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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있음>위키백과에서의 박근혜
게시물ID : sisa_2064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예비군말년차
추천 : 0/2
조회수 : 4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6/05 11:22:20


BGM정보: http://heartbrea.kr/3084942 전두환 정치자금 6억 수수 의혹 그는 일찍이 그는 10.26 사태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생계비로 6억원을 받았다고 밝힌바 있다.[77] 1980년 박근혜와 그의 형제들 앞으로 6억원의 돈이 지급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전 합수본부장에게서 9억원을 받은 뒤 김재규 사건 수사 격려금으로 3억원을 되돌려주었다는 것에 대한 의혹이 여러 번 제기되었다.[78] 이 돈은 박근혜와 그의 두 동생에게만 지불되었다. 그리고 액수도 6억 달러 설, 9억 달러 설 등이 제기되어 왔으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전두환의 자금을 받았다, 받지 않았다는 2002년 무렵하고 그가 당 대표로 있을 때에도 누군가에 의해 유포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박근혜는 언급을 회피해 왔다. 2007년의 인사 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다시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는 '9억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6억원을 받았다. 유자녀 생계비 명목으로 받았고 돌려준 것은 없다. 전 합수본부장의 심부름으로 왔다는 사람이 만나자고 해서 청와대 비서실에 갔더니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다 남은 돈이다. 생계비로 쓰라'고 전해 줘서 감사하게 받아 나왔다.[78]'며 생계 유지비라고 반박하였다. 그가 전두환에게서 9억을 받았다, 6억을 받았다 는 등의 의혹으로만 제기되어 오던 것이 2007년의 인사검증회에서 그가 시인함에 따라 사실로 확인되었다. 10·26사태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6억원을 지원받은 사실을 인정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79] 그가 청문회에서 자금을 받은 것과 액수를 밝힘으로서 의혹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윤호중은 이를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박 전 대표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돈이 9억원이 아니라 6억원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을 빼고는 하나도 새롭게 검증된 것이 없는 청문회였다.[80]”는 것이다. 성북동 주택 취득 의혹 그에게 제기되었던 의혹 중의 하나는 성북동 주택을 취득한 경위였다. 이는 그가 한나라당 대표로 재직할 때에도 나타났고, 보통 박정희의 신당동 사저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2007년의 대통령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이르러 다시 언급되었다. 일각에서는 신당동 사저와 성북동 박근혜 자택을 오인하였으며 박정희 내외의 비극적인 죽음에 가려져서 묻혀졌으나 2007년 대선을 전후해 누군가에 의해 인터넷에 퍼지면서 다시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성북동 주택은 기업인 신기수가 그에게 공짜로 주었다. 그런데 박 후보는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에게서 성북동 주택을 증여받은 것과 관련해 탈세 가능성이 제기되었다.[79] 2007년 인사검증회 당시 "성북동 주택 신기수씨가 무상으로 줬나" 하는 의혹에 대해 그는 "아버지 유품 보관할 장소로 쓰라며 대가없이 주었다"고 대답했다.[78] 또한 일부 언론으로부터 5공화국 때인 1982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이 성북동 주택을 무상으로 줬다는 의혹도 있었다.[78] 한편 그는 성북동 사저는 사사로운 청탁 목적은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부모님이 사시다가 남기신 유일한 재산인 신당동으로 이사를 왔다. 부모님 유품을 정리해야 하는데 집이 너무 좁았다. 이런 사정을 알고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신 회장이 성북동에 집을 마련해 '유품보관할 장소가 있으니 이사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서 받아들였다.[78]"고 반론하였다. 최태민과의 관계 의혹 오랫동안 육영재단 등과 관련하여 최태민목사와 깊은 관계에 있었고 그의 비리까지 묵인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어 왔다. 또한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등 최씨 일가의 재산이 수백억이란 설도 제기됐다..[81] 최태민의 딸 최순실씨는 최태민 목사와 함께 육영재단 운영에 간여하고 전횡했다는 의혹을, 최목사의 사위이자, 순실씨의 남편인 정윤회씨는 과거 박후보의 참모였고 지금도 ‘논현동팀’논란 등 박후보의 숨은 측근이란 의혹을 받고 있다.[81] 2007년의 한나라당 인사검증회에서 최 목사를 언제 처음 만난 것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로 기억한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하면서 바쁠 때 많은 위로와 격려 편지가 왔다. 내용이 마음에 와 닿고 만나서 얘기를 듣고 싶을 경우에는 만났다. 그렇게 만난 몇 사람 중 하나다.[78]"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후 최태민에 대한 의혹이 집중 추궁되자 그는 알수 없었다 혹은 억울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최 목사는 이름이 7개, 결혼도 6번 정도 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있었나.[78]'는 질문에 대해 "누구를 만나 일을 할 때 그 사람이 결혼을 몇 번 했는지, 자식이 몇인지 다 알 수는 없다. 당시 그런 내용을 몰랐다.[78]"고 반박했다. 또한 최 목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이름을 팔아 비리를 저지르고 청와대를 무단 출입해 당시 중앙정보부가 조사를 했었지 않느냐.[78]는 질문에 대해 "경호실 비서실이 있고 출입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청와대 무단 출입이 불가능하다. 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각종 비리가 있다고 해서 아버지가 직접 조사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당시 내가 퍼스트레이디로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버지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을 말씀 드렸다. 그런 과정에서 나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견제해야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78]"고 답했다. 자신과 최태민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그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이를 두고 2007년의 한나라당 인사검증회에서는 '최 목사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면 천벌 받을 짓'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는데 사실인가.[78]' 하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가만 보면 '최 목사가 이런 비리가 있다, 나쁜 사람이다'고 공격한 다음에 나에게 연결시켜 내가 뭘 잘못한 걸로 쭉 공격했다. 그런 것은 음해성 네거티브다. 하다 하다 나중에는 '아기가 있다'는 등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얘기도 나왔다. 이런 네거티브는 천벌 받을 짓 아닌가. 제가 옛말에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느냐'는 말이 있는데 라며 한 말이다. 애가 있다는 말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확실한 근거 있다면 애를 데려 와라. DNA 검사를 해 주겠다.[78]"며 반박하였다. [편집]최태민 비리 옹호 의혹 이 문서는 미공개 또는 계획만 발표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불확실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인지 충분히 검토하고 편집해 주시기 바랍니다. 1970년대부터 최태민 목사는 그의 측근으로 활동해 왔다. 그 과정에서 최태민과 그 일가들의 비리 행위를 묵인했다는 의혹과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가 영남재단, 정수장학회 등을 운영하면서 그를 보좌했던 최태민의 비리 문제는 오랫동안 도마에 올랐다. 7개의 이름과 6번 결혼한 전력에도 불구 구국선교단·구국봉사단 총재 등으로 박후보를 보좌하면서 박후보의 이름을 팔아 이권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다.[81] 이후 이 문제는 수시로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2006년의 대통령 후보자 인사 검증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검증청문회에서 고 최태민 목사 비리 의혹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밝혔다.[82] 그러나 최태민 관련 의혹은 2007년 다시 제기되었으며,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도 다시 제기되었다. 2007년의 한나라당 인사검증회 당시 '중정 조사에 의하면 최 목사는 공사 수주, 장군 승진, 국회의원 공천 명목 등으로 돈을 받은 단서가 포착되는 등 비리 건수가 40여건 된다고 한다. 알고 있었느냐[78]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버지가 나와 중정 부장, 최 목사, 관계되는 사람들을 불러 직접 조사를 하실 때 어떻게 횡령하고 사기를 쳤는지 답하라고 했다. (비리) 내용이 막연했다. 실체가 없는 얘기로 끝나서 아버지가 대검에서 조사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셨다. 아버지는 친척을 감옥에 보낼 정도로 엄격하신 분이다. 그 쪽에 가서도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정권들이 나를 봐주거나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굉장한 매도의 기간이었다. 잘못이 있었다면 굉장히 시끄러웠을 거다.[78]'"라고 반박했다. 또한 '검증위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초에 중정은 최 목사를 구속하자고 건의했고, 검찰이 조사해 보니 중정 조사보다 훨씬 많은 비리가 나왔다. 결국 최 목사가 봉사단 총재에서 물러나는 선에서 이 문제가 일단락됐다. 그런데도 최 목사의 비리 혐의가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느냐[78]'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검에서 엄청난 비리가 나와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처리해야지 왜 덮나.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무조사, 검찰 조사가 있었는데 왜 법적 조치를 안 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78]"고 반박을 제기했다. 최태민과 그 가족들의 비리행위나 비위 의혹에 대해 박근혜는 최태민이 모함을 받는 것이라 본다. 그는 최태민은 모함을 당하는 것이며 억울하다고 보고 있다. 2007년의 인사검증회 당시 '최 목사가 지금도 결백하고 모함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78]는 질문에 대해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의혹의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현실이 그러니까. 앞으로 실체가 나온다면 내가 모르던 일이니까 굉장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일이다.[78]"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달리 최태민과 관련되었던 사실은 김재규 중앙정부부장 등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까지 보고되고 있었다. 2007년의 청문회 초반 고 최태민 목사에 대한 질문이 집중되면서 박 전 대표의 목소리 톤이 약간 높아졌다.[76] 다른 검증위원이 최태민과의 자녀 존재 여부를 묻자 박근혜는 면접장에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김명곤 한나라당 검증위원은 "최 목사와 관련된 질문만 나오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꼬집자 박 전 대표는 작심한 듯 "아기가 있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 DNA 검사라도 해줄 테니 애를 데려오라"며 언성을 높였다..[76] 그러나 최태민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것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아직까지 의혹으로 진행되고 있다. [편집]약혼설, 비밀 결혼설 의혹 박근혜가 신기수와 약혼 또는 비밀약혼을 했다는 의혹 역시 제기되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미혼이며, 박정희의 사망 전, 혹은 사망 후에 누군가와 약혼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계속 제기되어왔다. 2007년의 인사 검증회에서 '어떤 월간지는 신 회장과 박 후보의 약혼설도 보도했다. 어떤 관계인가.[78]'는 질문에 대해 그는 "전혀 사실이 아닌데 국민들이 전부 보는 생방송에서 약혼설까지 질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78]"며 반박하였다. [편집]육영재단 운영 관련 의혹 2007년 7월의 한나라당 인사검증 청문회 당시 박근혜는는 육영재단 관련 의혹과 관련, 형제 간에 갈등이 불거진 것이 아니냐는 추궁이 잇따르자 "실체가 없는 일인데 자꾸 말이 커진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76] 육영재단 재산 착복 의혹[78]이 제기되자 그는 '보수·판공비 일절 안받아… 전횡 소문도 사실무근.[78]'이라며 반박하였다. 박후보의 동생인 근령씨는 육영재단 운영을 놓고 대립한 문제가, 지만씨는 미국 유학과정에서 영남대 공금 전용 문제는 오래도록 도마에 올랐다.[81] 인사 청문회 당시 영남대, 육영재단 관련 의혹 중 "영남투자금융이 육영재단에 기부금을 출연한 것이 부적절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에는 "얘기를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76] 말 실수도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영남대 의혹에 관한 질문에 "대구대와 청구대가 합치는 과정에서 학교를 맡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병철 전 회장"으로 정정했다.[76] '82년 10월부터 90년 11월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는데 보수와 판공비를 받은 적이 없는가.[78]'라는 질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육영재단 사람들이 이사장직을 맡아 유지를 이어야 한다고 건의해 책임을 느끼고 이사장을 맡았다. 보수와 판공비를 받지 않았다. 일주일에 2, 3번 출근했다.[78]"라고 답했다. (박근혜가) '이후 육영재단 이사장을 퇴임한 이유와 관련, 최 목사와 딸이 박 전 대표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전횡을 일삼아 직원들이 반발한 것이 원인이라는 말이 있다.[78]'는 의혹에 대해 "어머니 기념사업을 육영재단에서 같이 했고, 당시 최 목사가 기념사업 일을 도왔다. 구조조정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의 소요가 있었고, 오해가 있어서 '최태민 물러가라'는 식으로 데모가 있었지만 최 목사나 딸이 결코 육영재단 일에 관여한 적이 없다.[78]"고 반박하였다. 또한 육영재단의 운영 과정에서 최태민이 개입했다는 의혹 역시 제기되고 있다. 최 목사가 육영재단 고문의 직함을 갖고 이사장인 박 전 대표가 결재를 하기 전에 먼저 결재를 할 정도로 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78]는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최 목사가 고문직을 하지 않았고, 최 목사가 연로해 고문으로 예우해 부른 것뿐이다.[78]"라고 반박하였다. 한편 "박근혜가 박근령의 육영재단 이사장 해임의 배후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비방글이 동생 박근령의 남편이 적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83] 이 문제로 신동욱 교수가 징역 1년 6개월형에 확정되는 등[84] 논란의 여지가 존재하고 있다. [편집]영남대학교 관련 의혹 영남대학교 재단 이사장 시절의 전횡과 정관 1조에 교주 박정희 라는 조항을 삽입한 것 역시 오래도록 문제시되어 왔다. 영남대 이사장 시절 전횡 의혹[78]과 영남대 재단이사가 된 지 1년 후에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1조에 '교주(校主) 박정희'라는 표현이 삽입된 사건[78]에 대해 "67년 영남대 설립 시 이사 전원이 서명한 결의문에 '교주 박정희'라는 글귀가 들어 있었다. 당시 이사 한 사람이 그것을 정관에도 넣자고 제의해 이사회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나도 이사회에 참여했고 찬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78]"며 아무 문제 없다고 답했다. 한편 영남대학교 재단 재산 착복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었다 86년 당시 영남대학교 대학병원장 모씨의 해외출장비 명목으로 280여만원이 동생 지만씨의 항공료 등으로 지급됐고 병원장은 주치의 자격으로 박지만 씨와 미국에 함께 갔다.[78]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에 대해 "그때는 몰랐지만 검증위 소명자료를 준비하면서 발견해 동생에게 알아 봤더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78]"며 반박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영남대 병원장은 소환되지 않았다. 영남대 재단 비리에 육영재단을 끌어들이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제기되어 왔다. '영남대 재단이 전액 출자한 영남투자금융회사는 육영재단이 발간하는 어린이 잡지 <보물섬> 등에 장기간 광고하고 광고비로 2,700여만원, 기부금도 1억3,000여만원 지급했는데 알고 있었느냐.[78]'는 질문에 대해서도 "육영재단이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영남투자금융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영남투자금융에 강요한 적은 없다. 경영진에서 판단해서 한 것으로 안다.[78]" 또, 영남대 재단 4인방으로 거론되는 김모 조모 손모 곽모씨 등을 직접 임명하지 않았느냐[78]는 인사 의혹에 대해서도 "(자신은) 결재선상에 있지 않았다. K 전 총장이 확인서를 써 줬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이명박 캠프에서 정책자문단으로 일하고 대구 지역에서 사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분이다. 확인서가 신빙성 있는 자료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78]"며 결백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남대 재단 운영 과정에서의 의혹은 수시로 야당 인사들에 의한 공격 표적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한편 박근혜가 영남대 재단 이사장 시절 운영에 개입한 확인서를 제출한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은 박근혜로부터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자 측 참모라는 역공을 받기도 했다.[81] [편집]정수장학회 세금 탈루 의혹 그가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부터 '정수장학회 이사장 겸임때 탈세했다는 의혹[78]'도 줄곧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2007년 인사검증회에서 그는 '납세의무 있는지 몰라… 후에 퇴직금 정산해 납부했다.[78]'고 하였다. '95~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를 지냈으므로 강제 헌납에서 자유롭지 않다. 설립 당시 이런 문제 알았나.[78]'는 질문에 대해 그는 모른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당시 상황은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강제 헌납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이 아닌 것을 입증할 자료를 장학회가 가진 것으로 안다.[78]"는 것이다. 또한 2007년의 인사 검증회를 전후해 (독재시절 강제로 빼앗은 재산으로 설립한) 정수장학회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 어떠냐는 권고도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재단 운영과 관련해 국가 헌납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나.[78]'는 질의가 있었으나 그는 "공익재단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 안 된다.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다.[78]"라며 반대하였다. 정수장학회 이사장 겸임 때의 섭외비 탈루 의혹도 제기되어왔다. '수억 원의 섭외비에 대한 세금을 탈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78] 그는 "매년 감독 관청에 보고했으나 세금 의무가 있는지 몰랐다. 법이 바뀌어 소득세를 내야 했으나 실무진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누락됐다.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납부했다.[78]"고 반박을 제기하였다. 98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 그는 정수장학회의 이사장 및 비상근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78] 그러나 이때 급여를 받아 횡령이라는 주장이 나온다.[78] 그는 "출근을 안 한 게 아니라 일주일에 2, 3번 가서 결재했고, 행사가 있으면 가는 등 이사장 일을 다 했다. 횡령은 동의할 수 없다.[78]"며 반박하였다. 그러나 정확한 조사가 없이 그의 주장에 의존하는 것으로 논란과 의혹이 현재 진행중에 있다. [편집]5.16에 대한 관점 5.16 군사 정변의 주역이던 박정희의 차녀였으므로 그가 5.16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그가 정계 입문한 1988년 이후 줄곧 이슈가 되어 왔다. 2007년 7월의 한나라당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박 전 대통령 유지 계승' 역사의식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78] 이때에도 그는 5·16은 구국의 혁명…유신은 역사가 판단할 일.[78]이라며 판단유보 자세를 취하였다. 이 때문에 야당 인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90년 잡지 인터뷰에서 5ㆍ16과 4ㆍ19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의식에 의문이 드는데.[78]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본다는 시각을 피력하였다. 그에 의하면 "5ㆍ16은 구국(救國)의 혁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남북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혁명 공약에도 기아 선상에 헤매는 국민을 구제한다는 얘기가 나온다.[78]"는 것이다. 다만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판단유보를 내렸다. 5.16 뒤의 유신시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78]는 질문에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다만 유신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헌신하고 고통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항상 죄송하게 생각한다.[78]"고 답했다. [편집]복귀 당시 2억원 수수 의혹 2004년 2월 대선자금 수사에서 박 전 대표가 복당과정에서 2억원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 돈이 복당의 대가인지 의혹[78]이 제기되었다. 그는 이것을 선거활동비 명목이라고 해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당에 들어올 때 중앙선대위 의장을 맡았는데 당 사무총장으로부터 2002년 11월 26일과 12월 7일 1억원씩을 선거활동비 명목으로 받았다. 한나라당 입당 조건으로 받은 것 아니다. 미래연합을 운영하면서 빚진 것 있었지만 이 돈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78]'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후에 조사나 검증 없이 묻혀졌고 2억원의 정확한 성격은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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