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제주 4.3사태에서 대학살을 당했던 사람들의 생존한 후예이고, 사실 그걸 의식하면서 산 것은 아닌데, 정작 현실세계에서 지방인들이 가지는 위치에 관한 것이나 조폭새끼덜이 유통따위를 장악하고는 그 것에 납품이나 해야 되는 경험따위를 하면서 그러한 것들이 가지는 한국사회의 계급적인 본질에 대해서 살면서 느끼게 된 것 뿐이다.
내가 감히 고구려를 우리 역사라고 하는 이유는 그 동기 자체가 매우 불순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정작 부계는 한반도의 서남인들인 제주계라고 할 수 있지만 모계는 경상도이다. 왜냐면 소싯적에 부산교도소에 4.3사태의 피해자들이 많이 끌려갔는데, 그 와중에 본인의 할배가 부산바닥에서 배타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뭐 배 타는거 예나 지금이나 좃같은 직업이고, 뭐 한마디로 막장찍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뭐 그 할배의 큰 아들도 또 배를 탔으니 2대가 생고생을 한 셈이다.
참고로 제주공항 건설할 때에 유골이 한 무더기로 나왔다고 한다. 그 것에 대해서 원인 따위를 설명하려고 한 한국인간들은 아무도 없다. 그냥 우익깡패들이 어쩌다가 폭력을 쓴 거다. 그따구 설명이나 하는 것들이 한국의 엘리트 새끼덜이다.
아니라면 반박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경상도에 대해서 요즘에는 차별이 논조들이 아주 팽배해졌지만 내 위로 사실 본인의 에미만 경상도인이다. 할매는 동란으로 피난와 있던 경기도쪽 사람이라고 들었던 것 같지만 뱃놈 마눌 하기 싫어서 소싯적에 도망갔단다. 뭐 나는 그분을 본적은 없다. 그러니까 내 혈통에서 경상도인은 단 1대만 섞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경상도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으니까 그들에 대해서도 항변할 수 있다. 물론 대구에는 사족들의 지방화라고 해서 개성의 사족들이 지방으로 이식된 조직으로부터 기인하는 지배계급이 실제로 존재한다. 소싯적의 강남의 학군을 본 뜬 미니 학군인 수성구의 학군이라는 것도 존재하고 말이다.
그러나 다수의 경상도인은 단지 지방인에 불과하다. 그들은 재벌들이 장악한 경제구조내에서 용역이나 제공하는 것이 인생인 줄 아는 별반 답 없는 놈들이 다수일 뿐이다.
그리고, 역사에 관해서 말하자면 친일파 작자들의 유사역사학으로부터 신라가 강역의 태반을 놓쳤다느니 하는 개소리가 나왔지만 정작 통일신라보다 더 악랄한 방식으로 한국을 통일한 것들은 고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한 고려계의 카스트적인 계급인 인서울 북촌의 한량이나 양아치의 무리를 표방하던 서북청년단 새끼덜에게 그들에게는 하급 인종으로 간주되던 제주의 지방민들이 마구 학살당한 것이 바로 4.3사태이다.
후삼국이 정렬되었고, 고려 또한 한민족계의 국가였다는 역사관부터 타파되어야 한다. 그 것은 결코 동일 민족내의 무브먼트가 아니며, 당시의 신라의 변경지대로 난입해온 이민족들이 경순왕과 견훤의 한민족 동맹을 공격해온 것이다. 즉 이민족이 한민족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후에는 승자의 관점에 따라서 마치 그들이 애초에 작동하던 한민족 문명내에서 받아들여진 외국인도 아니고 아예 근본이 같은 종자라는 식으로 각색된 것이다.
그 것이 바로 그들의 프레임인 '근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려라는 국명을 썼지만 정작 고구려의 지배층이었던 자들도 아니고 실상은 뱃놈들의 3세인 내가 보기에는 왕건이라는 놈의 거점이었던 지역은 오늘날에도 중국계 선단들이 자주 출몰하는 바로 그 지역이다.
오늘날 분단된 지정학 내에서는 서해5도의 꽃게 어장과 백령도 요정도로 설명된다. 그러나 신라공권력따위는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할 수 있었던 짱개놈들은 신라때에는 아예 예성강 일대에 그들의 배를 접안하고는 거주구까지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뭐 부연설명을 하자면 지금에야 어차피 배들의 내구성도 비약적으로 발달하였고,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연기관이 실렸기 때문에 추진력을 쉽게 얻을 수 잇어서 서해5도에서 조업하거나 밀수하는 배들이 다시 산둥반도로 돌아가기에 용이하지만 신라말기에는 그들은 서해의 황금어장에서 조업을 하던가 밀수를 하고는 그냥 바로 그 근처의 해안가에 정박했던 것이다.
그러한 짱깨새끼덜이 무리를 이루더니 곧 한민족의 국가인 신라가 존재하던 경주까지 군세를 밀어붙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기성의 고려나 조선의 역사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기술했던지 간에 그 것 내에서 후삼국이라는 구도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견훤은 정작 오늘날의 안동과 상주일대에서 경주로 남하하는 고려군을 막아내었을 뿐이다. 이게 과연 독자적인 국가의 리더의 행태라고 볼 수 있는가?
견훤은 어디까지나 신라의 충신이었고, 후대의 조선이나 고려조가 한민족을 정복한 뒤에 성립시킨 전제화가 일어나기 이전의 지방분권이 인정되던 신라식 봉건제 내에서 전라도지역의 대영주로써 왕이라는 칭호를 허용받았거나 아니면 단지 후대에 고려계 지배계급들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divide and rule을 위해서 견훤에게 왕칭을 부여해서 경순왕과 대립하는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견훤이 신라의 디펜스를 해주냔 말이다.
즉, 이 것은 천 년동안 자행된 뿌리깊은 지배층의 거짓말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조내에서도 고려계의 시조인 정몽주와 길재라는 인간의 후학이 아니면 관직으로의 진출이 심각하게 제약을 받았는데, 그 것을 사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배타적인 학계의 문제로 보이는 것 내에는 실지로는 고려종족주의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요컨데, 조선왕조내에서 사족으로 행사하는 자들은 고려조나 조선조에서 공을 세워서 극적으로 충무공마냥 공이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었던 토성출신이 아니라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고려계 성분이었던 자들만이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한 구조내에서 인서울의 한량이나 양아치라는 것들도 지체낮은 고려족들의 후예들로써 한민족들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이었고, 그러한 그들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남부의 한민족들과 별개의 거주구를 형성하고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계급투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1948년의 제주에서는 그러한 경계가 허물어졌던 것이다.
요컨데, 군민의 사사로운 이동이 제약되고, 오가작통따위로 연좌되는 오늘날의 북한마냥 지독하게 폐쇄적인 조선왕조내에서 대부분은 삼한계 피지배민들은 또한 그들과 똑같은 신분인 것들만 평생 보다가 한 마을에서 나서 그 마을에서 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실상 정복자들로부터 기인하는 지배계급이 서울이나 개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양반들이 후삼국은 닥치고 후삼국이다라고 그들이 뭐라카면 그냥 예, 예 했을 뿐이라고. 뭐 달리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알만한게 없잖아.
그리고, 현대의 한국사라는 교과목조차도 그러한 시대의 답습된 경직된 사고방식만 전달하는 엉터리라는 것이다.
참고로 그러한 삼한계 피지배민들의 거주구를 고려조에는 향, 소, 부곡으로 정의내렸다. 반면에 지배자들은 중경 개성이나 서경 평양이나 남경 서울에 거주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당시에도 서울은 메트로폴리탄이 된 지금과는 달리 인구 90만 정도의 특정한 지배성분과 하인들을 포함한 그들의 식솔들만이 사는 거주구의 형태를 띄었고, 물론 그들에게 용역을 제공하는 답십리의 하류들과 같은 하류들의 거주구도 존재하긴 하였다.
다시 말하면 1950년까지 서울은 918년에 한민족들을 제패하고 왕이 되었다는 중국계 이민족집단의 후예들이 계급을 형성해서 자자손손 먹고 사는 지극히 신분제 사회적인 거주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왕조 자체가 매우 엄격하게 이러한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이 그닥 섞이도록 하지 않았다. 그러한 방식으로써 전제주의가 요구되었다.
요컨데, 서유럽마냥 이민족 지배자들이 지역에서 봉건영주로 지배했다면 오랑캐 지배자들과 현지인 피지배민들의 구조는 비교적 자명하게 다가왔을 터이지만 전제왕조를 표방한 고려와 조선에서 그러한 봉건적인 특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방행정체로 내려오는 지사나 총독들의 통치는 단지 임기제상으로만 구현된 것이었고, 그들이 특정 지역에서 항구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왕조가 강력하게 금지하였다. 대신에 주기적으로 로테이션을 굴렸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오랑캐무리의 집단이라는 관점보다는 단지 교육받은 엘리트 집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초기의 소위 후삼국때의 문제로부터 정작 후백제와 신라는 연합해서 별안간 북방에서 내려온 침략자들을 방어하고 있었고, 그들은 패하였다.
즉 기원후 900년경부터 한민족들은 외세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을 가지고 고구려를 물타기 하는 논리는 여기서 타파할 수 있다.
애초에 북한지역은 당시에는 통일신라의 영토에 들어가지고 않았던 지역이며, 고려조의 공격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당시에는 단지 아웃사이더였을 뿐이다.
신라말기의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똥줄이 터진 지역은 한민족의 참중심지이자 한민족 국가의 발원지이기도한 경상도와 전라도와 충청도에 그쳤던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물타기 되는 지점은 또한 많은 신라계의 영주들이 고려에게 저항하기 보다는 항복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 그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줬기 때문에 고려조의 noble들 전체가 침략자이다라고 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것이지만 왕조는 분명히 정작 한민족을 침략했던 놈들이 세운 것이 맞다.
넷플릭스 영화 아웃로 킹에서 묘사되지만 영주나 왕이라는 놈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인이고, 정치인들은 애초에 그닥 싸우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외세가 침략해 오더라도 그들의 지위와 영지와 신분만 보장받으면 끝인 것이다.
영화 아웃로 킹의 도입부에서도 스코틀랜드의 영주들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2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들의 영지와 타이틀만 유지하려고 하듯이 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견훤이라는 사람은 신라조에 대단히 충성스러운 고려에 대항하는 영주세력들의 우두머리로써 끝까지 고려족들과 싸워서 한민족들이그들에게 종속되는 것을 막고자 한 사람이었지만 고려조에 의해서 격하되었다.
게다가 신라왕은 그닥 심지가 굳건하지 않아서 정작 견훤은 싸우고 있는데, 그는 항복할려고 했던 것이다. 마치 연개소문은 싸우는데, 보장왕이라는 놈이 항복하고는 지위나 유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한국사회를 천년동안 지배하던 고려계 엘리트들은 견훤이 희대의 쌍놈이라는 식으로 했지만 그 것은 단지 승자의 관점일 뿐이다. 물론 견훤이 경애왕을 죽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훤은 신라를 끝까지 유지시켰던 것이다.
세계사적인 일반적인 정치구조를 보더라도 권신이 싸울려고 하는데, 왕은 항복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왕은 폐위될 수 밖에 없다. 만약에 후삼국이라는 구도가 진짜라면 견훤이 스스로 신라의 왕이 되면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점부터 퍼즐을 제대로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간 한국인들을 그냥 지방의 생산계급으로써 서울놈들이 지록위마를 해도 이거는 말이네요 요 지랄이나 했으니까 비판적인 태도랄 것도 가져본 적이 없고, 그냥 견훤이 신하가 왕을 폐위한 쌍놈이다 요지랄이나 카면 그냥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역사서술을 전적으로 다시 검토하면 그 모든 기술들을 서울과 개성에 거주하였던 경화사족계의 엘리트 집단의 입맛대로 전적으로 각색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4.3사건으로 가게 되면 당시에는 김춘삼이나 김두환 거지나 양아치도 안동 김씨라는 그거 하나로 갠세이를 부리던 그러한 악질적인 신분사회였고, 그러한 종자들로 간주되던 서북계의 고려계 성씨 좀 쓴다카는 것들이 단지 창씨개명으로 지어진 이름을 쓰는 것에 불과한 자들을 악질적으로 학대한 것이다.
피천득이 창씨개명으로 피씨를 쓰게된 사연을 읽게 되면 19세기까지는 성씨의 유무로 삼한계 피지배민이냐 혹은 지체 낮은 고려계나 지체 높은 고려계냐 아니면 삼한계 지방아전따위의 중간계급인지의 여부가 애초에 판가름 날 수 있었다.
여기서 아전들은 본래는 신라와 백제의 지배계급이었지만 나중에는 관청에 종속된 종사계급으로 떨어진 자들이고, 게다가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저서를 읽어보면 조선조의 노예들은 왕에게 불충하다고 해서 떨어진 자들로써 추가된 자들 외에는 애초에는 고려에 저항하던 신라와 백제의 지배계급들이 영원한 천민이 되는 것으로 격하되었다.
그 뒤에 영조가 천민을 폐하였다고 하지만 실상은 세금을 뜯어내기 위한 호구지책일 뿐이다.
요컨데, 신라의 화랑이나 백제의 싸울아비라는 종자들은 고려를 상대로 한 견훤 주도의 군사활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자손들까지 영원한 천민이 된 것이다.
게다가 노비종모제를 강요해서는 그들은 심지어 모계를 통해서라도 행여나 신분이 재상승 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강제하였다.
그러한 것이 오랑캐 지배사회이던 고려조와 조선조의 실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은 현대에도 잔존하고 있다. 그 것을 잘 못 깨닫는 인간들은 그게 대구인줄 알지만 대구는 사실은 양반동네이고, 그게 가장 극심한 지역은 인천이다.
인천에서는 학교에서부터 존나게 위계를 가른다는 달구새끼덜 싸우는 것 마냥 하는 그 짓거리를 존나게 하고 있다. 뭐 수도권에서 알만한 놈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인천은 또한 자한당계의 오랜 텃밭이기도 하다. 전두환 사우 새끼가 얼마전에 국회의원이 된 곳이다.
요컨데, 상류층들의 봉건사회적인 지배구조는 한국전쟁 이후에 타파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설명하지만 정작 중하류들 내에서 고려조적인 위계질서가 특정지역에서는 여전하다.
고려조는 애초에 해상세력의 성격을 띄었고, 남경 한양이라고 해봤자 거기서 성문만 벗어나면 죄다 백제계 농민들 투성이인 그러한 공간에서 농민들은 그다지 지배계급과 정렬되지 않았다고.
대신에 그게 극심한 새끼덜은 뱃놈들로써 뱃놈들이 정작 지체낮은 고려족들을 형성하였다고. 뱃놈들과 염전 마스터 새끼덜이지.
그러한 것으로써 애초에 지체 낮은 고려족 새끼덜이 지랄병하던 문화가 바로 일진문화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 것은 본래 제물포의 뱃놈들이나 도성의 양아치들이 삼한계 피지배민들 앞에서 으름장이나 놓고, 사람을 슬금슬금 우려먹으려는 그따구 행사머리에서 비롯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따라서 일진 문화가 극심한 곳은 강남과 인천이다.
그러한 새끼덜이 같은 피지배민족 한민족으로부터 동류의식이 강한 삼남지역이나 제주도지역으로 내려와서는 그들의 행사머리를 부린 것이 4.3사태나 한국전쟁내에서 발생한 학살사건들이다고 간주할 것이다.
그러한 짓거리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여기서 또 본인의 집안사와 결부시키자면 경상계인 본인의 외가는 울산과 경주의 접경지대의 사람들인데, 정작 본인의 외조부의 여동생이었나가 그들한테 맞아뒤졌다고 한다.
참고로 포항과 대구에서 북한군의 최종공세가 저지되었기 때문에 경주나 울산에서 빨갱이 공비한테 맞아뒤졌을리는 전혀 만무하고, 경주나 울산에서 뒤졌다면 보나마나 우익깡패 새끼덜한테 뒤진 것이다.
그러한 동병상련 때문에 내 외증조부는 당시에 주홍글씨가 박힌 제주 사람과의 결혼을 허했다고도 한다.
다시 본론으로 와서 애초에 그러한 고려계 뱃놈새끼덜에게 조세운반의 혜택을 주기 위해서 박제가나 박지원같은 사람들이 도로교통의 확대를 외쳐도 조선왕조는 복지부동,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뱃놈들에게서도 지방인으로 간주되는 경상계나 전라계의 지방 뱃놈이 있는가 하면, 제물포의 고려계 뱃놈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자들간의 위계질서를 소싯적에 거문도에 주둔하였던 영국인들이 잘 기록해놨다.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조세를 받으려 다니는 조운아치 새끼덜은 딱 제물포 양아치 밑의 동영상 새끼덜마냥 삼남계 거주민들에게 순전히 위계를 재인식시키려는 목적 따위로 상시적으로 폭력을 가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뱃놈 새끼덜 사이에서 그 폭력위계가 아주 특별하게 강하다는 것은 뱃일에 대한 일반적인 평판으로 자리잡아 있고, 그러나 실상 그 문제는 고려조의 해상세력과 신라, 백제인의 위계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내에서 선주나 대형수산법인들은 출신 성분이 고려계 뱃놈들 가문인 경우가 많은 반면에 선원들이나 하급 사관들은 그들이 1950년대까지만 해도 그냥 빡치면 패 죽여도 되는 경상계나 혹은 전라계의 토착인들이던 구조로부터 그 업계내에서 폭력과 착취가 만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이제는 산업화와 더불어서 정작 상경한 지방인들이 다수인 수도권의 인구구조로부터 지방학교에는 없는 짓거리를 특정 지역새끼덜만 자행한다는 것을 한국인들을 거의 깨닫고 있다.
그러한 행사머리 자체가 애초에 고려계의 소수 지배성분이자 이민족의 후예들을 자처하는 선민적인 지배계급의 집안 새끼덜의 짓거리라는 점을 인지한다면 한민족내에서 어째서 지독한 노예제가 성립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같은 민족끼리는 노예를 만들지 않는다는 논거를 채택해서 비판할 수 있다.
신안염전에서 뒷산에서 발굴된 시신들 중에는 다리인대나 건이 고의적으로 손상된 시신들이 있었는데, 그들 신안염전주들이 실상은 고려가 삼한인들을 정복한 뒤에 염전따위에 인스톨된 고려계 뱃놈들이고, 반면에 묻힌 자들은 전라계나 경상계나 혹은 경기계의 여느 한인들인 것이다.
여기서도 다수의 한국인들의 농경커뮤니티내에서는 그들에 대한 경각심이 왜 없었는지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애초에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재수없게 신안따위에 끌려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분리된 채로 인지부조화를 지녔던 것이다.
그러한 인지부조화는 무려 21세기 초까지도 존재하다가 21세기가 되어서야 인터넷의 발달과 한국인들의 소득증가와 함께 여행이 빈번해지면서 비로소 까발려지게 되었다.
즉, 불과 50년전만 하더라도 뱃놈들의 세계나 염전에서 아주 악질적인 짓거리가 자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다수의 한인들에게는 금시초문이었고, 따라서 그 것이 고려계 뱃놈새끼덜이 삼한계 한인들을 아주 개좃으로 보고 그 지랄을 한다는 관점조차도 평생 농사나 짓던 놈들이나 겨우 도시화를 맛본 도시화 1세대들에게는 난센스였던 것이라서 역사 또한 그 인지수준에 맞게 적당히 적혔던 것 뿐이다.
그러나 중국계 고려족들의 한민족에 대한 지배는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맞으며, 그러한 구도내에서 고려조는 오랑캐왕조가 맞다.
그러한 오랑캐들이 신라와 백제, 가야계 한국인들을 정복한 뒤에 그들 또한 한국인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서 고구려 또한 한국역사라는 관점으로 다수의 한국계 피지배집단을 세뇌시키면서 오랑캐의 한국인 지배를 합리화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지체 높은 오랑캐들 뿐 아니라 학연, 혈연, 지연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적폐는 실상 천년전에 난입한 지배집단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수천년 전에 인도로 난입한 아리안계 정복집단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한 정복집단들이 그들의 특권 사회를 이루면서 divide and rule을 자행하는 결과가 바로 카스트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은 조선왕조내에서도 사농공상이라는 것으로 표방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유통이나 상권이 장악된 구조를 보면 그 것은 여전히 계급적이고, 대형유통법인이나 주요도매시장의 인간들은 존나 소싯적부터 그 지랄하던 놈들만 지금도 해 쳐 먹는 구조다.
그들이 한인들 전체의 이득을 꾀한다는 말보다 개소리가 없는 것이다. 시금치 값 산지에서는 폭락이라도 마트에서는 존나 죄금 샀는데, 만원이다 그런 말이 다 그런 것이다.
그간 한국사회의 봉건적 구조의 타파는 정권창출 위주로만 인지를 끌었지만 정작 애초에 조선조의 시전상인이나 조운아치들과 같은 중간계급들도 실상은 지체낮은 고려족들로부터 그들이 한국의 유통과 상권을 장악하고, 금난전권을 통해서 여느 삼한계의 종자가 그들의 필드에 뛰어들려고 하면 법으로 금지함과 동시에 위계와 위력으로써 내팽개치게 만들던 그러한 관습에 의해서 여전히 한국경제는 통제되어 있다.
그러한 위력과 위계를 부리는 새끼덜이 유소년때부터 그 지랄을 학습하는 것이 소위 일진놀이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계급만이 민주화를 받아들인 것처럼 모양새를 내는 한국은 여전히 봉건적이다.
한국의 경제 위계는 바로 바이샤계급들의 여전한 위계와 위력에 의한 갑질문화로 정착되어 있으며, 금난전권이라는 것은 그들의 독점권을 보장할 뿐 아니라 애초에 지방의 수드라들이 함부로 그들의 필드에 댈 수 없게 하던 금율로써 공법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고려계 바이샤들이 오늘날 물의를 일으키는 염전주나 선주들, 수산업계법인들, 노량진과 소래포구, 청량리과일시장, 그리고 인천지역 일진, 조폭, 그리고 강남조폭, 유흥업계 이런 놈들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새끼덜에게 정복당한 다수의 한인들은 애초에 수드라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수드라가 아니면 불가촉 천민을 의미하는 파리아나 달리트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의 농수산업 유통구조내에서 그들이 농민들과 이익을 쉐어하는 것은 실상 그들이 매점매석을 하고는 또한 공법까지 동원해서는 강제로 매대지 외에서는 사사로운 거래가 일어나기 힘들게 하거나 설사 일어나더라도 매대지에서 책정된 가격체계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그러한 짓거리를 통해서 강요되는 것이다.
그러한 한편으로는 한국의 집값과 마찬가지로 종로와 역상동의 금융가들로부터 기인하는 은행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빚으로 된 유동성을 통해서 가격을 지지시킨다.
다수의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경매시장도 죄다 경매대출로 가격이 지지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출로 땡긴 가격은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안게 된다.
잘 모르고 사는 놈들은 그래서 덤탱이를 맞는 것이고, 애초에 이 고려족적인 특권세력은 그다지 같은 동족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다고까지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갸들한테 금마덜이 어릴 적에 일진놀이 하던 그 때부터 그들은 여느 한국인들은 아주 깔로 보는 그러한 정신세계를 형성한 그런 놈들이다.
그런 놈들한테 유통을 장악당하고 있으니까 맨날 덤터기나 쓰고, 농민은 자살하고 그 지랄이나 당하는 것이다.
뭐 꼴랑 정권교체인 1987년의 혁명으로 진정한 혁명이 완성되었다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 최홍철 저런 놈 싸그리 죽여버려야지 나는 대한민국에 참혁명이 완수되었다고 간주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윤짜장, 최홍철 이런 놈덜은 소싯적에 남부한인들에게 침공해온 오랑캐 새끼덜의 자손새끼라는 것들이 금마들의 대대로 형성해온 위계적 의식체계를 참한국인들에게 투사하는 것이고, 고압적인 법관 새끼덜이나 유통적폐들 또한 그러한 구조에 카운터파트가 되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저 하는 특권계급일 뿐이다.
그러한 지배가 재창출 되는 지역으로써 서울과 대구, 인천의 인스톨된 자들, 그리고, 서울의 대학들이 봉건적 위계의 현대적 재창출을 하고 있는 것에 한국인들을 속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언론에 한국의 법조계는 실상 특정대학교 출신에게 완전히 장악된 것으로 묘사된다. 바로 경성제국대 말이다.
애초에 그 모든 법관은 태반이 서울에서만 탄생하도록 제어되던 것이 모양새가 껄끄러우니까 지방에도 로스쿨이라는거 맹글어준거 아닌가.
그래봤자 조국 딸사태에서 보였듯이 부산, 대구 구경하러온 강남2세분이 내려오는 것 정도지만 말이다.
사실 조국사태 그거 빙산의 일각이었지만 더 열받는 것은 그들은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면서 한국인들을 농락하려고 했잖아.
그 농락을 영어로는 manipulate라고 하지. 조종하다는 뜻이 있는 단어인데, 뭐 갖고 노는거지.
뭐 요즘에는 스폰문화가 발달해서 말이다. 장학금이라고 적고 스폰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뭐 참고로 2000년대부터 서울권의 학생회장들 교육재단으로부터 죄다 스폰받고 학교다녀서 삼성장학생에 이은 금마들 똘마니로 육성된 놈들 존나게 많다는 것, 다 아는 놈은 아는 이야기이고.
지금 80년대 학번들 민주화세대들이 물러나고 나서도 제대로 된 한국의 민주화 모멘텀이 유지될까? 나는 비관적이라고. 뭐 학교돈으로 단란주점, 룸싸롱 가던 놈들이 한두놈이어야 말이지.
버닝썬에서 재벌 3세한테 조금 이용가치가 있는 놈이면 양주 얻어먹은 것들도 존나게 많고.
애초에 서울대 들어가면 임직원 2세모임, 사장 2세모임, 좃소급 사장2세모임, 대기업 1차나 임직원 모임 뭐 다 나뉘어 있잖아.
갸들이 인싸짓하고는 농어촌전형은 아싸로 규정하는거지 뭐. 존나 열받는게 뭔지 알어? 그 부류에 껴 다니는 보빨 잘 하게 해줘서 그 부류인 보지한테도 치인다는거다.
뭐 아니라고? 뭐 나는 양아치 새끼덜 좃집인 줄 알았던 년이 알고보니까 같은 대학에서 나보다 2학년 높은 보지였다는 것을 그년을 교양시간에 마주쳐서 깨달은 일도 있다. 씨이벌 공부 왜 했냐 자괴감 들었다. 나중에 생각해봤는데, 그 년이 나한테 나쁜 소문이나 안 퍼뜨렸으면 다행이었겠지. 그리고, 뭐 나름 쌔끈했던 것인데, 나는 그년 궁둥이도 못 만져 봤다.
뭐 씨이벌 선배~ 요지랄카면서 다가가야 되냐? 그냥 나도 좃집아 내 좃이나 받아도 요 지랄이나 카고 싶었는데, 그년이 꼰대처럼 가오잡길래 그냥 꺼지세요 해 버렸다. 뭐 지금은 오래된 기억이지만. ㅋㅋㅋㅋㅋㅋ 2등급 가지고는 인생 안 바뀌더라. 노오예일 뿐이더라 씨foot.
나는 그년 씹라 지금쯤 임신도 못하고, 푹푹 늙어서는 노래방 도우미나 되었기를 기도해준다. 뭐 한국의 출산율은 워낙 낮아서 말이다. 꽤 높은 확율이 있지. ㅋㄷㅋㄷ 씹라 쌤통이다.
한국에서 있는 새끼덜이 행사하는 것들 죄다 고려조식 위계이고, 그들은 오랑캐이지 한국인이 아니다. 그게 내가 가진 논조이자 역사성이다. 뭐 아니라고? 학교에서 배운 거나 읊고서는 머리로 받아들인 니덜 것은 뻔하다 이 것들아. 나도 소싯적에 그런 믿은 가졌지만 지금은 버린지 오래이다.
전라도의 농민, 경상도의 공돌이 이게 뭐 사람 할 짓이냐? 조선소 일주일만 일해봐. 토나온다고 바로 추노하게 될꺼다.
옥천HUB가 있는 옥천이 박정희 마눌이던 육영수라는 놈의 육씨집안이 큰 땅을 가졌던 육씨세가의 지역인 것은 아냐? 그 동네 물류센타들 임대료 죄다 육씨덜이 아직도 잘 받아먹을꺼다.
옥천HUB라고 하면 뭐 한국에서 알아주는 Hell이라고 할 수 있지 거기서 씹라 시급 9000원 받고는 니가 상하차 존나 할 동안에 그거 토지주는 그냥 앉아서 너보다 돈 많이 버는거다. 그게 육씨가문이라는 거다. ㅋㅋㅋㅋㅋㅋ 뭐 지금은 명의상으로는 대리인이 관리할지는 모르지만. ㅋㅋㅋㅋㅋㅋ
쿠팡물류센타도 죄다 남의 땅에 세운 거더라. 그런 지점에서 한국사회 존나 소싯적 지주새끼덜 이런 놈들만 돈 잘 버는 구조다.
한국에서 땅이라는 것은 박경리 소설 토지로 묘사되는 그런 것 아니더냐. 한국에서 공부해서 지주가 될려면 법관이 되면 된다.
김도읍이도 부산권에 땅 많이 사 놨다더라. ㅋㅋㅋㅋㅋㅋ 한번 건물주, 토지주는 영원한 건물주, 토지주다. 뭐 열심히 일해서 부자된다고? 조까라 그래라 진짜 부자는 일 안 한다. 참고로 자선단체에 일하는 내 친척에 의하면 세금내고도 세만 월 3천넘게 받아내는 놈들이 지방에만해도 존나게 많단다.
노예새끼덜은 노예끼리만 어울리니까 뭘 모르는거지 대한민국에 부자는 존나게 많단다. ㅋㅋㅋㅋㅋㅋ 뭐 태반은 아직도 고려족이 한민족을 지배하는 봉건적인 위계사회의 기득권들이 그 땅들의 주인이고 말이다. 뭐 남의 땅에서 좃소나 차린 것도 대단한 것처럼 해서야 천외천의 경지도 모르는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일 뿐이지.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