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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때의 내 첫사랑 이야기
게시물ID : lovestory_432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트러리
추천 : 3
조회수 : 148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5/23 08:22:56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던말을 믿고싶지 않았다

첫사랑에 성공했다는 글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나또한 그렇게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잔인하더라

벌써 4년전 일이지만 써보고싶다...




내가 중학교 3학년떄, 그러니까 4년 전 여름에 처음으로 그 아이가 눈에 보였다.

원래 게임만 좋아하고 애들하고 놀기만 좋아하던 나는 여자애들과는 말도 잘 안섞고 여자애들과 말할 기회라곤 조별 숙제라던가

급식시간에 급식당번 하던 아이에게 쟤는 소세지가 6개인데 왜 나는 4개이냐...따위의 시시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날은 내가 청소당번이었는데 청소를 대충한걸 담임에게 들켜서 남아서 별도로 청소를 하고 집에 늦게 가게 됬다.

원래 3시 30분이면 끝나야 할 청소가 4시에 끝나 기다리는 친구도 한명 없고

혼자 화가 잔뜩 난 채로 걸어서 15분 가야하는 집까지 터벅터벅 걷고있었다.

그떄 앞에 왠지 낮익은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였고, 같은반에 말이라곤 한두번밖에 해보지 않은 아이였다.

마침 혼자 가기 적적했던 나는 그 아이랑 별로 친하지도 않았지만 무작정 그 아이에게 가 말을 걸었다.

솔직히 얜 또 뭔데 나한테 친한척이야? 하고 생각할까봐 좀 겁나기도 했다.

넌 왜 이제가.

다행히 그 아이는 싱긋 웃으며 대답해줫다.

친구 기다렷는데, 기다린 친구는 집이 다른방향이어서 여기부턴 나 혼자가야되.

그때, 가슴을 뭔가가 퍽 하고 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몸이 파르르 떨리고 머리속이 새하얘졌다.

그리고 약 3~4분정도를 같이 걸으며 뭔가를 계속 얘기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직도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 단 하나 기억나는게 있다면, 

'원래 이쁜애들이 잠이 많데.ㅋㅋ'

그리고 이때 번호교환도 했다. 하지만 문자도 별로 보내지 않았다.

그 외엔 기억이 안나네

그날 자려고 누웟는데 자꾸 그 아이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 아이의 키, 얼굴, 표정, 말투, 웃음, 대화...

히죽히죽 웃으면서 온몸은 베베 꼬이고 11시에 누워서 1시에 자는 경험을 이때 처음 해봤다.

그런데 안그래도 여자한텐 관심도 없었고 말 거는 방법도 잘 몰랐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그 아이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끝나는 날이 너무 많았다.

빨리 집에 가서 TV보고,게임하고, 아니면 피시방에 가고싶어서 너무나도 길었던 6시간이 마치 초등학생떄 4교시만 하던 시절처럼 짧기만 했다.

그 아이의 뒤에 내가 앉으면 항상 그 아이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그 아이의 앞에 내가 앉으면 흘끗흘끗 돌아보며 그 아이를 바라봤다. 공부하는 그 아이는 너무 예뻣다.

하하의 노래가 그렇게 공감가더라. 맛있는거 먹으면 생각나고, 감기걸리면 약 챙겨주고싶고, 

무엇보다 가족과 친구와 하고싶었던 여러가지 일, 야구장에 간다던가, 놀이동산에 간다던가, 여행을 떠난다던가 하는 일들의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그 아이는 그시절 내 가슴속의 전부였고, 항상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걘 정말 이쁘드라.' '걘 정말 귀엽드라.'따위의 시시한 이야기로 꽤나 귀찮게 했다.

문자를 하루에 한통정도는 보내보았지만 무시당할때가 답장을 받는 날보다 많았다.

하긴 나같애도 학교에선 말도 별로 안거는애가 문자로는 친한척하니 얜 뭔가. 아 귀찮다. 라는 생각만 들었을거 같다.

지금 쭉빵에서 자료라고 베오베에 올라오는 '여자의 남자에게 문자하는 방법' 이런걸 보면

귀찮은 남자에게 문자 보내기 라는 케이스에 딱 내가 해당됬던것 같다.

그리고 '여자친구 없는 남자들의 여자에게 문자 보내는 방법' 에도 딱 내가 해당됬던것 같다.

항상 문자를 빨리 끝내고싶어서 단답식의 답장이 왔고

'응 나 잘게.ㅋㅋ','웅.ㅋㅋ','이제 자려고 씻어.',  '학원이야.'

등의 답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이걸 그 아이가 정말 잠이 많구나. 정말 학원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해야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졋다. 

가끔 그 아이가 나를 귀찮은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면 정말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항상 보면 말걸고싶고 대화할때면 손잡고싶었지만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는건 우리반 애들은 한명도 모를정도로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 표현조차 하지 않았고

여름부터 시작된 나의 이 병신같은 사랑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어쩌다 우리반에 있던 그 아이와 친한 여자애와 친해졌다. 

여자는 눈치가 빠르다. 문자가 정말 귀신같았다. 

난 거의 유도심문 당하듯이 그 친구에게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걸 불어버렸다. 

그 다음날부터 친구가 그 여자애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 줬다.

하지만 나는 항상 뻣뻣하고 여자를 잘 대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그런 기회들을 뻥뻥 걷어 차기만 했다.

11월 11일 빼빼로데이때 학교가 끝나고 그 아이에게 포장도 뭣도 하지 않은 그냥 롯데뺴뺴로 2개를 줬다.

너 먹으라고 삿다고. 그 아이는 친구랑 먹는다고 햇다. 너만 먹으라고 했지만 그 아이는 그냥 뒤돌아 계단을 내려갔다. 

그 아이의 총총거리며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과 함께 비참한 이 사랑의 끝을 직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 지역은 비평준화라 뺑뻉이가 아닌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에 가야하는데 원서접수가 11월이면 끝난다.

그래서 기말고사는 공부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원서 접수가 끝난 철이었고, 아이들은 놀자판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와 그 아이는 대화를 많이 했다. 

나와 그 아이는 가고싶어하는 고등학교가 달랐다. 나는 형이 다니던 곳에 가려고 했고, 그 아이는 집앞의 학교를 간다 했다.

가고싶어하는 학교가 다른걸 안 나는 좀 충격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영화를 많이 본건지 고백은 아무 날이나 하는게 아닌 특별한 날에 하길 바랬다. 

그래서 나는 12월 24일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순수한 사랑이란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게, 이떄 고백할때 말로만 하면 뭔가 허전할거같아서

별모양 유리병에 별을 하나하나 접어서 채워넣었다. 한달정도가 걸렸다.

매년마다 12월은 찾아오지만, 그 해 12월은 나에게 있어선 특별한 12월이었다.

드디어 열심히 놀던 12월의 막바지가 되었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별과 함께 말로 고백하기 참 뭐할거같아 예쁜 편지지 하나 사서 편지를 썻다. 

편지는 대충 너와 함꼐 이런이런일이 있었고, 이럴때 참 기뻣다. 고등학교 가서도 함게 하고싶다. 

너를 좋아한다. 답장 꼭 해달라...이렇게 썻던것 같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완전 쌍팔년도식이지만, 그땐 로맨틱코메디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꼭 그렇게 해야할것 같더라.

그 아이는 성당에 다녔다.

성당은 동네에서 좀 떨어진 외곽 지역에 있었다. 약 20분정도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다.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로 나오라고 했다. 그 아이가 갑자기 왜 나오냐고 하냐고 했다. 나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성당에서 하는 잔치같은게 있다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그 아이가 말한 조금은 32분이었다. 기억하는 사람 있겠지만. 2008년 겨울 정말 엄청 추웟다.

나는 그날 캔버스 단화를 신고 간 내 자신의 멍청함을 한없이 원망했다.

매섭게 불어대는 바람에 발바닥의 감각은 없어진지 오래였고, 그 아이에게 문자를 보내긴 해야하는데 손가락도 딱딱하게 굳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너무 추워 세워져있는 봉고차 옆에서 바람을 좀 피햇다.

성당에서 그 아이가 나올 때 정말 성모 마리아라도 걸어나오는듯 후광이 나는것 같았다. 그 아이는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며 

집에 가야하니 너도 집에 가야할거 아니냐고 같이 가자고 했다.

이떄 그 아이와 걷는 20분가량은 그떄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 어떤 아이템을 얻은것보다. 그 어떤 상대를 이긴것보다 더욱 기뻣다. 그때의 기분은 지금도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해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최고였다.

그렇게 외곽진 곳을 걸으며 그 아이와 하는 대화에서 그 아이의 집안사정이라던가 그냥 자신이 하는 생각 등 

그 아이의 많은걸 알게 되어서 기뻣다. 

하지만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아이의 집 앞에 있었다. 

그 아이를 바로 보내주기가 아쉬워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이때 정말 어색하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설레였다. 

별 모양 유리병을 그 아이에게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좋은 크리스마스 되라고 했다.

그 아이는 고맙다고 진짜 고생했겠다며 별모양 병을 이리저리 구경했다. 

그리고 나는 너무 떨려 잠시 뜸을 들인 후 편지를 바로 내밀었다.

그 아이는 편지를 받고 고맙다며 집에 들어가보라고 했다. 

1시간 30분 넘게 밖에 있었던 나는 따듯한 집을 정말 고맙게 생각했다.

이틀 후 답장이 왔다. A4용지를 1/4로 잘라 눈사람같은걸 그려서 살짝 꾸민 편지지에 

글이 이러이러하다 저러저러하다 쓰여있었지만 다른 글은 보이지 않은 채 딱 한 줄의 글만 보였다.

친구로 지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걸로 끝이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럴 수 없었다.

나와 그 아이의 사이에서 오작교 노릇을 해주던 그 친구는 그 아이가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3월 14일 화이트데이가 됬다.

여자친구 있는 친구를 불러 함께 다니며 2만원정도를 들여 이쁜 상자에 여러 종류의 사탕을 가득 채워넣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아이에게 사탕상자를 주려고 문자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와있어 집에 들어가 빠이 이런식으로 문자했다. 정말 비참했다. 

하지만 이왕 산거 이 사탕들 내가 다 빨아먹을 순 없는 노릇이엇던 터라

중학교 졸업앨범 뒤에 있는 주소록에서 그 아이가 몇호 사는지 보고 집앞에 두고 왓다. 

몇동인지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갔었으니 알고 있었다.

집앞에 주려던거 있으니까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그아이는 바로 헐 이게 뭐냐. 어쩃든 고맙다. 집은 어떻게 알았냐. 스토커같다. 무섭다. 이런식으로 문자를 했다. 

전부터 조금씩 쌓여오던 슬픈 감정이 한번에 폭발했다. 그래. 내가 아무리 사실을 외곡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사실을 외면하며 착각속 사랑을 해보아도,

그 아이는 나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만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몇일 후 문자가 3통정도 연달아 그 아이에게 왓다.

아주 긴 내용이었지만 핵심은. 난 너 부담스럽고 앞으로 이런거 주지마. 그래도 우리 좋은 친구로 지내자.

문자를 받았을 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 전부가 무너졌고, 그 아이의 웃고잇는 얼굴이 부숴졌고, 내 가슴은 찢어질듯이 아파왔다. 이제 이 아이를

가져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비참했고, 그 아이와 함께 하고싶었던 모든 일들이 떠오르며 안타까웟다.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여자에게 익숙하지 않아 그 아이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내 마음만 일방적으로 표현하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질 기회가 없어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베게에 묻고 소리없이 끅끅대며 울었다. 발을 동동 굴렀고 가슴을 쳤다. 침대 옆 벽을 쳐댔고 자고있던 가족들은 무슨일이냐며 갑자기 달려나왓다. 내 멍청하고 부담스런 사랑의 마지막이었다.

그날 밤 나는 태어난 이후 가장 오랜시간 가장 많이 울어보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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