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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전투기의 역사(10) - 2차세계대전 미공군 전투기
게시물ID : military_288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강화골드헐
추천 : 11
조회수 : 464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8/17 16:50:43
 
전투기의 역사 9편 보러가기(새창)
 
이 글의 내용은 플래닛미디어의 "전투기의 이해"와 DK의 "FLIGHT"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래 2차세계대전 당시에 미공군이라는 것은 없었고 대신 육군 항공대라는 것이 있었지만 편의상 미공군이라고 하겠습니다.
 
 서유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독일과 연합군의 공중전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면서 점차 연합군 측으로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전쟁 당시 미국은 항공기의 성능 면에서 볼 때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방공에 초점을 맞춰 강력한 전투기를 통한
적 항공력의 제압보다는 적의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폭격기 전력 확충에 치중하고 이를 보조하기 위한 중ㆍ저고도 전투기들로 P-40, P-39와
같은 기종만 육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서도 독일 전투기보다 더 나은 성능의 전투기를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1935년까지 국제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미국이 1939년 9월에 군수품 수출 금지 조항을 폐지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이 곤경에 처하자 입법을 추진한 전시 무기대여법(Lend_Lease Act)이 1941년 3월에 통과되면서 미국의 산업체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늦게나마 새로운 전투기 개발에 매진했으며, 그 결과 전선에서 맹활약하게 될 전투기들이 하나씩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P-38, P-47, P-51 전투기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1943년부터 순서대로 영국에 배치되었습니다. 이 전투기들은 미국의 B-17,
B-24 등의 4발 폭격기들을 호위하며 독일 공군의 숨통을 죄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동부 전선에서 소련과의 운명을 건 전투에 거의 모든 전력을
쏟아붇고 있었습니다. 1941년~1943년 영국 공군과의 전투만으로도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던 독일 공군은 이제 미군의 B-17과 B-24 같은 4발
폭격기들에 본격적으로 대응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영국 전투기의 행동반경은 겨우 프랑스 정도까지가 한계였습니다. 반면, 새로 배치된 P-38과 P-47은 독일 본토까지는 어렵지만 벨기에와
네덜란드까지 폭격기들을 호위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독일 공군은 4발 중폭격기와 더불어 이들 연합군 호위전투기까지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P-38, P-47, P-51 등의 호위전투기들은 독일 전투기 사냥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양측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Lockheed P-38 Lightning
 
 
엔진: 1,725마력 Allison V-1710-111/113 V-12 피스톤 엔진 2개
날개 길이: 15.85m
길이: 11.53m
최고 속도: 713km/h
무장: Hispano M2 20mm 기관포 1정 + M2 Browning 기관총 4정 + M10 3연장 로켓포 4정 혹은 907kg 폭탄 2개 혹은 227kg 폭탄 4개
        혹은 227kg 폭탄 6개 등
행동 반경: 2,100km
 
 P-38 라이트닝(Lightning)은 속도가 빠르고, 조종성도 좋은 쌍발전투기로 미군의 제공권 확보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40년에서 1945년까지
총 9,923대가 생산되어 미국이 참가한 모든 전선에서 사진정찰기, 전투폭격기, 야간전투기로서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P-38은 독일군
조종사들에게 "쌍둥이 악마"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으며, 미 전투기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일본기를 격추한 기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P-38은 진주만 공격을 계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탑승한 수송기를 격추시킨 역사적인 기종이기도 합니다.
 
Republic P-47 Thunderbolt
 
 
엔진: 2,535마력 Pratt & Whitney R-2800-59 twin-row 성형 엔진
날개 길이: 12.42m
길이: 11.00m
최고 속도: 697km/h
무장: 12.7mm Browning 기관총 8정 + 1,134kg 폭탄 혹은 127mm 로켓 10개
행동 반경: 2,900km
 
 전쟁 마지막 2년 동안 연합군 전투기로서 맹활약을 한 P-47 선더볼트는 투박한 외형 때문에 "저그(Jug)", 즉 술단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별명과는 다르게 성능은 뛰어나서 1943년부터 서부 전선에 배치된 이래로 전투기 소탕작전부터 폭격기 호위 임무, 지상공격 임무까지
다재다능함을 선보인 기체였습니다. P-47은 프랫 & 휘트니(Pratt & Whitney)사의 R-2800 더블 와스프(Double Wasp) 2,000마력 엔진을 장착했고,
비록 상승력은 떨어졌지만 강력한 엔진을 바탕으로 어떤 전투기로 따라올 수 없는 급강하 성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2.7mm Cal.50
기관총 8정이라는 강력한 화력은 적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총 1만 5,683대가 제작된 P-47 시리즈는 종전 때까지 살아남아 총 15개국에서
운용되었습니다.
 
 P-38 라이트닝과 P-47 선더볼트는 분명히 훌륭한 전투기였지만, 독일 본토까지 진출하는 폭격기를 호위하기에는 항속거리가 부족했습니다.
이를 해결한 기종이 바로 P-51 무스탕(Mustang) 전투기였습니다.
 
North American P-51D Mustang
 
 
엔진: 1,720마력 Packard V-1650-7 supercharged V-12 수랭식 엔진
날개 길이: 11.28m
길이: 9.83m
최고 속도: 784km/h
무장: 12.7mm M2 Browning 기관총 6정 + 907kg 폭탄 2개 혹은 127mm HVAR 로켓 6개 혹은 10개
행동 반경: 2,755km
 
 유명한 명성과 달리 앨리슨(Allison) V-1710 엔진을 장착한 초기 'A'형은 중ㆍ저고도에서는 성능이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고고도에서는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저고도 사진 정찰기나 급강하 폭격기로만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대서양을 건너온 무스탕에 롤스로이스 멀린(Merlin) 61 엔진을 탑재하자, 무스탕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미국도
패커드(Packard)사가 면허 생산한 V-6150-3 엔진을 탑재하여 P-51B형을 탄생시켰습니다. 엔진을 교체한 무스탕은 9,145m 상공에서 708km/h의
속도로 날고, 6,100m 상공까지 단 5분 10초 만에 도달하는 등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6,100m 고도에서 628km/h의 속도로
날고 6,100m 고도까지 9분 만에 도달하던 P-51A형에 비하면 획기적인 발전이었습니다.
 놀라운 성능을 확인한 미군은 P-51B를 1943년 여름부터 즉시 대량생산하기 시작하여, 잉글우드(Englewood) 공장에서 P-51B형을 1,988대,
댈러스(Dallas) 공장에서 P-51C형을 1,750대 생산했습니다. 영국은 약 1,000대 정도의 무스탕을 공여받아 무스탕 Mk.III로 명명했습니다.
 P-51B형의 초기 생산분은 1943년 12월 1일부터 영국에 주둔 중인 미 8공군에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1944년 봄에는 가장 만이 양산된 P-51D형이
등장했습니다. 영국 공군에서 무스탕 Mk.III로 행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D형에는 조종사의 시야 개선을 위한 물방울형 캐노피를 장착했습니다.
D형은 총 7,956대가 생산되었습니다. 최종 생산형인 H형은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을 상대로 한 마지막 작전에 사용되었습니다. 7,600m 고도에서
최대 속도 784km/h를 낼 수 있었던 무스탕은 대전 중 모든 전선에서 막대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무스탕은 한국 공군을 포함한 약 20개국 공군에서
사용되었으며, 제트 전투기로 대체될 때까지 총 1만 5,686대가 생산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 전투기와 맞서 싸운 미 육군 항공대 전투기는 벨(Bell) P-39나 커티스 P-40이었습니다. 이 두 기종은 일본의 A6M 제로와
Ki-43 하야부사에 비해 성능과 전술적인 면에서 열세했습니다. 이는 미 해군 항공대의 F2A 버팔로(Buffalo)와 F4F 와일드캣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Bell P-39 Airacobra
 
 
엔진: 1,200마력 Allison V-1710-85 V-12 수랭식 엔진
날개 길이: 10.4m
길이: 9.2m
최고 속도: 605km/h
무장: 37mm M4 기관포 1정 + 12.7mm M2 Browning 기관총 2정 + 7.62mm M1919 Browning 기관총 4정
행동 반경: 840km
 
 벨 P-39 에어라코브라(Airacobra)는 1937년 등장 당시부터 성능이 그다지 우수하지 못했습니다. P-39의 주력 무장은 37mm 기관포였는데, 기수
부분에 장착되어 프로펠러의 허브 부분을 통해 발사되는 구조였습니다. 이 구조는 비행기 구조 전체에 영향을 주어 엔진이 조종석 뒤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프로펠러 구동에 긴 축이 필요했습니다. P-39는 신형 전투기들이 개발될 때까지 P-40과 함께 유럽 및 태평양 전선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생산된 파생형들은 모두 소련에 제공되었는데, 총 9,558대의 P-39 중에서 4,773대가 소련에서 사용되었습니다.
 P-39 초기형들과 더불어 사용되었던 세베르스크(Seversky) P-35 전투기도 구형 기종으로 과도기적인 기체였습니다. 177대가 생산된 P-35는
40대가 스웨덴에 판매되고, 60대는 필리핀에 판매되어 1941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대량 수출된 커티스 P-36은 형이 1938년에, C형이 1939년에 미군에 실전배치되었습니다.
 
Curtiss P-36 Hawk
 
 
엔진: 1,050마력 Pratt & Whitney R-1830-17 Twin Wasp 공랭식 엔진
날개 길이: 11.4m
길이: 8.7m
최고 속도: 500km/h
무장: 7.62mm M1919 Browning 기관총 1정 + 12.7mm M2 Browning 기관총 1정 + 경량 폭탄
행동 반경: 1,385km
 
 이 기종은 1934년에 설계되어 미 육군 항공대의 첫 단엽기로 탄생했지만, 개전 당시까지 별다른 활약은 없었습니다. P-35를 바탕으로 설계한
P-43 랜서(Lancer)가 곧이어 등장했지만, 전투기로서 성능이 여전히 부족하여 1942년에 사진 정찰기로 전용되었습니다.
 
 대전 초반 2년 동안 가장 중요한 미국 전투기는 커티스 P-40 워호크(Warhawk)였습니다.
 
Curtiss P-40 Warhawk
 
 
엔진: 1,150마력 Allison V-1710-39 V12 수랭식 엔진
날개 길이: 11.38m
길이: 9.66m
최고 속도: 580km/h
무장: 12.7mm M2 Browning 기관총 6정 + 907kg 폭탄
행동 반경: 1,100km
 
 일본과의 전쟁에서 P-40은 당장 대량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기종이었기 때문에 신형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대량생산되었고, P-38, P-47, P-51이
등장한 이후에도 연합국의 요구에 의해 1944년까지 총 1만 3,753대가 생산되었습니다. P-40은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 전투기들에게 무수히 파괴되어
망신을 당하기도 했지만, 중국에서는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에 소속되어 수많은 일본 전투기들을 격추하는 활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P-40은 전쟁 전 기간 동안 유럽, 아프리카, 태평양, 소련 등 모든 전선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2차세계대전의 미 해군 항공대 전투기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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