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시는 다릅니다. 얼마나 다르냐면 하늘과 땅의 다름과 비슷함. 소설은 이야기입니다. 서투르고 지루하고를 제쳐두고 '이야기'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고 과장하고 꾸미고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문학이고 뭐고를 떠나 소설은 근본적으로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소설은 방대한 이야기입니다. 배경과 주인공 같은 것이 나오는 형식의 그 방대한 몸뚱이의 뼈대가 되어 지탱합니다. 소설은 주제의식이 있고 없고를 떠나 허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허구와 이야기라는 배경이 없으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리타분하게 형식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거구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하나 혹은 여럿의 세계를 먹어야 하기에 어떠한 형식을 취합니다. 이야기가 펼쳐질 배경이 있어야 이야기가 설 곳이 생기고 이야기를 풀 주인공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배경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배경은 우주처럼 있으며 이야기가 뻗어나가게 할 주인공이 없다면 정체할 것입니다. 물론 이게 진리는 아니에여. 세상에는 무지 많은 이것저것이 잇음. 소설에는 세계가 있습니다. 위에서 나오는 배경과 주인공이 그 세계의 일부가 됩니다. 세계는 이야기 자체일 수도 있고 이야기하는 무언가의 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소설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배경과 인물이 필요하고, 그 배경에 서울 주인공에 김 첨지를 넣으면 운수 좋은 날이 되고, 배경에 아라짓 제국을 넣고 주인공에 엘시 에더리 등을 넣으면 피를 마시는 새가 되며, 배경에 포니빌을 넣고 주인공에 트릭시와 기타등등을 넣으면 마이 리틀 포니가 됩니다. 필요한 세계를 치환함에 따라 소설은 변화하며 그래서 팬픽션 또한 소설의 연장선 위에 놓여집니다. 하지만 시는 다릅니다. 시는 딱히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국경의 밤과 같이 길고 구체적인 시의 경우엔 세계를 필요로 하나 그러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시의 형식은 세상에 존재하는 시의 개수와 동일해연) 서사시 산문시는 이야기를 단지 조금 바꾼 것에 불과하며(물론 시도 이야기에여ㅠㅠ) 대부분은 이야기를 농축하거나 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시라는 구덩이는 소설이란 구덩이에 비해 넓지 않고 깊은 셈입니다. (시가 소설보다 우위라는 게 아님. 둘 다 어려운 건 다르지 않아여) 배경도 주인공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작습니다. 배경과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아도 풀어놓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이야기가 시입니다. 시에도 물론 소설처럼 소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다는 것이 소설과 다릅니다. 소설은 내가 이러해서 저러하다라면 시는 이래. 이럴 수 있고 나. 이럴 수 있고 이러하며저러한동시에그러하니또이러하기도하며그것은저러한것을나타내니종국에는이러함. 이럴 수도 있습니다. 소재만 있다면 이외의 세계는 있어도 없어도 됩니다. 소재라는 말을 좀 이것저것을 뭉뚱그려서 썼네여. 소재는 사건 인물 사물 감정 등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배경과 주인공이 따로 있지 않으니 그냥 시를 팬포엠(여기선 편의상 이리 지칭할게연)으로 치환할 거리가 딱히 없습니다. 둘 다, 자체로 시인 것입니다. 소재로 포니를 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시가 나타내는 것은 소재가 아닌 주제입니다. 영원불멸할진 몰라도 아무튼 소중한 주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소재에 얽매여선 안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하극상임. 알릴 것을 뒤로 하고 꾸미는 것을 소중히 하는 건 좀 그렇잖아여. 소재는 외적이고 주제는 내적입니다. 소재는 주제를 감싼 것일 뿐입니다. 소재로 레인보 닷슈의 갈기를, 주제(주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져)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감동 혹은 아름다움 그 자체 이런 것으로 정하고,
그대의 갈기는 정말 완벽하게 멋지지 우 후 찬란한 여러 빛에, 나는 맘 설렌다네.
이런 식으로 쓴다면 이것은 대쉬의 겉모습을 빌어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가 되겠으나... 그것뿐입니다. 자신의 감각을 대쉬의 겉모습이나 아니면 이것저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아름다운 글귀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시들도 존재합니다.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미치광이 이상은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어 갑자기 말하라니.. 님들 바로 윗줄 말 개소리임. 하여튼 시는 삼라만상을 소재로 삼는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으며 그럴 까닭도 없는 것인데, 팬포엠이란 것을 쓰려면 그것을 한정해야 합니다. 포니의 형식을 빌지 않으면 그것은 팬포엥이 아닌 그의 시이며 딱 포니가 나와야 한다고 못을 박은 팬포엠은 시라기보단 소설에서 쓰인 문장의 일부를 예쁘게 꾸며놓은 것이 됩니다.
소설은 이름 몇만 바꾸면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포니들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좋고 나쁘고 할 것 없이 그냥 바뀜. 시는 모든 것에서 포니들의 이야기를 짧게 한 것이 됩니다. 자유를 잃은 셈이고, 그렇다면 죽은 셈이며, 오만하고 무례한 말이지만 연애편지나 좋은 글귀 모음에서나 볼 이쁘장한 문장으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팬픽션은 자연스럽지만 팬포엠은 어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