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교단에 선 지 이번이 2번째이다. 1960년대 유학왔을 때, 같은 과 학우에게 인사하러 강단에 선 것이 처음이고, 이번에 명지대학교 초청 강연이 그 다음이었다. (청중들 박수와 함께 웃음)
- 프로야구는 이겨야 한다. 아마는 정정당당한 플레이와 참가에 보다 의의가 있지만, 프로는 룰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 그것이 프로다. 그래서, 프로는 냉혹한 것이다. 그런데, 이기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을 분석하는 것은 야구를 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방법이다. 숫자에는 경향이 숨어있다.
- 예컨데, 조인성의 경우를 보면, 볼배합에 있어서 경향을 찾을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는 그런 것이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볼카운트에 따라 일정한 습성을 남기게 되어 있다. 그런 기록을 분석하면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구질을 알고 들어가면, 50%는 이긴 것이다. 지난 잠실에서 기아와 엘지와의 경기에서 김광삼-조인성 배터리가 진 것은 분석에서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 이번 주에 대결할 팀과는 이미 지난 주에 기록원이 경기를 관전해서 미리 파악해놓는 경우가 많다. 지난 주 3연전마다 각기 기록원이 투입되어 분석하며, 상대팀을 분석하는 역할도 다르다. 볼배합부터 상대팀 투수-타자의 컨디션, 우리 팀 선수와의 매치까지. 결국, 분석이 원활한 팀이 이기는 것이다. 짧게 이기는 것은 쉽지만, 길게 이기는 것은 분석이 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 습성이나 버릇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기아가 최근 좋지 않은 것은 리오스와 키퍼가 작년만하지 못해서인데, SK와 엘지가 강한 것은 이미 그들의 버릇이나 습성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송진우의경우도 공이 잘 안 들어간다고 말하지만, 공이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이다. 송진우의 경우도 공을 던질 때 안 좋은 버릇이 노출되었다고 본다.
- 지난 올림픽에서 야구의 경우를 살펴보자. 나는 라소다 감독이 히트앤드런을 그렇게 좋아하는 감독인 줄 몰랐다. 그걸 알았더라면, 미리 (김응룡 감독)에게 알려주었을텐데... 우리 나라가 진 것은 결국 히트앤드런 2개 당해서 진 것이다. 내가 라소다 감독을 알아보니, 한 경기에 히트앤드런을 15번 시도해서 11번 성공한 적도 있었다. 15번 시도해서 11번 성공이면 대단한 건데 말이다. 그 정도로 히트앤드런을 좋아하다니... 그래서 상대팀의 선수든 코칭스텝이든 습성과 버릇을 알아놓는 것은 중요하다.
- 기아 타이거즈 포수 중에 김상훈이라는 선수가 있다. 도루저지율이 좋은 선수다. 그 선수에게 14번을 도루 시도했는데, 3번을 성공했었다. 그것도 마르티네스만 3번 성공했었다. 마르티네스의 도루를 살펴보니, 볼카운트가 모두 0-1(1볼 상황)였다. 그래서, 내가 가만히 지켜보니, 0-1상황에서는 스트라이크 잡느라 주자 견제에 미흡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진갑용의 경우, 15번을 시도해서 5번 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15번에 5번이면 3할대다. 작전이 3할대면 그건 쓰지 못할 작전이다. 진갑용을 분석해보니, 2사에 도루한 경우, 성공률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이런 도루 상황에 대해서는 아웃카운트, 볼카운트, 점수를 살펴가면서 분석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유지현의 경우,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2사에 도루를 성공했고, 2차전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숫자를 살펴보면, 경향이 나온다. 기록을 분석한 것 중에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주겠다. 이종범은 안타 치고 나서 다음 타석에서는 같은 구질을 잘 안 노린다. 삼성 라이온즈의 김응룡 감독은 도루 성공하면, 그 경기는 계속 도루를 시키고, 도루가 저지가 되면, 그 경기 동안은 더 이상 도루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재박 감독은 도루 실패하면, 또 빈틈을 노려 도루시키려고 하고, 또 잡혀도 방심하는 틈을 이용해 도루를 시킨다. 그런 경향들이 있다.
- 이병규 선수는 무지 좋은 선수다. 아주 좋은 선수인데, 최다안타만 치다가 망가졌다. 이병규에게 쉽사리 초구 스트라이크 주는 투수는 어리석은 투수다. 원바운드로 던져도 스윙이 나가는 선수인데 말이다. 그래도 올해는 좋아졌다.
- 15타수 5안타라는 기록이 있다고 치자. 3할대 타율이다. 야구는 실패하는 스포츠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다른 스포츠는 7할을 성공해야 한다고 하는데, 7할을 실패해도 어깨에 힘줄 수 있다는 점은 야구의 재미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타율을 분석하는 것에 있어서 점수 차이에 따라, 안타 내용에 따라, 직선 타구나 아니냐에 따라, 타구의 방향에 따라 등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록에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 그 자체만 믿으면 안 되는 것이다.
- 아무리 15타수 5안타라도 4월 한 달간 8타수 5안타, 나머지 기간 동안 7타수 무안타라면, 3할대 타율이라도 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기록이다. 이런 형태의 잘못된 기록들을 믿는 수가 있는데, 기록의 분별을 하지 못하고, 두루뭉술 기록만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
- 이승엽이는 좋은 타자다. 홈런 타자다. 이승엽이 좋아하는 코스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바깥쪽에 분포되어 있다. 몸쪽에 바짝 붙는 중간볼이나 낮은 볼은 삼진 코스다. 몸쪽 높은 볼은 플라이가 많이 나온다. 이승엽이 얼마 전 홈런을 치면서도 보니까 몸이 앞으로 나가는데, 그 때 타율이 안 좋았다. 요즈음 치는 것을 보니,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안정되어 있다. 그래서 홈런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상대팀의 입장에서는 약점이 될 만한 또 다른 코스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 작년에 이승엽이 고전한 것은 이러한 볼배합의 패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분석의 개가라고 볼 수 있었는데, 당시 이승엽은 몸이 앞으로 쏠리는 약점이 자주 노출되었었다.
- 아무 생각 없이 방망이 휘두르다가도 하나 걸리는 수가 있다. 교통사고다. 하지만, 그런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분석이 없으면 오래 가기 힘들다.
- {(야구 기록 + 상대방의 움직임과 우리의 컨디션 파악) + 분석하는 코칭스텝의 능력} = 성적 (이 공식은 김성근 감독님 말씀을 제 임의로 종합해서 도식화한 것입니다.)
- 장성호도 좋은 타자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20타수 9안타를 쳤다. 0.450이니까, 엄청난 것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장성호와는 승부해라. 단 바깥쪽만 던져라고 했다. 그 결과, 1차전은 안 맞았고, 2차전은 맞았다. 이후, 기아 타이거즈 타자들의 타격 연습을 보고 아차 싶어서 몸쪽으로 던지되 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이동시키게 했다. 결국 이병규한테 걸렸다. 맞되 피하지 않고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본다.
- 김경언이라는 타자가 있다. 직구는 엘지 투수들이 다 얻어 맞았는데, 슬라이더를 보니, 1~2루간으로 가는 것이 많았고, 낙차 큰 변화구에 승산이 있었다. 이동현이 낙차 큰 포크볼을 던질 줄 알아 그것을 던지게 하고, 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이동시켰는데, 이병규가 잡아내었다. 이 수비를 보고, 해설자는 호수비니 어쩌니 그러는데, 생각해보라. 수비 위치가 이동이 안 되었으면 경기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이래서 기록과 분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박재홍을 상대로 해서도 평소에는 커브를 던졌을 때 1~2루간으로 세 번 타구가 그리로 가는 걸 알았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커브를 상대하는데, 3루간으로 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이종렬 보고 수비 위치를 옮겨라고 지시를 했는데, 수비 위치가 옮겨지지 않았고 결국 고집쓰다가 그 구간으로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 장종훈은 현재 스윙으로는 인코스를 치기 힘들다. 장종훈에게 느린 공을 자주 구사하는 투수는 어리석은 투수다. 느린 공을 남용하면 맞는다.
- 내가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뼈 아픈 것은 이승엽에게 홈런 맞은 것이다. 이승엽에게 변화구로 2번을 삼진 잡은 적이 있었다. 몸쪽 직구를 그냥 보냈었다. 그러면 이상훈-조인성은 그걸 왜 그냥 보냈냐?라고 고민했었어야 한다. 하지만, 조인성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이상훈의 변화구는 각이 약했다. 배터리가 이토록 계산이 약했다. 급하게 변화구가다가 홈런 맞은 것이다.
- 박경완은 연달아 5번씩 스트라이크를 잡기도 한다. 연달아 같은 구질을 계속 던지게도 하는 포수다. 그걸 몇 년간 써먹는데, 그것에 속는 타자도 어리석다. 직구 5개 던지다가 원바운드 변화구 던지는 것에 방망이 나가는 바보 타자들도 있다. 여러 가지 할 말이 많지만, 감독직을 벗어나 우리 프로야구를 가만히 지켜보니, 연구 부족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 나는 감독이 되면, 미리 승수를 발표한다. 내가 작년에 68승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66승에 그쳤다. 그런 것은 그냥 막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감독이 되면, 내 경우에는 8개구단 감독이 되어 로테이션을 다 짜본다. 그래서 이기는 경기, 지는 경기를 계산해서 맞붙히고, 피하고 해본다. 그렇게 나온 승수가 68승이다. (이게 시뮬레이션이라는 겁니다.)
- 작년 8월이 엘지 트윈스의 최대 승부처였다고 생각했다. 8월에 -2, 9월에 -1정도로 예상치와 차이가 있었지만, 두산 베어스가 떨어져나갈 것을 이미 간파할 수 있었다. 이렇듯 감독은 1년을 계산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 도루 자세나 여러 가지를 봐도 야구에는 볼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다. 도루할 때, 팔을 어떤 자세로 취하느냐에 따라 도루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도루할 때는 짧게 리드하고, 도루하지 않을 때는 길게 리드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습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 상대적으로 견제동작도 마찬가지이다. 어깨가 열리고 닫히고에도 차이가 있고, 글러브의 위치나 팔의 각도에서도 알 수 있는 선수들이 있다. 여자분들도 계시는데,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때로는 엉덩이가 조여지느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청중들 웃음)
- 이만수의 경우에는 단순하고 착한 친구다. (청중들 웃음)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파악이 쉽게 잘 된다. 사인 노출이 심하다는 이야기다. 과거 오비가 삼성에게 굉장하게 강한 이유도 이런 점이었다. 내가 심판들에게 주의를 받으면서도 은근히 곁눈으로 지켜보면, 그의 팔뚝 근육의 움직임으로도 사인이 단순해서 읽기가 쉬웠다.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팔 근육의 움직임이 달라짐을 보이시면서) 그래서, 가자가자는 직구, 나이스 빠따는 변화구 이런 시그널을 적용했고, 김유동의 만루홈런도 그런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이 시그널은 다른 나라도 한다 안 한다 말이 많은데, 내가 알고 있기로는 미국, 일본 같은 나라들도 다 하는 걸로 알고 있다.
- 유지현이 올스타 MVP가 것도 어찌 보면 곁눈질과 무관하지 않다. (곁눈질 하는 폼을 직접 보이시며, 청중들은 웃음.) 이거 곁눈질 하나로 코스를 읽어 차 한 대 탄 거다. 야구장에서 보면, 그냥 관중들이 점수내고 아웃되는 것만 보는데, 무수한 것들이 스쳐지나간다.
- 전준호도 곁눈질 잘 하는 선수라 우리가 많이 당했는데, 항의하고 그러면서 그런 것을 잡아냈다. 그럴 때에는 위장으로 움직이는 척하거나 미리 포수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 기록만 믿는 코치는 쓸모 없는 코치다. 기록은 과거의 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록과 습성, 진행 상황을 종합 분석해야 우수한 코치라고 볼 수 있다. 기록의 유용성과 당일 컨디션을 예의주시해서 적합한 과거 기록을 찾아내고 적용시켜야 한다.
- 선동렬과 송진우는 번트 수비에 굉장히 능한 투수다. 송진우는 상대가 번트를 하려들면 구속을 줄이고 들어가고, 선동렬은 그대로 던지는 편이다. 이럴 경우,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송진우의 경우에는 버스터가 용이하고, 선동렬의 경우에는 번트앤드런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 번트앤드런을 쓰고자 하는 것은 선동렬의 경우에 번트 수비에 자신이 있는 탓에 때로는 포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수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것을 역이용한다면, 타자와 주자가 모두 살 수 있다.
- 브리또의 경우에는 각도 큰 변화구에 약하다. 특히 각도 큰 변화구를 잡아당길 때 약하다. 하지만, 그 변화구를 밀어칠 때면 아주 무서운 선수가 된다. 브리또는 각도 큰 변화구를 던질 때, 몸에 맞는 줄 알고 몸을 숙이는데, 실제로는 스트라이크이다. 역시 칠 때는 상체가 숙여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내가 감독하면서 가장 힘든 작전은 스퀴즈이다. 사인이 손에서 나올 만하면, 이미 투수는 공을 던지고 있고 그런다. 오히려 히트앤드런은 가벼운 느낌이다. 주자가 1루여서 그런 모양이다. 젊은 감독들은 히트앤드런 한 번 성공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뻐한다. 사실, 무지 기쁘긴 하다. 하지만, 그것에 재미를 들이다간 오히려 낭패 보기 십상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 투-포수 간의 사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개 2번째의 것이 진짜다. 간혹 더하기 싸인도 있다. 1개는 직구, 2개는 슬라이더, 3개는 커브, 4개는... 5개는 이렇다가 6개째부터는 다시 한 개로 되돌아가서 직구. 그러면, 투수들은 머리 속에서 그리다가...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심... 청중들 웃음) 이거다 싶어 던진다.
- 10분이 원래 시간보다 오버되었는데, 감독 생활하면서도 경기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강의도 길어졌다.
(청중들 다시 웃음...) 이후는 질문과 답변...
- 첫째 질문. 한화 이글스팬인 것 같았는데, 질문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 이범호와 김상현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이글스팬 중에 유명한 팬이라고 생각했다.
- 첫째 질문에 대한 답변. 이범호는 시범경기 때는 아주 좋았다. 짧고 간결하게 방망이가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스윙이 커졌고, 각도 큰 변화구에 속수무책이었다. 타구방향을 봐도 잡아당기는 타자다. 김상현을 트레이드 한 것은 엘지 트윈스팬들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엘지가 언젠가 김상현에게 크게 홈런 한 번 맞은 적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다라고 생각했고 트레이드를 했다. 김상현의 경우, 최근 경기를 보니, 변화구를 조금씩 치기 시작했다. 변화구와 직구는 타이밍이 다른데, 직구는 하나, 둘 하고 치는데, 변화구는 하나, 두우울하고 친다. 그것은 축이 되는 뒷다리를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김상현은 그걸 조금씩 터득하는 것 같았다. 두 선수 모두 각도 큰 변화구에는 약점이 있고, 김상현의 경우, 각이 작은 변화구를 치는 능력이 좋아졌다.
- 둘째 질문. 대구에서 올라온 삼성 라이온즈 팬이었다. 두 가지 질문. 하나 이대진은 기록적인 측면이나 타자로서의 경험이 부족함에도 언젠가 김성근 감독 재직시 대타로 3루타를 친 적이 있었다. 이럴 때에 기록과는 다르게 선수 기용하는 측면에 대해 팬으로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리고, 현재 양 강 중 하나인 김재박 감독 스타일 야구의 강점은 무엇인가?
- 둘째 질문에 대한 답변(1) 이대진의 기용은 젊은 감독으로서의 패기 혹은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대진의 연습 타격을 보면 잘 친다는 걸 알 수 있다. 타자 경험이 적어서 변화구에 약하긴 하지만. 그런데, 그런 것은 자주 쓸 것이 못 된다. 오히려 역이용 당하기 쉽다. 김성한 감독의 경우 히트앤드런을 하다가 몇 번 성공했는데, 이후 실패하자, 언론의 공세 받고 이래서 아주 난감해져 있던 적도 있었다. 젊은 감독들은 아직 그런 면이 부족하다.
- 둘째 질문에 대한 답변(2) 김재박 감독의 현대 유니콘스가 강한 것은 우선 심정수가 있고, 조용준이 있어서다. 야구는 역산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걸 토대로 경기를 계산해야 한다. 정민태, 김수경, 바워스가 있어서 몇 회까지 막으면 누구 나오고 마지막에 조용준이 나오고 이런 계산이 선다. 작년 엘지 트윈스 경우에는 3점 이상 내어주면 이길 길이 없었다. 삼성 같으면야 펑펑 쳐주고 이러면 쉽게 이기고, 안 쳐주면 져줄 수도 있겠지만... 김재박 감독 스스로가 야구 안에서 도박, 도박이라니까 나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경기 안에서 승부를 걸고 즐길 줄 아는 감독이다. 지난 경기에서 최익성에게 스퀴즈를 시키던데, 원래 최익성은 번트를 썩 잘 대는 선수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작전을 하는 것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 자기 나름대로 계산을 잘 하는 감독이라 볼 수 있다.
- 셋째 질문. 투수교체시기에 대한 질문이었다. 투수교체시기에은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하는가?
- 셋째 질문에 대한 답변. 투수교체는 타자를 살펴가면서 해야 한다. 투수라고 아무렇게나 바꾸는 것이 아니고, 상대 타자가 어떠하냐에 따라 교체하는 것이 다르다. 상하로 각이 큰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냐, 좌우의 각이 좋은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냐에 따라 다르다. 이동현의 경우에는 각이 큰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다. 그래서, SK나 기아에게 강하다.
- 셋째 질문 외의 다른 이야기. 좀 다른 말인데, 조인성은 참 벤치의 지시에 알았다고 손짓을 하는데, 뭘 알았다고 하는지, 참 말 안 들어. 본인은 알았다 알았다고 하는데 얻어맞으니 참...(청중들 웃음) 작년 한국시리즈 6차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김재걸의 타격을 보니, 커브에 약한 것 같아서 김재걸 조심해라라고 그랬는데, 이겨서 얼른 여자친구한테 전화하고 싶었는지, 초구 직구 던지다가 크게 맞았다.(청중들 웃음) 김재걸이 한국시리즈 끝나고 나중에 우리 집에 찾아왔는데, 왜 초구 쳤냐고 물으니까. 마해영이 무조건 초구치라고 그랬다더라. 거 마해영은 왜 그런 말 해 가지고 말이야.(다시 웃음)
◆ 요건 GQ 인터뷰.
2002 시즌 최후의 승부에서 패했지만, 최고의 승부사로 불리는 김응룡 감독에게 '야구의 신'이라는 헌사를 받아낸 김성근 감독은 야구에 관한 한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GQ는 그 김성근 감독에게 요즘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엄정한 품평을 의뢰했다. 그가 단숨에 쏟아낸,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뼈아프지만 의미있는 충고들을 지면에 옮긴다.
GQ - 한국 프로야구가 점점 재미없다는 말들이 있다.
김성근 - 야구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비해 우리 야구는 선수층이 얇고, 우수한 선수가 부족하고, 관중 동원 면에서도 수준차가 너무 크다.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미국식 야구를 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GQ - 그것은 요즘의 한국 프로야구계가 미국식 야구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김성근 - 구단 프런트에서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프런트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현장에 맡겨야 한다는 점이다. 대신 프런트가 조직관리 면에서 선수, 감독, 코칭 스태프를 모두 뽑되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형태여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구단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오너가 제너럴 매니저에게 모두 맡긴다. 그러면 제너럴 매니저는 감독, 선수, 코칭 스태프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신바람 야구'를 하라고 위에서 지시하면 그만한 팀 전력을 갖춰놔야 한다. 그러고도 결과가 나쁘면 제너럴 매니저가 잘린다. 감독이 책임지는 게 아니다.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만약 호시노 감독이 어느 팀으로 간다면 호시노 식의 야구를 한다. 이른바 전권감독이다. 프런트는 나머지 일만 하면 된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 나라의 경우엔 감독에게 전권을 주는 형태가 좋다. 이유? 각 팀에 인재가 풍부하면 윗사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지만, 인재가 부족하면 윗사람눈치를 봐야하는 게 우리 구단의 현실이다. 당연히 인재가 부족한 팀 상황을 고려할 때 윗사람과 잘 지낼 궁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해바라기' 마인드로는 야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GQ - 그것은 LG 트윈스에서 명쾌한 이유없이 경질된 당신을 떠올리게 만든다.
김성근 - 프런트가 명분을 가지려면, 팀 전력이 약할 때는 '팀컬러가 이러니까 그런 야구를 해라 져도 괜찮다'고 하면서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무조건 성적이 나쁘면 코칭 스태프부터 교체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선수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 팀을 놓고 팀컬러를 내려고 했다. 이건 무리한 주문이다. 게다가 팀은 이겨야 한다. 아무리 화려하게 야구해봤자 지면 팬들이 열광하지 않는다.
GQ - 약체팀을 어느 수준에 올려놓긴 하지만 소위 '김성근식 야구'가 재미없다는 지적들이 많다. 물론 최근에는 '김성근식 야구 다시보기'라는 말도 들리긴 하지만.
김성근 -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런 비판하기 참 쉽다. 지난 시즌 맡았던 LG팀을 사례로 들자면, 실제로 LG팀을 맡기 전에는 좋은 선수도 많고, 굉장히 화려한 야구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일단 융통성이 없었다. 그냥 치고 박기만 하는 아주 재미없는 야구를 하고 있었다. 힘이 있을 때는 견디지만, 힘이 없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닌 팀이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 예를 들어 한 점 리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혹은 한 점을 어떻게 더 빼내야 하는 가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물론 야구의 묘미는 홈런이다. 하지만 홈런타자가 없는 팀에게 자꾸 홈런 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난해 LG는 1천 원짜리 팀이었다. 삼성은 당연히 1만 원짜리니까 화려하게 야구할 수 있다. 1천 원짜리 야구는 이리 메우고 저리 메우는 짜깁기 야구다. 비유하자하면 '서민의 야구'다. LG에는 우선 선발 피처가 없었다. 중간도 없었다. 중심 4번 타자도 없었다.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거기서 한 점을 주지 말고, 한 점을 더 뺏고, 한 베이스 더 뺏고, 상대팀에게는 한 베이스 주지 않는 야구를 하자고 그랬다. 그리고 선수들 모두에게 '사람의 잠재력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문제는 LG선수들 대부분이 자신의 한계를 설정해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프로야구 선수다. LG의 스타다'라는 생각만 하고 앉아있었다. 이건 가장 나쁜 버릇이니 고치자고 했다. 나도 바꾸겠다고 했다. 'LG야구가 재미있다,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속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야구의 재미 중 최고는 물론 홈런이다. 하지만 숨어있는 진짜 재미는 원 베이스가 투 베이스 되고, 투 베이스가 쓰리 베이스 되면서 상대에게 지지 않는 것이다. 이게 스릴 있는 야구다. 그런 아슬아슬한 야구를 보면서 팬들이 도취되는 거다. 쓸만한 선수가 없는 곳에서 야구를 하려면 그런 식으로 해야한다.
2001 시즌 LG팀의 스틸이 70∼80개 정도였다. 2002시즌에는 120개 넘긴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실패해도 좋으니까 감이 오면 뛰라고 주문했다. 시즌 결과는 기와와 비슷했다. 그런데도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한다.
GQ - 번트를 자주 대는 야구에 대한 지적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성근 - 번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돼 있다. 번트 대는 것을 단순히 한 점 뺏는 야구로 생각한다. 번트의 의미는 한 점이 아닌, 상대팀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느냐 하는 데 있다. 큰 뜻에서 보면 전법이다. 러너가 퍼스트에 있는 것과 세컨드에 있는 것은 수비 쪽에서 느끼는 부담 면에서는 엄청 나게 차이가 크다. 번트로 게임의 돌파구를 열어야 할 때가 있고 상대팀에게 데미지를 줘야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것이 1점 뺏으려다 3∼4점으로 이어질 때도 많다. 예를 들어 4점을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8회쯤 번트를 대는 것은 오늘만 이기겠다는 게 아니고 다음 경기까지 염두에 둔 대비다. 오늘만 이기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번트가 아니다. 133게임을 치르는 페넌트 레이스를 토털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계산 속에서 야구를 해야지 , 그날 게임마다 토막 끊어서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코리안 시리즈나 포스트시즌은 하나하나 보고 가는 게임이다. 그건 천지차이다. 싸움의 양상 자체가 바뀐다.
LG를 예로 들면, 한점 두점 아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예전 쌍방울 시절과 비슷했다. 그 당시 쌍방울이 1점차로 패한 게임이 25게임 정도 됐다. 그걸 반만 이긴다고 생각해봐라. 우린 13승이 플러스되지만, 상대팀들에게선 13패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년 상위권이 되는 거다. 8회쯤 승부를 뒤집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1회부터 열심히 해서 1점씩 내면 된다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번트가 필요했다. 번트는 50%의 성공확률을 가지고 있다. 안타는 30% 확률이다. 게다가 투수들은 모두 3할대 승률을 가지고 있었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확률 높은 야구를 해야한다.
번트 얘길 조금 더 할까. 이번 코리안 시리즈에서는 관중들이 번트 대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그 이유는 초구에 모두 성공했고 득점했기 때문이다. 페넌트 레이스에서는 실패가 많았다. 번트 하나만 가지고도 사인만 제대로 이행하면 80%이상 득점한다. 하지만 자꾸 실패하면 득점 확률이 30%이하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통계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재미없다고 말하는 거다. 번트 하나만 제대로 대는 것은 준비된 팀이라는 증거다. 이런 이면을 모르고 번트 자체에 대해 막연하게 재미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다.
GQ - 좀더 노골적으로 묻자면, 어느 야구 해설위원은 , '프로는 관중이 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서는 5회까지는 가급적 번트를 대지 말고, 투수교체도 하지 말고, 빠르고 화끈한 경기를 펼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재미없는 야구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당신과 김재박 감독을 꼽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맥락대로라면 억울한 감도 있겠다.
김성근 - 흥미로운 것은 김응룡감독도 번트를 댄다. 코리안 시리즈 때는 1회에도 번트 댔다. 김성한 감독도 막판에 많이 했다. 두산 김인식 감독은 피처를 자주 바꾼다. 하지만 내가 하면 비난하면서 그들이 하면 비난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건 평소에 어떻게 사교하는가에 달려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평가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야구를 보는 개념차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구 속에 흐르는 흐름의 묘미를 음미하지 않고 두드러진 한가지만 본다. 지난 시즌 코리안 시리즈 때에도 그런 지적들이 많았지만, 경기 끝나고 '왜 번트 댔어, 왜 투수 바꿨어. 왜, 왜, 왜'에 대한 것들을 설명해주니까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랬구나, 그렇게 깊은 의미가 있었구나 하면서.
한가지 사례를 들면, 코리안 시리즈 2차전 대구경기 심성보 타석에서 대타로 이일의를 내보냈다. 나중에 모니터터 보니까 해설자가 마구 비난하고 있었다. 경기 진행이 늦다고, 김성근은 원래 그렇다고. 하지만 난 그 상황에서 김응룡 감독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야구는 수읽기다. 여기에 재미가 담겨있다. 해설자는 '쳤습니다, 잡았습니다, 잘했습니다' 수준에서 끝낼 게 아니라 이런 수읽기를 전달해야 한다. 감독끼리 수싸움을 하는 묘미까지 읽어야 한다. 내가 이일의를 낸 것은 상대투수를 노장진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김응룡 감독이 넘어오질 않았다.
그게 그날 게임 흐름의 하나다. 그리고 내가 이일의를 내면, 삼성에서는 김응룡 감독이 왼손투수 강영식을 낼 것인지도 유심히 봤다. 만약 바꾸면 곧장 다시 최동수를 내려고 준비시키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던진 수는 패착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한가지는 건졌다. 김응룡 감독이 코리안 시리즈에서는 투수 강영식을 중요하게 기용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스포츠 신문들이 다음 게임선발을 강영식이라고 했지만, 난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도 전병호가 나왔다. 만약, 김 감독이 강영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그 대목에서 썼을 것이다. 그때 안 썼으니까 '아, 코리안 시리즈에서는 절대 안 쓰겠구나'라고 생각한 거다.
이런 대목들이 야구에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런 대목들을 해설자들이 전해야 한다.
GQ - 직접 경험한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수준에 대해 엄정하게 품평한다면?
김성근 - 프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알고 있다'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팀을 만들어 가야한다. 직접 경험한 LG의 유지현 선수를 예로 들자면, 그 선수는 아는 건 다 알고 있었지만 하지는 못했다. 꾀가 많고 두뇌 플레이한다고 했지만 아니었다.
만약 A라는 타자와 피처 A가 승부한다고 치다. 이 상황에서 수비수는 어떤 방향의 타구가 올 것인지 예상하고 어떻게 수비할 것인지에 대해 계산해야 되는데 그걸 안 하더라. 2002 시즌 LG의 팀방어율이 2위였는데, 전년 시즌에 비해 2점 정도가 낮아진 거다. 그건 그만큼 수비가 안정적이었다는 말이다. 다시 유지현으로 돌아가서, 타자가 브리또인 상황에서 커브를 치면 3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빠진다. 하지만 유지현은 똑바로 서있었다. 그런 계산도 안하고 야구하고 있는 거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은 파인 플레이도 손쉽게 잡는 거다. 그리고 실수가 없어야 한다. 타자는 7할을 실수해도 되지만 수비는 7할 이상을 성공해야 한다. 피처 컨디션과 상대 타자를 읽고, 피처가 초구를 뭘 던지는 지, 컨트롤은 좋은 지를 계산해서 수비위치를 계산해야 하는 게 수비수의 임무다. 그게 하이클래스 야구다.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은 아직 그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다.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고, 나이 먹었으니까 됐다 이렇게 생각한다. 프로페셔널은 마지막까지 가야 하는 거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하면 안 된다. 결핍을 아는 선수만이 성공한다.
예를 더 들자면 이병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만의 섬에서 사는 선수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 남이 안보는 데서 더 연습하고, 안타 못 치면 아쉬워해야 기술이 느는 거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은 껍데기만 프로다. 이건 LG만의 상황이 아니라 모든 구단선수들이 마찬가지다. 선수들은 우선 프로선수로서 기술업, 레벨업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경기에 임했을 때도 하나하나의 결과에 대해 아쉬워하고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마인드가 우리선수들에겐 희박하다.
인기있고 연봉 많이 받으면 스타플레이어인 줄 안다. '노 굿'이다. 스타 플레이어라는 것은 하이 레벨의 기술을 겸비해야하고, 매일 운동장에 나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선수들 스스로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얼마나 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난 시즌 내가 가장 실망 한 것은 정수근 선수였다. 피처들이 빨라져서 스틸하기가 어렵다고 코멘트한 것을 보고 그랬다.
기아의 김종국, LG 박용택은 뛰는데, '왜 나는 안되나'를 고민하지 않고, 견제가 심하니까, 피처들이 빨라져서 안 된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그런 선수는 프로가 아니라고 본다. 한때 도루왕까지 했던 정수근은 스틸때문에 선수 자격이 있지 그게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선수다. 관중 입장에서도 매력이 없다. 선수들은 자기 트레이드마크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 스타플레이어로서의 책임감, 프로선수로서의 책임감, 기술에 대한 책임감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그게 굉장히 모자라다. 그러니까 당연히 야구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지도자들도 그런 점들을 간절하게 긁어내야 하는데, 선수들에게 맡긴다고만 한다. 그건 올바른 것처럼 여길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근무태만이다. 지금 한국 프로야구가 그런 시기에 와있지 않나 싶다. 그런 점들을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돌파하지 않는 한 새로운 야구 붐은 오지 않을 거라고 본다.
지난 코리안시리즈에서 관중이 몰렸던 것은 두 팀 모두 전례없이 타이트하게 경기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순을 넘기고도 '아, 야구를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느꼈는데, 생각할수록 야구는 깊고 어렵지 않나 싶은데, 거기서 자꾸 도망가지 말고 트라이하면서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야구를 보면서 팬들도 같이 즐겼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한국 프로야구는 중학생 수준정도라고 생각한다. 야구와 관련된 사상과 기법 면에서 그렇다.
GQ - 이병규와의 갈등설이 시즌 내내 끊이지 않았다. 일부 팬들도 올 시즌 게임에 임하는 이병규의 자세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야구계의 톱스타다.
김성근 - 물론 이병규는 소질 있는 선수다. 문제는 마인드다. 이병규가 LG에 입단했을 때가 소위 '자율야구'로 불리던 훈련방식이 적용된 시기다. 이병규는 전력투구가 어떤 것인지를 못 배웠다. 베이스 러닝을 예로 들면 이병규는 안타 치는 순간 그 생각에서 멈추는 스타일이다. 박용택 같은 경우는 프레시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뛴다. 치는 순간 다음을 보고 틈만 생기면 달리려고 한다. 그러면 1루타가 2루타가 되는 거다. 그런 차이가 있다. 이병규에게도 자주 주문했다. 그런 태도가 생겨야 메이저리그도 가고 일본도 간다고.
GQ - 그런 문제는 이병규 뿐 아니라 요즘 젊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생활 태도와 관련된 무성한 뒷소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그들의 사생활이지만연예인들과 자주 어울리는 등 운동 외적인 부분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야구계 대선배로서 한마디한다면?
김성근 - 일본에서 생활하던 20세 때 들은 얘기다. '빨리 피는 꽃은 빨리 진다.' 그때는 나 역시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꽃을 길게 피우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선수들은 그런 걸 염두에 둬야한다. LG에 있을 때 박용택의 그런 부분을 우려했었다. 작년 봄 오키나와캠프에서 박용택이 보인 타격 솜씨는 그 프라이드 강한 이병규나 김재현이 감탄할 정도였다.
내딴에는 크게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4월에 2군으로 내려보냈다. 너무 들뜨면 안될 것 같은 스타일이니까 고생하라는 의미에서. 한번은 손목을 다치고 집에 인사왔길래, 그냥 돌려보내 버렸다. 이유를 대긴 했지만 그건 분명 야구 외의 다른 생활을 하다가 몸관리를 잘못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프로선수라면 야구만 생각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내가 자꾸 얘기한다. 육상을 봐라, 골프를 봐라, 배구를 봐라, 골프 칠 때 손목 스냅을 봐라, 배구 서비스할 때 팔꿈치 각을 봐라. 복싱에서 펀치를 날릴 때 손의 각도를 봐라. 모든 것을 야구 속에 넣어두고 생각하라는 거다.
그러면서 눈이 생기고, 그것이 기술로 변하면서 성장하는 거다.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그런 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아직까지 한번도 읽은 적이 없다. 하이클래스는 뭐가 달라도 다른 거다. 얼마 전에 <야인시대>에서 가미소리가 대나무를 자르는 걸 봤나. 수평으로 잡으면 못 자른다. 옆에서 빗겨치면서 자른다. 야구로 말하면 다운스윙이다. 그건 순간의 기로 잘라야만 가능하다. 그걸 위해서 검도를 배우러 간다. 왕정치가 그랬다.
GQ - 지금까지 언급한 맥락으로는, 프로선수는 스스로 알아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위 '자율야구'를 적용하는 게 논리적으로는 맞는 것 아닌가? 일반에 알려진 당신의 '관리야구'와 '자율야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김성근 - 관리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조직관리를 말한다. 미국야구에서 말하는 관리가 그렇다. 개인을 관리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내 야구를 관리야구라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한국의 경우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율야구를 하지만, 하지 말라는 게 산더미같이 많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에게 하지 말라고 정한 규정이 1백가지가 넘는다. 그걸 지켜가면서 운동한다.
어기면 추방이니까. 한국의 경우, 관리나 자율이라는 개념을 기자들이 자의적으로 갖다 붙이면서 개념이 이상해졌다. 선수들을 자유롭게 놔주는 것을 자율이라고 생각한다. 자율은 그런 게 아니다. 야구는 단체경기지만 개인경기다. 한순간한순간 개인이 겪는 승부가 있다. 타석에서도 그렇고, 수비에서도 그렇다. 미국, 일본, 한국야구의 차이는 분명하다. 미국야구는 동계훈련을 하더라도 연습이 간단하다. 3∼4시간이면 끝난다. 팀 플레이 한두 시간 정도가 중요한 스케줄이다.
팀플레이는 수비포메이션을 연습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은 야수 전체가 있어야 가능하다. 조직적인 것만 모여서 하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연습하면 된다. 배팅 연습하는 것도 선수 당 몇 분이면 된다. 더 치고 싶으면 자기가 알아서 더 치면 된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야구는 개인이 하는 것을 훈련시간에다 집어넣기 때문에 훈련시간이 길다. 그런 개념 차이가 있다. 한국야구의 경우 기술훈련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고 승부에 대한 개념이 미숙한 상태에서 개념이 잘못된 자율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GQ - 프런트와 코치 선임 건 때문에 마찰이 빚어졌다는 것은 무슨 얘긴가?
김성근 - 재작년 가을 캠프 때 피칭, 타격, 수비코치를 모두 일본에서 데려왔다. 난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코치들하고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야구는 한국보다 50년 앞서있다. 미국은 백년 앞서있다. 그 기간 동안 쌓아올린 프로세스를 상상이나 할 수 있나?
수비 포메이션 하나를 놓고도 그들은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을 적용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야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야구니 일본야구니 하면서 껍데기만 가져다가 이용하고 있는 꼴이다. 구단 프런트에서는 그런 소리도 했다. '일본코치를 보유하는 건 대일감정 때문에 미묘한 문제다'라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한국야구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말을 할 줄만 알지,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 때문이다. 귀중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자꾸 코칭 스태프들만 젊어진다. 그 사람이 가진 프로세스는 그 사람만의 것이다.
GQ - 당신은 경기가 끝난 뒤 꼼꼼한 복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리안 시리즈와 관련해 인상적인 몇 대목을 들려달라. 그것은 야구를 보면서 게임의 밑을 흐르는 흐름에 주목하라는 당신의 충고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성근 - 이승엽이 코리안 시리즈 6차전에서 동점홈런 친 것을 보자. 우선 그가 코리안시리즈 1차전 첫 타석에서부터 어떻게 쳐왔는지를 봐야한다. 홈런 치기 전까지는 이승엽은 고작 2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걸 LG배터리들이 어떻게 공략해왔는지 봐야한다. 그게 야구의 묘미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을 평론하고, 해설해야한다. 'LG배터리가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이승엽을 이렇게 공략했지만 시리즈 들어와서는 이렇게 공략했다.
1차전, 2루에 주자둔 상태에서 김민기가 초구로 싱커를 던졌다. 센터 앞 안타였다. 그 다음에 이 공을 가지고 LG배터리가 어떻게 움직였느냐' 이렇게 쓴다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서울에서 4차전인가 5차전에서 9회 원 아웃 투 낫씽 상황에서 이승엽이 센터 앞 안타를 쳤다. 포수 조인성이 인코너로 미트를 댔는데 공이 약간 가운데로 몰렸다. 이승엽의 스윙 폼으로 볼 때 아웃코스 꽉찬 빠른 볼로 갔으면 분명 헛스윙을 했을 거다. 그 안타 하나로 이승엽의 기가 완전히 되살아난거다.
그게 6차전까지 연결됐고 동점홈런까지 간 거다. 중심타자가 시리즈 시작하고 단 2안타만 쳤고 심적인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는데, 그 안타 하나로 완전히 살아난 상황. 거기에 코리안시리즈의 복선이 깔려있던 거다. 홈런을 쳤던 타석에서는 이승엽이 완전히 볼을 읽었다. 그 전에는 읽지 못했다. LG배터리인 이상훈과 조인성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냥 보낸 이승엽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했다. 그 다음 2구로 커브를 던지더라도 볼로 빼고, 타자의 자세와 표정을 본 다음, 3구를 던져야 했다. 그런데도 자기네 계산대로 더블 플레이 잡으려고 슬라이드를 던졌고 , 그걸 노린 이승엽이 받아친거다. 그게 홈런이 됐다. 홈런 맞은 볼을 이상훈의 실투라고 하는데, 아니다 계산이 틀린 거다.
그 전 타석에서 강동우를 잡은 이상훈이 게임을 빨리 끝내려다 말려든 거다. 야구가 그런 거다. 원 베이스 보냈을 때 '왜 보냈을까?' 고민하는 것. 그게 야구에서 얘기하는 초구의 중요성이다. 타자가 초구를 그냥 보냈을 때 '자세가 어땠지, 가만히 서있었나? 뭘 노리고 있을까'하면서 승부가 움직이는 거다. 이런 코멘트들이 점점 많아져야 야구의 묘미가 살아난다. 볼 하나에 얼마나 많은 미묘한 것들이 살아 움직이는 가를 말하는 것.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경기를 전달하는 방법에 따라서 재미있다, 없다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머리 속에서 굴리고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독이라면 당연한 거다.
한 게임에 주고받는 3백여개의 공을 하나하나 계산 속에 두고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또 하나 더 할까. 코리안시리즈 6차전 8회. 4점 리드한 상황에서 이병규가 어깨가 아프다고 교체를 요구했다. 난 안된다고 했지만 코칭 스태프 3명이 요구해서 바꿨다. 마르티네스가 라이트에서 센터로 가고, 라이트에 최만호를 넣었다. 수비위치가 완전히 바뀌면서 두 군데 구멍이 생겼다. 그게 코리안시리즈 최고의 허점이었다. 4점 리드하니까 선수단 전체가 마음에 허점이 생겨버린 거다. 이병규 교체 후 양준혁이 라이트 넘기는 히트를 쳤고, 김재걸이 센터 다이렉트를 날렸는데, 만약 이병규가 계속 수비했으면 잡았을 거다.
GQ - 당신의 정밀한 데이터와 시선으로 볼 때 각 방송사의 해설과 스포츠 신문 경기 리뷰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지만, 굳이 고른다면 누가 가장 정확한 해설을 한다고 생각하나?
김성근 - 역시 현장에서 뛰었던 사람들이 감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정삼흠이 괜찮았다. 경기 상황에서 투수들의 심리에 대해 매우 정확한 편이었다. 전문가라면 원 포인트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
GQ - 이제 당분간 한국 프로야구계에서 당신을 볼 수 없게 됐다. 마지막으로 야구팬들에게 한마디한다면?
김성근 - 팬들 입장에서 야구 보는 각도를 이기고 지는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오늘 어느 선수가 뭘 했다는 것을 보는 관점으로 바꿀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야구팬들이 '야, 어제 선동렬이 슬라이더가 잘 꺾이더라, 오늘 슬라이더는 코스가 조금 어정쩡하더라, 릴리스 포인트가 이렇게 됐다 저렇게 됐다, 공 실려가는 게 낮았다, 공 맞는 포인트가 약간 아래로 들어온다, 그 선수는 투구할 때 이러저러한 버릇이 있더라'라는 대화를 하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그런 시기가 오면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분발할 거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지만 매체들이 야구의 속깊은 얘기들을 제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타격에 관한 한 무불통지의 경지에 오른 이치로의 올 시즌과 일본 열도 정복에 나섰던 국민타자 이승엽의 쓸쓸한 시즌 마감. 이 극명한 명암대비의 배경엔 어떤 차이가 숨어있을까?
GQ: 일본에서의 이치로는 비교를 불허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그건 고스란히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엔 어떤 차이도 없을까? 일본에서 뛰던 이치로와 메이저리그에서의 이치로의 차이가 있다면 말해달라.
김성근: '멘털' 면에서 크게 바뀐 건 없다. 이치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선수다. 미리 비교하면 이승엽과 이치로의 가장 큰 차이가 그거다. 이승엽은 결과를 쫒아 다녔고, 이치로는 과정을 봤다는 것. 안타를 때렸든 삼진을 당했든 문제 삼지 않고, 내 스윙을 했는가를 문제 삼는게 이치로다. 말 그대로 완전주의자다. 반면 결과를 보는 이승엽은 아무래도 성적이 올라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엄격하고 연습량도 엄청나게 많아야 한다. 야구에 모든걸 투자하는것, 이치로는 그부분에서 확실한 선수다. 굳이 미국에서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면 흔히 시계추타법, 진자 타법으로 불리는 스윙 폼을 꼽을수 있는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오른발을 당기는 각을 줄였다는 점이다. 거리를 줄인거다. 일본 시절엔 그 각이 컸다. 이유는 미국과 일본피처들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 피처들은 어깨 뒤에서 넘어오는 팔스윙이 굉장히 빠르다. 반면 일본 피처는 늦다. 타이밍이 틀리다. 미국 피처들이 1-2-3으로 넘어 온다면 일본은 1-2-2-3으로 넘어온다. 그런 변화를 읽어낸뒤 자신의 타격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오른 다리의 각을 줄인거다.
또 하나는 일본시절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줄였다는 거다. 웨이트 트레이닝이 야구 선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메이저리그에 가서 느꼈을꺼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던 이치로가 원했던 건 이소룡같은 몸매였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걸 확인한 뒤로 줄였다고 들었다. 그 밖엔 별로 달라진게 없다고 본다.
GQ: 얼마전 한 스포츠 일간지에 실린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치로의 타격 스승이 재일동포 야구선수인 아라이, 한국명 박종률이라는 기사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억지로 꿰맞춘 기사라는 시비도 있었는데;;;.
김성근: 프로에 데뷔한뒤 2~3년 동안 1군과 2군을 오르내리던 이치로가 2군에서 만난 감독 얘기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감독이 가와무라였다. 이 감독도 한국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그 감독과 대화하면서 이치로가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고 들었다.
그 시절 이치로가 깨달은 가장 큰 내용은 투수가 뿌린 공을 선으로 보다가 때릴 때는 점으로 봐야 한다는 거였다. 공을 선으로 보고 치면 단타일경우가 많다. 하지만 선으로 보다가 점으로 보면 장타가 된다. 기와무라 감독과 이치로가 공감하고 감명받은게 바로 그 내용이다.
지금의 이치로 타법 그러니까 다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도 배트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 시절 가볍게 시작한게 지금처럼 된거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하는 타법이 사실은 2군 시절 하던 거다. 말 그대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런 다음 1군에 진출하면서 만난게 아라이다.
GQ: 홈런킹에 도전했던 이승엽의 사례도 그렇고, 흔히 대기록을 앞둔 선수들은 엄청난 부담 때문에라도 성적이 멈칫하기 마련이다. 반면 이치로는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기복이라곤 없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 않나?
김성근: 재미 있는 얘기가, 이치로는 삼진 당해도 억울한 표정 안보이고 안타를 쳐도 즐거운 표정 안보인다. 늘 포커 페이스다. 매너가 좋으니까 심판들에게도 평이 좋고, 상대 선수들에게도 견제가 없는 거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스무 게임 연속으로 안타가 나오지 않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이치로는 불안해 하지 않았다. 자기는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 단지 히트가 없었을 뿐이니까. 일본 시절 이치로는 연속 안타를 치고도 불만을 토로할 때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히트를 쳐도 과정이 나쁜것 내것이 아닌 게 나오면 불만 스러운거다.
GQ: 이치로의 타격 테크닉과 관련된 질문이다. 그가 안타를 만드는 수준을 언급할때 투수가 공을 뿌리기도 전에 이미 상체가 1루를 향하면서 오른손목만으로 친다고 하는데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스피드 볼을 감당하는 그 손목힘은 과연 어떤 수준이라는 건가?
김성근: 그건 손목힘 때문이라기 보다 앞 어깨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렸을때부터 그만한 연습을 했으니까 가능한 수준이다. 이치로의 타격 폼은 몇 만번, 몇십만번의 스윙을 통해 완성된거다. 가히 유전자가 된거다 물건을 보는 통찰력도 어마어마하게 뛰어나다. 타자는 움직이는 물체를 볼 경우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으로 봐야한다. 이능력이 뛰어나야 좋은 타자가 된다. 이치로는 이 능력 테스트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곱절이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체크됬다. 타자가 타석에서 눈 대신 고개를 돌리면 이미 그건 승부에서 진 거다.
GQ: 앞서 완전주의자라고 평했지만, 그런 선수에게도 한 두 가지의 단점을 있을 것 같다. 흔히 체력, 파워, 초구 선호가 단점으로 꼽히는데...
김성근: 체력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이치로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고 그는 모든 라이프 사이클을 야구에 맞추고 산다. 술 안 마시고, 일찍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서 연습하고 시합전에 연습하고 시합 후에 연습하는 스케줄을 정확하게 지킨다.
(GQ: 하지만 데이터만 놓고 보면, 매시즌 9월쯤이면 급격한 낙차를 보이는건 아니지만 타율이 떨어지는 걸 볼수 있다.)
김성근: 뭐 그럴 수는 있겠지. 시즌 내내 이동하는 메이저리그의 이동거리는 엄청나다. 그렇다 보면 짧게 그런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단점이 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GQ: 1번 타자라면 초구 공략 보다는 상대 투수를 좀더 괴롭히는 배팅을 해야 하는데, 초구에 지나치게 배트가 나가는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김성근: 물론 그렇게 지적할 순 있지만, 초구나 투 낫싱 다음에 치는 건 별 차이 없다. 초구를 노리는 건 확실한 노림수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흥미로운 단점 하나를 굳이 언급한다면 이치로의 몸이 굉장히 뻣뻣하다는 거다. 경기 장면만 보면 굉장히 부드러운데, 아침엔 상체를 굽혀도 무릎 아래까지 손이 내려가지 않고 몸이 풀리는 오후가 되도 땅바닥에 닿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단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나머지 부분을 보강한다. 또 한가지 파워를 언급하는데 이치로의 대답으로 대신하자. 이치로는 '난 홈런을 치려고 마음먹으며 친다' 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더 중요한건 홈런이 아닌 히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거다.
GQ: 이치로의 메이저리그행이 결정됐을때, 김성근식 관점에서 평가한 성공 가능성은 몇 퍼센트였나? 솔직한 답변을 원한다.
김성근: 100% 난 처음부터 이치로가 미국 야구와 상대했을때 아무 어려움도 없을 거라고 봤다. 미국 야구의 스피드 볼에 대한 적응 능력이 있었고 변화구는 일본 피처들이 더 좋으니까 더 문제가 안될 거였기 때문이다. 시범 경기를 치른 이치로도 그랬다. 그 정도 스피드는 치는 데 어려움이 없겠다고
또 한가지 에피소드를 말하면, 이치로가 미국에 가서 두번째 시즌을 맞았을때, 당시 아메리칸 리그 타격 1위였던 매니 라미레즈가 이치로에게 스윙폼을 봐달라고 했다. 경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물었던 거고 이치로는 답했다. 결국 2002 시즌 수위타자는 라미레즈가 따냈다.
이치로에겐 타이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지만 자기 플레이를 얼마나 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선수다. 이런 에피소드만 봐도 이치로는 뭔가 다른, 굉장히 영리하고 냉철한 선수임에 분명한 거 아닌가.
GQ: 대기록의 주인공인 이치로가 회자 되면서, 인터넷에는 때 아닌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과의 비교 논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가령 LG의 이병규의 경우 공을 맞추는 재능만큼은 이치로보다 낫다거나, 기아 이종범은 삼진을 덜 당한다는 것 등등인데......
김성근: 너무 단정적이라고 비난당할지 몰라도 비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삼진을 말하는데, 메이저리그에 처음 갔을때 이치로가 당한 삼진은 내 기억으론 36개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전 시합을 통틀어 이치로가 당한 삼진은 한두 개에 불과했다. 물론 이종범이나 이병규도 좋은 선수지만, 이치로에 비하면 모든 분야에서 뒤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비교우위를 말하는건 한국 매스컴들의 얘기일 뿐이다. 이치로는 체력, 기술, 야구를 추구하는 자세와 생각의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 이치로는 캐치볼 하나에서도 그날의 컨디션을 조절한다. 던지는 볼 회전을 보고, 약간만 회전이 비뚤어져도 고친다. 우리나라 선수들 중 그런 선수는 단 한명도 없다.
GQ: 보는 시각에 달라질 수 있는 평가라는 사람도 있다. 가령 텍사스 레인저스의 벅 쇼월터 감독은 이종범의 전성기 기량을 두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단 한명을 데려가라고 하면 이종범 뿐이다 그는 이치로보다 잘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다"라고 말한 일이 있다.
김성근: 이종범에게 몸쪽 공을 던지면 절대 못친다.
GQ: 그건 빈볼 쇼크 이후의 얘기 아닌가?
김성근: 아니다. 빈볼 쇼크 이전이건, 이후이건 못 친다. 반면 이치로는 볼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친다. 선으로 가지고 왔다가 점에서 땅 치는 타자다. 그리고 이치로는 늘 그렇다. 이병규가 절정의 기량을 뽐내는 베스트일 때와 비슷하다고 말할 순 있지만 이병규가 베스트를 보이는건 시즌중 단 몇번에 불과하다.
GQ: 올시즌 이치로가 세운 최다 안타 기록에 대해서 대단한 기록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꼴지인 소속 팀이 미리 시즌을 포기했기 때문에 세운 기록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성근: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한강에 빠뜨려야 한다. 이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는, 84년만의 기록이다. 그야말로 축제 아닌가? 이승엽이 홈런 기록 세웠을때 딴소리 한 사람 없었다. 미국과 한국 야구의 차이는, 미국은 같은 팀워크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선수들이 싸우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팀워크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처음부터 너무 좁혀서 간다. 쓸데없는 희생을 강요한다. 한국 야구가 다이내믹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이치로도 당연히 자기가 이겨야 사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사라진다. 선수 자신이 우선 이기고 그것으로 인해 팀에 공헌하는것 그게 바로 팀 플레이다. 그게 바로 미국 야구에서의 '개인'의 개념이다.
GQ: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일본야구의 또 다른 아이콘들인 마쓰이 히데키와 신조를 이치로와 비교 한다면?
김성근: 단언하면 신조는 메이저리그에 갈 만한 선수가 아니다. 일본에서도 그다지 좋은 타자는 아니었다. 반면 마쓰이 히데키는 자기 걸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 역시 일본에서 하는 스윙을 미국에선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배트를 쥔 손목의 위치가 높았는데, 미국에서는 낮췄다. 그라운드 볼을 치기 위해서 그랬다.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2년쯤 지난 요즘엔 장타를 치기 위해 슬슬 손목의 위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GQ: 인터넷에 떠도는 타자별 유형 분석을 인용하면, 이치로는 대표적인 A-A타입이다. 풀자면 하나의 구질이나 코스를 노리지 않고 백지 상태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것, 규정 스트라이크 존이 아닌 타자 스스로 스트라이크 존을 만드는 타입을 말한다.
김성근: 배팅의 측면에서 타자를 말하자면, 직구 타이밍에서 변화구를 때릴수 있는 선수가 베스트 타자다. 가령 변화구 타이밍을 노리던 타자는 직구 타이밍이 들어오면 못친다. 볼이 빨라지니까. 타자는 늘 투수의 가장 빠른 직구 타이밍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 거기에 맞춰놓고 그 다음에 변화할때 따라가야 한다. 그게 제일 좋은 타자다.
두번째는 자기가 치는 코스를 정해놓고 치는 선수다.
세번째는 상대 피처가 뭘 던질것이다를 계산해놓고 치는 선수다. 이 경우도 두 가지로 나뉜다. 막무가내로 직구 다음엔 변화구라고 생각 하는게 아니라, 모든 데이터와 상황을 놓고 판단하는 경우다. 베테랑급 타자들이 그렇다.
예전에 한대화가 많이 했다. 박정태가 좋을때도 그랬고, 마해영도 그런 스타일이다. 그 정도 클래스는 타율이 나쁘진 않지만 높은 타율은 나오지 않는다. 이승엽의 경우 그 정도 클래스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직구 타이밍에서 변화구를 칠 정도는 아니다. 이치로는 된다.
GQ: 는 지난 4월호 스포츠 이슈에서 일본 현지의 야구 전문가들에게 이승엽의 올시즌 성적을 전망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내용은 한국 야구팬들과 매스컴의 기대를 아쉬움으로 뒤덮기에 충분했다. 타율 2할8푼 안팎, 30홈런이면 대성공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자국 매체가 아닌 한국 매체에 실린다는 이유로 후한 평가를 했다는 느낌이었다. 결과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퍼시픽 리그에서의 이승엽의 올시즌 성적은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수준이었다. 그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타자'로 불리는 그의 닉네임 탓이기도 했는데;;;;.
김성근: 지난해에 롯데에 입단하고,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 일본야구를 쉽게 보지 않았나 하는게 내 생각이다. 아시아 선수권 대회나 세계 대회에 나간다는 건 상대를 미처 파악하지 않고 경기를 치를때가 많다. 그런 이유로 국제대회에서 잘한다는 건 상대가 몰랐기 때문에 잘한다는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좀더 필요한건 '멘털'보다는 기술이다. 이병규 같은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곧잘 성적을 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병규 역시 두 번째 게임쯤 되면 고전하기 시작한다.
이승엽의 경우도 국제 대회에서 마쓰자카의 공을 쳤다고 매스컴에서 떠들었지만, 마쓰자카가 일본야구의 전부는 아니다. 그 와중에 일본야구에 적응하기 위해 마쓰자카의 비디오를 구해 분석 중이라고 매스컴에서 공개하는등 모든 상황을 알려준것도 마이너스였다.
상대로 하여금 투지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진출 전에 이미 일본 투수들 사이에서는 이승엽의 단점이 낱낱이 언급되고 있었다. 와밨자 어느 곳으로 던지면 치지 못한다는 등등.
물론 시범경기 직후인 4월까지는 스윙 폼도 커지고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일본야구와 한국야구의 차이를 이승엽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거다. 그 차이중 하나가 투수들의 위기 관리 능력이다. 일본투수들의 위기 관리 능력은 굉장히 뛰어나다.
왜? 제구력이 좋게 때문이다. 한국 투수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볼의 위력이나 제구력이 부족해서 실수할 경우가 더 많다. 그 와중에 이승엽이 쫒아다닌 건 결과였다. 홈런 56를 친 아시아 최고의 홈런 타자였던 절정에서 내려오면서 조바심을 느꼈고, 그러다 보니 자기 것이 안 나온게 아닌가 싶다.
GQ: 애당초 이승엽이 일본행을 선택했을때는 먹힐 거라는 생각이었나?
김성근: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지난해에 이승엽과 나눈 얘기지만, 자기 폼으로 치는 이승엽은 정말 대단한 선수다. 단 하나, 그게 오래 가지 않는다. 5개월동안 한 시즌을 치르면서 그런 폼이 몇개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치로와 달리 결과만 나오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월을 넘기면서 시행착오가 생긴 이승엽은 '멘털' 면에서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거다. 그 과정에서 타격폼을 이리저리 고치기 시작했고, 그걸 간파한 상대투수들은 마구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그게 올 시즌이 아니었나 싶다. 얼마전에 발렌타인 감독과도 이틀 동안 만났는데, 이승엽의 연습 부족을 지적하더라.
GQ: 연습부족? 국내 스포츠 매체에선 늘 그를 연습벌레라고 써대지 않았었나?
김성근: 매스컴의 말일 뿐이다. 원래부터 별로 연습을 하지 않았다. 이승엽은 재질로 지금까지 올라온 선수지, 연습으로 올라온 선수가 아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연습은 연습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연습엔 피땀이 나야 한다. 앞서 말한, 메이저리그 수위타자인 라미레즈도 매일 시합전에 2백~3백개를 때린다고 했다.수위타자가 그렇다. 이치로도 하루에 4백~5백개를 친다. 예전에 왕정치도 시합 가기 전에 스윙, 경기장에 가서 스윙, 시합 끝나고도 스윙했다. 그것도 자기 집이 아닌 코치 집으로 찾아가서 했다.그런 왕정치의 손엔 늘 반창고 투성이였다. 그렇게 잘 치는 선수도 그런 연습을 쉬지 않고 했다. 오치아이도 마찬가지였고, 연습은 그냥 하는 게 아니라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내 것이 된다.
GQ: 와의 인터부에서 당신은 일본으로 간 한국 선수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멘털'을 지적했다. 이승엽의 부진 역시 '멘털'이 가장 큰 이유라는 얘긴데;;;;.
김성근: '멘털'을 언급하기 전에, 어떤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태도를 말하고 싶다. 그 자체가 이미 약하다는 증거다. 정민태, 이종범이 그랬다. 이유는 아무나 붙일 수 있다. 승부의 세계에서 제일 나쁜건 자신의 '미스테이크'다.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 보는 건 그래서 나쁘다. 투수가 실투한 공을 홈런으로 연결했다고 좋아하면 안된다. 그건 상대의 실수 때문에 생겨난 거다. 타자는 투수의 베스트 볼을 칠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아무리 수위타자라고 해도 1년 내내 2진급 투수한테 5할 치고, 에이스한테 2할 친다면 그건 좋은타자 아니다. 그런 타자가 많다. 이치로에겐 그런 기복이 거의 없다. 매스컴이 더 조장한다고 생각하지만, 성적이 좋을 때는 아무 말 없다가 나쁠 때는 유난히 나라 탓, 환경 탓, 민족 탓을 하는건 옳지 않다. 그건 야구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들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모두 알고 간거 아닌가? 한국 선수들에 필요한 건 현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순응의 미덕이다. 그게 없기 때문에 갖가지 이유를 대는 거다. 그건 '컨트리보이'나 하는 짓이다. 선동열은 그걸 탈피했기 때문에 성공했던 거다.
박찬호에게도 그랬다. 왜 인터넷 사이트에 글 올리고 그러느냐고. 박찬호가 싱싱하고 강할때 그랬나? 그건 마음이 약해졌다는 걸 반증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기 시작했을때 이미 승부는 끝난 거다.
GQ: 누가 뭐래도 이승엽은 아시아 최고의 홈런타자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민타자다. 그런이유로 내년 시즌 성적이 올 시즌과 똑같은 궤적을 그릴 거라고 상상하는 팬들은 별로 없을 거다. 내년 시즌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김성근: 두 가지다. 연습 많이 해서 자기 베스트 폼으로 치라는 것. 발렌타인 감독이 그랬다. 이승엽의 베스트 스윙은 자기가 25년 동안 봐온 선수들 중 베스트5에 꼽힌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게 1년에 몇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고.발렌타인도 인정하더라. 그런 스윙을 부단한 연습을 통해서 철저하게 자기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합 때마다 맞닥뜨렸던 공 하나하나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라는 것도 지적하고 싶다. 사람은 결과가 좋으면 자신을 속이게 된다. 됐다 싶은거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그럴 경우 길은 없다.
또 한가지는 발렌타인 얘긴데, 이승엽이 데드볼을 맞고 나서 무너졌다고 하더라, 물론 지금은 피할줄 아는 요령을 알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건 피할 줄 아는 요령이 아니라 상대의 수에 넘어가선 안된다는 점이다. 상대는 맞추기 위해 나온다. 당연한 거다.
한국 야구에선 올 시즌 내내 빈볼 가지고 시끄러웠는데, 빈볼도 야구의 하나다. 피처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던지는 거다.
맞았다고 피하기 시작하면 그건 타자가 지는 거다. 맞는 한이 있어도 정면 승부하고 때려내면 다음엔 안 던지게 돼있다. 이승엽은 그정도로 강해질 필요가 있다. 상대 피처는 재미있게 던지는데, 타자는 피할 궁리만 하고 있으면 승부가 되나?
발렌타인 말로는, 이승엽과 처음 대면 했을때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더라고 했다. 눈을 피하는 것, 그건 자신이 약하다는 걸 알리는 거다. 물론 인간적인 면모는 최고라고 감독도, 프런트도 인정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선 인간성 좋다고 봐주진 않는다.
발렌타인 감독이나 롯데 구단 측에선 내년 이승엽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년 시즌은 전적으로 이승엽 자신에게 달려 있다. 사람은 어려울때일수록 남에게 손을 벌리는게 아니다. 그건 반복될수록 버릇이 된다.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프로세스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이승엽에겐 박흥식이라는 좋은 타격 코치가 있었다. '멘털'이건, 기술이건 모든 면에서 기댈수 있었던 코치였다. 하지만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에겐 그런 코치가 없다. 당연히 덤벼들 곳이 사라져 버린 거다. 그런 상황을 직시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자다가도 머릿속에 퍼뜩 드는 생각이 있으면 시간을 불만하고 한두 시간이라도 스윙을 하면서 자신의 것을 만드는것 그게 필요하다.
GQ: 부록으로 삼을 요량으로 답변을 청한다.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등 메이저리거들의 올 시즌과 내년 시즌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김성근: 다른건 몰라도 올 시즌 서재응은 100% 안된다고 봤다. 이치로는 첫해에 2백안타 넘고 신인왕에다 MVP까지 됐다. 그때 내년 시즌 목표가 뭐냐고 물었더니 "레귤러"가 되는 거라고 했다. 3년 제대로 해야 비로소 메이저급 선수가 되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재응은 어땠나? 작년 시즌 성공하고 한국에 와서 온갖 매체에 얼굴 들이밀면서 자기 알리기에 급급했다. 이치로와 비교하면 올 시즌 성적은 자연스럽게 예상 가능했던 거다. 지난 시즌 서재응의 성공을 공략하기 위해 다른팀이 얼마나 덤벼들겠나? 메이저리그가 그렇게 만만한 곳인가? 심하게 말하면 거긴 전쟁터다.
김병현도 마찬가지다. 심한 얘기 같지만, 아직까지 순수한 메이저리거로서의 면모가 없는거 같다. 메이저리그와 트리플 A의 차이는 인간성 차이다. 똑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선수 인격에 따라서 올라오거나 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새미 소사가 맥과이어하고 홈런 레이스를 펼칠때 백인들은 노골적으로 맥과이어 편을 들었다. 거기에 대해서 소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게 메이저리거로서의 인간성이다. 소사는 모든걸 감수한거다. 그게 감수할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반면 한국 메이저리거들을 봐라. 누가 어떻고, 상황이 어쩧고 하지 않나, 올 시즌 경기와 관련된 박찬호의 코멘트들은 개인적으로 참 불만 스러웠다. 실수 했다, 오늘 볼은 좋았는데 등등의 말을 했다. 경기는 졌는데도 말이다. 그냥 담담하게 나 졌다고 하면 된다.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도 그랬지만, 올 시즌 박찬호에게선 좋은게 좋은 거라는, 주변 상황과 사이좋게 마무리 하려는 모습 같은게 보인다. 예전 박찬호는 또박또박했다.국내 야구인들과 연락도 없었다. 일종의 고립상태였는데, 그건 좋은거다. 자기 갈 갈이 있는데 글 올릴 시간이 어디 있나? 그건 약해졌다는 증거다. 마음이 흐트러졌는데 어떻게 이기겠나?
올 시즌 시작할때 관찰도 하고 얘기도 나눈 박찬호는 기술적으론 분명 올라왔었다. 부상도 완전히 회복했고. 하지만 문제는 '멘털'적인 면이 아니었나 싶다. 물고 늘어지는 투구를 해야 했는데;;;.
최희섭도 그렇다. 변화구 못치는건 100%못치는 거다. 그는 배팅폼 자체가 변화구를 못치는 폼이다. 낮은 변화구는 거의 헛스윙이다. 그걸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 시즌 초반엔 조금 나아졌다 싶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또 이랬다 저랬다 하더라. 좋은 타자라면 그런 약점을 극복해놓고 당당하게 남에게 보여줄줄 알아야 한다.
야구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물론 자신만의 모습에 집중할 경우 적이 많아질 확률이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극복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만 봐도 개성강한 선수들이 여차할때 뭔가 한다. 양준혁, 마해영, 김재현은 얼마나 강한가? 승부할 때 그들은 뭔가 해낸다. 그게 그 선수들의 매력이다.
박찬호의 매력은 사실 예전의 그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박찬호는 그런 매력이 사라지고 없다. 한국의 메이저리거들은 올 시즌같은 '멘털'이라면 내년 시즌도 가망 없다고 본다.
◆ 07년에 스포츠 2.0이랑 인터뷰한 거
김성근 감독은 베이스 하나에 대한 욕심이 야구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테이블 위에 자료가 많다. 어떤 자료인가.
경기 전에 여러 가지를 본다. 우리 선수들 기록, 상황별 성적, 상대 팀 기록, 상대 팀의 최근 움직임, 우리팀의 흐름 등 그런 것들이지 뭐.
-시즌 전 목표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얼마나 이뤘다고 평가하는가.
지난해 감독 취임식 때 우승이 목표라고 했다. 과거에는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감독을 맡을 때면 언제나 “4강이 목표”라고 했다. 의식개조라고 해야 하나, 선수들에게 우승을 목표로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라고 강조했다. 우승이라는 걸 앞에 세워 SK팬들에게도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성적은 큰 의미가 없다. 최종 결과는 시즌이 끝나봐야 아는 거니까.
-시즌 전 평가했던 팀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었나.
‘백지이구나’ 싶었던 게 좋았다. 때가 묻지 않은 팀이라고 봤다. 하고 싶어하는 의욕이라고 할까, 마음 자세가 돼 있는 팀이었다. 반대로 볼 때는 전혀 안돼 있는 팀이었다고나 할까. ‘이거 갖고 어떻게 싸우나’라는 생각이 든 게 사실이다. 일본에 머무르고 있어 지난 시즌 경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지난해 가을만 해도 ‘지금 이 상태로는 못 이기겠다’ 싶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기본적인 문제였다. 캐치볼, 베이스 러닝 등 기본기가 뒤떨어져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걸 전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전지훈련에서 기본기 훈련을 많이 한 건가.
기본기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던지고, 받고, 치는 것도 기본기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야구의 기본은 그게 아니다. 베이스 하나를 어떻게 더 가고, 어떻게 베이스 하나를 빼앗기지 않아야 하나. 야구는 베이스 네 개를 돌아야 점수가 나는 게임이다. 기술적인 기본기는 나중 문제다. 베이스 하나를 더 가겠다는 의식이 중요하다. 그런 의식이 없으니 방법도 없는 거다. 선수들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되겠지, 되겠지’ 하는 사이에 그냥 굴러가 버린다. 정체된다.
지난해 기록을 보니 2루 주자가 안타 때 득점하지 못한 경우가 매우 많았다. SK 타자들의 타격 수준은 낮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홈을 밟지 못한 것이다. 베이스 하나에 대한 욕심이 모자랐지 않았나 싶다. 베이스 하나란 건 리드를 한 발 더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수치로는 50cm에서 2m 차이다. 이게 바로 승부다. 결국 승부에 대한 인식이 모자란 것이다. 그게 야구인데.
-올해 도루가 많다. 2002년 LG 감독 때도 팀 도루가 전해보다 크게 늘었다.
도루를 할 때는 실패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 달리되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감독이나 코치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자기 노력으로 찾아야 한다. LG 감독 때 ‘옳은 야구’를 하라는 말을 했다. 선수 자신이 깨우쳐서 하는 야구여야 한다. 감독이 일일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고 하는 건 아마추어다. 프로선수라면 자기가 느낀 대로 움직여야 한다. 옳은 느낌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올해 SK의 도루가 많지만 숫자로는 두산과 LG에 뒤진다. 하지만 4월에 워낙 많이 뛰어서 상대에게 강한 이미지를 심어놨다. 그게 뛰는 야구로 성공한 점이다.
-의외로 단타 때 1루 주자가 3루로 가는 건 많진 않은데.
그런가. 아마 4월에는 많았을 텐데. 그 뒤에 줄었을 것이다.
-지난해 SK는 부상 병동이었다.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무엇이었나.
지난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말은 하고 싶다. 바깥에서 우리 팀 운영에 대해 뭐라고들 하지만 선수 교체가 잦은 건 부상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쉬어야 할 선수가 쉴 수 있으니 부상이 방지된다. 아픈 선수는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다. 경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무리는 시키지 않을 것이다.
-트레이닝 파트에는 변동이 있었나.
지난해 그대로다.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장마철을 넘기는 게 어렵다. 이때에 대비한 체력훈련은 미리 해뒀다. 트레이너들도 단계적으로 1년을 몇 개의 단위로 나눠 그때 그때 맞는 훈련 계획을 짜고 있다. 겨울 내내 많이 뛴 게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2군 선수도 지도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2군 운영에 차이가 있다면.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일본 2군은 우리보다 활성화된 게 차이다. 한국에선 관중도 없다. 선수들이 의욕을 잃는다. 이러다 보면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아진다.
-주전이 고정돼 있지 않은 ‘전원 야구’라는 평가다. 이런 운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리더에 따라 싸움을 하는 방법이 달라지지 않겠나.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장사를 하면 돈을 벌 수 없다. 어떻게 개개인의 능력을 살리고 조직력을 강화해 전력을 극대화할까라는 고민에서 나온 결과다. 나는 거의 매일 타순을 바꾼다. 고민도 많다. 이 투수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누구를 내야 하고, 누구를 대기시켜야 하는가.
아마 SK를 편하게 상대하는 팀은 없을 것이다. 비판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제 3안타를 친 선수도 뺄 때가 있다. 그럼 그 선수는 감각이 좋은 상태로 있는 거고, 어제 뛰지 못했던 선수는 새로운 의욕이 생긴다. 아직까지는 좋은 방향에 서 있는 것 같다. 페넌트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1년 내내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올해와 같은 야구를 하니 선수들이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또 선수들이 스스로 이 팀에서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전지훈련 때도 이 점을 강조했다.
-시즌 전 다른 팀에서 버림받다시피 한 선수를 영입했다. 과거에도 그랬는데.
감독은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먼저 살려야한다고 말한다.
다섯 개를 갖고 있는 선수에게 10개를 원하면 안 된다. 갖고 있는 다섯 개를 베스트로 만들면 된다. 그리고 장점을 살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선수를 살려 놓으면 원 포인트 구원 역할을 하더라도 팀 전력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 팀은 구원투수 교체가 잦다. 하지만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다른 팀에서 과연 SK처럼 투수진을 운영할 수 있겠는가? 죽었다 깨도 할 수 없다. 우리는 투수들이 자기 몫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놨다. 보는 눈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벌떼 작전’ 어쩌고 할 게 아니라 능력 극대화라는 관점에서도 봐 줬으면 한다.
-SK 야구의 색깔이 생겼다는 점에서 논란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 라인업이 고정되고 선발진이 안정돼 있으면 나도 매우 편하게 감독을 할 것 같다. 감독은 있는 자산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감독마다 지도 스타일이 다르다. 나는 뒤에서 팔짱 끼고 ‘이 선수는 나쁘다, 저 선수는 어떻다’라고 하지 못한다. 그러면 반드시 후회할 것 같다.
-선발투수들이 가끔 구원으로 등판하는 등 선발진이 안정돼 있지 않다. 요즘 야구 추세와는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
7월 21일 롯데전에서 채병룡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임기응변이었지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다. 마무리 정대현이 올스타전 때 몸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마이크 로마노도 비슷한 상황에서 구원으로 뛰게 했다. 타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늘(7월 24일 현대전, 상대 선발 장원삼)은 이재원과 정근우를 선발 라인업에 넣고 이진영을 뺐다. 이재원과 정근우는 왼손투수에게 강하다. 하지만 이진영도 잘 때리는 왼손투수가 있다. 라인업을 짤 때 선수들의 특징과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 팀의 힘이 100이라면 70이나 80에 머무르게 하는 것 보다는 110이나 120을 만드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선발투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김원형은 선발과 구원을 오간다.
김원형은 쌍방울 때부터 특징이 있다. 4회까지는 잘 던지는데 그 뒤에 무너지거나 볼넷 하나 내주면 쓰러지는 투수들이 있다. 이런 투수들에게는 교체 타이밍이 중요하다. 바꾸지 않으면 선수가 상처를 받는다. 신인 김광현도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한다. ‘고비를 넘겨야 좋은 선수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거꾸로 간다. 투수 출신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원형은 3~4이닝은 잘 던진다. 하지만 5회에는 잡힌다. 그래서 김원형은 3이닝이 한계다. 그 한계 안에서 잘하면 된다. 그럼 조직이 사는 게 아닌가.
-한계를 설정하고 가둬 버리면 선수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
나는 거꾸로다. 닭과 달걀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조직을 만들려면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 그런 팀이 지금의 SK다. 전반기에 로마노와 박경완의 호흡이 조금 맞지 않았다. 그래서 정상호로 두 번 바꿨더니 로마노가 이겼다. 그 뒤로 로마노가 살아났다. 옆에서는 왜 그런 식으로 야구하냐고 하지만 우리 야구는 깊이 파고들수록 맛이 있을 것이다. 뭐랄까,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날 때가 있잖나.
-깊이 파고들기 좀 어려운 야구 아닌가(웃음).
난 그게 야구라고 본다. 내가 갖고 있는 이론은 이렇다. ‘이 팀은 약하니까 약한 팀이다’, 이런 거 없다. 있는 전력을 어떻게 극대화하고 강한 팀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3할 타자 서너 명이 나와도 팀이 힘을 쓰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조직이 살아나면 된다. 그리고 올시즌만 야구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는 어마어마한 팀이 될지 모른다.
-전부터 구원투수를 많이 기용하는 편이었지만 1998년(경기당 3.2명), 2002년(3.4명)에 비해 올해(3.7명)는 더 많다. 이유가 있나.
1998년 쌍방울에는 김현욱이 있었다. 3이닝도 끄떡없고 2이닝은 매일 던질 수 있는 투수였다. 2002년에는 이동현, 장문석, 류택현이 잘했다. 결국 선수 구성의 차이다. 지금 우리 팀에서 가장 필요한 건 롱 릴리프다. 하지만 적임자가 없기 때문에 한 번 나와서 짧게 짧게 던지는 숏 릴리프 위주로 가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할 투수는 많다.
-예년에 비해 올해는 희생 번트 수가 줄었다.
4월에는 희생번트가 필요 없지 않나 싶었다. 그만큼 뛸 수 있었으니. 그때는 솔직히 언론에서 말하는 대로 아웃카운트 하나가 아까웠다. 번트를 대지 않아도 2루에 가고, 점수가 났다. 그 야구로 1위를 하지 않았나.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아, 역시 다시 돌아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번트가 많아졌다. 달리고 때리지 못하니까 번트를 대는 거지.
-지난해 기록을 분석하니 번트는 강공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평균값이지만.
타순을 봐야지. 4번 타자 앞의 3번 타자에겐 나도 번트를 지시하지 않는다. 번트에 대해서라면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번트는 한 점을 내는 작전’이라고 하지만 번트로 대량 득점이 가능한 때도 있다. 상대 실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주자가 2루에 가면 흔들리는 투수도 있다. 번트는 여러 목적을 갖고 하는 작전이다.
-전반기 득점권 타율이 무려 2할9푼9리였다, 이건 실력인가 아니면 일시적으로 좋은 흐름을 탔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