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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lovestory_438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언★
추천 : 0
조회수 : 47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6/14 21:36:50
사랑은 무엇인가.
아니, 좀 더 조심스럽게 묻자면
'사랑'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무엇인가-
그건 말할것도 없이 상호이해다.
나와 동일한 것에는 손뼉을 치며 공감하고
이질적인 것에도 인식을 열어 끝내 자기화하는
이 상호이해야말로 사랑, 더 원초적으로는
타자(他者)와 교류하기 위한 대 전제라 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얼마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친애(親愛)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이것봐, 그렇다면 반대로-
..반대로 생각해서 말이지.
-처음부터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아니 완전히 이해할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어떠한가?
..뻔하지 않나,
그것만큼 인간을 외롭게 하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거기엔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으니까.
말하자면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그 현상을 자기 속에서 재현하여, 가능하게 하는거다.
쉽게 말해 자기화다.
즉,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일면(一面)을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 속에 있는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는 거다.
그러니 만약 너와 내가 서로를 완전무결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너와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인거다.
그들 가운데
이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자가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신은 보상따위 해주지 않았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이라곤 탑에서의 고립, 그리고
일자(一者)의 세계에서 살아가야하는 고독 뿐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처녀는 신과 일족을 배신하고라도
탑의 외부로 나갈 결심을 했다.
그러나 신을 배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탑의 주민으로서의 사명, 신이 그들에게 직접 부과한 의무가 그녀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녀에겐 탑에서 탈출하는 것은 물론
탑의 외부를 향한 어떠한 접촉도 허용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거나 손톱으로 벽을 긁는 것 정도의 행위조차
제한되었다. 신의 의지는 그렇게 강력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이 방법을 써야했다,
성공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깝지만
그래도 만약 가능하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직접 심장에 맹약의 언어를 새기고
그것을 조용히 읊었다.
나 바라건데,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자가 나를 알게 하소서,
부디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자를 내가 사랑하게 하소서,
이것을 이루기까지 나는 영원히 죽지도 않으며 또 물러서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그녀 자신과 싸웠다,
정확히는 자기 안에 깃든 신의 의지와 싸웠다.
목은 꽉 잠겨서 소리를 내려하지 않았고
폐는 때때로 호흡을 멈춰서 몇 번이고 정신을 잃었다.
사지는 뻣뻣하게 굳어서 자신이 어떤 짓도 할 수 없도록 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눈물이 흘렀다.
그건 그녀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시련에도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
심장에 새긴 맹약의 언어는
상상할 수 없는 세월, 상상할 수 없는 강도의 고통을 견디면서도
결코 포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만이 깨달은,
바닥을 모르는 외로움이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이다.
-그 결과, 탑의 처녀는
결국 기사 얀미르를 사랑할 권리를 얻었고
그를 탑의 정상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탑의 정상에서
그녀는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고만 있다.
왜 계속 아래를 보고 있냐고?
저기 저 아래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잖는가.
[..죽인다,죽인다,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 ]
저 남자는 나를 원망하고 있다,
이전의 그를 채웠던 것이 소유욕이라면
지금은 온통 나를 죽이겠다는 살의뿐이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닿는다,
이 의지는 지난 번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원망스럽다,
당연히 죽고싶지도 않다.
내가 오직 그 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걸까. 조금이라도 그걸 생각은 해 보았을까.
-아니, 지금은 그 생각조차 하고있지 않으려나.
어느 새 탑의 정상까지 열 걸음,
내려다보는 처녀와 올려다보는 기사의 시선이 처음으로 마주쳤다.
[....!]
얀미르는 무섭게 팔을 뻗는다,
이제 아홉 걸음.
그러나 신의 탑이 그것을 허용할 리 없다.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스스로를 증축하는 탑.
기사 얀미르와 처녀 사이의 간격은 다시 멀어진다.
분함을 이기지 못한 얀미르는 다시 한 번 절망하며 분노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봐, 내가 생각한대로
그라면 해낼 수 있다니까.
맹약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이 탑을 올라서 나를 죽였을 거라구.
이제 그에겐 오직 그 생각밖엔 없게 됐으니까.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이에게 살해 당할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 그 염려와 함께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그녀의 다리를 타고 흘렀다.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여전히 아래를 내려다 보며 그녀는
쿡쿡하고 웃었다.
-이거구나,
아아, 이거였구나..!
기억나?
그가 약속을 어겼을 때!
탑으로는 들어올 수 없다며 버텼던 그 때 기억나냐구..!
그와 만나기 위해 겪었던 모든 고난,
그 상상할 수 없는 시련을 그는 모를테지.
그걸 알지도 못하면서 그는 이 약속을 어겼어, 감히.
알겠어? 그는 날 이해해주지 않았던거야,
애초에 자기 자신밖에 바라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봐,
거기다가 이젠 일생을 걸어서 나를 죽이려 하고 있잖아
아아..!
이 몰이해(沒理解),
어떤 교합도 여기에는 비할 수 없어..!
-그렇게,
탑의 정상이 또 한 번 기사에게서 달아날 때마다
그 위를 올려다보는 얀미르는 분노하며 울부짖었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는 처녀는 황홀감에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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