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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를 살 수 없는 이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게시물ID : movie_293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정당한사유
추천 : 4
조회수 : 60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6/27 23:20:11
플렉스 할그렌 감독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인생의 진리에 대한 심오한 메세지를 대중들에게 쉽고 유쾌하게 던져주는 영화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가볍고 재미나지만 그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영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감에있어 별 의미없을 것들에는 광적으로 집착하는 반면, 진정으로 의미있는 것들엔 무심코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 속에서 항상 내일을 기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삶을 이상향으로 삼고서 그것을 꿈이라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어리석은 헛짓거리를 반복하는 수많은 사람들. 내일을 향한 맹목적인 행복의 강요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지 내일에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시시때때로 자유롭게 변하는 내일을 억지로 붙잡아두려하지말고 세상의 거대한 시류 속에 몸을 맡기고 순간순간에 자신을 내던지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럼으로해서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현존할 수 있는 것이고 인생의 참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속임수도 위선도 없이 그저 자신 그대로 세상에 던져져 세상이 주는 불행과 행복을 몸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정말 참된 의미이자 위대한 아름다움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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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만사는 그 자체로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나둬야 하지."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中

누구나 세상을 살다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론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고, 좌절과 용기가 교차하며, 만남과 이별을 나누면서 우리는 그렇게 세상 속을 살아간다. 결국 세상이란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움직임에 몸을 맡긴채 그저 이 세상에 놀러온 것마냥 힘 쭉 빼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찬란한 미래와 낭만적 꿈이라는 헛된 목표에 사로잡혀 자신의 인생을 "내가 당장 그 일을 하고 싶어도 지금은 그 일을 위해 열심히 모으고 준비를 해야할 시기야"라고 수단화시키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갑갑하고 답답하다. 사람은 언제나 현재를 살지 미래를 살진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영원히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정말로 불행한건 바로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도 현재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지금 바로 여기에 충실하고자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생기는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내가 나를 구속하는 것. 사람을 구성하는 것은 과거 기억과 경험들의 총체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인생 경험들은 우리의 정체성과 생각을 규정짓는다. 이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더욱 더 심해져서 마치 레코드 판이 돌아가는 것과도 같다. 레코드 판에 새겨진 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더 깊어져만가 나중에는 그 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일생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무의식과 의식중에 스며들어 우리의 잠재의식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다 평균적으로 35세에 이르면 우리의 정체성과 생각을 구성하는 것중 무의식이 95%를 차지하고 나머지 5%만이 우리가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의식에 존재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자각할 수 있는 5%의 의식만으로 나머지 95%의 무의식을 이겨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특별한 사건이 계기가 되지 않는 이상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없다. 그저 사회가 강요하는대로 조금은 불만족스럽지만 억지로 만족하는척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속박하고 규정짓는 '나'라는 틀을 깨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의 삶은 결코 변화할 수 없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삶을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삶으로 바꿀 수 없는 첫번째 원인이다.

두번째 원인은 사회적 구조에있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인 100세 노인 알란 칼슨의 모험아닌 모험은 어느 폭주족의 돈가방을 훔치면서 시작된다. 결국은 돈이다. 인류가 발전하면서 집단을 이루고 집단이 사회가되어 거대한 문명이 출현함으로써 인류는 문명 속에서 사회적 활동을 통해 문화적 삶을 누리며 거기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다. 이런 문화적 삶을 누린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치적 행위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가치적 행위를 누리기 위해선 '대가'가 필요하다. 공용화폐가 통용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서로 물물교환을 통해 대가를 치뤘으나 문명의 발전과함께 화폐가 등장함으로써 '대가'는 모두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아주 용이해졌다. 그러나 이런 대가의 통일과 용이성으로인해 필연적 결과로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했고 체제의 불완전성으로인해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고질적이면서도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부의 불균형이다.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와 불완전한 체제로인해 부의 분배는 기형적 불균형으로 이뤄졌고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어 사회 계층은 착취자와 피착취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되었다. 부르주아 계급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지배자가 되어 상당한 돈을 손에 쥐게됨으로써 사회의 거의 모든 가능성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신의 인생을 다바쳐 열심히 일해도 실상 손에 쥐게되는 소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상류사회가 누리는 문화적 삶을 영위할 순 없었다.

국민들의 의식이 진보하고 선진화된 일부 유럽의 국가들. 그중에도 특히 북유럽국가는 소득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적 부의 재분배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어느정도 해결했고, 지금도 계속 해결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선진국에서는 사회적 구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자각하여 각성만 한다면 얼마든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 사회적 구조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못했다. 국세청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2012년도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상위 10%의 소득 비중을 계산해보니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증가해왔다. 토지 보유면에서는 대한민국 상위 1%가 전체 토지의 55.2%를 소유하고있으며 나머지 99%가 45% 정도를 소유한다. (이는 국토교통부의 2013년 토지 소유현황 통계결과를 근거로 하였다.) OECD국가들의 평균 최저임금이 1만원을 웃도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 5000원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국민소득이 2만 6천달러를 넘기는 지금, 소득세를 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절반이 월 200도 벌지 못한다.

삶에 회의를 느끼고, 무언가 다른 시도를 해보고자 삶을 바꾸고자 현재에 충실하고자 하려 해도 손에 쥐고있는 돈이 얼마 없으니 이 사회적 틀 안에서 결국 보이지 않는 제약이 우리의 삶에 족쇄를 채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진리와도 같은 이야기이기에 우리는 이런 삶의 족쇄를 차고서라도, 제한된 틀 안에서라도 불만족스런 자신의 삶을 자각하고 꾸준히 현재를 즐기려 노력해야한다. 그와 동시에 사회적 구조의 불합리와 모순에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나가야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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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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