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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윤리학(이글루 펌글)
게시물ID : lovestory_304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이구짜
추천 : 4
조회수 : 75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07/04 17:48:02

이글루에 얼마전 은비사건과 육식을 연결하며 글을 쓴 용자가 있었더랍니다.

역시 대박으로 까였는데 아래 관련주제를 벗어나 순수하게 육식의 폐허를 써

주신 블로거가 있어서 좀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가 이글을 읽고 내린 결론은...

"먹긴 먹지만 역시 좀 덜 먹는게 났겠지?"

근데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등과 비교하면 육식을 적게하는 나라라고 하더군요. 어찌보면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ㅂ= 오히려 환경을 생각해서 육식을 줄여야 하는 국가는 미국등 서구국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여하튼 아래글 읽어보시면 재밌습니다. 단, 좀 기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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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asil83.egloos.com/5304310

육식의 윤리학  

고양이 은비 사건에 대한 논란이 갑자기 어떤 글의 출현으로 인해 육식 혹은 채식주의에 대한 논란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언급된 글 자체가 당황스러운 논리 비약을 감행하고 있긴 하지만,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다시피, 육식과 채식주의의 문제는 별개의 것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지점에서 적지 않은 이글루스 사용자들이 보여주는 반응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육식이 채식에 비해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식용으로 쓰이는 가축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또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생물 혹은 지구과학 시간에 배우는 것 아닌가?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이 소 한 마리, 닭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쌀 한 포대를 가지고 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섭취하는 방법은, 쌀을 자기가 다 먹고 동물들도 잡아먹는 것이다.

쇠고기 1킬로그램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식 11킬로그램이 필요하다. 달걀 1킬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도 3킬로그램의 곡식이 소비된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식의 3분의 2 이상이 동물 사료로 사용되며, 그 과정에서 열대우림을 불태워 개간하는 등의 광범위한 환경 파괴가 이루어진다. 한편 2005년 기준으로 볼 때 8억 5천만 명, 즉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런 팩트 앞에 조금이나마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이 과연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육식에 대한 비판 논의중에는 '동물의 권리'나 심정적·윤리적 차원에서의 접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터 싱어가 1975년 '종 차별주의'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육식의 윤리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와는 달리, 현재 육식에 대한 논의는 전반적으로 '환경 문제'의 일환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앞서 제기한 문제를 좀 더 살펴보자. 평균적으로 11배의 곡식을 먹여야 1킬로그램의 쇠고기가 생산되는데, 특히 중국이나 인도 등 성장하는 국가의 중산층들이 요구하는 식도락적 요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글루스에도 심심하면 '아아 고기느님의 아름다운 자태' 같은 코멘트와 함께 마블링이 잘 된 쇠고기 사진이 등장하곤 하는데, 바로 그와 같이,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는 육류 소비가 인구 집단 내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국에서도 80년대를 지나며 '외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산업화의 역군들은 갓 뽑은 승용차에 자녀를 태우고 교외에 있는 고기집, 즉 '가든'에서 양념갈비를 먹는 것으로 자신의 경제적 풍족함을 과시하곤 했던 것이다. 같은 현상이 중국에서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고 아마 인도인들도 서서히 고기맛을 배워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두 나라는 세계 인구 1, 2위에 빛나고 있으며 합치면 약 25억 명이 되는데, 이것은 전 세계 인구인 6억 명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그 인구 중 10%만 중산층이 되어서 '고기느님'을 '영접'하겠다고 나선다고 해보자.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의 가축이 더더욱 많은 양의 곡물을 먹어치워야 하는데, 그걸 대체 어디서 어떻게 기른단 말인가. 새로 개간되는 토지의 70%가 바로 그와 같이 사료용 곡물을 기르기 위한 농토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아마존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지구를 위해 육식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서구권에서는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소의 트림과 방귀에 포함된 메탄가스, 농지를 개간하고 곡식을 기르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이산화탄소, 운송 및 냉장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등을 모두 따졌을 때 육식은 채식보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설령 인간의 활동에 의한 지구 온난화를 '가설'로 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축들에게 먹일 곡식을 키우기 위해 열대우림을 밀어내고 새로운 농지를 개간하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 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식량 자원의 분배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계인의 7분의 1이 만성 기아 상태에 빠져있는데, 그 와중에 그나마 경제적으로 좀 풍족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육류 소비를 늘리는 것이 '윤리적'으로 납득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앞서 거론한 피터 싱어와 같은 영미권의 공리주의자들은 바로 내 눈앞에서 굶어죽는 사람을 보며 고기 파티를 벌이는 것과 지금 우리가 육식을 하는 행동은 마찬가지이며 윤리적으로 같은 수준의 비난을 당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에반게리온 파>에 나오는 아스카의 대사를 인용하며 '본래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고 사는 것'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은 적절한 반박이 안 된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다시피 육식의 문제는 인간과 동물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식량 배분 및 식생활의 욕망 및 영양, 혹은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까지 나오는 것은 오버가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기후온난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저런 차원까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 내가 만나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리 없지만 아무튼 나와 같은 인류의 일원인 누군가에 대한 동정심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세상이라면, 적어도 나는 그런 곳에 살고 싶지 않다.

갑자기 모두 불교에 귀의해서 고기를 끊자는 말은 아니다. 나도 고기 먹는다.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모범답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한국에서 자라고 도축된 돼지와, 프랑스의 어떤 산간지방에서만 자라며 신선도 유지를 위해 반드시 냉동하지 않고 비행기로 직송해야만 하는 어떤 값비싼 버섯이 있다고 해보자. 둘 중 어떤 것이 더 '반환경'적인 음식일까? 이것은 물론 극단적인 비교이긴 하지만, 지구와 환경을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 반드시 채식이 육식에 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반례가 되기는 할 것이다.

육식 혹은 먹거리의 윤리학에 접근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블로거의 글처럼 '사람 대 동물' 사이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바라볼 수도 있고, 환경주의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수도 있으며, 그 외의 다른 방법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들은 '왠 짜증나는 사람들이 잘난척 하는 소리'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향에서 접근하건, 육식의 윤리학은 현재 가장 뜨겁게 논의되는 환경·정치·윤리적 이슈 중 하나인 것이다. 이번 떡밥을 계기로 이글루스에서도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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