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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카드섹션 후기 <7> 독일전. 꿈은 이루어진다
게시물ID : soccer_267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reju
추천 : 1
조회수 : 237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5/18 02:13:36
출처 : 파투 나로


2002월드컵 4강 독일전 카드섹션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2006년 DC인사이드 국내축구 겔러리에 올렸던 글을 수정해 다시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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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카드섹션 이야기.
꿈은 이루어진다 - 4강 독일전.


4강까지 올라오고 나니까 카드섹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했어.
언론쪽의 인터뷰 요청도 끝도 없이 쇄도했지.
특히 연합뉴스 기자는 거의 매일 전화를 하는데 이분 근성이 대단하더라고. 계속 전화야.

해줄 말도 없는데 전화가 자꾸 오니까 사무국에 더이상 전화번호 알려주지
말라고 요청하고 작업을 시작했어.

신문에 자꾸 '극비리에 카드섹션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뜨네...--;

사실 카드섹션은 미리 공개가 되면 효과가 떨어지니까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차피 정해진게 없어서 알려줄 수도 없는건데 분위기가 영 적응이 안되더라.

게다가 '이번에는 더욱 강력한 카드섹션 문구를 구상중이다'라는
기사가 자꾸 나오고 주변사람들도 '야 이번엔 뭐냐? 쎄게 나갈꺼라며?'
라고 묻는데 뭐라고 할말이 없더라고..

그래서 우리끼리 얘기했지.

'야 이거 감당 안된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맞춰줘.
차라리 이번엔 감성에 호소하는 부드러운 스타일로 가자'

범상치 않은 주변 분위기에 대한 약간의 반골기질도 있었고, 
뭐 주유소도 아닌데 자꾸 강한걸 찾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

경기전날.
보통은 하루전날 작업을 하는데 이날 비가 왔어.
카드섹션을 설치해놨다가는 다 젖어서 못쓰겠더라고.
한솔제지 측에 혹시 당일에도 비가 올지 모르니까 
젖지 않게 코팅이 가능하겠냐고 물어봤더니 해주겠대.

이사람들이 참 고마운게 늘 우리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양 만큼을 
맞춰 보내줬어. 회사쪽에는 별 이득이 없었는데도 말이지.
그래서 나중에 인터뷰할때 한솔얘기 꼭 해주고 그랬지. 
근데 정작 월드컵이 끝나고 수원 카드섹션 할때는 돈을 내고 사겠다는데도
단칼에 거절해서 좀 섭섭하기도 했어.

암튼 카드는 경기 당일에 설치하더라도 경기장에 미리가서 
한번 둘러보고 오는게 났겠다 싶어 몇몇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엘 갔어.

비도 추적추적 오고해서 경기장 입장이 가능한지
알아보러 한사람이 들어간 사이에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무슨 퀴즈쇼를 하더라구.

'자 첫경기 카드섹션은 Win 3:0이었죠. 포르투갈전은 대한민국, 
이탈리아전은 AGAIN 1966이었습니다. 그럼 스페인전 카드섹션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답! 프라이드 오브 아시아요!'

아놔.....
이젠 별걸 다하네.

경기장을 살펴보고 다음날 아침 일찍 경기장에 가서 준비해야했기 때문에
근처 모텔에 방을 잡고 다음날 카드섹션을 지휘할 사람 대여섯명이 같이 묵게 됐지.

밤 12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뭘로 해야할지 정하질 못했어.
몇가지 아이디어는 나왔는데 딱 이거다 싶은게 없었지.

가끔 애들한테서 전화가 오는데 
'야 이번에 카드섹션 독일 나치 까는걸로 한다며? 지금 인터넷에서 욕 무지하게 올라온다'
'차범근 얘기로 카드섹션 한다던데 진짜냐?'
'625를 소재로 할꺼라며?(경기날이 6월 25일이었음--;)'

징하다 징해...

밤 2시가 됐는데도 여전히 뭘로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어.
다들 지쳐서 해롱대고 있는데 TV에서 월드컵 얘기가 나오더라구.
이재후, 신영일 아나운서가 나오는 월드컵 프로였는데 여기서도 카드섹션 얘기를 하더라.

"네 여러분 붉은악마가 이번엔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강력한 카드섹션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아~ 뭘까요 기대되는데요. 그렇죠?"

여기까지보고 두손두발 다들었다..
우린 뭘할지 정하지도 못하고 밤새 찌질대는 중인데..ㅎㅎ

암튼 회의는 계속됐고 
다른 담당자 애의 의견은 Dreams come true를 쓰자는 거였어.
나는 반대의견이었지. 좌석에 그 글자를 다 썼다간 무슨 얘긴지 알아보기 힘들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얘가 다시 머리를 쥐어 짜낸게 꿈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꿈과 은 사이에 우승을 상징하는 별을 넣는 거였지.
내가 생각해낸 문구는 아까 얘기했던 감성에 호소하는 스타일의 문구였는데
최종적으로 두개를 놓고 뭘로할지 결정해야했어.

나는 내가 생각한 문구가 더 났다고 생각했고 
다른 애는 또 자기가 생각한 문구가 좋다고 생각해서 결론이 안났지.

직책상 먼저 카드섹션을 담당한 애가 담당자였고 나는 부담당자였는데
자꾸 내가 우기면 나이빨로 밀어붙이는 꼴이 될것 같았어. 
내가 몇살 더 많았고 오래 알던 사이라 걔가 직책으로 밀어붙이기가 좀 그랬거든..^^
그래서 거기서 정리해야했지.

꿈은 이루어진다로 가자.

아마 내가 고집을 피웠으면 내껄로 가게됐을 가능성도 컸고 
그랬으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없는거였지..ㅋㅋ
내가 밀던 문구가 뭔지는 안가르쳐줄란다. 사실 그때는 맘에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별로더라고.
아마 그걸로 했었으면 5천만의 손발이 오그라들었을지도 몰라. ㅎㅎ

암튼 이제 도면을 그려야 하는데
윗쪽 '꿈은'은 그애가. 밑 쪽 '이루어진다'는 내가 그리기로하고 작업에 들어갔어.

근데..
너무 졸린거야.
지치기도 지치고 새벽이 깊어가니 힘들더라고.
그래서 '나 두시간만 잘테니까 그리고 있다가 깨워줘라'
이러고 일을 떠넘겨 버리고 잤는데..


일어나니까 아침 7시더라고.
이런. 8시 반까지 경기장 가야되는데 도면은 그려놨나?
허걱 백지잖아!!

야 이 미친놈아 이게 왜 백지야. 빨리 일어나!!

다들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지.
다들 피곤했었을텐데 혼자 자겠다고 누운 내가 죽일놈이지..흐흐..

도면을 그리자고 부산을 떨고 있는데 찾아보니까 지우개가 없더라고.
이런.. 지우개 없으면 어떻게 그려. 누구 나가서 지우개 좀 사와라.
한넘이 튀어나갔어.

도면을 그리긴 그리는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까 글자체도 개판이고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글자 크기가 다 틀려...--;
되는대로 막그렸거든 급해서.
틀린데는 지워가며 다시 그려야 하는데 지우개가 없으니까 이건 뭐....

나중에 지우개 구해온 애가 뛰어들어왔는데
아침이라 문방구 문이 닫혀있어서 아무데나 문닫힌 가게들을 막 두둘겨서 
지우개 달라고 무조건 졸랐대. 
카드섹션하는데 지우개가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아 쪽팔려. 같이 안간게 다행이지 ㅋㅋ)

그 집 주인은 대체 아침에 지우개 달라고 문 두들겨대는 얘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지우개도 책상 서랍에 집주인이 쓰던거 얻어왔나보더라고.
그 상황을 상상해보니 대략 안습...--;

암튼 그렇게 그려서 경기장으로 갔어.

경기 당일 설치이고 15000석에 달하는 최대규모의 카드섹션이다보니 사람이 많이 필요했어.
보통은 50~150명정도가 카드섹션 설치에 동원됐는데 이번엔 서울 지부에 400명이나 투입시켜줬더라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도면을 섹터별로 찢어서 나눠줬어.

뭐 도면이 개판이다보니까 참 보는 우리도 민망했는데 
거기서 카드섹션 설치를 돕던 한 여자분이 와서.
'저기요.. 이거 글자랑 별모양이 왜이래요..'
결국 그분이 도안도 고쳐주고 그랬어. 아마 미대를 다녔나 그랬었나봐.ㅠㅠ

암튼 동원된 사람이 많아서 설치는 금방 끝났어.

관중들 입장이 시작되고 우리는 1층 2층을 오가면서 자리에 앉은 관중들에게
메가폰으로 카드섹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 신호를 하면 꼭 들어달라고 부탁하며 돌아다녔어.
그런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아 이거 뭔지 다 아니까 걱정말고 다른일 하세요'
헐.. 많이 알려져서 좋은것도 있구나.

자 이제 경기시작!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카드섹션이었으니까 우린 홀가분했어.
이겨서 일본가면 설마 거기서까지 카드섹션 하겠냐?
진다는 생각도 안들고 우린 그냥 즐기면 그만이었지.

하지만 경기는 0:1 패배.
아무래도 앞의 두경기를 모두 연장까지 치르다 보니까 선수들이 많이 지쳤던 것 같아.
경기는 끝나고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지.

그런데 그 순간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는거야.
몇분이나 계속되던 기립박수..
4강까지 올라올 때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기립박수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지.
뭐야.. 대구가서 이거 또 해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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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는 독일전 이후 아마 수십만번은 쓰이지 않았을까 싶을만큼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꿈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문구였고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죠.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이 카드섹션과 관련해 이 사진을 보았을 때 가장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이 사진을 봤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네요.

http://www.fntoday.co.kr/bbs/download.php?table=bbs_223&idxno=26749&file_extension=jpg&filename=naver_com_20110322_150805.jpg

다음은 마지막 카드섹션 터키전의 CU@K리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정상 2~3일 후에 올릴 수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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