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글쓰기) 내가 도둑맞은 물건
게시물ID : readers_296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별다른하루
추천 : 4
조회수 : 3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4 14:58:36
옵션
  • 창작글
KakaoTalk_20170905_201936632.jpg


내가 도둑맞은 물건에 대한 인터뷰


#1 공원 / 할아버지 / / 61


반갑군, 전화로 말한 그 인터뷰 학생 맞지? ? 도둑맞은 물건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구?

...보자.. 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도둑맞았네. 해외여행을 떠나서는 가방을 통째로 도둑 맞아보기도 했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친구에게 빼앗겨 보기도 했네. 빈집털이범이 명절에 우리 집을 털기도 했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크게 도둑맞은 것은 바로 노동의 즐거움이네. 작년에 나는 60세에 맞춰 정년퇴임을 했지. 그 회사에서 35년간을 정말 뼈를 묻듯 일했어. 그리고 얼마의 퇴직금과 함께 평생을 함께 한 그 노동에서 벗어났다네. 나에게는 이제 안락한 삶만 남은 줄 알았지. 처음 얼마간은 여행도 가고, 여유롭게 책도 읽고 그랬다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지. 인간은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일세. 평생을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라고 생각해왔네. 하지만 노동은 인간에게 있어 사회의 한 일원으로의 존재 가치였다는 것을 깨달았어. 인간은 일을 함으로써 이 사회에 이바지하고 스스로 존재감을 갖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거지. 노동을 잃은 나는 점차 무력감에 휩싸였다네. ‘나는 충분히 더 일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

자네, 언제부터 60세 이상의 인간을 노인이라고 명명했는지 아는가? 1889년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이 노령연금 지급 기준 나이를 65세 로 정한데서 부터 비롯됐다네. 그런데 그 당시 평균수명은 49세에 불과했어. 지금 시대의 평균수명과는 크게 차이가 있지. 60세 정년퇴임인 것도 한국인들의 평균 수명이 70세이던 1990년대와 비교해봤을 때 시대적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어.

우리는 충분히 더 일할 수 있네. 100세 시대가 아닌가? 우리에겐 아직 40년이나 더 살아야 할 기간이 남아있어. 하지만 사회에게 우리는 노동의 즐거움을 도둑맞았다네.

물론 나에게 남은 얼마의 퇴직금으로 새로운 사업이나 장사를 할 수도 있겠지.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많고 말이야. 그 친구들 모두 돈을 더 벌기 위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무노동의 무력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업일세. 하지만 젊은 자네도 알지 않은가? 지식과 기술이 부족한 장사나 사업이 얼마나 힘든지 말이야. 하지만 모두가 그곳에 뛰어든다네. 슬픈 일이야.

그래서 나는 한때 귀농을 꿈꾸기도 했어.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마누라도 말하더군.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는데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겠느냐고. 틀린 말은 아니지. 장사나 귀농이나 모두 기술 아닌가? 자식들도 반대하더군. 그냥 도시에서 편안하게 살라고 말이야.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한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아.

나는 가끔 작은 공방에서 구두를 만드는 내 친구가 부럽다네. 그 친구는 나와 동갑이지만 아직도 창창하게 구두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 맨날 말로는 이 놈의 구두장이, 이제 그만둬야지. 삭신이 다 쑤신다네라고 말하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자신의 구두를 만든다네. 아마 그 놈은 죽어서도 자신이 만든 구두를 신고 죽을 놈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에는 그 친구가 어리석어 보였다네. 돈도 얼마 벌지 못하고, 사회적 위신도 낮은 그런 일을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제와 보니 그 친구만큼 부러운 이가 없다네.

나는 복지국가가 되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네. 그래서 복지를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했지. 생각해보게나. 모든 사람들에게 매달 150만원씩을 준다고 하면 누가 일하겠나? 일 따위 그만두고 밤낮 놀고 먹고 나태하게 살지 않겠나?

하지만 이제와 깨달아보니, 사람은 매달 150만원을 준다고 해도 놀지 않을 것이네. 물론 처음에는 일을 그만두고 놀 수 도 있겠지.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노동을 하려고 한다네. 노동은 자신의 존재감과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해주니 말일세. 노는 게 지겨워서 일을 한다? 얼핏 들으면 궤변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지. 옛날이었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인간은 정말로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할거라네.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시도하고 엄청나게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생겨날지도 모르지.

이제와 말하지만 인간은 절대 나태할 수가 없는 존재라네. 현대인들이 주말마다 축축 쳐져 있는 건 주중에 회사일로 지쳐 있었던 거지, 나태함이 아니었다네. 각종 매체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늘 도전의식이 없고 나태하다고 비판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너무 많은 노동에 지쳐 있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너무 많은 노동시간이 노동의 즐거움을 앗아 가버리는 것도 참 어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군.

허허, 내가 이런 저런 말이 너무 많았구먼, 쓸데없는 이야기도 하고 말이야.

마지막으로 젊은이. 사회적인 평가나 타인의 시선에 떠밀려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을 선택해 버리면 안 되네. 많은 이들이 노동의 즐거움보다는 노동의 대가를 더 크게 여기지. 노동의 대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오직 소비뿐이네. 물론 소비를 하는 것은 즐거움을 가져다주네. 하지만 소비에 밀려 노동의 즐거움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네. 그건 공허함만 더 가중시킬 뿐이거든.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사회적 평가가 낮다고 해도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네. 자기의 일을 스스로 소중히 해. 타인들이 내 일을 무가치하다고 비웃더라도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웃고 있으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네. 노동은 가장 신성한 것이야. 우리가 너무 일상을 착취당해 그걸 잊고 살았던 거지. 어쩌면 우리는 삶 속에 노동의 의미를 재발견해야 할지도 모르네. 특히 젊어서는 더 중요하겠지. 나처럼 나이 들어 깨닫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내 인터뷰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군. 나는 오랜만에 젊은이랑 대화해서 즐거웠다네. 살펴가게나.



#2 / 스님 / / 70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소승께 인터뷰할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질문인지요? , 도둑맞은 물건에 대해여 말입니까?

도둑맞은 물건을 이야기하기 전에, ‘도둑맞는 것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듭니다. '도둑을 맞는다'함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가 과연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깐 만나고 있을 뿐이라구요. 인간은 고작 100세도 넘기지 못하는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한정된 시간동안 그것을 잠깐 빌리고 있는 것뿐이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한 물건이 나에게 왔다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공간으로 가는 것이지요. 사람의 인연과 물질의 인연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잠시 내 곁에 머물러 있을 뿐,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이지요. 불교에서 말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경구도 다 인연에 대해서, 그리고 소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이고, 이별이 있으면 다시 만나는 것.

소유도 그런 개념이지요. 나에게 머물러 있다가 떠나는 것이고, 떠났다가도 언젠가 다시 만나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법정스님이 말한 무소유도 이러한 이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 물건이 저의 소유겠습니까? '단지 머물렀다 가는 것이니 그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머물러 있다가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니 그 것에 집착하지 말라' 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옛날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총과 칼로 그들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니 원주민들은 땅은 우리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을 어찌 줄 수 있는가?’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바람과 물과 흙과 불, 단 한 번도 인간들의 것인 적이 없었지요. 지금 현대인들은 서구의 소유개념에서만 바라보니 세상 모든 것에 주인이 있다고 보지만 세상은 단 한 번도 주인을 모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순간순간 빌리고 이용했을 뿐이지요.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집착해선 안 됩니다.

삶을 탈소유의 개념에서 바라보면 도둑맞은 물건이란 없습니다. 그저 나에게서 떠날 때가 되서 떠난 것이지요. 그리고 그 물건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 것 이구요. 흐르듯이 순환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순리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그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지요. 언제든 끝날 수 있고 떠날 수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사랑해야겠지요. 가족이든 연인이든, 물건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대여의 개념에서 바라본다면 그것 모두 더 없이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우리의 삶은 순간에 불과하며, 잠시 머물러갔다가 가는 것입니다.

 

이 순간, 내 곁에 머물러 있을 뿐...

그저 인연이지요.  

출처 '글쓰기 좋은 질문' 도서에서 글감 발췌 /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