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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죽고싶은 생각만 합니다.
게시물ID : gomin_3031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복뎅이
추천 : 1
조회수 : 36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03/16 23:02:06
지금......남자친구/결혼/취업/우울증/아프신 엄마/
여러가지로 힘든 일만 생겨서 하루하루 죽고싶다는 생각만 하고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끌어안고 있는 성격과 우울증으로 인해서 
속을 터놓고 말할 사람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라도 풀어 놓으면 조금이라도 맘이 풀리까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릴때부터......장남인 오빠와, 막내인 남동생만 챙기시고, 며느리를 자주 구박하는 할머니와 
무뚝뚝하신 아빠와...폭력적인 오빠... 남동생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돌잔치는 둘째치고, 오빠 남동생 다 있는 돌사진 하나 없고,
생일 선물이나 케익 한 번 받아본적 없고, 미역국이라도 끓여주시면 다행이고 
계란 후라이를 하더라도 오빠와 남동생만 주시고
오빠에게 맞고 울고 있더라도 여자애가 큰소리로 운다고 저만 혼내시고
말로 다 못하지만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렇게 어릴때는 내성적이기만 하던 성격이 어느새......
사랑 받는걸 포기하고, 상처받지 않기위해서 나혼자 해버릇하고
남자같이 무뚝뚝하고 모든 일에 무신경한 성격이 되어버렸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때...
왕따 당하는 아이와 놀지말라는 친구들 말을 무시하고 놀았다가 
왕따를 당했을때에도......크게 힘들거나, 괴롭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날 싫어하면......다른 친구들이나, 남자들이랑 놀면 그만이었고,
책상에 온갖 쓰레기들을 올려놓고, 옆에서 비아냥 거려도
책상이고 의자고 뒤집어엎고 대놓고 욕 해주면 그만 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친구들은 저를 걱정없고, 선머슴 같은 아이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집 밖에서나, 친구들과 있을때는 선머슴 같이 밝은 성격으로 지낼수 있었습니다. 
그저 나를 들키기 싫어서 더 밝은척 하고 숨기며 살아 왔던거죠.

아빠는 원래 농사를 지으면서 목수 일을 하셨는데,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가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일하고, 집안일하고, 쉬는날 농사짓고....
그렇게 희생을 하면서 살아도 고부간에 갈등은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고, 
회사 일은 점점 힘들어져가고...아빠가 업종을 변경하시고 시장에서 수주를 받았는데, 
자기들 일을 빼앗았다고...깡패들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게 되셨습니다.

그때부터 였던것 같습니다. 
엄마가 일을 관두고, 밤마다 집 밖으로 나갔다가 아빠 손에 이끌려 들어오기 시작하고, 
방에서 나오시지 않아서 얼굴보기가 힘들어지고, 아빠의 큰소리가 나기 시작한것이...
말은 안했지만, 집안에 흐르는 이상한 공기와 엄마의 행동들에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습니다.  

동생이랑 MBC와 KBS의 수신료에 대해서 말싸움을 하다가 엄마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엄마 MBC는 광고로 돈벌고, KBS는 우리가 돈 내는거지? 내 말이 맞지?"
"누가 그런말 하더냐? 그런말 하고다니면 잡아간다. 말하고 다니지마라."

90년대 초반에 우울증에 관해서 매스컴에 나오기 시작할때 였습니다.

"잘들어라. 엄마가 이상한것 같다."
"왜? 뭐가 이상한데?"
"이상한 소리를 자꾸한다.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다."

초등학교때 엄마를 병원에 보내야 했을 당시 아빠와 했던 대화의 전부 였습니다.

몇개월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평생 약을 드셔야 하기에 약을 드시는 동안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약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만해도 우울증 약은 한정적이고 굉장히 독한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멍하게 계시고, 누워계시는 시간도 많아지시고, 누구와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몇 번의 자살시도도 있었고, 약을 드시지 않아서 재발 할때마다 무서워지셨습니다.
그땐 오로지 엄마가 무섭다는 생각과, 집에서 나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친구가 있어도 들키지 않으려고...꽁꽁 싸매며 음침한 외톨이로 지냈던것 같습니다.
초, 중, 고......졸업식때도 언제나 혼자였고, 사진 한 장 없었습니다.
학교 방문이니 면담이니 이런건 한번도 없었고, 종이를 나누어 주셔도 그냥 버려버리고 
성적이나, 진로 문제도 제가 결정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엄마가 빨아주시는 교복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학교 다니는 오빠와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취를 하느라 월급 받으면 모으는것 없이 
월세, 생활비, 용돈......한달 벌어서 한달 그렇게 겨우 살았습니다.
그러다 25살에 남자친구를 만났고, 생일이란걸 처음으로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겉으로만 밝은척 강한척하고 애교도없고 무뚝뚝하고 무신경한 저에게 
헌신적으로 사랑해준 사람이었습니다.
담배도 피우지않고, 자상하고, 어른 공경하고, 모난 성격의 저도 품어 줄 수 있는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건이 좋지 않다고 헤어지라고 말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모시고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돈 없고, 
장손이나 마찬가지인 집안에, 차 없고, 집 없고, 키크지 않았다는 것이었지만.....
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 하나만 사랑해 주는 사람이 오히려 저보다 조거이 좋다 생각 했습니다.

그렇게 몇년은 태어나서 첨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돈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었습니다.

다니고 있던 직장은 매일같이 야근하고 몸도 많이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한 뒤에도 직장을 다닐려고 좀더 시간이 편하고 일이 편한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5년간 사귀면서 30살이 되면 결혼하기로 준비도하고 말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당시 주식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도 그해에 결혼 할거라 굳게 믿고 있던터라서, 동네에 소문은 다 나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서로 모아놓은 돈이 없으니 저나, 저희 집에서는 원룸에서 월세로 시작해도 괜찮다 생각 하였습니다.
제가 거추장 스러운걸 싫어해서 결혼식이나, 신혼여행, 예물 다 필요 없었지만...
아빠 때문에 결혼식만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2년만 더 기다려 달란 소리에 싸우게 되었습니다.
헤어지니마니 하다가 결국은 저를 사랑해줄 사람은 그사람 밖에 없다는 생각에 기다리기로 했었습니다.

기다리기로 했었지만, 친구들...친척들...동네 사람들 모두 결혼 할거라 믿고 있는 상황에서
아빠는 친척들과 동네에서 우스운 사람이 되어 버렸고, 
저는 친구들에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친구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보다 더 힘들어 할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그당시 엎친데 덮쳤다고 신경이 예민한 상황에서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나이드신 분만 계셔서 그런지 몰라도...
대구에서 반 한나라를 말한다는 것이 그렇게 큰 일인줄 몰랐었습니다.

전두환이 사람들 많이 죽였다는 말에 자기 선배를 욕했다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젊은 것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나라 욕하고 다닌다고...
그때부터 저는 왕따아닌 왕따와 저에 관한 뒷담화가 계속 되었습니다.
믿었던 사람조차도 거기에 동참해서 저의 관한 얘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누구도 믿지 못해서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느라 회사에서는 점점 고립되었고
남자친구와 문제도 겉으로는 괜찮은척 하느라 속으로만 삭히다 보니 
속에서는 숨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함이 끓어오르고, 뒷목이 뻣뻣해지고, 
어깨는 결려서 팔을 책상위에 올리기도 힘들고, 밤에는 잠도오지않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버리고 결국 6개월동안 시달리다가 회사를 관두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관두면 모든게 해결 될 줄 알았는데...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왕따로 인해서 속에서는 수만가지 말을 생각하고 말하는데, 
밖으로 내뱉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 들일지부터 걱정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사소한 일상을 말하더라도 말할수 없고, 질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군가가 나에 관해서 말하고 다니는것 같았고, 응/아니/ 단답형으로만 대화가 가능했고, 
말 시키고, 질문을 해야하는 상황이 겁나고 싫어서 사람 만나기도 싫어졌습니다.

결국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물론 의사선생님께도 속에 있는 얘기는 다 못했습니다. 
믿지 못한거죠...사람에 대해서...

결국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무작정 약만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약 부작용으로 환각과 환청을 겪으면서 무섭고, 죽을만큼 고통스러운 상황도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직 우울증으로 고생하는데, 나까지 그렇게 살수 없다는 생각에...
1년을 남자친구 생각하며, 악으로 버티고 살았고, 
그럴때도 남자친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변함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서 현재는 약을 끊게 되었고, 어느새 32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되어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어느새 나이가 들어버려 더이상 일자리를 구할수 없는 상황이 되어있고, 

남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한 2년이 지났지만, 남자친구는 여전히 형편이 좋지않은 상황이고 
멀리 떨어져 있느라 자주 보지 못해서 더이상 예전같은 감정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헤어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필요없다 옆에만 있어달라 붙잡고 있지만 힘들다 합니다.

직장도 없고, 7년을 사귄 남자친구는 헤어지자 말하고, 
벌어놓은 돈은 병원 다니면서 다 써버리고, 엄마는 여전히 나아지지않고, 
이젠 남아있는 친구도 없고... 

말하고나면 속이 풀린다는데....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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