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조상은 침팬지 가계와 700만년 전 갈라진 이후 95% 이상의 시간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수렵-채집생활하면서 보냈죠. 그 때의 습성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수백만년동안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살면서 풀어야했던 수많은 문제들을 잘 풀게끔 진화했기 때문에 현대 산업사회나 농경사회와는 다소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왜 남자들은 야동을 보고 흥분할까요? 남성이 야동을 볼 때 남성의 두뇌는 그 모습이 실제 여성이 아니라 이차원적 점선이 조합된 허상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동영상 속의 여성과 성관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성의 두뇌는 야동을 보면서 아무 실익도 없이 심박수를 높이며 발기를 시키는 거죠. 이건 진화의 목적인 자손을 낳는 번식행위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행위죠 이 역시 인간의 두뇌가 현대 산업사회와는 맞지 않게 설계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왜 여자들은 꽃을 선물로 주면 좋아할까요?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는 극소수 꽃들을 제외하면, 오늘날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꽃은 생존과 번식에 직접 도움이 되는 바가 전무한 것인데도 말이죠. 그것은 꽃이 향후 몇 달 동안 이 곳에서 유용한 자원을 얻을 수 있을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됩니다. 꽃은 오래지 않아 이 자리에서 과일이나 견과, 덩이줄기 같은 음식물이 나게 될 것을 알려줍니다. 뿐만 아니라 꽃이 있는 곳에는 인간의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들도 찾아오죠. 그래서 먼 옛날 채집활동을 주로 하던 여자들은 꽃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들의 꽃에 대한 애착에도 진화론적 기제가 숨어 있는 거죠.
문화나 교리도 이와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전 세계 78개 문화권에서 어떤 음식이 금기시되는지 조사한 결과 금지되는 음식의 85% 이상이 고기였으며, 이 수치는 채소, 곡물 등 다른 음식들을 모두 합친 수치보다 여섯 배 가까이 높았다고 합니다. 힌두인들은 쇠고기를 금지하고, 유대인들은 돼지고기와 조개를 금지하고, 나바호 인디언들은 물고기를 금지합니다. 싱싱한 채소나 과일을 금지하는 종교나 사회를 바로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이죠. 왜 그럴까요? 우리의 안전에 가장 위험한 것이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독소와 병원균은 어디에나 있긴 하지만, 특히 고기를 먹을 때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됩니다. 동물이 죽으면 그 면역계의 활동도 함께 멈추기 때문에, 생고기를 조금만 실온에 내버려 둬도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가 파고들어 단지 몇 시간 만에 고기가 상하죠. 반면에 채소와 씨앗은 죽은 다음에도 식물 세포의 세포벽이 세균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잘 상하지 않습니다. 또한, 식물이 자기 몸을 방어하려고 만드는 2차 대사 산물들도 세균과 곰팡이의 증식을 억제하는데 한 몫을 담당합니다. 많은 사회에서 고기를 먹을 때 뼈에 붙은 근육만 먹을 뿐 뇌, 눈, 척수, 머리뼈, 편도, 내장, 장간막 같은 다른 부위는 먹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회학적 측면을 살펴볼까요? 각 사회마다 집단주의 문화권, 개인주의 문화권이 있습니다. 집단주의를 개인주의와 구별 짓는 두 가지 특징은 1) 내집단과 외집단의 엄격한 차별 2) 권위와 전통에 대한 순응입니다. 자기 패거리 내의 사람들과 끈끈하게 뭉치면서 외부인을 배척하는 태도는 낯선 병원균에 노출될 가능성을 낮춰주죠. 전통을 따르길 강조하면서 일탈을 용납 못하는 태도는 그 지역의 고유한 병원체들에 대한 방어로서 형성된 문화적 관습을 계속 유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 집단주의 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음식에 고추, 파, 마늘처럼 맵고 자극적인 향료를 첨가하여 병원균의 활동을 억제하게끔 진화하였습니다. 이렇듯 집단주의가 개인주의보다 병원균의 침입을 막는데 더 효과적이라면, 역사적으로 병원균이 많았던 지역에서 집단주의적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말라리아, 주혈흡충병, 사상충병, 뎅구, 나병, 발진티푸스, 결핵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던 대표적인 병원균 9종이 전 세계 93개국에서 얼마나 분포하는지 조사해본 결과 과거에 병원균이 득세했던 수준은 각국의 집단주의 지수와 정비례했고 개인주의 지수와 반비례했다고 합니다. 더 흥미로운 건 세계 각국의 병원균 분포는 각 나라의 성적 개방성과 반비례했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성적으로 개방적이라고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또한 서두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 인류는 선사시대의 조상들이 수백 만년 동안 생활해온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 대해 선천적으로 끌리게끔 진화했습니다. 사막, 극지방, 정글, 목초지 등등 지구상의 서식처 중에서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잡식성 영장류인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서식처는 아프리카 동부의 사바나, 즉 푸른 초원에 군데군데 나무들이 자리 잡는 환경입니다. 땅에서 사는 잡식성 영장류가 열대 정글에 들어가 산다면 높은 나무 위에서 이따금씩 떨어지는 부스러기 말고는 마땅히 먹을 것이 없죠. 사바나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동식물이 주로 지상으로부터 2미터 이내에 집중하므로 먹을 것이 많다. 둘째, 나무 그늘 밑에서 비바람과 햇빛을 피할 뿐만 아니라 맹수가 나타나면 나무 위로 기어 오를 수 있다. 셋째, 시야가 탁 트여서 맹수나 악한이 혹시 다가 오고 있지 않나 살피기 좋다. 넷째, 지형지물들의 고도가 다양하므로 높은 곳에 올라서서 길을 찾기 쉽다 (아이들이 틈만 나면 부모에게 안아달라고 조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사바나 이론은 학습이나 후천적 경험이 전혀 없이도 현대인이 사바나를 다른 서식처 유형들보다 선호하리라고 예측합니다. 그래서 사막, 정글, 낙엽수림, 침엽수림, 사바나의 모습을 담은 슬라이드들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보여 준 다음, 가장 살고 싶거나 방문하고 싶은 곳을 지목하게 했더니 역시 8살과 11살 아이들 집단은 사바나를 다른 어느 환경보다 더 선호했습니다. 반면 15, 18, 35, 70세로 이루어진 나머지 연령 집단에서는 사바나와 낙엽수림, 침엽수림에 대한 선호가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정글과 사막은 모든 연령 집단에서 바닥을 면치 못했죠. 이런 결과는 우리는 사바나 환경에 대한 선천적인 선호를 지니고 태어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실제 자라난 주위 환경에 의해 선호도가 조금씩 조정됨을 말해줍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대다수 실험 참여자들이 평생 단 한 번도 못 가봤을 사바나 환경이 어느 연령 집단에서나 가장 좋아하는 환경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는 사실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을 선호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장애물에 가리지 않는 열린 시야는 물이나 음식물 같은 자원을 찾거나 포식자나 악당이 다가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는데 유리하죠. 눈이 달려 있지 않은 머리 위나 등 뒤를 가려주는 피난처는 나를 포식자나 악당으로부터 보호해줍니다. 산등성이에 난 동굴,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가 사는 성채, 한 쪽 벽면이 통유리로 된 2층 카페 등은 모두 조망과 피신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전통적인 풍수지리설에서 배산임수 지형의 집을 높게 쳐주는 것에도 진화적 근거가 깔려 있는 셈입니다. 이건 한적한 별다방에 가서 줄지어 들어오는 손님들이 과연 어떤 테이블부터 채우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오래된 연장통, 전중환-
이처럼 인간의 거의 모든 부분은 생물학으로 설명되며 그 심리는 수백만년전 사바나에서 살던 심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런 환원주의적인 설명방식..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