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interbest.net/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28&page=4&page=4 씨-벌교황 안티를 끌어모았던 독한손가락 키보드 워리어 & 악플러들의 아버지 디시뿐만 아니라 디씨 외의 커뮤니티에서도 특유의 욕설과 거친말투 그리고 비논리적인 주장으로 유명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악플러다. 그가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당시 디시뿐만 아니라 전 인터넷을 이용하는 인구가 씨-벌교황을 모르고 인터넷하는 사람과 씨-벌교황을 알고 인터넷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졌을만큼 그 격차는 대단했다. 처음 두루넷 신정보동호회부터 시작해 딴지일보와 각종 언론사 사이트를 돌아다니더니 막판에는 디시로 자리를 옮겨 디시의 전설로 거듭난 유저이다. 그는 첫 발걸음을 떼었던 두루넷 신상정보시절부터 최고의 악질이었다. 뒤이어 말할 싱하나 다빈치코드가 비교적 개념있는 유저로서 첫 스타트를 끊은 것과는 달리 그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등장한 악질유저였던 셈이다. 이야기했듯 첫 시작은 피씨통신 두루넷 신정보동호회였고 그는 거만한 태도와 거만한 말투 그리고 저질스런 사진까지 올려가며 많은 이들을 괴롭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두루넷과 신정보동호회도 자중을 부탁하다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씨-벌교황을 축출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축출이 부당하다며 두루넷을 떠나 더 큰 인터넷으로 갈 것임을 천명하며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런 작은 곳에서는 나의 뜻을 펼칠수가 없다. 나는 이런 쓰레기 같은 x xx xxxx 같은 곳을 떠나 내 뜻을 좀 더 펼칠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 나를 추종하는 수많은 이들과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이여 나를 따르라. 이제는 너희들의 힘이 필요한 시기니. 당시부터 씨-벌교황에게는 특유의 추종자들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새롭게 인터넷에서 터전을 잡은 곳은 인터넷 커뮤니티 언론사 '딴지일보'였다. 당시 인터넷 진보언론의 선두주자로 꼽히던 딴지일보는 지금의 디시보다 훨씬 월등한 사이트로 알려졌었고, 그로인해 많은 진보적인 네티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등장한 전설의 악플러 씨-벌교황 때문에 딴지는 순식간에 뿌리가 뽑힌채 흔들리게된다. 댓글 게시판을 무려 1500페이지나 거친 욕설로 관광하고 멀쩡한 기사를 삭제하는가하면 올라온 기사를 마음대로 편집하고 조작해 올리는 행위가 씨-벌교황의 손에서 자행되었다. 딴지는 혼란에 빠졌고, 딴지의 우두머리라 볼 수 있는 총수 김어준은 이에 격분해 직접 씨-벌교황에게 자제할 것을 요청하며 그를 협박하지만 씨-벌교황은 김엉준의 말에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계속 막장스러운 행위를 이어나간다. 씨-벌교황의 잔혹한 테러에 견디지못한 딴지는 3일여간이나 사이트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유저들의 출입을 막고 사이트를 개편하는 초유의 일을 벌이는데 이것은 한 개인이 진보인터넷 언론사의 대부격으로 불리던 사이트를 아예 반폐쇄 시켜버린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대사건으로 역사에 남았다. 현재는 점차적으로 힘을 잃고 죽어가고 있는 아쉬운 딴지일보
http://www.ddanzi.com/ 딴지 김어준 총수는 곧바로 씨-벌교황을 고소하고 딴지를 복구시키는데 어이없게도 얼마 후 그가 고소 취하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딴지의 유저들은 격렬히 항의하며 씨-벌교황의 구속과 처벌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반대로 씨-벌교황을 욕하는 글들이 씨-벌교황의 적이라 볼 수 있는 딴지의 손에서 직접 지워지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가 사법부의 힘으로도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큰 유저이며 함부로 그를 건드릴 수 없다는 그럴듯한 소문이 인터넷상에 나돌기 시작했다. 씨-벌교황이 부자이며 권력자라는게 확실하다는 소문이 불어나자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미친듯이 더 늘어만갔고, 이에 씨-벌교황은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목소리를 높여간다. 씨-벌교황이 자신과 자신의 부모의 삶을 적어놓은 글 이거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다. 뭐라고 욕 하지마라. 우리 엄마 아빠 집 내가 태어나기 전엔 진짜 잘 나갔다. 엄마는 대구에서 제일 큰 식당, 엄마의 아버지는 국내 최대 금광을 캤고. 아빠는 서울에서 일본인 공장 여러개 물려받아서(친일 아니다. 하도 아빠가 성실해서 일본인이 다 남겨주고 갔다) 공장도 늘리고 했다. 아마 그땐 우리나라 10대 재벌 안에 들었을 거다. 진짜 거짓말이 아니고 돈이 넘쳐나서 항아리에 넣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방 바닥 밑에 깔고 살았다. 엄마 아빠는 결혼을 했고 그러다가 아빠가 다른 사업을 차렸는데 완전 말아먹고 엄마네 집 재산도 다 털어넣고 하다가 다 말아먹었다. 엄마 아빠가 부산으로 와서 임신 했다. 아빠 엄마는 존나게 싸우다가 엄마 혼자 아빠를 다시는 안 볼 작정으로 미국 큰이모 집으로 가서 나를 낳았다. 그러다가 아빠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면서 엄마를 미국으로 찾아왔단다. 난 4살 때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태어나기 전엔 어떻게 살았는지 아나? 집 살 돈도 없어서 아파트 지하에 신문지 깔고 차가운 바닥에서 살았단다(아파트 주인 허락받고). 팔뚝만한 쥐가 돌아다니고 불빛도 안켜지고... 똥 쌀 데도 없어서 검은 봉지에 똥 싸서 밖에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단다. 아빠가 하는 사업은 다 망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아무도 동업하려 하지 않고 그러다가 지금 대덕연구단지 연구장으로 있는 작은 삼촌이 얼마 쥐어줘서 집을 구하고 포장마차를 하게 됐다. *작은 삼촌은 옛날에 음료수 회사에 있었다. 써니텐 알제? 그거 우리 삼촌이 만든거다. 포장마차하다가 경찰때문에 도망간 적도 많았고 빚쟁이들 와서 개판치고 간 적도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유치원 다닐 때까지도 빚쟁이들 오기도 했다. 쩝... 그러다가 심성 고운 조직폭력배가 아빠를 돕게 됐다. 아빠가 옛날에 돈칠갑으로 이름 날렸다는 소식 어떻게 듣고 뒷조사 다 했단다. 성실한 사람인지 능력은 있는지 다 조사하고 조폭 아닌 일반인 한 명이랑 그 조폭이랑 동업하게 됐다. 아빠를 포함한 세명이서 미국 신시네티로 건너가 대리석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시작한지 1년도 안되서 모든 빚을 다 갚았고(그때가 내가 5살 때였다.) 약 10개월만에 돌아온 아빠의 덕택으로 우리는 다시 서울로 가서 면목동에 꽤 괜찮은 집을 사게 됐다. 사업 같이 하는 조폭의 연줄로 닿은 이태리 사람의 도움으로 아빠는 이태리로 갔다. 거기서 로마스톤(대리석 회사다) 사장의 자금 지원으로 중국 하문(씨아먼)에 대리석 지사를 내고 아빠는 지사장이 됐다. 사업이 번창하니까 롯데랑 한진 중공업에서도 약간의 자원을 지금했다. 순식간에 우리 집 재산을 불어났고 아빠는 자신의 순수 자금으로 독일에 지사를 내려고 했으나 독일은 대리석 전부를 프랑스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그건 실패로 돌아갔다. 재산의 반 정도를 날리고 다시 남미로 갔다. 거기서 꾸에뽀스인가 하는 곳에 지사를 내는 데 성공하고(그 나라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난다) 자그마한 택시 회사도 차리게 됐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지금의 한국 다임러 크라이슬러 지사장과 손 잡고 여기저기에 건물을 짓고 아파트 자금 지원을 하고 이익을 먹기도 했다. 아빠가 여행과 운동을 좋아해서 전국 곳곳에 콘도와 스포츠센터를 지었다. 지금 우리 집 자산이 1700억인데 자랑 같지만 이거 진짜다(우리 동네(강남구)엔 자산 1000억 넘는 놈 수두룩 하다. ). 위의 얘기도 진짜고. 난 그저 이 글을 통해 우리 집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또 사람 인생은 한순간에 변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진실이건 아니건 씨-벌교황의 글은 굉장한 흡입력이 있었기에 사람들을 계속 끌어모았고, 실제 씨-벌교황은 자신이 돈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려는듯 추종자들끼리의 모임의 모임비를 모두 내기도 하는등(물론 자신은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의 행동을 이어나갔다. 씨-벌교황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돈 몇 푼에 자신들의 영혼을 판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채 인터넷 세계의 강자 씨-벌교황을 무조건 추종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씨-벌교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양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런 추종자들은 무서울 정도로 여론을 조작하기도했다. 이에 만족한 씨-벌교황은 사실상 성공적으로 딴지일보를 접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활동범위를 넓히기로 작정한다. 각종 사이트에 그는 자리를 잡는데 (이 중에서는 물론 가짜 씨-벌교황 즉 자신들의 클론 추종자도 있다고 씨-벌교황 스스로가 밝혔다) 그 중에 한 사이트로 결정된 곳이 하이텔 논객 출신의 김유식이 만들어낸 디지털 카메라 판매 사이트 디지털인사이드였다. 조금씩 딴지의 위치를 위협하며 자유롭고 매너있는 커뮤니티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좋은 커뮤니티로 발전해가던 디시인사이드는 씨-벌교황의 난입시점에서 엄청난 위기에 빠진다. 씨-벌교황이 말하는 자신의 삶 한국에서 대학 다니는 거 아무짝에 소용없다. 난 독일 뮌헨 테크니컬 우니벨지테트에서 제발 와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 걸 마다하고 지금은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지금 26살이고 마누라는 하나 있다. 이 마누라를 만나기 전까지 사귄 여자는 60여명이고 성관계 맺은 여자는 수백 명에 달한다. 에스페란토와 영어 복합 시험 엘레프, 엘테프에 합격했고 불어, 독어, 영어에 능하며 상해어, 대만어, 일어, 서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고 이태리어, 영국 황실어, 라틴어를 공부 중이다. 난 토플이나 토익, 텝스 같은 허접한 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불어할 줄 안다면 Quand il me prend dans ses bras Il me parle tout bas Je vois la vie en rose. 이거 해석해봐라. 불어 공부했다면 수십 번은 들었을 문장이다. KDSir 이란 미국 서버전문 기업에서 월 500의적은 액수를 받고, 광고복권 사업으로 500, 대리석 가공 1,000, 대리석 수출입 1,500, 부동산 500, 채권 500 대략 이런 식으로 번다. 난 미국시민권을 갖고 있으므로 북한에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어서 북한 조개 수입 판매로 500정도 번다. 총합 월 5천의 수입을 올린다.10년의 킥복싱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온몸이 근육으로 번들거리고 182의 신장에 92의 체중이다. 할머니가 독일인이라 외국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게르만 민족으로 보이기보다 앵글로색슨족으로 보인다. 사촌형이 영국 워릭대 박사과정 밟으러 갈 때 주고 간 피아트 바르케타 쿠페, 아버지에게 받은 베엠베 745 Li, 베엠베 540i, 스타크래프트 쉐비밴, 피티 크루저, 시보레 콜벳 컨버터블, 벤츠 SL500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 와서는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게 되어서 부산 매리어트, 그랜드 호텔 피트니스 크럽 회원권은 친구에게 선물했다. 공인무술종합 14단 짜리 놈도 나한테 덤비다 반 불구 되서 지금까지도 부산 메리놀 병원에서 1년째 치료받고 있다. 우리나라 5대 백화점과 6대 호텔, 3대 골프장에서 에머랄드 VIP 회원권을 우선 발급받았다. 다른 거 할 말 없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 씨-벌교황은 사이트 파괴범답게 수많은 욕설과 비난을 자신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올려제끼며 디시를 마비시킨다. 디시보다 발전된 딴지마저 관광태워버린 씨-벌교황의 힘 앞에서 처음에 김유식과 디시인사이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딴지와 디시는 씨-벌교황에 맞서는 접근방법과 해결방법에서 큰 차이점이 있었다. 딴지가 수뇌부와 사이트 운영자 총수 김어준의 수뇌부들의 협상과 대처방법으로 씨-벌교황에게 대체적으로 끌려가는 인상이 짙었다면 디시는 사이트 구성원들이 먼저 앞장서서 씨-벌교황과 맞선 것이다. 이용자 중심의 사이트라는 기치를 내건 디시의 정신은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매너있게 좋게 좋게 설명으로 맞서던 디시인들은 씨-벌교황의 대책없는 악플에 적극적인 욕설로 맞서기 시작했고, 김유식과 디시측 또한 도저히 말로는 대적이 불가능한 씨-벌교황의 찌질성에 디지털 인사이드 네티즌들에게 '욕'과 '비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종의 칼자루를 쥐어준다. 이것은 디시가 대한민국 최고의 커뮤니티로 발전해가는 디딤돌이 되었지만 반대로 디지털 인사이드의 역사를 한순간에 부정적으로 뒤바꾸게 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된다. 악플과 비난이 판치는 디시의 또 다른 어두운 면모는 결국 씨-벌교황이 불러온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분위기 나쁘게 말하면 막장화스러운 분위기는 결국 김유식과 디시의 손이 아니라 씨-벌교황의 손 위에서 결정된 것이다. 씨-벌교황이 말하는 자신의 성장통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이런 소망은 전 세계 어린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시시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그러한 욕구는 그런 시시한 여름 한철의 메뚜기와 같은 열병 따위와는 다른 강렬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열망을 가진 것은 어느정도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난 주위의 또래와 많은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 난 주위와 많은 것이 달랐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사고가 정립되지 않은 나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솔직히 남들과 다르다고해서 내가 남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오히려 난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우월했다. 우리 어머니는 독일인이어서 한국인 아버지와의 혼혈인 훤칠하며 뚜렷한 이목구비의 내 외모는 주위의 짤땅만하고 못생기고 평범한 아시아 몽고리안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내 완력이나 체력은 주위의 또래보다 압도적인 편이었다. 또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성적은 항상 유지하였다. 아버지가 하는 사업으로 집도 부유하였고 소위 말하는 그래, 난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은 그런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한국이나 일본 같은 사회에서 나와 같이 무언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경외이자 곧 동시에 소외를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언제나 혼자였다. 물론 주위보다 우월한 내 스펙 때문에 사람은 언제나 바글바글했다. 그렇지만 정말 진심으로 내게 다가 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혼자인 시간이 많아질수록 난 곧 여럿과 함께 무엇을 하기보다는 혼자 무엇인가를 하는것을 좋아했고 이렇게 점점 혼자인 것에 익숙해진 나에게 아직 어리다는 것은 혼자라는 것의 일종의 장애물과 같았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고 어렸을 때의 여러가지 소망중에 내 가장 강렬한 소원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위에서 말한대로 난 언제나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른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치기로 흉내내는 정도였지만 주로 학교의 쓰레기 같은 놈들이랑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학교에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곤 했다. 또 가끔 여자를 꼬셔 섹스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른의 일을 흉내낸다고 해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른의 행위와 아직 어른이 아닌 자신의 괴리는 생각보다 컸고 그 괴리를 난 참을수 없었다.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표출되어야만 했고 그 표출은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학교에서 싸우고 방과후에 싸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또 싸웠다. 이길 때도 있었지만 지는 때도 가끔 있었다. 그렇지만 거의 주로 일방적인 폭력일 때가 많았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난 모든면에서 우월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이 고등학교 졸업까지 비교적 줄곧 계속 되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니 당연히 성적은 좋질 않았고 대학에 갈 성적은 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재수라도 해서 대학에 가길 원하셨지만 내가 보기엔 대학이란 별 의미없는 샌님들의 집합소일 뿐이었다. 그 대신 위에서 말한 어른놀이를 좀 더 즐겼다. 사람을 패고 술을 마시고, 욕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섹스를 했다. 그렇게 1~2년 정도 지내고 나니 왠지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꿈꾸며 그리던 어른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곧 내게 진짜 어른에서 부족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이라는 것이었다. 그 뒤 난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아버지의 회사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곧 아는 사람을 통해 기무장교로 입대하였다. 군 생활 중에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으며 전역 후에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그럭저럭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0대에 1700억이라면 분명 대단한 성공일테지. 그렇지만 어렸을 때에 그렇게 되고 싶어하던 말 그대로의 어른이 되었고 한국 거의 99.99%의 사람보다 우월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난 왜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 것일까. 다른 사이트에서 씨-벌교황의 위치는 가히 확고했고 또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디시인사이드는 달랐다. 씨-벌교황의 욕설과 악플에 디시와 디시 운영진 그리고 사이트의 주인 김유식이 이를 몸서치리게 괴로워 한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굴하거나 꺾이지 않았다. 디시 1세대 네티즌들은 동급의 욕설과 악플로 씨-벌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을 공격했고 이에 씨-벌교황 또한 당시 몇 개 있지도 않았던 디시의 갤러리들을 모두 욕으로 테러하는 막장행위로 맞선다. 씨-벌교황이 당시 디시인사이드에 도배했던 그의 막장스러운 고정멘트 이 시간 이후로 글 쓰는 개XXX놈의 X새끼는 뒈질 줄 알아라. X질 때 되면 X기미 X같은 숟가락 X나 짜증나게 탁 놓고 뒈진다 XX만한 XX들아. X맞고 싶어서 XX났나? X나게 XX아리 손꾸락 밟아 비비가 찢어 죽이주까? 와 자꾸 손꾸락 화투짝 몬때고 비XX굴 치삿노? 니 XX XX에 XXXX X넣고 X국물로 씻으면 떨어질 거 아이가 XXX혼도시 XX들아. 대가리에 지 XX X국물만 존나 흘러 넘치가 사람 쳐XX뿌구로 짜증나게 XX제. 느그 XX XX 다 XX가 전봇대로 XX게 쑤시뿌기 전에 니 XXX 속에 쳐박힌 장 2미터 쯤 꺼내가 X 좀 XX고 디비자라. X도 X도 안되는 XX것들이 느그 XX 100키로 떨어진 곳에서 XXXX 소리 안들리나? 여기서 고만 XXX 날아가서 XXX XXX 좀 빨아 쳐무라. 늙어서 죽을 때 되면 죽는다. 행님 이제 가볼거니까 XXX말고 조용조용히 놀그라. XXX 썩은 XX냄새나는 XXXX XXX 좀 XXXX로 닦아주고. 느그 XX XX 낑긴 때도 떼서 XXX 끼워주고 하면서 효도도 해라. XXXX들아. XXX XX하고 쳐자빠지네 니 XX XXX로 아직 덜 쳐맞았나 XX같은데만 기댕기지말고 XX XX 밀어가 XXX 느그 XX XX XXXX 공부 한 자 더 해라 확 글 XXXXX 글 올리지 마라는 글 못봤나 XXXX 눈깔에 XXXX XXX 덮었나 XXXXX XXXX 느그 애비 XXXX에서 줄줄 싼 XXX XXX XXXX 졸졸 XXXXX 소리 XXXX 느그 XX XXX XXX XXX 같이 XXX XXXX. 하지만 차마 본문은 올리지 못할 정도의 씨-벌교황의 테러행위는 디시인사이드 사람들을 적절하게 결집시키게 된다. 씨-벌교황의 행위가 하루 이틀 일주일이 아니라 몇 년이나 지속되었지만 어느새 디시인들은 그러한 씨-벌교황의 행위를 재미로 봐줄만한 수준까지 이르른것. 실제로 02년 '폐인'과 '아햏햏'으로 디시인사이드는 우리나라 최고의 커뮤니티 사이트 반열에 올라가는데 이때 씨-벌교황의 행위는 절정기에 이르지만 더 이상 테러나 막장행위라기보다는 씨-벌교황의 행동 하나하나는 디시인들에게 귀여움 혹은 꾸준글 혹은 지겨움으로 표현될 정도였다. 그 누구보다 높은 결집력을 자랑하는 디시인사이드 특유의 근성은 씨-벌교황에게 한두차례 당하면서 강한 내성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는 디시인 개개인이 씨-벌교황만큼의 욕설과 프리토킹이 가능해질만큼 커버렸다는 측면도 있었다. 런던귀공자, 소울 슬레이브, 다니엘과 같은 1세대 악플러들은 씨-벌교황 못지 않은 내공을 지니며 인터넷을 넘나들었고, 디시인들은 이들의 짝퉁까지 디시 각 갤에서 상대하며 강해진 것이다. 마치 몇 번의 잽에 익숙해져 강펀치에도 쓰러지지 않는 권투선수마냥 햏자들은 강해지고 더 강해졌다. 돈 없는 사람은 인터넷 할 자격 없다 너희들은 모두 거지들이라는 씨-벌교황의 고정멘트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디시인들의 근성은 정말 속된말로 거지보다 끈끈하고 대단했다. 씨-벌교황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 한국 최초의 악플러. 거의 모든 유명 사이트에서 깽판친 전력이 있음. 사회적 지위, 본인 능력도 뛰어나서, 사이버 수사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잡을수 없는 전설의 해커. ip블록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디씨의 두목인 김유식이 고소를 취하할 정도의 거물이라고 한다. 개인 홈페이지를 보면 더 욕을 하게 된다. 이정도 능력을 가진 인간이 할짓이 그것밖에 없냐? 라는 욕이 절로 나올것이다. 마치 i/o의 아이제아같은 존재. 사실 씨-벌교황 혼자서 그 많은 테러를 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힘들다. 테러중 상당수는 그의 추종자들이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씨-벌교황에게서 디시가 찾을 수 있는 의미는 역시 디시 특유의 막장스럽지만 자유롭고 재미난 분위기를 그가 디시에 확실히 고착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씨-벌교황 뒤에 있었던 대세는전략, 싱하, 엥겔스, 다빈치코드, 당룡등의 한때는 최강급 욕설을 구사하던 악플러들과 도배낚시꾼들 모두가 사실은 씨-벌교황의 이미테이션으로 처음 디시에서 유명세를 떨쳤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디시는 씨-벌교황의 욕으로 시작했고, 결국 씨-벌교황의 욕설 속에서 더욱 커나간 것이 사실이니까. 레전드라 불리는 모두가 결국 씨-벌교황에게서 시작되었으니. 결국 그는 디시인사이드 대표이사 김유식과 함께 현재의 디시인사이드를 창조해낸 사람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뒷 이야기 네티즌이 밝혀낸 씨-벌교황의 정체
http://blog.naver.com/vjinho?Redirect=Log&logNo=30014160807 전설의 악플러가 돌아왔다! - 매일경제 기사내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09&aid=0000485396 사실이라면 정말이지 충격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 주장대로라면 씨-벌교황은 딴지일보에서 자신들의 사이트를 테러하면서 처음 창조해내 키워낸 캐릭터이고 딴지를 인터넷에서 독보적인 사이트로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경쟁자가 될만한 사이트들을 테러하는 테러리스트로 씨-벌교황의 이름을 딴지 직원들이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 인터넷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딴지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씨-벌교황의 테러로 무너져내린 사이트도 많지만 반대로 디시는 씨-벌교황 때문에 더 큰 사이트로 결집되었고 대한민국 최고의 커뮤니티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유식과 디시인사이드는 딴지일보에 고마워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동급의 악플러와 욕설꾼을 보내서 딴지를 테러해야 하는가? 사실 현재의 딴지를 테러하는대는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다빈치코드까지도 필요없다. 역갤의 마광팔, 나광팔 콤비 세트면 떡실신이다. 그게 딴지의 현실이다. 그리고 디시를 그렇게 키워준건 씨-벌교황이었다. 사실이라면 딴지는 멍청한 짓을 돈주고 저지른 셈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싱하 디시를 넘어선 전설적인 캐릭터 형 왔다 모두 굴다리 밑으로 집합해라 디시인사이드의 전설이자 디시의 고유캐릭터로 고착화된 불멸의 유저다. 일명 이소룡 굴욕짤(인상을 기묘하게 찡그린얼굴)을 자신의 전용짤방으로 사용했던 싱하는 디시 활동말기에는 최악의 뻘글러라는 악평에 시달렸지만 이후 디시의 합성열풍을 타고 고유 캐릭터화되어 현재는 공중파 방송에서까지 이소룡의 또 다른 캐릭터로도 묘사되고있다. 많은 이들이 현존했던 싱하에 대해 설왕설래하며 심지어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고 구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유저라는 말까지 하고 있지만 싱하는 분명히 존재하는 디시의 유저였다. 그리고 싱하의 기원을 찾으려면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스갤이 아닌 패갤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싱하는 원래 패갤의 개념유저였다. 당시 그는 현재 그의 자체로 표현되고 있는 이소룡 고정짤방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패갤에서 조용히 활동하고 남들처럼 의견내기 좋아하는 평범한 유저였다. 심지어는 패갤의 정모에 자신의 닉네임인 싱하를 밝히지 않고 참여했다고 글을 남기기도했다. 즉 초창기의 싱하는 전혀 특별할 것이 없었던 남들보다도 특출나지 않았던 평범한 디시인이었다. 그런 그가 일종의 악질유저로 변하게 된 계기는 바로 패갤의 역사에 남은 '패션굴욕의날' 과 일치한다. 패갤에 패션 스타일과 관련된 글을 남긴 싱하는 패갤 특유의 비논리적 악플에 희생양이 되기에 이르렀고, 당시 그 유명한 의정부고딩과 껌팔이의 현피사건 & 디시를 강타했던 김똑딱의 체크남방 똑딱단추 멘트를 내놓았던 당시 막갤보다 더한 찌질강도를 자랑했던 패갤은 평범한 디시인 싱하를 철저하게 다구리치기시작했다. 처음 개념있는 맞받아침으로 시작된 말싸움은 막장에 이르자 개싸움으로 변질되고 격분한 싱하는 "형 열 받았다. 이 씨x놈들아. x까라" 식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름 매너있던 뉴비 싱하의 돌변한 태도에 패갤러들 50%는 욕설로 나머지 50%는 비웃음으로 싱하를 응대하는데 이 날이 디시역사를 뒤바꾼 전설이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은 그곳에 있던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싱하의 막장행동은 패갤과 함께 활동하던 스타크래프트 갤러리로 이어진다. 디시의 수도라 불리는 스갤에서 철저한 듣보잡이었던 싱하는 본격적으로 이소룡 굴욕사진을 짤방으로 사용하며 "형왔다.....한강 굴다리 밑으로 집합해라.." 식의 게시판 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잡글과 뻘글을 올려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자 악성도배와 철저한 욕플로 스갤러들을 짜증으로 몰아간다. 특히 싱하의 난이라 불리었던 지독한 싱하의 손도배와 욕설이 있었던 그 날 디시측 역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싱하'를 스갤의 금지어로 지명하기에 이른다. 싱하의 몇몇 어록들 형 지금 정모 당장 출발한다. 찌질이 새퀴들 긴장해라. 형이 왔는데도 몰라보는새퀴 존내 죽을때까지 패버린다. 물론 나 모른다고 형 눈 똑바로 쳐다보는 새퀴도 목숨은 보장 못한다. 일단 오늘 정모 나온놈들은 한강굴다리에서 존내 맞는다. 이유는 없다.그냥 존내 맞는거다. 다 형이 생각이 있기에 너네를 존내 패는거다. 형 지금 존내 꼴렸다. 니네의 한심스런 짤방들을 보니 지금 뇌의 중추부근서부터 올라오는 스팀때문에 부아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이 젖같은 새퀴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사람이 될지 이 형이 연구중이다. 니네같은 새퀴들은 존내 패버려도 인간이 되지 않을 개새퀴들 같다. 존내 패버리기 전에 빨리 므흣한 짤방 올려라. 형이다. 형 지금 기분이 존내 드럽다. 형 죽었다는 소문듣고 왔다. 이 개 젖같은 꼴통새퀴들아. 한손으로 터뜨려버리기전에 하지마라. 소문낸 새퀴 벌써 존내 패버렸다. 주말에도 집구석에서 오락이나 쳐 하는 젖같은 새퀴들아. 이제 니들이 죽을차례다. 하나하나 찾아가서 죽도록 패 버린다. 형이다. 형 아직 회복이 덜돼서 스겔잠시 관리 하지 않으려고했다. 그래도 형은 니들이 걱정돼서 아픈몸으로 이글을 쓰고있다. 이 개 젖같은 새퀴들아. 지금 시간이 몇시냐. 지금 3시가다돼간다 젖 같은 새퀴들아. 꼴통에 오락만들어차서는 시간개념이 없어졌냐. 형은 기가막힌다. 니들 한심한새퀴들 쳐다보니까 눈물이나와서 글쓰기가 힘들구나. 그래도 대장님이기에 니들 신경쓰는거다. 니들 이건 알아줘라. 대장님이기에 니들 쓰다듬어주고있는거다. 지금 대장님글 딱 보자마자 잠자리에들어라.10초주겠다. 8초나 9초 이런건 소용없다. 정확히 10초다. 지금부터 지켜보겠다. 이후 싱하의 재미있는 어록과 행동은 점차적으로 디시 전체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고 스갤러 '머랭이'에 의해 처음으로 싱하의 어록과 합성이 디시에 올려진다. 그리고 우습게도 디시측은 자신들이 금지어로까지 지정한 악성유저의 합성짤방을 힛갤로 보내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순간 대세로 떠오른 싱하의 이소룡짤 합성은 거의 대부분이 조건없이 심지어는 재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힛갤로 향해지기에 이른다. 디시측의 적극적인 싱하 띄우기에 곧장 디시와 상반되는 웃대로까지 싱하짤이 전파되기에 이르고 웃대에서까지 대세로 떠오른 싱하는 곧 대한민국 인터넷 사이트 대부분을 휩쓰는 합성 요소로 떠오르게된다. 싱하는 이때까지도 디시내에서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특히 싱하는 패갤에 자신의 것이라며 듀퐁 셔츠를 찍은 인증사진을 공개했는데 옷장 한면이 모두 진풍 명품 듀퐁 셔츠로 되어있었다. 그런 이유로 싱하는 재벌이거나 동대문 장사치거나 혹은 술집 포주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그 이후에 자신의 것이라며 짝퉁 베르사체 양복을 인증했다가 개망신을 당하고 하루종일 굴다리만 찾아서 비웃음을 사기도했다. 스갤에서는 몇몇 프로게이머를 이유없이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과거 개념유저 시절에 적었던 극히 빠돌이스러운 글이 공개되며 또 개망신을 당하기도했다. 아무튼 여러 사건들이 겹치고 디시 합성갤러리의 대세로 떠오른 싱하의 인기는 디시내에서 샘솟듯 치솟기 시작했고, 디시전갤러리가 싱하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싱하의 막장스러움을 그대로 답습한 디시유저들은 당시 디시수도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던 스갤에서 더욱 막장스러운 행동을 이어나가며 스갤의 힘이 커졌고, 나름 개념유저들도 많던 패갤 또한 이후 껌팔이, 의정부고딩, 김똑딱을 배출시킨 막장스러움의 토대를 닦기 시작했다. 즉 싱하가 있었기에 스갤도 패갤도 커 나갈수 있었고, 끝없는 탄압에도 막갤이 그 목숨을 끈질기게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점차적으로 싱하의 유명세는 싱하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폭팔되어 나타나는데 싱하의 싸이라고 불리는 곳이 열 곳이나 공개되어 성지화되고 몇몇 놈들은 나는 싱하가 아니니 그만 와달라는 글을 적어댔고, 몇몇 놈들은 자신이 전설의 싱하라고 자청하는 어지러운 상황에 이른다. 싱하의 디시 마지막 글이 올라온것은 그 시점이었다. 싱하의 마지막 글 형이다. 형이 오늘 가는 마당에 욕 안할꺼다. 형이 스겔을 떠나 정상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꺼다. 여기 개 젖같은 철부지 스겔새퀴들을 두고 가려니 형의 눈에 눈물이 그러그렁 맺히는구나. 형이 욕을 한이유는 다 너희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거만 알아주라. 형이 니들 맨나 줘 패버리고 그래도형은 니들 패고 돌아서면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다음 대장은 너희들이 알아서 선택해라. 형은 떠난다. 다음에 다른 겔에서 봐도 형에게 눈인사정도는 해주라. 형은 너희들을 정말 사랑했다. 안녕이다. 이제..... 너희들이 존내 패고싶을꺼다. 혹자는 그의 디시에서의 활동보다 웃대와 인터넷 커뮤니티 그리고 합성빨이 그의 유명세를 키웠다며 그를 평가절하지만 디시의 유저들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리워하고있다. 그가 디시를 떠난 뒤 4년후 있었던 역사상 최악 유저를 뽑는 투표에서 역대 최악의 유저 1위로 선정된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싱하의 당시 활동을 생생히 지켜보았던 나 또한 싱하가 디시의 전설로 남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싱하는 분명히 활동 디시 전체를 뒤흔들어놓았던 유저였기 때문이다. 그가 디시를 떠난지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와 풍문이 떠돌고 있다. 이제는 그가 싱하라는 한 개인과 유저를 넘어서서 사랑받는 하나의 합성요소로 자리잡은 것은 감히 말하는데 나는 그가 디시 역사상 최고의 유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싱하는 디시를 성공적으로 알렸으며 스갤, 패갤, 국연갤, 아싸갤과 같은 자유로운 커뮤니티를 키워내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싱하는 디시의 전설이었고, 디시 역사상 최고면서 또한 최악의 유저였다. 뒷 이야기 싱하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디시의 셀러브리티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아직도 큰 의구심을 사고 있다. 그가 악성글과 뻘글로 스갤에서 명성을 떨친것은 사실이지만 디시측이 그의 닉네임 싱하를 스갤의 금지어로 지정할만큼 그가 활동적인 유저가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인터넷에서 명성이 드높은 악성유저로 손꼽히는 런던귀공자나 씨-벌교황 그리고 디시의 악성유저로 이름높았던 대세는전략도 디시의 금지어로 지정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해볼때 싱하에 대한 디시의 대우나 방침 그리고 대응반응은 가히 파격적이었던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싱하와 디시의 관계는 아직도 큰 의구심을 사고있다. 몇몇 유저들은 당시 디시의 합성요소였던 '문희준, 딸녀, 아시안프린스'에 대한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새로운 합성요소가 필요했던 디시가 싱하를 적극적으로 띄운것이라고 예측하고 있고, 심한유저들은 싱하 자체가 디시에서 키워낸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있다. 또 다른 소문으로 처음 싱하의 합성짤을 선보였던 머랭이에 대한 의구심이다. 스갤러인 머랭이는 싱하의 합성을 전 갤러리에 뿌리며 싱하의 디시에서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싱크로율이 매우 높은 합성으로 힛갤에 지속적으로 자신의 합성사진을 보내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종종 '프록시'를 사용해 디시질을 했고, 몇몇 사람들은 그런 연유로 싱하가 머랭이이고 싱하 본인이 자신의 합성짤을 연재해 본인을 PR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했다. 물론 소문일 뿐이며 진실은 저 너머에 있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빈치코드 김유식의 라이벌 옹골찬 개념 찌질이 덕통령(덕후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디시인사이드의 대통령 막장시대와 근성시대를 거쳐 등장한 디시의 4세대 유저이자 싱하 이후 4년만에 디시 전갤러리에 이름을 떨친 찌질이다. 일명 디시 5대관광사건 중 무려 2개의 사건을 일으켰고, 이 외에도 여러가지 디시 사건사고에 연루되었는데 막장스러운 행동과 개념유저로서의 행동을 교묘히 섞어 사람들을 낚는 것을 즐긴다. 싱하와 씨-벌교황이 한방향을 고집하며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유명세를 떨쳤다면 다빈치코드는 두 가지 방향을 뒤섞는 것을 즐기는 인터넷 세계의 진정한 변태다. 어떻게보면 가장 발전된 형태의 진화적 인터넷 찌질이라 볼 수있다. 디시인사이드 5대관광사건
http://gall.dcinside.com/list.php?id=wondergirls&page=&keyword=&no=1031554&k_type=&search_pos= 다빈치코드는 국연갤 역사상 최악의 막장유저라 불리던 엥겔스가 국연갤을 떠난 이후 국내연예갤러리에 등장했는데 싱하와 마찬가지로 초창기에는 평범한 유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지나지 않아 서민정 낚시파문으로 김유식에게 호되게 당하고 국연갤을 떠난 p군과 장진영 갤러리의 개설 이후 목표점을 잃어버린듯 보였던 엥겔스의 공백을 메우며 국연갤의 대표적인 막장유저로 떠오른다. 어느 날 전혀 예고도없이 듣보잡에 불과했던 신인탤런트 김옥빈의 사진으로 국연갤을 한껏 도배하기 시작한 것. 처음에 그의 도배는 단순한 수준의 가벼운 사진도배질에 그쳤기에 가벼운 차단만 주어졌지만 점차적으로 그 수위는 높아져갔고 이때 그가 보여준 도배신공은 오토마우스로도 해결되지 않는 강한 수준까지 이어지는데, 특히 25분만에 160페이지를 김옥빈 사진으로 관광시켜버린 다빈치코드의 국연갤 후장털기 신공은 그야말로 디시 역사에 남을 혀를 내두를 도배막장사건이었다. 이후 야갤의 조때빠가 약 한 시간동안 해충갤(해외축구갤러리) 130페이지를 털어버리고 디시에 코드를 도입시켰으나 그조차 다빈치코드의 기록은 깨지 못했으니 가히 도배계의 찌질전설이라 불릴만하다. 이렇게 그는 2주간 디시인사이드 국내연예갤러리를 초토화시켰는데 문제가 된 것은 이때 그가 국연갤만 털었음에도 미친듯한 신공에 디시서버가 마비된 것이다. 디시 전갤러리 특히 스갤마저 관광태웠던 애니갤의 대세는도 실상 디시서버를 마비시킨적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볼때 미친듯한 다빈치코드의 신공은 회자되기에 마땅한 것이었다. 서버마비에 분노한 김유식 또한 다빈치코드를 고소하는데 여기서 훗날에도 발휘되는 다빈치코드의 주특기가 제대로 발휘된다. 그는 다른 찌질이들과는 달리 키보드뿐만 아니라 전화기 또한 자신의 찌질수단으로 자주 애용했는데, 그는 디시 본사에 전화를 걸어 국내연예갤러리에 여자 연예인 사진이 올라오는 것은 정당하다는 개념없는 주장과 함께 김옥빈을 좋아해서 사진을 올린 것일뿐 자신은 도배를 한 것이 아니라는 개념없는 주장을 펼치며 김유식에게 애원하는데 김유식 또한 다빈치코드의 혀놀림에 넘어가 고소를 취하한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 혀놀림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김유식마저 다빈치코드의 찌질짓에 안타까움을 느꼈는지 아니면 낚였는지 김옥빈 갤러리를 개설시켜준 것. 디시뉴스에 실린 다빈치코드의 김옥빈 갤러리 개설기사
http://dcinside.com/webdc/dcnews/news/news_list.php?code=human&id=22581&curPage=5&s_title=&s_body=&s_name=&s_que 김유식이 악플과 악성욕설의 달인이었던 엥겔스를 격리시키기 위해 장진영갤을 만들었다는 추측처럼 그가 국연갤의 막장 다빈치코드를 격리시키기 위해 김옥빈갤을 만들었다는 추측이 있으나 어떤 이유에서든 이때 다빈치코드의 활약으로 김옥빈은 단숨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로 떠오르며 KBS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차지하기도하는데 이로 인해 다빈치코드는 김옥빈 소속사의 알바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산다. 아무튼 군입대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2년여간 다빈치코드는 디시에서 활동이 없었다. 여기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는 다빈치코드를 전설이라 부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된 것은 김옥빈 이후 듣보잡 연예인 갤러리가 자신들의 짭짤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유식과 디시측이 적극적으로 연예인 갤러리를 개설하고 빠순, 빠돌이들의 유입을 디시에 본격화시킨 것. 드라마 하나 출연한것에 불과한 김동욱, 이필립 같은 듣보잡갤의 시초점이 바로 다빈치코드의 옥빈갤이었다는 점을 유의깊에 살펴야한다. 즉 현재 햏자들이 전멸하고 빠순, 빠돌, 초딩, 중딩이 넘쳐나는 디시를 만들어낸 개념없는 덕후색퀴들의 대가리가 바로 다빈치코드이며 김유식의 가스실프로젝트(싱하시대 유저들을 막갤로 모두 밀어넣고 막갤을 탄압하는 정책으로 수많은 디시 악질들을 걸러냈다. 유대인 가스학살과 종종 비교되어 이렇게 불린다.)의 힌트를 던졌던 놈으로 햏자들로서는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원수들의 수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2년간 활동이 뜸하고 자신이 있던 국연갤마저 김유식과 디시측의 가스실프로젝트의 희생양 분리크리로 망해버려 예전의 지위를 잃어버린 어느날 다빈치코드는 원더걸스 갤러리와 자웅을 겨루고 있던 디시의 신흥갤러리 소녀시대 갤러리에 나타나는데 특유의 도배실력과 뻘글 그리고 자신이 싸이코패스라는 낚시성 주장을 펼치며 단숨에 소녀시대갤러리의 대표적인 찌질이로 떠오른다. 그리고 갤에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친분이 있던 디시 김유식 사장이 소녀시대 갤러리에 글을 올리는것을 확인하고는 무기나 다름없는 자신의 주특기 전화신공을 이용해 김유식의 와이프이자 디시뉴스 팀장인 박유진에게 전화를걸어 디시 사장 김유식을 디시에서 차단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그야말로 자신의 막장스러움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건으로 보면 무난하다. 다빈치코드의 김유식 박유진 부부 관광사건
http://blog.naver.com/sihnnok?Redirect=Log&logNo=44049887 이 사건 이후 다음날 디시가 마비사태에 빠졌고 부부는 실제 다툼이 있었는지 둘 다 출근하지 않았다. 또한 다빈치코드는 디시 역사상 최장 차단인 3년차단을 당했다. (훗날 김유식 사장도 다빈치코드도 모두 3년차단을 당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것 자체가 사실은 둘의 야합 뒤에 김유식의 이미지를 고려한 거짓말일 확률이 더 높다.) 다빈치코드는 이에 프록시와 아이피 변경으로 몇 건의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렸으나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버린 김유식 사장에게 계속 차단을 당한다. 자신이 한 짓을 되돌아보지 않는 찌질이의 특성답게 다빈치코드는 각 갤에 돌아다니면서 심각하게 김유식에 대한 욕설을 퍼붓기에 이른다. 과거 도배 직후에 격한 욕설로 국연갤의 대세는전략이라 불리었던 다빈치코드의 막장수준을 가늠해볼때 김유식이 엄청난 분노에 휩싸인 것은 당연지사. 결국 그는 욕설로인해 디시측으로부터 2차적으로 고소를 당한다. 2년만에 재현된 디시측의 고소크리에 희생양이 될 위기에 놓인 것. 하지만 자신의 말 그대로 다빈치코드는 여기서 죽지 않았다. 다빈치코드의 소녀시대 안티카페 관광사건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t&no=5414&page=2 그는 이전부터 추진하던 두 달여간의 위장전입으로 소녀시대 안티카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후 고소당하기 직전이니까 김유식에게 아부를 떤다는 디시인들의 비웃음을 견디어가며 김유식에 대해 과할 정도의 미친듯한 찬양글들을 각 갤러리에 도배하기 시작한다. 단순하기라면 대한민국 넘버원을 달리는 김유식 또한 다빈치코드의 변화된 태도에 마음이 풀려 고소를 취하하고 다빈치코드를 옹골찬 개념유저라며 직접 강림해 찬양하고 디시 메인에 다빈치코드의 글귀를 걸어주고 디시뉴스까지 동원해 다빈치코드를 이례적으로 크게 칭찬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빈치코드는 제대로 김유식의 뒤통수를 때리며 그를 배신해버린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치밀한 계획에서 비롯되었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irlsgeneration&no=1513469&page=1 다빈치코드 - 디씨를 낚다
http://docean.egloos.com/3532514 김유식도 디시도 디시뉴스도 심지어는 디시인들까지 모두가 다빈치코드에게 낚인것. 그는 김유식을 찬양하기는 커녕 김유식을 낚고 가지고 놀기 위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신의 각본대로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다. 이 일로 그는 디시의 전국적 찌질이를 넘어서서 인터넷상에서 크게 화제를 모으는 유저로 떠오른다. 그리고 싱하도 김똑딱도 김유식 본인이 직접 때려죽이고 싶다고 말했던 리플 도배꾼 주과장도 얻지 못했던 지위 디시인사이드 사장이자 대한민국 인터넷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디시인사이드 대표이사 김유식의 라이벌이라는 직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 네이버 붐, 오늘의 유머, 웃대등 가리지 않고 초딩들이 집결하는 사이트에서는 그를 본좌라며 찬양하고 살아있는 찍소라며 받드는데 과거 국연갤 3대 찌질이라 도배꾼으로 불리던 디시의 찌질이가 순식간에 전설로 발돋움을 한 것. 다빈치코드의 마지막 글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irlsgeneration&no=1795592 하지만 갑작스런 유명세와 낚시로 인한 디시측의 탄압과 차단이 이어지자 결국 은퇴를 결심하고 탈갤을 선언한다. 한때는 빠순이들의 안티성지였던 디시에 십덕후시대 개막의 장을 열었고 이를 발전까지 시켜놓은 일등공신 레전드의 은퇴선언이었다. 다빈치코드는 디시의 특정화된 몇몇 게시판에서는 씨-벌교황만큼 악질유저였다. 특히 과거 싱하의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 막갤, 해축갤, 야갤등에서는 매우 심각할 정도의 악행도 서슴치 않았다. 이와 반대로 그는 자신이 키워낸 인물 연예 갤러리 게시판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개념인의 행세를했다. 특히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팬들이 서로 심각한 대립을 이뤘음에도 그는 원더걸스 갤러리에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진정한 속내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돌고있다. 몇몇 이들은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사장과의 돈독한 관계와 다빈치코드의 등장으로 인해 디시측이 얻은 이득과 고소가 이어지고 취하되는 과정을들어 다코가 디시측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유저라는 설을 제기하지만 그 사실은 알 수 없다. 다빈치코드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5천여명의 디시인사이드 유저들이 선정한 2007년의 디시대표유저로 선정되었다. 전국적인 유행어 우왕ㅋ굳ㅋ을 창조해낸 맨발의시붕이와 카연갤 역사상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낸 힛갤연재작가 굽시니스트의 표를 합쳐놓아도 다빈치코드에 크게 미치지 못할 정도니 그가 디시인들에게 보여준 임팩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금방 추측이 가능하다. (굽시니스트는 디시 역사상 최고의 카툰 자신의 만화 2차세계대전에서 다빈치코드와 투표내용을 패러디한 내용의 만화를 그리기도한다.) 그리고 다빈치코드는 디시 전갤러리의 십덕후들과 일련의 사건들을 당당히 등에업고 디시인사이드 3대유저(다른 말로는 x신, 악질등으로 불리기도 한다)로 발돋움했다. 뒷 이야기 싱하와 마찬가지로 그는 겉으로는 디시와 대립점에 선 것 같았지만 실상은 디시와의 궁합이 환상적이다 못해 완벽했던 유저였다. 그는 디시가 전략적으로 키우고있던 소녀시대 갤러리를 사실상의 디시 수도로 격상시키는데 최고의 공을 세웠다. 비슷한 수준으로 커나가던 원더걸스 갤러리가 확 죽어버리고 소녀시대 갤러리가 커나간 것은 김유식과 다빈치코드의 일련의 사건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가 터트린 2개의 사건 이후 디시 최악의 갤러리라 불리며 한때는 빠순이와 덕후는 사형시켜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던 막장갤에서조차 소녀시대 찬양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으니 말을 더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는다. 사실상 디시 전갤러리를 덕후가 제압했거나 싱하시절부터 혹은 씨-벌교황 대세는전략이 있던 시절의 햏자들조차 다빈치코드와 디시의 전략에 말려 대부분 십덕후가 되었다고 봐야한다. 특히 그는 디시 말년에 디시가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던 또 하나의 갤러리인 김연아 갤러리에 정착했는데 연아갤의 수호신을 자청하며 연아갤에 몰려오는 악플러들에게 쌍욕을 거침없이 해대며 연아갤을 지키는데 공을 세우기도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도 그는 소녀시대 갤러리나 김연아 갤러리 갤러들의 정모나 모임에는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악질유저가 왜 디시에서 좋아할만한 행동만 음지에서 골라서 했는지는 다빈치코드 본인과 디시 그리고 김유식 사장만이 아는 진실로 영원히 남을것이다. 다빈치코드에 대한 또 다른 소문은 그는 디시 역사에 남은 최악의 찌질이 중에 한 명임에도 디시에서 만들어낸 서비스시스템인 갤로그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갤로그 주소
http://gallog.dcinside.com/lifestyle 다. 그는 lifestyle이라는 갤로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데 과거 PC통신에서부터 말년에는 웃대까지 휩쓸었던 랍스탈이라는 유머작가와 다빈치코드의 아이디가 같다는데 있다. 그런 이유로 처음 그에 대한 신상정보가 이글루와 네이버 블로그에 공개되었을때 그가 과거 전설적인 PC통신 유머작가였던 랍스탈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만약 다빈치코드 = 랍스탈이라면 그는 디시와 웃대라는 남과 북보다 더한 대립 사이트 모두에서 정상에 선 유일한 사람이된다. 랍스탈은 하이텔과 나우누리 & 천리안이 망하기 직전에 엽기적인 그녀의 원작자인 견우74 김호식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원작자 스와니 최수완과 함께 PC통신을 빛낸 최고의 유머작가로 선정되기도 했었는데 만약에 다빈치코드가 랍스탈이라면 하이텔 최고의 논객출신으로 역시 유머작가이기도 했던 김유식과의 질기디 진한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니 놀랍기만하다. 글을 마치며 디시인사이드는 이용자 중심의 사이트로 인터넷의 각종 여론과 화제를 몰고다니는 사이트이다. 위에 거론된 세 명의 유저를 디시인들의 대표로 뽑은것은 일단 그들이 소속갤뿐 아니라 소속갤을 넘어서서 유명세를 떨쳤던 전국구라는 점에서 착안했으며, 다른 디시 유저들 또한 그들을 디시 3대 X신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했다. 또한 흥미롭게도 이들은 디시에서 유명세를 떨쳤지만 서로 다른 특징과 방식으로 유명세를 떨쳤고, 이러한 이들의 변화적 특징은 디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알다시피 씨-벌교황은 딴지독투 출신으로 디시로 넘어와 현재 디시의 막장스런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앞장섰던 유저였다. 그가 있었기에 디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딴지일보와 같은 선두주자나 몇몇 후발사이트들을 제치고 인터넷을 대표하는 커뮤니티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싱하는 과거 디시의 영광을 함께했던 패갤, 스갤 외의 아싸갤, 국연갤, 막장갤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유저로 디시인들의 표준적인 막장분위기를 더 고착화시키고 발전시켰던 유저였다. 다빈치코드는 디시를 키워냈던 주요 갤러리(패갤, 국연갤 분리 & 스갤의 검열 & 아싸갤의 붕괴등)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연예인, 드라마 갤러리의 힘을 강화시켜 빠순이 빠돌이들의 대거유입을 원했던 김유식과 디시측의 적극적인 협조속에서 연예갤, 드라마갤의 대표유저로 활동하며 디시를 발전시키는데 앞장섰던 연예인, 드라마 팬들의 대표주자였다. (앞서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다빈치코드는 디시 드라마 갤러리 덕후들의 원조격인 부활갤에서도 활동했었다. 다빈치코드가 부활에 출연했던 배우 이연희 앞에서 욕설을 퍼부은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예를 들어 씨-벌교황은 심각한 욕설과 악플을 주저하지 않았고, 싱하는 욕을 했지만 악플은 달지 않았고 거의 대부분이 웃음을 유발하는 뻘글이 많았다. 다빈치코드는 고소를 두 번이나 당했지만 특정갤에서 욕을 하거나 악플을 달았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점차적으로 순화되어가고 부드러워지는 디시의 모습을 이들 세 명에게서 투명해 볼 수 있는 이유다. 현재 디시는 햏자시대와 막장시대를 거쳐 잠깐동안의 근성시대 그리고 현재의 덕후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디시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역사는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앞으로 이들을 능가하는 디시인이 나와 우리들에게 다시금 크나큰 즐거움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리며 이 글을 마친다. 디지털 카메라 인사이드 연대 99∼02 씨-벌교황이 격하게 욕을 쏟아붓고 추종자들이 토스하며 이에 맞서는 햏자들이 숨쉬길 원하며 근성을 키워나갔던 햏자시대 시즌1 02∼04 햏자들의 패턴이 점차적으로 폐인으로 변화되고 디시 전유저가 씨-벌교황화되며 문희준, 소피, 초난강의 합성요소들이 떠올랐던 햏자시대 시즌2 04∼05 햏자가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대세는전략이 만들어놓은 욕설의 토대 위에서 초,중딩들의 마스코트 싱하가 디시의 대세로 떠올랐던 스갤, 패갤의 막장시대 시즌1 05∼06 스갤의 검열로 수도로 떠오른 근성갤이 디시를 장악했던 근성시대 (지귀는 특정 유저라 보기어렵고 근성갤의 트레이드마크라 볼 수 있다) 06∼07 김유식의 가스실프로젝트가 가동되며 패갤, 연갤, 축갤, 아싸갤, 수갤 분리폐쇄 및 드라마, 연예인갤의 거대화에 막장갤이 홀로 맞섰던 막장시대 시즌2 07∼현재 디시와 다빈치코드의 계획속에서 덕후들이 유입 소덕후, 원덕후, 연덕후들과 드라마 덕후들이 디시를 장악하며 스갤, 막갤, 야갤, 해축갤과 대립점을 이루며 카연갤이 버팀목으로서 디시를 지키고 있는 덕후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