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구절에보면 나오는 구절이 있는데 아담은 결코 아무거도 모르는 철부지로 지음받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신의 대리자로서 지음을 받았고, 이 땅의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줄 만큼 지혜가 뛰어났습니다.
가끔 솔로몬의 지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교회적으로는 그보다도 아담의 지혜가 비교도 할 나위없이 뛰어나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구절들로 유추한 것으로 짐작일 뿐 확신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대리자로서 지은 아담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처럼 만들진 않았겠지요.
결론은 왕으로 지음받은 자이기에 그에 합당한 지혜도 부여받았습니다.
2.
"<먹으면 반드시 죽을> 그 위험한 선악과 나무(그것이 상징적인 것이었다 할지라도)를 그들 곁에 심어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에덴의 왕으로서(대리자 자격이지만)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게 허락하셨지만, 오직 단 한가지, 선악과의 과실만을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아담은 허락되지 않는 선악과를 봄으로서 자신이 피조물임을 생각하고, 교만치 않게 하심이라고 현교회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코에 갔다붙이면 코걸이고, 귀에 갔다붙이면 귀걸이입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또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제가 들은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3.
"신의 전지전능(全知全能)도, 신의 사랑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신의 무지(無知), 무능(無能), 무자비(無慈悲), 독선(獨善) 같은 것만을 볼 수 있게 된다. "
"우리에게 나타나는 신은, 앞뒤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 자기에게 복종하는 자만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편애, 자기일 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잘못을 저질를때는가차없이 벌을 주는 무자비, 독재적이고 폭군적이고, 옹고집장이 노인의 모습이다. "
어느정도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질투의 하나님이라"
또 다른 구절을 보면 그 외에 우리의 시선으로는 부정적일수 있는 하나님의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가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유대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셨던 때입니다.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시기입니다.
이 때의 하나님은 친히 기적을 행하시고, 직접 인간을 만나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인간의 바로 옆에서 같이 숨을 쉰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오직 한가지, 죄만은 포용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에 대해서 구약의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벌하시고, 아주 다이나믹하게 반응을 하십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죄를 범하는 백성은 곧바로 죽음으로 응징하는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교회에서는 좋게 말해서 하나님의 공의,불변성 등등으로 표현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 눈에는 그 모습은 독선이고, 독재등의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우리에게 나타나는 신은, 앞뒤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
그러나 무능,무지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쉽게 수용할 수가 없군요. 단지 기독교의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다른 신 또한 인정하는 가정을 하더라도 신이라는 건 인간의 지혜로 측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얼만큼의 미래를 짐작합니까? 100년을 예견합니까?, 10년을 예견합니까? 단 하루 오늘이라도 짐작할 수가 있습니까? 신이 오늘 행한 일이 100년 뒤를 본 것인지, 1000년 뒤를 본 것인지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까? 성경만해도 기록된 사실로만 모세로 시작해서 몇천년 뒤를 예견합니다. 창세기에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을 하시고, 그 예언이 몇천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짐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건 지금 이시대에 믿고 살아가는 기독교인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이 세상의 기독교인들은 벌써 세상을 모두다 기독인들로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조차 하나님의 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믿고 기다릴 뿐이고, 그러지 못하는 자들은 떨어져나가고, 생까지도 포기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을 인간의 머리로 규정 지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신이 아니다."
개미와 같은 곤충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5.
그리고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단지 찬양을 받기 위해서라면 의지가 필요가 있을까요? 로봇처럼 찬양만을 위해 만든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유다의 배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운명적으로 결정 되어진 일이었고, 그렇게 되었시만, 그 이후의 문제입니다.
베드로 역시도,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예언하셨고, 그렇게 되었지만, 그 둘의 뒤의 이야기는 아시는 분만 아시겠지만 너무도 다릅니다.
베드로는 곧바로 울며 회개를 하였고, 유다는 자살을 택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입니다.
우리 인간은 대본이나 소설의 줄거리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의지로 미래가 바뀐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