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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진 이중제국 잡소리, 잡동사니
게시물ID : history_291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둔토
추천 : 0
조회수 : 60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1/30 22:01:43



잡다한 이야기입니다.


<관료>


 오스트리아-헝가리 관료는 일단 공무원이 되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해고의 위험이 없었으며

승진은 연공서열이었고 퇴직 후에는 충분한 연금으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들로 이중제국시대에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았다. 하급 공무원도 연금과 지역 사회의 존경을 생각해보면 낮은 급여에 비하여

굉장한 이점이 있었다. 직종 간 선호도는 약간 차이가 있어서 행정직, 관세청, 우체국 등은 선호도가 높았지만

의외로 지방에서 치안 업무를 담당하는 치안대는 선호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도시 경찰과 달리 치안대는 지방에서

훨씬 위상이 높은 군대에 밀리는 입장이었고 급료, 근무 환경, 기타 대우에서 군대보다 뒤쳐졌기 때문에

치안대에 갈 바에야 군대에 간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식자층 이야기고 군대를 제대한 배경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치안대도 인기가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무원은 군주제의 공무원 답게 합스부르크 가문과 황제를 위해 근무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매우

명예롭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이중제국의 공무원은 일처리가 공평하고

덜 부패했으며 부지런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러한 점이 긍정적으로 나타난 것은 이중제국 당시 사회복지법과

노동법의 도입이다. 당대 이중제국의 자본가들은 값 비싼 사회복지법과 노동법이 아직 이르다고 했지만 로비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중제국의 공무원들은 명령 받은 대로 법을 만들었다. 또한 부지런한 공무원들은 이중제국이 당대 가장 정확하고

상세한 인구 통계자료를 가질 수 있게 하였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는법. 이중제국의 공무원들은 심각한 결점도 가지고 있었다.

황제가 제국정부를 전제적으로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료 사회는 매우 비밀주의였다. 의회는 행정부에 감시권한이

없었으며 1918년까지 광범위하게 시행된 사전 검열로 말미암아 언론의 감시도 아주 대형 사건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때때로 대형사건도 정부의 압력으로 공론화가 어려웠다. 예를 들면 러시아와 접경한 지역의 육군 대령이 요새 배치도나

작전계획을 러시아에 팔아 먹고 자살한 사건이 언론에 의해 공개되었다가 군부의 압력으로 어영부영 넘어간 사건이 있다.


비효율도 악명이 자자했다. 해고 위험이 없던 이중제국의 공무원들은 모든 절차를 상부에서 결정한 대로 따랐고 융통성은

커녕 합리적인 사고도 배재했다. 이중제국을 구성하는 두 나라,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 접경지역의

오스트리아 땅에서 범죄자가 월경하여 헝가리로 도망친 후 헝가리에서 잡혔다고 가정해보자.

상식대로라면 국경에서 헝가리 관리들이 범죄자를 오스트리아 관리들에게 넘겨주었겠지만, 이중제국에서 일처리는

헝가리 국경관리들이 부다페스트에 헝가리어로 공문을 보내고 부다페스트에서는 그걸 빈으로 보냈다. 빈에서는

공문을 받고 독일어로 번역해서 국경지역에 문서를 보내 범죄자가 헝가리에서 잡혔다는 것을 알리고 다시 부다페스트에

범죄자를 보내줄 것을 독일어로 문서를 보낸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그걸 헝가리어로 번역하여 국경 관리들에게

부다페스트로 압송하라고 명령하고, 범죄자를 빈으로 이송한다.


이 일련의 절차가 하나의 나라로 여겨지던 이중제국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앞의 예는 그래도 아주 부드럽게

진행된 것을 가정한 것이고 일처리가 험난할 경우에는 빈에서는 헝가리어 문서를 돌려보내고 부다페스트에서는

독일어 공문을 거부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면 빈이나 부다페스트는 서로의 언어로 번역해서 보내주기도 하였다.

물론 헝가리 관료들은 독일어도 능숙하게 할 수 있었지만 자존심 문제 상 헝가리어로 적어 보내지 않은

문서를 거부하는 경우가 잦았다. 언어 문제 뿐 아니라 체코가 이런 문제에 낀다면 더욱 복잡했다. 오스트리아 제국령인

체코 관공서에서는 독일어가 공식 언어였지만 체코인 관료들은 종종 체코어를 요구하며 태업하기도 하였다.

체코 뿐 아니라 헝가리 왕국 내에서 상당한 자치권을 보장 받은 유일한 민족인 크로아티아인들도 이런 문제를 '종종'

일으켰다.


이런 일처리 뿐 아니라 세금 납부도 비효율로 악명이 높았다. 이중제국에서 세금은 각기 다른 기관에 납부하여야 했는데

재산이 좀 넉넉한 이들은 대충 10개에서 20개 정도의 기관에 따로 따로 납부해야 했다.


<군대>


아마 우리나라에서 대학생들이 이중제국을 부러워 할 만한 딱 한가지는 대학생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중제국에서 대학생은 대학생이 아닌 이들이 3년 동안 군대에 징병된 것과는 별개로 1년만 입대하면 병역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1년도 병사로 배치 받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1년 동안 받았다. 7개월은

이론 교육, 5개월은 실전 훈련을 받았는데 1년 교육 후 이들은 예비역 장교로 예편했다. 이런식으로 확보한

다수의 예비역 장교는 숫자는 충분했지만 질이 매우 떨어졌다.


대학생이 아닌 젊은 남성은 3년 간의 병역을 이행하여야 했는데, 징병검사에서 1/4만 합격하여 군 복무를 할 수 있었다.

3/4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개 신체 문제때문에 병역을 이행하지 못했는데, 대부분은 슬라브족이나 루마니아인

농촌 출신이었다. 3년 복무 하는 군은 농촌 출신에게는 기술을 배우거나 독일어 혹은 헝가리어를 배워 도시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또연줄을 잘 만들면 고향에 내려가 우체국이나 치안대에 추천장을 받기도 했다. 하사관으로

군에 남는 것도 인기가 있었다. 병사가 독일인, 헝가리인, 크로아티아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루마니아인, 세르비아인,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유대인 등 잡다하게 섞여 있는 것에 비하여 장교층은 비교적 균일한 민족구성을 이루었다.

장교는 대개 오스트리아인 혹은 헝가리인이거나 최소한 독일어나 헝가리어에 매우 능숙하고 동화된 이들이었다.

이중제국의 장교는 보수적이고 고루한 이중제국의 사회처럼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황제의 기사로 여겼고 명예를 위한 결투를 당연시했다. 1911년까지 장교들의 결투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명예가 모욕당하였음에도 결투를 하지 않는 장교는 경멸을 받는 것을 넘어 예편되거나 계급이 강등되었다.

군대에서 결투를 금지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19세기 중엽 이후로 계속 나왔지만 보수적인 황제는 자신의 기사인 장교들이

명예를 중요시하는 것을 원했고 장교들은 황제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장교끼리 결투를 하는 것 뿐 만 아니라 민간인이

장교를 모욕했다고 여기면 장교는 민간인과도 결투를 하였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투에서 장교가

이기는 경우가 잦았다. 장교가 결투에서 이기면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다치게 한 것이니 민간 법원에서 장교를 재판하여야

했지만, 황제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장교를 사면하는 것이 관례였다.


장교라고 같은 장교도 아니었다. 근위대 장교는 장교 중에 가장 으뜸이었고 다음은 기병장교였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기병 장교들은 전통적인 이중제국 사회에서 기사와 신사로 인식되었고 지역의 사교모임에서도

환영 받았다. 장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보병 장교는 술에 취해 소리 지르는 불한당이나 교양 없는 이들로 평가받았다.

다른 배경이 없다면 사교모임에는 발을 들여 놓기도 어려웠다.


장교와 하사관, 병사 간 민족구성이 상이했기 때문에 이중제국의 병영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는

했는데 출신지에 따라 병사들이 각자 자기의 언어를 지껄이고 장교는 독일어나 헝가리어로 명령하는 광경이었다.

병사들은 군대에서 독일어나 헝가리어를 배웠지만 익숙한 고향 언어를 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재밌는 점은 쓰는 언어는

달랐지만 이중제국 시기 병사들이 부르는  노래의 의미는 같았다. 이중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의 장수와 명예를

노래하고 황후 씨시를 찬양하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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