것이다. 

누구의 비명소리가 됐든지 간에 말이다. 




P.M 11시 55분.




아직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는 작은 단도를 휘휘 돌리며 여유롭게 자객을 기다렸다.

이 많은 경비병력 앞에서 어쩌면 녀석이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




P.M 11시 59분.




그는 초침의 움직임을 낱낱히 살피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를 호위하듯 에워싼 사람들 중 한명이 느닷없이

몸을 돌려 그의 심장에 칼을 꼿았다.

극심한 고통이 손끝, 발끝으로 퍼져갔다.




A.M 12시 5분.




그는 발작적으로 눈을 떴다.

시계 바늘의 초침은 12시 5분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꿈을 꾼 것이다.

결국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를 호위하는 사람들도 모두 잠잠했다.

그의 얼굴에 '그럼 그렇지'라는 듯한 미소가 어렸다.




푸욱.




날카로운 것이 그의 양쪽눈을 차례로 찔러 파냈다.

그의 혓바닥이 잘려져 나갈때도 그는 아무런 방어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 날카로운 것은 그의 피부를 가르고 천천히, 하지만 집요하게

그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시계에서 12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그의 시계는 5분 정도 빨랐다.




에필로그




그는 어렸을 때,

메두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다.

머리카락이 뱀으로 이루어진 그 끔찍한 괴물을 죽이기 위해

수많은 용사들이 길을 떠났지만 그들은 모두 메두사의 눈을

보는 순간 돌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에서 처럼 결국 메두사는 죽는다.

어느 걸출한 용사가 거울로 메두사의 얼굴을 비추고,

자신의 눈을 본 메두사는 돌이되어 버린다는 결말이었다.

정말 시시한 이야기.




"12시가 되면은 제가 죽이러 온다고 했죠?"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가죽을 벗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 비극은 언젠가는 찾아올 예정된 것이었다.

거울을 보고 돌이 되어버린 메두사 처럼,

아주 우연히 거울을 보던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버렸던 것이다.

스스로를 굉장히 정의로운 자라고, 

그는 그 정의로운 자신의 손에 살해당하는 중이었다.

자살도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살해를 당한다라.

그건 좀...

뭐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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