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올리는 글입니다. 그동안 눈팅만 하다가 오늘 회원 가입했습니다. 가끔 리플을 보면 이 사이트에도 의사분들이나 의대생들도 있는 것 같아 몇자 적으려 합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이제 의사 이름을 단지 6년이 되었지요.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를 따고 지금은 공보의 2년차로 올라갑니다. 물론 6년이 짧은기간은 아니지만, 먼저 이길을 걸어가신 선배님들이 보시기에는 까마득한 애송이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그 6년의 시간은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스스로에게 의사란 과연 무엇인가를 수없이 묻게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겨우 6년이지만, 그 사이 전 제 전문과 동기들뿐만 아니라 다른 과 같은 연차의 의사 누구에게 비교해도 수적으로도 그 깊이로도 훨씬 많은 환자를 보아왔습니다.
누구보다 많은 환자를 보고, 누구보다 중한 환자들을 보고, 누구보다 많은 날을 환자 옆에서 세며,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겪었고, 누구보다 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너무 자랑이 심하다구요? 예, 맞습니다. 제 자랑입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의사로서 제가 걸어온 길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기쁜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없이 상처받고, 눈물 흘리며, 쓰러졌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의사로 인정하게 해준 지금의 제가 있게 해준 길입니다. 그래서 아픔과 고통의 흔적이 잔뜩 베어 있는 이 길이라도 저는 다른 사람 앞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저에겐 지금까지 의사로서 걸어온 길보다 의사로서 걸어갈 날이 많이 남았습니다. 힘들더라도, 다른 더 편하고 호화로운 길이 있다해도 저는 환자를 보는 의사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의사 중에 한명인게 부끄럽습니다. 제가 의사인게 부끄러운게 아니라 썩은 의사들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게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의사는,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의사는 누구보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다른 어떤 집단보다 깨끗하고 선한 집단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가진 자에 대한 시샘과 정책에 희생되어 억울한 미움을 받아 왔다고 저는 믿었습니다. 아주 일부의 못된 의사들때문에 죄없는 대다수의 의사가 매도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제가 틀렸던 것 같습니다.
공보의를 하면서 제가 보고 있는 의사들 중 대다수는 의사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운 형편없는 쓰레기들입니다. 우선 공보의들...대부분 저보다 어린 그 친구들이 하고 있는 행실을 보면 왜 의사가 그렇게 미움 받는 집단이 된것인지 알것 같습니다. 주변에 개업하신 선배님들의 처방전을 볼때마다 한숨이 나오고요..
환자를 보고 약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약을 고르고, 어떻게하면 환자를 보지 않을까 고민하고, 업무시간에 땡땡이치며 그것이 너무 당연한 거라 믿고 있는 그들을 보면, 실망을 넘어 분노가 느껴집니다. 맨발에 슬리퍼에 츄리링으로 환자 앞에 앉아서는 자신의 조부모 나이뻘인 어른들에게 반말을 하는 그것들을 보고 들으면...내가 그들과 같은 집단으로 불리는 것이 치욕스럽습니다.
현 제도가 불합리하고, 정직하게만은 버텨낼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저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이유로 의사가 환자를 보는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제도가 부당하다면 고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 없이 제도가 부당하니 나도 삐딱해지겠다는 논리는 대체 뭡니까?
환자를 배운대로 원칙대로 보지 않으며 단지 돈벌이로 진료하는게 의사입니까? 기본적인 P/Ex조차 하지 않고, Hx조차 제대로 확인 않으며, 교과서와 상관없이 R비에 따라 약 정하고 그 약조차도 원칙없이 쓰는 게 그게 말이 됩니까? 특히 공보의 선생님들... 기본적인 예절조차 지키지 않으며, 그런 것에 불만을 느끼는 환자들에게 되려 나무래는 게 의사입니까? 넥타이에 정장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환자들에게 혐오감을 줄만한 복장으로 진료를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요없는 고가 소화제를 대여섯알씩 지어주며, pharynx 한번 안보고 3세대 cepha를 깔아넣거나, 소아들에게 금기인 약을 여러 해동안 쓰면서도 모르고 있고, 이뇨제로 충분한 본태성 고혈압에 처음부터 Ca channel blocker 와 ACE II inhibitor로 융단폭격하며 그렇게 진료가 아닌...장사를 하고 싶습니까? 당장의 명.의. 소리 듣기 위해 원칙을 버리고 환자 몸으로 장난하고 싶습니까? 공보의님들.. 관사에 있다가 환자 오시면 가운조차 입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투덜거리며 내려오는 게 그게 의사입니까? 환자는 정도 차이가 있더라도 고통을 가지고 병원에 옵니다. 부득이 한 일이 아니다면 우리는 항상 진료실에서 환자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고, 당연히 의사는 환자를 항상 따뜻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어야 합니다. 그럴려고 의사가 된게 아닙니까? 환자를 귀찮게 여깁니까? 환자 보는 게 짜증납니까? 그럼 왜 의사를 합니까? 자기가 5분 편하자고 환자를 50분 힘들게 할거면 왜 가운을 입습니까? ...제가 거론하는 이런 당신들은 이미 좋은 의사가 아닙니다. ...아니 의사도 아닙니다.
돈 때문이라면 제발 때려치십시오. 당신들 머리라면 차라리 다른 일을 하십시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곁에서 날을 세어 본적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울어본적이 있습니까? 죽음의 문 안쪽에 한쪽 발을 딛고는 돌아보며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환자의 손을 잡아 본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내 몸이 아파 실신해 쓰러지면서도 진통제를 맞고 링겔을 꼿고 다시 청진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까? 멱살잡히고 뺨을 맞으면서도 포기하려는 보호자를 설득하며 제가 치료하겠습니다라고 살려내겠습니다라고 버틴 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내 시간을 버리고 심지어 내 가족의 중요한 일마저 내 팽개치고, 오직 내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지만으로 입술을 깨문적이 있습니까? 식어가는 몸에 CPR로 심장박동을 돌려놓고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러본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게 의사입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저는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진료실 밖에서의 저는 적당히 구부리고 휠줄도 아는 약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과오도 잘 이해해 주는 편이고, 남의 이야기도 잘 듣는 편이고, 제 잘못도 잘 인정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의사로서의 저는 다릅니다. 의사로서의 저는 조금도 양보 없이 곧으려 합니다.
누군가 제게 융통성을 가지라 하더군요. 하지만 의사가 환자를 볼때 필요한 것은 바른 지식과 정성이지, 융통성이 아닙니다. 환자를 내게 내 생활에 맞추려 하는 것부터 이미 의사로서 자격을 잃는 겁니다. 의사는 타협해서는, 게다가 자신을 위해서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제게, 다른 의사들을 저의 기준에 맞추라 하지 말라고 어떤 젊은의사분이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이건 제 기준이 아닙니다. 당연한 의사의 기준입니다. 어째서 이런 당연한 기준이 저만의 기준이 된겁니까?
저의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언제부턴가 저는 의사들 사이에서 은따가 되고 있더군요. 뭐 그렇다고 제가 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의사님들... 제발 부탁합니다. 환자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말고 우리를 바꾸려는 노력을 먼저합시다. 환자를 소중히 대합시다. 자신을 버리는 것 까지는 못해도 조금 양보해서 환자가 편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합시다.
정말 의사다운 의사가 됩시다.
너무 속이 상해서.... 그런데 누구에게 이야기 하기 마땅치 않아서... 오랜 벗이 되어 주었던 이 사이트에 이렇게 푸념 남깁니다.
그리고 혹시 이글을 보고 있는 의사 아닌 오유인 여러분... 이 사이트에 가끔 의료사고에 대한 글도 올라오더군요. 그런데 왠일인지 의료사고하면...대부분이 당연히 그것이 의.료.과.실.이라고 여기시더군요. 환자가 나빠지길 바라는 의사는 없습니다. 의사도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고의로 실수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의사 욕은 하시더라도 우선 왜 그랬는지 한번 살펴보고 욕해주십시오. 때로 의사로서 최선을 다한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살인마 소리를 듣고 멱살을 잡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되었을 때의 분노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만으로 의사를 무조건 악역으로 몰지는 말아주세요. 어떨 때는 의사로서 당연하고 올바른 판단과 치료가 의사 아닌 분들에게는 실수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 오해할 만한 부분이 제일 많은게 또 의학입니다. 의료사고는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지성으로 판단해 주십시오...그리고 그 후에 욕해주십시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이 이글을 읽으실지는 모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