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사명' 다시 가슴에 새기겠다며 시국선언문 발표…"부끄러운 언론인…용서하지 말아달라"
[미디어오늘정철운 기자] 현업 언론인 5623명이 22일 "언론의 사명을 다시 가슴에 새기겠다"며 시국선언에 나섰다. 세월호참사 36일만이다. 끝없는 오보와 정부편향보도로 '기레기'(기자+쓰레기)로 통칭되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며 오늘의 시국선언에 이르렀다. 63개 언론사 소속 언론인 5623명은 23일자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 일간지에 기명이 담긴 시국선언문을 전면광고로 낼 예정이다.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현업언론인 시국선언 자리에서 강성남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언론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사과도 못하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사회의 부조리를 감시하지 못하며 자본·정치권력에 휘둘렸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두려운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강성남 위원장은 "우리의 아이들이 죽었다. 우리들이 제대로 역할을 안 하며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다"며 "다시는 우리 같은 부끄러운 언론인이 이 땅에 없도록 하겠다"고 반성했다.
길환영 KBS사장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준비 중인 권오훈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KBS 구성원들이 시작한 이 싸움은 사장 한 번 바꾸자는 간단한 싸움이 아니다. 공영방송이 청와대로부터 독립하는 순간까지 싸우겠다. 국민들이 이 싸움을 마무리해주실 거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KBS본부는 세월호 불공정보도 책임자인 길 사장 퇴진을 위해 26일 총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인 시국선언 모습. ⓒ언론노조
KBS와 함께 불공정보도의 중심에 있는 MBC 기자들도 사죄에 나섰다. 이성주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 다시 한 번 조합원의 마음을 모아 국민 여러분과 유가족들께 사과드린다"고 말한 뒤 "이 싸움의 본질은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다. 유착의 증거가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번 세월호보도는 KBS와 MBC를 포함해 우리 언론이 얼마나 큰 암덩어리를 안고 있는지 보여주는 계기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성주 본부장은 "목포MBC 취재기자는 세월호 전원구조가 도저히 발생할 수 없다고 위에 보고했지만 (전원구조) 오보가 나갔다. 상황을 알릴 책임이 언론에 있었다. 빨리 구조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감시해야 할 책임이 언론에게 있었다. 하지만 MBC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언론에 부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정홍원 총리의 문제적 발언도 MBC뉴스에는 나오지 않았다"며 "마지막 기자가 마이크를 빼앗길 때까지 싸우겠다.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었던 정규혁 언론노조 광주방송 지부장은 "우리는 기레기보다 더한 흡혈귀였다. 현장에선 방송사 잠바를 입고 다닐 수 없었다. 입고 다니면 맞아죽을 것 같았다. 우리는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 마치 큰 벼슬인 것처럼 국민들을 무시해왔다. 그 결과 우리 언론이 스스로 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규혁 지부장은 "언론인을 떠나 사람으로서 사죄드린다. 이제 변하지 않으면 언론은 공기가 아니라 독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들 언론인은 시국선언문에서 "취재를 통한 사실 확인보다는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기에 급급한 나머지 오직 진실규명을 바라는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을 저버리고 말았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는커녕 망언을 내뱉는 공영방송 간부라는 사람들의 패륜적인 행태도 막아내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언론은 죽었다. '죽은 언론'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이고 '죽은 언론'은 오직 권력자를 향한 해바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개탄한 뒤 "권력이 언론을 손에 쥐고 휘두르려 하는데도 목숨 걸고 저항하지 못했다.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지는 못할망정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가리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라며 "이제 언론의 사명을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단호히 저항하겠다"고 다짐했다.
언론인 시국선언문은 "청와대의 방송장악 보도통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이 마련될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인들은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 오직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진하겠다. 그것이 세월호와 함께 속절없이 스러져간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우리에게 부여된 영원한 사명"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언론인 시국선언문 전문.
▲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언론인 시국선언 모습. ⓒ언론노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한 달이 넘게 지났습니다. 지난 한 달 여 동안 대한민국은 함께 침몰했습니다. 그리고 정확성, 공정성,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사명 또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사건 당일 '전원 구조'라는 언론 역사상 최악의 대형 오보를 저질러 실종자 가족들을 비롯한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습니다. 취재를 통한 사실 확인보다는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기에 급급한 나머지 오직 진실규명을 바라는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는커녕 망언을 내뱉는 공영방송 간부라는 사람들의 패륜적인 행태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공영방송 KBS의 보도를 좌지우지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길환영 사장도 아직 쫓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보도통제 의혹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진상규명에 대한 어떤 약속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은 죽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미 한참 전에 죽어버린 언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계기였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고, 언론의 존재이유는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에게 정확하고 공정하게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언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죽은 언론'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이고 '죽은 언론'은 오직 권력자를 향한 해바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합니다. 막말하는 간부도, 대통령만 바라보고 가는 사장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언론을 손에 쥐고 휘두르려 하는데도 목숨 걸고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지는 못할망정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가리는 데 일조하고 말았습니다. 방송을 장악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도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국회의 방송공정성 논의도 이행하도록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려내겠습니다. 언론의 사명을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단호히 저항하겠습니다. 청와대의 방송장악 보도통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이 마련될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할 것입니다.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 오직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진하겠습니다. 그것이 세월호와 함께 속절없이 스러져간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우리에게 부여된 영원한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