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18권,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11월 1일(갑인) 1번째기사 임금이 허손병이 있어 대신들이 육선들기를 청하다
임금이 허손병(虛損病)을 앓은 지 여러 달이 되매, 정부(政府)와 육조(六曹)에서 육찬(肉饌) 자시기를 청하여 두세 번에 이르렀으나 듣지 아니하고, 병세는 점점 깊어 약이 효험이 없으니, 유정현·이원·정탁 등이 육조 당상(六曹堂上)과 대간(臺諫)과 더불어 청하기를,
“평인(平人)들이 만사를 제폐(除廢)하고 상제(喪制)를 지켜 행하여도 3년 안에 병에 걸림을 오히려 면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전하께서 지존(至尊)하신 몸으로 소찬(素饌)만 진어(進御)하시고 만기(萬機)를 보살피시면서 3년의 상제(喪制)를 마치고자 하신다면, 병이 깊어 치료하기 어렵게 되시리니, 옛 사람이 말하기를, ‘죽은 이를 위하여 산 사람을 상해(傷害)하지 말라. ’고 하였으며, 또 ‘육즙(肉汁)으로서 구미(口味)를 돕는다. ’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세자(世子)가 어린데, 전하께서 상경(常經)만 굳이 지키어, 병환이 깊어져서 정사(政事)를 보지 못하시게 된다면 종사(宗社)와 생령(生靈)의 복이 되지 않습니다. 태종의 유교(遺敎)에도 또한 말씀하시기를, ‘주상은 고기가 아니면 진지를 들지 못하니, 내가 죽은 후 권도를 좇아 상제(喪制)를 마치라. ’고 하셨으니, 이는 곧 전하께서 예법을 지키시고 지나치게 슬퍼하시므로, 앞으로 건강을 해하실까 미리 아시고 염려하셨사오니, 어찌 위로 조종(祖宗)의 영(靈)을 위로하시고, 아래로 신민(臣民)의 바람에 좇지 아니하십니까.”
하니, 임금은 말하기를,
“내가 본디 병이 없고 늙지도 어리지도 않으니, 어찌 감히 뒷날에 병이 날까봐 염려하여 고기를 먹겠느냐.”
하며, 굳이 고집하고 듣지 않으므로, 정현(廷顯) 등이 모두 내정(內庭)까지 나아가 기어이 청을 이루려고 하니, 임금이 마지 못하여 말하기를, “여러 경(卿)이 청하기를 마지 아니하니, 오늘은 마땅히 소찬을 아니하겠노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육찬을 진어함을 꼭 보고자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임금은 진실로 필부(匹夫)도 속일 수 없거든 하물며 대신(大臣)에게랴.”
하면서, 이에 육찬(肉饌)을 진어하였다. 교지(敎旨)를 내리기를,
“이제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니, 여러 도로 하여금 육선(肉膳)을 진상(進上)하지 말게 하고, 또 문소전(文昭殿)·광효전(廣孝殿) 외에 각전(各殿)의 망전(望前)·망후(望後)의 진상(進上)도 또한 이를 아직 정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