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2004년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결혼한 와이프와 2004년 봄부터 사귀다가 가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제가 2004년 여름 끝자락에 실제로 경험한 일이며, 이 일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훗날 와이프가 얘기해 주었습니다.
저와 와이프는 같은 회사 입사 동기로 만났으며, 신입사원 연수때 같은 조에 속하면서 서로 친해져 연수가 끝날때쯤 사귀게 되었습니다. 발령받은 부서가 다르다보니 일하는 곳도 물리적으로 조금 떨어진 곳이었으며, 데이트하는 시간도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희 집은 종로 근처, 와이프의 집은 용인이라 사실 주중 데이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정도였으나 사귄지 얼마 안되었을때라 열심히 만났었지요.
주로 만나게 되면 그 친구 일하는 곳 근처에서 만나 제가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요, 솔직히 많이 피곤했었습니다. 왕복 80Km정도 되는 거리를 거의 매일 다녔으니까요.
사귄지 200일쯤 되었을 때 였습니다. 금요일이라 조금 늦게까지 만나다가 아마도 새벽 2시쯤 용인 집에 내려다주고 저는 집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항상 그러하듯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한남대교를 통과해 집으로 갔었는데요, 그날도 판교 IC에 다달았었을 때였습니다. 한번 연애를 하면 좀 심하게 불타오르는 성격인지라 거의 매일 만났었는데요,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굉장히 피곤하더라구요. 그래도 운전은 조심히 해야지 했는데
판교 IC에서 통행권을 뽑아든 다음부터의 기억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차안에 싸늘한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뒷통수가 있는, 소위 얘기하는 뒷골에 누가 고드름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도저히 무서워서 엄두가 안났지만 죽을 힘을 다해 룸미러를 힐끔 쳐다봤는데
뒷자석에 여자가 한분 앉아 계시더군요. 예의 하얀 소복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분이었습니다. 룸미러에서 눈을 떼야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분은 천천히 운전자석 좌석과 조주석 좌석에 한손씩 걸치시고는 천천히 상체를 제쪽으로 움직였습니다.
룸미러에서 눈을 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상반신 전체에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며 차가운 무언가가 뒷쪽에서 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검은 형체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나오더니 천천히 고개를 제쪽으로 돌렸습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충격과 함께 잠에서 깨어 보니 도로공사할 때 차량의 통행을 유도하기 위해 쌓아놓는 붉은색에 흰줄이 들어간, 물로 채워진 드럼통 같이 생긴 것 두개가 이미 본넷 위로 올라와 물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경부고속도로 한남대교쪽 도로는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으며, 도로의 일부를 임시로 막아두었었습니다. 제 차량이 운행 중 도로를 벗어나 한쪽 길가에 설치해 둔 그것을 들이 받은 것이지요. 저는 졸음 운전을 했던 겁니다. 판교에서 한남대교까지요.
그날의 사고로 한동안 자동차를 쓸수 없었기에 그 이유를 와이프에게 말해야 했으며 더 이상의 사고를 막겠다며, 이제 연애는 그만 하자고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궁금해 집니다. 제 꿈속에 나왔던 그 여자분은 저를 지켜주신게 아닌가 하구요. 그때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면 더 큰사고가 났을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