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상언 기자] 국군포로 세 명의 북한 내 가족 9명이 중국으로 탈북한 뒤 한국행을 추진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압송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특히 탈북한 뒤 중국 선양(瀋陽) 소재 한국 총영사관 직원이 주선한 민박집에 머물다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국군포로 가족 보호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납북자 가족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해 7~8월 세 가족 9명의 국군포로 가족이 중국으로의 탈출에 성공했다. 세 국군포로의 부인.아들.딸.며느리.손자.손녀들로 20~70대의 북한 주민이었다. 이들 중 두 가족의 국군포로 가장은 이미 숨졌고, 한 가족의 가장은 지난해 탈북해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북.중 국경지역에서 중국 선양까지 이동해 20~50일가량 숨어지내다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인척들의 도움으로 지난해 10월 11일 선양 총영사관 측에 인도됐다. 두 명의 총영사관 직원은 이들을 민박집에 머물도록 했고, 한국에서 온 가족들은 "서울에서 보자"고 인사를 한 뒤 귀국했다.
그러나 다음날 중국 공안이 이 하숙집에 출동해 9명 모두를 체포했다. 민박집 주인이 이들이 탈북자라는 점을 알아채고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선양 공안국과 단둥(丹東) 공안국에서 조사를 받은 뒤 지난해 10월 말 북한으로 압송됐다.
◆가족들 "분통"=수개월 동안 이들의 탈북을 추진했던 한국의 가족과 납북자 가족 단체는 선양 총영사관을 성토했다. 영사관 직원들이 무성의하게 대처해 공안에 체포되고 압송까지 당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한 납북자 가족 단체 관계자는 "통상 탈북자는 영사관 안에 머물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국군포로 가족들을 인계받은 총영사관 직원은 신변보호가 보장되지 않는 중국인 민박집에 투숙시켰다"며 "지금까지 탈북자가 영사관이나 대사관의 보호를 받게 된 이후에 공안에 체포돼 북으로 압송된 경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중국 공안에 이들이 10여 일 동안 붙잡혀 있는 동안 정부가 조치를 서두르지 않아 돌이킬 수 없게 됐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선양 총영사관은 16일 귀국한 납북 어부 최욱일씨가 탈북해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하자 이에 무성의하게 응대한 것으로 드러나 최근 직원 두 명이 징계를 받고 총영사관 자체가 기관 경고를 받은 곳이다.
◆외교부 "유감"=외교부는 17일 보도자료에서 "이들의 귀국이 실현되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관련국 정부와의 협조 하에 앞으로 국군포로와 가족의 보다 안전한 귀국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외교부는 그러나 "해당자들의 신변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상세히 밝힐 수 없다"며 자세한 사건 경위를 밝히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국군포로나 납북자 본인이 아닌 그 가족의 경우 중국 당국에 의해 원칙적으로 출입국 관련법을 위반한 탈북자 취급을 받기 때문에 총영사관 측이 나서서 그들을 공관 내부로 진입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