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다뎀벼] 젊은날의 죽음..... 규훈아...
게시물ID : humorbest_290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뎀벼
추천 : 46
조회수 : 1383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2/26 12:33:57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2/25 21:41:44
5년전의 어느날 이었습니다. 

다른 부서에 근무하지만 대학시절 같은과를 졸업하였던 
승국이 녀석이 저를 잠깐 보자고 하더군요. 
항상 눈웃음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얼굴인 승국이 녀석.
어쩐일인지 몹시 심각한 얼굴로 아니 약간은 황당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섞어서 저를 쳐다봅디다. 
의아한 나. 그리고 그에게서 힘없이 쏟아지는 말.

"규훈이가 암이란다. 오늘 얘기들었다.
저녁에 그녀석 보러 부산에 내려간다."

세상에.. 이제 나이 32먹은 녀석이. 
결혼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 
새 생명을 본지 100일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

그리고 2주일후에 그녀석은 죽었습니다. 간암으로...

우리는 85년도에 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에 같이 입학한 친구들입니다. 
같이 대학교를 다녔고, 
같이 미팅을 했으며,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병영집체교육을 받은 친구들입니다.

규훈이 녀석은 약간 특이한 친구였습니다. 
한없이 내성적이고 순진한 녀석인데 여자문제에 있어서는... 
그러니까, 마음에드는 여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저돌적인 멧돼지 같이 돌진하곤했지요. 
우리세대말로 속칭, '가대기'라고 하는 것을 즐겼던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의 이상형을 잡았고 결혼까지 골인한 놈입니다.

처음엔 규훈이를 보면 질색을 하던 그 붙잡힌 아가씨는,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후 보여준 규훈이의 열성적인 구애
와 간호에 넘어가고 말았지요. 
우리는 그런 규훈이를 보며 겉으로는 비웃었고, 속으로는 부러워 했습니다. 
규훈이 녀석, 간호대학을 다니던 그 아가씨의 충고를 듣고 담배를 끊고 술을
안마시던 그 녀석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놀랬던지.

술 안마시고 담배 안피는 녀석이 어떻게 간암에 걸렸지요?
나는 정말 이상했습니다. 하루도 안빠지고 술을 마시는 이 다뎀벼나..
하루에 2갑 이상씩의 끽연을 만끽하는 놈들은 다 멀쩡하고, 
이제 그 어려운 박사과정까지를 다 마치고 탄탄대로의 교수로의
꿈을 키워나갈 그 녀석에게 암이란 놈이 찾아 온겁니까?

이제 100일된 딸을 눈앞에 두고 까맣게 그을린 온몸을 추스리지 못해 
종일 눈물만 흘리던 규훈이를 보고온 승국이는 그만..
내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군요. 
그날이 그녀석의 초상화를 그리던 날이었답니다. 
친구놈들이 규훈이를 보러간 바로 그 날이..

앞만 보고 달려간 그녀석에게 갑자기 떨어진 말기 암. 
의사의 표현으로는 말기와 죽음의 그 중간 정도의 상태.. 
규훈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날로부터 말입니다. 
행여 일말의 삶에 대한 한자락 끈이라도 있을가봐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저는 규훈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보지 않았습니다. 
행여 앞에서 엉엉 울까봐 말입니다.

저를 보며, 고개를 가로 저으며 가망이 없더라 라고 말을 하는 승국이.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며 자판기의 커피를 뽑으려다
멈칫하는 다뎀벼는 규훈이의 장례식에서 참았던 울음을 흘렸습니다. 
그 녀석의 죽음으로 인해 흘린 눈물이었지만, 
눈물의 동기를 부여한 것은 싱긋이 웃는 모습의 그녀석 초상화를 보고 였습니다. 
빼빼마른 얼굴에 새까만 얼굴에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싱긋이 웃고있는 초상화를 보며...
우리 동기녀석들은 모조리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넋을 잃고 앉아있는 그 녀석의 사랑은 우리들을 보고,
다시 한번 혼절하고... 
죽음은 참으로 잔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얘기하려는 것도 잔인한 일입니다. 잔인한 일...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남자는 어이없이 죽어버리고,
그 남자의 분신으로 남아있는 3키로의 딸아이. 
그리고 떼로 몰려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모두다 살아있는 자기 남자의 친구들을 보며, 
학교앞 벤치에서 장미꽃 하나 꺾어들고 자기에게 맨처음 다가온 
이규훈이라는... 지금은 죽어 없는 사람을 오버랩하며,
그녀는 그렇게 허물어 졌습니다.. 옆으로 말이지요.

오늘 우연히 TV에서 죽음과 싸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나와 주위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젊은날의 죽음은 참으로 슬퍼보입니다. 
차 사고나 비행기 사고같이 부지불식간에 졸지에 비명에 생기는 죽음보다, 
일주일 한달을 아파하다가 죽는 죽음은, 주위에의 아픔이 더욱더 심해 보입니다.

2000원이 없어 굶어 죽는 다른나라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눈물
짓는것과 젊은날을 같이 보낸 친구의 죽음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것은 너무나 틀린 감성으로 지금 다가옵니다. 
나에게 말입니다.

죽음과 주검의 이야기. 그만 접어야 할것 같습니다.

........

햇살이 뽀오얀 유리창을 넘어 컴퓨터의 모니터에 기일게 드리워집니다. 
내 손가락의 명암을 벽으로 몰아붙이며 말입니다.
내 손을 잡아끌며 놀아달라던 둘째 종민이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귀엽게 느껴집니다. 
오래 살아야겠지요.. 
아이를 보아서라도 말이지요......
오래 살아야겠지요....


2004년의 어느날... 다뎀벼였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