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금관은 지금까지 장례용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계속 되어왔습니다.
최근엔 아예 방송에서조차 장례용으로 정설이 굳어진 것처럼 소개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하지만 그 논란의 숨은 진실은 일제 식민지 시대로로부터 이어져온 식민사관에서 비론된 논쟁일 뿐입니다.
1921년 경주에서 금관총이 처음 발견된 이후 1924년 금령총, 1926년 서봉총에서 금관이 발굴됩니다.
금관은 그 기원과 유래, 용도나 상징성 등은 일본 사학자들과 친일 사학자들에 의해 정의되고, 해석되어 왔고.
그러하기에 그 기원을 우리나라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어이없게 왕관조차 없던 19세기 시베리아 무당에서
찾으려 하거나 심지어 금관을 죽은 사람 얼굴에 붙이는 데드마스크로 폄하되었던 것이었죠.
아래 자세한 내용 링크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