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진영은 똑똑한 사람이다.
'SBS ' 프로에서 '악동뮤지션' 보고,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는 저런 아이들이 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공감한다.
요즈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이니 하는 얘기들을 한다.
주입식 교육은 아이들의 머리를 굳게하여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이런 교육으로는 진취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식이다.
"한국식 교육으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을 만들 수 없다"는 비판으로 요약되는 이야기라 하겠다.
하지만 그런 교육, 창의력을 강조하고 진취적 정신을 길러주는 교육이 정말로 좋기만 할까.
그런 교육은, 말하자면 부르주아적 관점에 입각한 교육이다.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이 입각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고, 진취적 정신으로 계속해서 시장을 개척하고,
이런 것은 자본가의 역할이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매우 정체적이어서 이렇게 진취적인 신규사업
개척이 불가능에 가깝긴 하다. 새로운 상품이 나온대봤자 이미 있는 대기업에서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러하다.) 그리고 자본가가 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한 명의 자본가가 있다면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수십 만의 노동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조립라인에서 일하거나 잡다한 서류 업무를 처리하는 노동자들에게 창의력이나 진취성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이들이 일에 잘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충성심과 노예근성이다.
하급 노동자들의 아이디어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시스템을 가진 기업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급노동자는 기업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놓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 기업을 소유하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곤경은 경제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수요곡선 공급곡선 그려가며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내용은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사업주체의 입장에서 보게되는 경제일 뿐이다.
그런 것이 필요하게 되는 사람은 극소수, 즉 자본가가 되어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 뿐이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장차 어른이 되어 하급 노동자가 되어야하고,
약간의 아이들은 커서 중간관리층 노동자가 되며,
아주아주 적은 수의 아이들만이 기업가가 될 뿐인 것이다.
이게 어떤 문제를 낳는 걸까? 공교육이 당연한 것이 된 지금, 전체 인민은 어린 시절 공교육을 받으며 자라난다.
그런데 이런 교육이 지배계급의 시선에 의해 짜여져있는 것이다.
다수의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교육을 받으면 그들은 다소간 지배계급의 시선을 가지게 된다
자기계발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창의력을 키워라, 진취적으로 행동하라,
이런 식의 조언에 딱 하나 빠져있는 항목은, 그런 식으로 자기계발을 하여 지배계급에게 충실히 복무하라는 지침이다
이 지침이 빠져있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배계급의 위치에 가야 한다는 감각을 얻게된다.
일반 회사원이 되면 주어진 업무를 적절히 처리하기만 하면 될 뿐이지, 자기가 회사의 주인인양 생각하면서 신상품의 아이디어를 내고,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등을 열심히 생각하더라도 그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면 그것을 통해 회사의 주인에게 복무해야한다.
아이디어를 짜내서 사장한테 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 회사를 키우면 자기한테도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한 배를 타고 가는 선장, 선원들의 관계에 비유하자면,
원할하게 항해하기 선원이 위해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일한다 한들 그 사람은 여전히 선원이라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선원이고, 선원으로서 배를 위해 복무해야하는 것이다"라고 제대로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에게 불만이 생기기 쉽다.
생각해보라. 장차 단순 노동자가 되어야 할,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들에게
"너는 하급 노동자가 되어 하급 노동자의 위치에서 사회를 위해 복무해야한다"고 말해주지 않고
지배계급의 시선에서 짜여진 내용을 가르친다면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하급 노동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위치에 불만족스럽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이 전복적인 가능성을 더 크게 품을 수는 있다.
불만을 품은 이들이 폭발하여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려고 들고일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기존의 질서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교육은 "너도 진취적 기상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사회의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방식으로
피지배계급이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위치는 어차피 하층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적당적당히 할 때 보다,
"나도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끼를 물고 열심히 일하면 한동안은 지배계급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주인들은 그래서 주인의식을 가진 노예를 원하는 것이다.
마치 주인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노예의 위치에서 그렇게 일하는 노예. 요즘은 청소부를 고용하는 학교가 많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내가 어릴 때 까지도 초등학교에선 아이들이 직접 청소를 했다. 이 시절 교사들로부터 자주 들은 이야기가 이런 것이다.
"자신이 교실의 주인이라는 걸 잊지 말고, 자기 방을 관리하듯 교실을 돌보아라"라던가 하는 얘기다.
조례시간에 교장이 연설을 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자주 한다. "여러분이 학교의 주인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학교를 관리해야 합니다.
" 만약 아이들이 정말로 학교의 주인이었다면 그들이 그런 소릴 안 해도 아이들은 당연히 학교가 자기 것이라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반복적으로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실제로는 학교의 주인이 아니지만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학교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을 회사에 옮겨 적용해보면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얼마나 위험천만한 교육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여러분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회사를 운영한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일하십시오."
라는 말이 품고있는 뜻은, "마치 여러분이 회사의 주인인 '것 처럼' 생각하라"는 지침이 보여주는 대로,
"사실은 여러분은 회사의 주인이 아닙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대놓고 "여러분이 주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현대 사회의 구조는 모든 이들이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구조이다.
이 구조에 입각해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경제 교육은 차라리 이런 식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회사에 고용되어 봉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필요해요. 여러분이 살아가려면 쌀도 사고 옷도 사고 집도 사고 교통카드도 사야하는데,
그런 것들을 사기 위해 여러분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용된 노동자가 되고,
몇몇 사람들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삼성,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현대, 엘쥐, 르노, 폭스바겐 등 이런 회사 이름들을 들어보았지요?
이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1이라면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은 1000이나 10000이나 혹은 100000인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중 대부분은 고용된 노동자가 되는 겁니다. 세상엔 다양한 노동자 직종이 있어요.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에서 자동차를 디자인 하는 사람, 애플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디자인하는 사람,
조선회사에서 배를 설계하는 사람 등은 숫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데, 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아서 되기는 힘들어요.
여러분들 중 대다수는 이마트 같은 곳에서 물건을 옮기는 사람, 계산을 하는 사람, 프랜차이즈 미용실 점포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 청소를 하는 사람, 삼성이나 엘쥐의 핸드폰 공장에서 조립을 하는 사람 등의 직종 중에서
비교적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야 한다.
어떤 아이는 손을 높이 들고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
"저는 맥도날드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의 사장이 될 건데요,
그럼 저는 뭘 배워야 하나요?" 그럼 이렇게 대답해 줄 수 있겠다.
"아, 학생같은 사람을 위해서는 '부르주아 경제' 과목이 따로 있으니, 그 수업을 들어보세요."
어떤 아이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의사는 돈을 많이 벌지만 청소부는 돈을 별로 못 버는데다가 일도 힘들고 툭하면 짤린대요.
그래서 의사가 돼야한대요. 의사는 좋은 직업이고 청소부는 나쁜 직업인가요?"
여기에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
당신이 선생님이라고 하면 뭐라고 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