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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펌]김용서교수의 추억..
게시물ID : sisa_30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쟌
추천 : 16
조회수 : 30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4/03/31 17:14:13
오늘 아침 신문을 통해 몇 년전 나와는 색다른 인연으로 서로를 알게 된(물론 그분은 모르겠지만) 한분의 교수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군부에 쿠데타 주문을 넣으신 우리의 김용서 교수님...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님이신 그분의 사진을 보며 나는 몇 년전 한참 끝발 날리셨던 그분의 용맹과감한 모습을 추억하게 되었다.



에피소드 1

김용서 교수님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기억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분 하면 내가 생각나는 것이 바로 100분 토론이었다. 그때가 아마 유시민이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때였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100분 토론의 좌석 배치는 오른쪽에는 보수, 왼쪽은 진보 였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왼쪽은 상식, 오른쪽은 비상식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김용서 교수님은 그 특유의 보수적인 사상(수구꼴통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덕분에 100분 토론에 심심찮게 등장하셨다. 당시의 화두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어서 그런지 우리 김교수님은 특유의 그 광기서린 표정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비판하였던 모습...정말 말 그대로 ‘비판적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제목이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우리 김용서 교수님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가 문제였다...바로 이화여대...
음...100분 토론을 보면서 나는 그분에게 바스트 샷을 단독으로 잡고 쭉 빨아주는 카메라 앵글 바로 밑으로 줄줄이 나오는 그분의 약력 첫머리에 나오는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라는 그 충격적인 약력...

그렇다 펜더의 여동생 그 당시에 이화여대 영문과에 다니고 있었다.

- 음 뭐...영문과랑 행정과는 별 상관 없으니까...

그때는 그랬다...그렇게 넘어갔다.



에피소드 2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한다는 요즘 세상...몇년전에도 이미 많은 대학생들이 ‘고시열풍’에 휩쓸렸다. IMF를 겪고,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며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고시’에 있다고 판단하였는지 고시에 도전하게 된다.

내 여동생 역시 그런 케이스 였는지, 아니면 어떤 청운의 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순간 그 [행정고시]란걸 보겠다며 덤벼들었다. 그리고 택한 것이 부전공으로 [행정학]을 수강하는 것이었다.

내 여동생과 김용서 교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내 여동생은 행정학교 전공필수 였던 [인사 행정론]을 들어야 했고, 3학점 짜리 인사행정론의 담당교수로 내 여동생을 가르쳤던 분이 바로 김용서 교수님이셨던 것이다. 내가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져버렸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간 흘렀을까? 내 여동생은 자신이 듣고 있던 [인사행정론]의 김용서 교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 졸라 짜증나...강의 내용의 50%가 뭔줄 알아?
- 뭔데?
- 다까끼 마사오 반자이!!

김용서 교수님은 열렬한 박정희 매니아 였다. 박정희가 있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 나머지 절반은?
- 일본 만세.

- ......
- 박정희가 관동군 출신이라 일본놈들 한테 제대로 교육을 받아서 대한민국을 이 정도로 이끌어 왔다는 내용이지 뭐...우리나라가 일본애들 절대 못 따라가고, 일본애들 아니었으면, 이 나라 여기까지 못 왔다...뭐 대충 그런 내용이야.

- 그게 인사행정론이란 무슨 상관이 있는데?
- 무조건 일본거 그대로 배우면 장땡이라는 거지 뭐...완전 [친일파 행정론]이지 뭐 일본애들 한테 교육 받은 애들이 있어서 그나마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다는 내용이지. 애들 다 짜증내고 장난 아냐...

그랬다. 내 여동생은 2학년 2학기 내내 김용서 교수님이 가르쳐 주는 그 [친일파 행정론]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동생의 말을 듣고 내가 내린 결론이란 것이,

- 이화여대의 김활란이 괜히 친일파가 아니구나...그러니까 친일파 행정론을 가르치지...

뭐 그래도 김용서 교수님 덕분에 박정희가 일본애들한테 제대로 교육을 받아서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일궈냈다는 새로운 [학설]을 접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에피소드 3

그때가 아마 2학년 2학기 중간고사였던가, 기말고사 였을 것이다. 자세한 기억은 안나는데, 여하튼 [인사행정론]의 김용서 교수님이 시험을 [레포트 대체]로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 여동생은 [글자판기]이자 [레포트 제조기]인 막강 오니사마(오빠)가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내 여동생과 함께 내 모친되시는 분이 펜더의 옆구리를 찌르셨다.

- 네 동생이 지금 고시 준비해야 하는데, 레포트 쓸 정신 없잖니...

그랬다. 뭐 그 전에도 내 여동생 레포트도 써줬고, 그 이전 대학시절에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가 레포트 대필과 논문 대필이 아니었던가?(책 한권을 읽고 전혀 다른 버전의 레포트 15개를 썼던 적도 있었다. 기본 평균이 B+였다...세시간 동안 A4 5장의 레포트 3편을 썼던 적도 있었다...믿기 어려우시면 미디어몹 편집부에 문의하시길...)

원래 남매지간이 어렸을 적에는 티격태격 싸우는게 있어도 나이 들어서는 오빠가 여동생에게 꼼짝 못하고 해달라는 걸 다해주게 되어 있다. 나 역시도 철이 들 무렵부터 하나밖에 없는 내 여동생이 눈에 넣어도 안아플 정도 귀여웠다.(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여자가 네명 있는데, 어머니와 여동생, 내 아내, 그리고 내 딸이다.)

그런 여동생이 오빠의 도움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었다.

- A- 정도면 되겠냐?
- B+이라도 좋아

난 사랑스런 내 여동생을 위해 맞춤형 레포트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레포트 대필 인생을 살았던 내가 몸으로 체득한 경험 하나는 글을 잘 쓰고, 내용이 좋다고 점수를 잘 받는게 아니란 사실이다. 교수가 좋아할만한 내용, 교수의 취향에 잘 부합되는 내용의 레포트가 점수를 보장한다는 단순한 진리...

- 너네 교수가 좋아하는게 뭔데?
- 일본 만세, 박정희 만세, 김정일 개새끼, 일본 만만세, 박정희 만만세...우리나라랑 일본이 내선일치로 같이 동북아를 평정하는 형제나라로 나아가는 대동아 공영권

- ............레포트 주제는?
- 일본 행정과 한국행정을 비교고찰 하는 것

- 일본행정이 아싸하게 좋고, 한국 행정은 이래서 좆같다라고 쓰면 된다는 거네?
- 그렇지

- 그 사람 사무라이나 무사도 같은거 좋아하겠다?
- 껌벅 죽지

그랬다...의외로 쉽게 쓸수 있을 것 같았다.



에피소드 4

펜더란 녀석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워낙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해 여기저기 안건드린 부분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만화에 대해선 거의 광적으로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사전지식도 있었던 펜더...

지금에사 말하는 것이지만, 그때 그 레포트를 펜더는 2시간인가? 그정도 시간을 들여서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원고청탁을 몇 개 받아서 정신없이 외고를 쓰느라 깜박 레포트를 써야 하는 걸 잊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동생이 닦달해서 대충 휘갈겨 썼던 기억이 났다.

당시 내가 레포트의 참고자료로 썼던 것이 바로 노부히로 와츠키의 [바람의 검심]과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 그리고 이오리 타카하루의 [막부 풍운록]이었다. 이야기 일본사인가? 초등학생용으로 나온 일본서 한권도 이 참고자료로 썼던 기억이 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거 다 일본 만화책이다...막부 풍운록을 제외하곤 꽤 유명한 만화책들이다)

  

그때의 레포트 내용이란 것이,


메이지 유신 시절, 일본은 격변기 사이에서도 유신과 일본의 발전을 위해 서로 피를 흘려야 했다. 암스트롱포를 앞에 두고도 목숨 걸고 대포 앞으로 돌격하는 무사정신!! 뻔히 죽음을 예측 할 수 있는 상황 앞에서도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정신!! 신선조는 국가의 유신을 위해 최후를 다했으며......(바람의 검심 참조)

미야모토 무사시는 일본행정의 근본을 보여주는 무사로서, 일도류가 모든 검법의 기본이 되는 상황 속에서 미야모토 무사시는 파격적으로 이도류를 들고 나와 무적의 검사가 되어 검신으로 그 이름을 떨쳤다. 이런 역발상의 안정속에서도 개혁을 꿈꾸는 일본 행정의 오늘의 전통을 느낄수 있는 대목이다.......(배가본드 참조)

조슈번은 도꾸가와 막부에 의해 밀려 났지만, 매년 정월이 되면 조슈번의 무사들은 주군 앞에 나아가 “에도로 진격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주군!!”하며 결의를 보였다. 물론 형식적인 것이지만, 사무라이의 기개를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종국에 가서 200년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도꾸가와 막부를 거꾸러 뜨리는 조슈 무사들의 기개를 보존하는 일화로 후세에 귀감이 되었다.....(막부 풍운록 참조)



대충 이런 내용의 글이었다. 웃기는 건 나 역시 이 글을 쓰고 엄청난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신선조는 무사라기 보다는 뒷골목 건달들이었고, 늑대라고 보기엔 개떼가 어울리는 존재였고, 조슈번은 훗날 사쓰마번과 합작해 도꾸가와 막부를 쓰러뜨렸지만, 훗날 일본 군벌의 시작을 만들어 종국에 가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때에도 군부의 사조직 덕분에 서로 반목과 대립을 하게 되어 태평양 전쟁의 패배를 앞당겼으며, 훗날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대한민국의 굴곡직 역사의 하나였던 군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의 모태가 되어주는 좆같은 짓을 했으며, 미야모토 무사시의 경우도 이도류를 써서 이긴 점도 있지만, 결투 상대와 만날 때 약속시간보다 한참 늦게 나와 결투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어버리는 얍실한 수를 썼다 



라는 내용은 쏙 빼버렸다. 내 여동생의 학점을 위해 난 김용서 교수님의 입맛에 맞는 내용의 레포트를 썼다. 뒷부분의 한국 행정과의 비교에서도, 한국의 선비 문화가 얼마나 저열하며 당쟁과 붕당을 일삼고, 치사하게 정쟁으로 상대편을 역적으로 몰아 사약을 내려 죽이는 치졸한 사화나 일으키는 엿같은 존재였다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썼고, 그와 대비되는 일본 사무라이의 아쌀한 할복과 벚꽃처럼 깨끗하게 피고 지는 그들의 깔끔한 정신세계를 칭찬하느라 레포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채워 넣었다.

이 레포트를 보며 내 여동생은 흐믓해 했었다. 한학기 동안 자신을 가르친 교수님이 너무도 좋아할 만한 내용이라고....


양념으로 이것도...





에피소드 5

레포트를 제출하고 얼마뒤...내 여동생은 수업시간에 불려나가야 했다.

김용서 교수님은 내 여동생의 레포트...아니 내 레포트에 감격하였다고 말을 했고, 내 레포트를 인사행정론을 듣던 70명의 학생들에게 다 읽어주라며 내 여동생의 등을 밀었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 레포트를 오빠가 써줬다는게 걸렸나?

라고 바짝 긴장했었다고 한다.

어쨌든 김교수는 이 레포트를 내 여동생이 썼는지 수차에 걸쳐 확인하고 나서 내 여동생을 호의와 선의 그리고 감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역시 김활란의 제자답군...

그랬다. 내 여동생은 김활란의 제자 답게 멋들어진 레포트를 인사행정론를 강의하신 김용서 교수님께 보여주었고, 김활란의 제자다움을 칭찬받았던 것이었다.

70명의 인사행정론 강의를 듣던 학생중 A+는 단 4명이었고, 전체 70명의 레포트 중 2등을 차지한게 바로 내 레포트 였다고 동생은 전해주었다.

그때 난 그말을 듣고 두 번 놀래야 했다.

첫 번째로 놀란건 내가 만화책 떠들어서 2시간 조금 안걸려 쓴 레포트가 A+를 받았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로 놀란건 내가 쓴 레포트 보다 더 친일적인 레포트는 과연 누가 쓴 레포트냔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김용서 교수님의 눈에 단단히 든 내 여동생...

- 행정학과 학생도 아닌 영문과 학생이 이 정도로 행정에 정통하고, 투철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니...행정과 학생들은 반성해라!!

이런 멘트와 함께 내 여동생은 일약 투철한 역사관을 지닌 김활란의 제자가 되어야 했고, 김용서 교수님의 각별한 애정을 부담스럽게 받아야 했었다.

웃기는 건 김용서 교수님께서는 대한변협에서 제주도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내 여동생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중 아주 투철한 역사관을 지닌 보기드문 학생이 있다는 말과 함께 내 여동생을 키우겠다는 거였는데, 직접 대한변협에서 내 동생에게 전화까지 왔었다고 한다...

- 오빠 좀 적당히 쓰지 그랬어!!

그때서야 내 여동생은 나에게 투정을 부렸다. 내 여동생은 그 세미나에는 참석을 거부하였다. 

그렇게 김용서 교수님과 내 여동생, 그리고 나의 짧지만 기이한 인연은 끝이 났다.



에피소드 6

오늘 난 김용서 교수님의 사진과 ‘쿠데타 사주론’을 보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전 교수님과 나의 그 기이한 인연 때문에 난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충분히 쿠데타를 사주할 만한 분이라는 생각에 신문을 보는 내내 동의의 뜻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지금 신림동 고시촌에서 행시 2차를 준비하는 여동생과 통화를 해야했다. 같이 웃었다...

이화여대 행정학과에서 전공필수로 인사행정론을 들어야 하는 많은 김활란의 제자들에게 감히 충고한마디를 드리자면, 지금 당장 바람의 검심과 막부 풍운록, 배가본드를 사서 읽어보시길 권해드린다. 분명 A+를 받으실수 있을 것이다. 만화책 몇권 읽으면 A+를 받을수 있는 학교 이화여대를 생각하며 착찹한 마음 금할길이 없다. 그렇다고 이화여대를 폄하하자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 여동생이 나온 학교이고, 만화를 제9의 예술이라 생각하며, 만화만큼 대단한 매체가 없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주장이기에 이런 만화를 인정해 주는 김용서 교수님처럼 탁월한 선각자가 있는 이화여대의 대단함을 인정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몇 년전의 짧은 에피소드를 다시 기억나게 해 이 아침 마감에 지친 나를 즐겁게 해준 김용서 교수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그때 못드린 용서와 사과를 지금에서야 드린다...

- 교수님...그때 그 레포트 제가 썼습니다. 그리고...그 참고문헌은 일본만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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