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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게시물ID : bestofbest_293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천 : 165
조회수 : 9478회
댓글수 : 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09/06/17 14:44:58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6/16 23:15:42



스무 살,

어찌보면 참 꽃다운 나이네요.
징그러운 남정네에게 꽃다운, 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저 까마득하게만 보이던 20이라는 나이도 어느새 저를 수식하는 한 가지의 평범한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스무 살이 된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180도 달라질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십대와 이십대는 그저 나이의 앞숫자가 달라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실제로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스무 살의 저로 보내온 이번 6개월이라는 시간은 19살의 그 때와 별다른 느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나, 그 눈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것들이나요.



왜 이런 뜬금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실까봐 조금씩 제가 이야기 할 본론을 풀어놓겠습니다.


저의 스무 살은 조금 슬프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냥 제 상황을 이렇게 뱉어놓으려는 지지리궁상일 뿐이에요. 남이 질질 짜는 모습 보는 것에 흥미가 없으신 분들은 그냥 조용히 빠져나가셔도 돼요. 하지만 그냥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잠시라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만으로 제게는 큰 위로가 될 테니까요.


어머니가 아프십니다.

불행한 가정이라는 것, 그저 남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자랐어요. 적어도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까지는요.
잔병치레가 조금 잦으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건강하셨던 어머니인지라, 갑작스레 찾아온 큰 아픔에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가 생각과는 다른 모습에 일찌감치 학교를 나와 검정고시로 대입자격을 획득하고 수능 공부에 전념할 시점에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셨어요.

어라, 불과 1년 반 전이네요? 엄청 오래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우습네요.

갑자기 쓰러지신 어머니는 한쪽 몸을 전혀 가누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정말 완벽하게 갑자기는 아니에요. 쓰러지시기 전부터 목에 통증을 느끼셔서 디스크 치료를 좀 받고 계셨거든요. 그런 도중에 쓰러지셔서 시에 있는 건국대학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형은 대학생이고, 동생은 초등학생. 아버지는 일을 하셔야 해서, 자연스럽게 제가 어머니의 곁을 지키게 되었지요.

비록 반쪽짜리 몸이지만, 그래도 걷고 먹고 잠자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가볍게 진통제와 수액 정도의 처방을 받으며 일주일 정도를 건국대학교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MRI를 촬영한 후에 떨어진 청천벽력같은 말이 저를 놀라게 했지요.

아무래도 척수 쪽에 종양이 암으로 생각되니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



..


아버지는 얼굴이 굳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것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 소설을 썼던 때에, 주인공에게 내렸던 가혹한 운명이 바로 척수암이었습니다.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니 우습네요. 굉장히.. 아무튼 소설을 위해서 자료조사를 조금 했었던 기억이 있어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척수는 신경과 관련되어 있는 부위인지라 조직검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반신불수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거든요.
서둘러 서울 강남에 있는 삼성의료원으로 갔습니다.
운좋게도 입원실이 빨리 비어서 응급실에서는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요.
삼성의료원에서도 이런저런 검사를 한 결과,
그나마 다행이었던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종양으로 발전 된 정도는 아니고, 척수쪽이 염증으로 부어오른 것으로 보인다.

암이 아니랍니다.
그것 만으로 기뻐서 저는 활짝 웃었습니다. 아버지도 옅게 웃으시더군요.
얼마만에 보는 미소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삼성의료원에서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으며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의사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더 이상 따로 치료할 방도가 없으니 퇴원하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상태가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염증이 가라앉은 후에는 몸도 이전보다 잘 가누셨으니까요.

퇴원했습니다.
집에서 한 달 가량의 시간을 보내며 어머니도 조금씩 호전되었구요.
그 때까지는 아, 그냥 해프닝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

네, 재발이지요. ^^;

참,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병이 재발하는 것을 보고 정말 재수없는 설정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예, 제가 재수가 없네요.

..삼성의료원으로 다시 갔습니다.
근데 또 같은 처방이에요~^^;; 스테로이드제.. 그로 인한 부작용인 속쓰림을 위해 위보호제.. 진통제..소화제..
또 한 번 쓰러지시면서는 이제 완전히 몸을 못 가누시게 되었어요. 오른쪽 팔만 겨우 움직이시긴 하는데 그마저도 힘이 없어 밥을 먹는 것도 불가능 할 정도였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식은 뚜렷하고 안면에도 마비가 없어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것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답니다.
어머니가 밤에 '차라리 정신을 놓아버리면 편할텐데'하시며 베개를 적실 때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에 안타까웠습니다..

............조금 더 솔직해져볼까요..
새벽에 몇 번씩 깨고, 하루 종일 어머니를 수발하는 것에 전 짜증이 났습니다.

...하하, 인터넷의 익명성 좋네요..현실에서 말하면 호로자식이 될 이야기도 온라인에서는 조심스레 꺼내볼 수도 있고.. 예.. 솔직히 짜증이 났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가여운 마음이 더 잦고 길었지만, 가끔씩 불쑥 머리를 드미는 짜증에 저는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근 20년을 제 뒷바라지를 해주신 어머니에게, 고작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수발한 것 가지고 짜증이라니요..

하지만 제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요. 마음을 수백 번씩 고쳐먹어도 여전히 불쑥 찾아드는 안 좋은 감정들에 저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 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반갑지 않았어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ㅡ, 대학교에서 강의도 듣고, 친구들과 운동도 하고..
예, 여자사람^^;도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그를 위한 수능공부마저 전혀 하지 못하고 어머니 옆에 24시간을 붙어 있는 것이..
아버지는 회사를 다니시며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퇴원을 명 받았지요.

호전되셨느냐?






아니요..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나가라,

그랬습니다.


..나왔습니다.

집에서도 병원과 비슷한 생활이었지요.

그러다가 외가 쪽의 친척 분께 소개받은 기도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쯤에 형은 군대로 들어갔어요..

아, 여기서부터 조금 안 좋게 보실 분들도 계실 수 있겠네요.
종교가 관련 되어 있는 문제니까요.. 그것도 보통 평범한 기도원이 아니라, 마귀를 쫓는 은사를 가진 분들이 계신 기도원이었습니다. 이것을 믿고 말고는 각자의 문제이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기도원에서 올해 4월까지 있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두 세번씩 넘기며,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지요..
걸으시게 된 겁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저도 간증이나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ㅎㅎㅎ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번 하려던 5일 단식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4일차부터 조금 벅차하시더니, 5일째 되던 날에 결국 또다시 쓰러지셨지요.

.........아, 이 때 정말 처음으로 하늘에다가 욕을 해봤습니다.
하하, 지금 생각하니 정말 바보 같은 모습이었겠네요.

손가락도 까닥하지 못하시는 상태가 되셨습니다 ^^;

그리고 기도원 원장목사님과 많은 분들의 노력 끝에도, 결국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이는 정도에서 퇴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몇 주를 보내고, 결국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셨지요.

노인병원이라, 할머니 할아버지 뿐이라고 어머니가 투덜거리시더라고요.^^ㅎㅎ





이래서 차근차근 나아지시면 정말 아름다운 가족의 이야기겠네요..

그런데..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시네요.......
수능공부? 접었습니다.
제가 정말 대단한 놈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틈틈히 공부해서 서울대라도 떡하니 붙을텐데, 전 그 정도로 대단한 녀석은 아닌가봐요.

오늘 요양병원 의사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더 상태가 악화되면 다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한다고 ㅎㅎㅎ


...스무 살....슬픈 스무 살......힘든 스무 살......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롱 강하셨던 아버지가..

종종 우십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약해질대로 약해지신 상태입니다.....

.............................................

오유라면 털어놓아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ㅎ
비로그인 상태이긴 하지만...


그냥..

........이러다가 어머니를 미워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다 잘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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