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김씨 지인들 “여자 친구 ‘사령카페’ 활동하며 다퉈”
용의자들 사전 모의 가능성…“4~6개월 전부터 비밀카페 만들어”
지방대를 다니는 김아무개(20)씨는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를 즐겼다. 또다른 지방대 학생 박아무개(20)씨도 온라인 게임을 하다 만났다. 올해 초 두 사람은 연인이 됐으나, 이내 위기가 왔다. 여자친구 박씨가 이른바 ‘사령카페’에 가입했다. 사령카페는 ‘사령(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 악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게 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곳이다.
카페 탈퇴를 종용하는 김씨의 말을 박씨는 듣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김씨는 박씨와 어울리는 다른 사령 카페 회원들과 다투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저녁 7시30분께, 김씨는 여자친구 박씨를 두고 말다툼을 벌였던 사령 카페 회원들을 만나러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바람산 어린이공원에 갔다. “목적은 ‘레카’(여자친구 박씨의 아이디) 구출. 무력 따위 안써. 조용히 빼내오는 거야.” 김씨는 카카오톡으로 친구들에게 당시 상황을 생중계했다. “전부 다왔어. 레카(여자친구 박씨의 카페 아이디)도 있어.”
그들에게 화해와 사과의 의미를 담아 전할 선물도 준비했다. 온라인 게임 등에 쓸 수 있는 5만원대의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마련했다. “레카는 갔어.” 저녁 7시59분 김씨는 친구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자친구 박씨가 먼저 공원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저녁 8시13분, 김씨는 마지막 문자를 남겼다. “점점 골목, 웬지 수상” 그리고 1시간여 뒤, 김씨는 몸 곳곳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2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김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 1일 고등학생 이아무개(16)군과 홍아무개(15)양을 신촌 어느 찜질방에서 붙잡았고, 2일 경기도 의정부 집에 있던 대학생 윤아무개(18)씨를 추가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숨진 김씨의 여자친구 박씨는 그동안 용의자 이군에게 과외수업을 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군의 여자친구 홍양은 사령카페 활동에 심취해 있었고, 이군 등과 함께 4~6개월 전부터 비밀 카페를 만들어 활동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숨진 김씨의 친구 이아무개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씨는 여자친구 박씨가 ‘사령카페’ 활동을 하면서 이상해졌다고 생각했고, 카페 활동을 말리는 과정에서 다른 카페 회원인 이군·홍양 등과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용의자 홍양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어느 사령카페에 “요즘 사령계 분위기가 안 좋은데…인간들이 사령의 존재를 너무 함부로 생각해서”라고 적는 등 카페 활동에 깊이 심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숨진 김씨를 직접 흉기로 찌른 이군은 블로그에 최근 ‘자살문답’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들은 범행을 미리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숨진 김씨의 여자친구 박씨는 지난달 24일 블로그에 “사람 마음 갈가리 찢어놓고 … 사람 실컷 망가뜨려놓고 미안하면 다야? … 진심으로 니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사령 카페의 다른 회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확인 완료”라는 댓글을 달았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이들이 사전에 범행을 계획하여 김씨를 만나러 갈 때부터 각종 흉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공원에서 이군 등에게 죽임을 당하는 동안 김씨의 여자 친구 박씨는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다. 서대문경찰서는 2일 박씨를 불러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관련자 모두 평범한 가정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며 “잔혹하게 김씨를 살해할만한 다른 이유나 배경이 있는지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309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