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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비오는 날
게시물ID : soju_28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27
조회수 : 227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1/07/03 17:39:12
나는 때때로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슬픔에 빠지곤 한다. 태풍이와서 하늘에 구멍이 뚫린듯 쏟아지는 비도 아니고, 부슬부슬 예쁘게 내리는 비도 아니고, 빗소리는 빗소리대로 적당히 툭툭거리면서 우산을 때리는 날. 나는 슬프다. 그 슬픔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그 슬픔을 어떻게 끝내야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럴때는 그냥 내내 슬퍼하고만다. 눈물이 흐른다. 왜 흐르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냥 슬프다. 실컷울다가 빗소리가 잦아들면 눈물도 줄어든다. 그러다 꺽꺽거리다가는 코를 한번 흥 풀고 7살난 꼬마애처럼 눈물을 쓱 훔쳐닦고 냉장고문을 연다. 먹을 것은 없지만 물이 보이니 일단 한잔 마시기로 한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슬슬 배가 고프다. 뭘 먹을까? 비도오고 눈물도 쏙 뺐으니 김치를 넣은 매운 라면이 땡긴다. 물을 들여놓는다. 촛점없는 눈동자로 냄비안에 물을 보고있자니 내가 우스워진다. 아까 왜 울었지. 물이 요동친다. 펄펄펄펄. 라면 봉지를 뜯는다. 면을 넣고, 나머지 가루도 툭툭 털어넣고. 잘 뜯어지지 않는 스프와 싸움하다 가위로 댕강 잘라 탈탈 털어넣는다. 순식간에 거품이 일며 투명한 물이 벌겋게 물들었다. 매운 냄새가 올라온다. 코끝이 씰룩거린다. 입안에 침이 돈다. 김치를 꺼낸다. 젓가락도 필요하고 밥말아먹을 숟가락도 필요하다. 찬밥도 미리 퍼놔야한다. 냄비받침대도 깔아야하고. 갑자기 분주해진다. 이렇게 바쁠 수가 없다. 라면이 다 익은 것 같다. 불을 끄고 대충 행주로 냄비 양끝을 부여잡고 받침대위에 올린다. 무슨 의식이라도 하듯 식탁의자를 바짝 당겨앉아 라면을 한젓가락 뜬다. 맛있다. 기분이 좋아진다. 국물까지 다 마신다. 찬밥과 뜨거운라면 국물은 장동건 고소영 커플의 조합과는 비교할바가 아니다. 기름 뜬 빈 김치그릇을 바라본다. 괜히 웃음이 나온다. 배가 부르다. 한잠 자고싶다. 자고 일어나면, 이 비도 그쳐있겠지. 생각없이 눈을 감는다.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극복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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