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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영국에 가자
게시물ID : art_37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갤럭시4s
추천 : 6
조회수 : 59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6/08 10:49:29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창 밖엔 눅눅한 비가 내렸다. 나와 김은 하릴없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점심 때가 지났건만, 우리는 라면 한 봉 살 돈도 없었다. 집 안은 고요했다. 벽에걸린 선풍기만 탈탈탈 낡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미풍에 맞춰진 바람은 우리의 머리칼 한줌도 날리지 못 할만큼 약했다. 우리는 몹시 더웠으나, 아무도 선풍기 바람을 세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일어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었다. 나와 김은 아무런 말도 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해야 할 말도, 하고픈 말도 없었다. 선풍기는 금방이라도 박살이날듯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와중에 김이 말했다.
"영국에 가자"
그리고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으나, 별 수가 없었다.
"웬 영국"
김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그냥 생각없이 내뱉었나보다 싶었다. 등이 끈적거려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김이 천장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너 섹스가 영어로 뭔지 아냐"
"섹스가 영어잖아"
"영어는 영국 말이잖아"
"그렇지"
"한마디로 생명의 번식 행위를 나타내는 섹말을 영국에서 만들었다는 것이지"
김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게 그렇게 되는건가?"
"그럼, 너 앵글로색슨 알지"
"알지"
"걔네들이 다 영국놈들이잖아"
김의 목소리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집 안이 아까보다 더 더워진 기분이었다. 솔직히 김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못알아듣겠다.
"앵글로색슨  앵글로는 잉글랜드고 색슨은 뭘지 생각해봤냐?"
"글쎄"
김은 구겨진 담배갑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 물었다.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순간 짜증이나서 그에게 말했다.
"집 안에서 담배 좀 피지마 개새끼야"
"알았어, 한대만 필게 존나 뭐라 그러네"
김은 그렇게 꾸역꾸역 담배 한대를 다 태우고나서 말했다.
"고등학교 때 앵글로색슨하면 애들이 다 섹스? 그랬었잖아 병신들 같이"
"그게 왜?"
"그게 정답인거지 색슨은 섹스의 어원? 뭐 그런거야"
"지랄한다"
"진짜로, 영국놈들은 옛부터 지네들을 섹스라고 칭한거지"
그는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비가 그쳐 있었다. 창 밖으론 한줌의 바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김은 컴퓨터 앞 의자에 걸터 앉아 말했다.
"그야말로 영국은 섹스의 본고장이라 볼 수 있는거지"
그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영국에 가자고?"
"남자로 태어난 이상 섹스의 본고장을 한번은 가봐야하지 않겠냐? 남미 따윈 아무것도 아니야, 야 젠틀맨이랑 레이디랑 마차에서 뭐 하겠냐? 안 봐도 비디오지"
그는 대충 지어낸 티가 확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자리에 누운채로 말했다.
"알았으니까, 선풍기 좀 세게 틀어봐" 
김은 엄지 발가락으로 컴퓨터를 키며 말했다.
"네가 해 병신아"
팬 돌아가는 소리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방 안을 가득 매웠다. 나는 일어나 바람 세기를 높이려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일어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귀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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